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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우리 가까이, 잡지 이야기 <7>] 시(詩)전문 계간지 《사이펀》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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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시인의 도시?

 

부산에서 만드는(!) 시()전문 계간지 사이펀이 있다. 서울에서 만드는 문학잡지보다 퀄리티가 부족하지 않다. 편집 디자인도 올 칼라다. 시 작품의 결이 곱다. 부산이 시와 시인의 도시란 사실을 전국에 각인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참여 필진도 부산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이다.

 

이번 사이펀가을호에 2기 편집위원이 새롭게 출범했는데 위원들이 부산이란 지역에 갇혀(?) 있지 않다.

부산(한보경 시인), 경남 마산(정훈), 대구(노태맹 시인), 경북 선산(김종희 수필가), 경북 안동(김뱅상 시인), 경북 영덕(권성훈 문학평론가), 광주(김완 시인), 충북 진천(장인수) 등이다.

 

발행인이자 잡지 주간(主幹)인 배재경 시인은 솔직히 호당 1000만원의 비용을 감당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기에 후원자, 구독자, 또 고료를 정기구독으로 전환해주는 필자들에게 무한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배 시인은 이런 말도 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잡지 살림을 꾸려 보니 한 명의 후원자 한 명의 구독자가 얼마나 고마운지 실감을 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배 발행인은 요즘 고민이 많다. 그동안 보우스님과 조창용 시인이 후원을 해 사이펀문학상을 지난 8년간 시상해왔다. 짧지 않은 기간,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새롭게 사이펀문학상운영위원장을 위촉하고 후원을 받아야 한다. 출판사의 수익으로 문예지를 꾸리기도 벅찬데 문학상금까지 준비해야 한다. 다시 몸부림을 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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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펀은 이번 가을호에 중국 동포시인 14명의 시를 특집으로 소개했다. 중국에서 쓰이는 조선어 언어 그대로 옮겨 독자들에게 우리 한국어가 중국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있게 했다. 몇 편을 읽어 본다.

 

행상소리

- 연변민속박물관 백 년 바가지에 부쳐

 

전병칠

 

어허허 어이허허 어허허 어이허

북망산 보낸 령혼이 왜 여기 누워 있노

오호 오호 오호 능차 오호*

숨죽이고 말없이 누구를 기다리노

 

불귀불귀 영 불귀인데

한 많은 이 세상 무슨 연분 있다고

마른 실핏줄 아렴풋하게 거미줄로 늘여놓고

여태 눈 감지 못하고 있노?

 

백일청천 가을날 박 하나 톱질해

한쪽은 형이 갖고 러씨야로 가고

한쪽은 동생이 갖고 남부여대 중국에 왔다는

반남(潘南)박씨 4대 옛말 담은 박바가지

 

철썩철썩 허리를 치던

두만강 물소리 앉아 있는가

낮이면 강 건너 두고 온

고향산천 드러누워

맨발 바람 형님 불러오고

밤이면 초생달 찰랑 빠져

오라비 찾는 누이 눈섶으로 흔들거리고

 

몸이 가면 혼도 가고 눈도 감아야지

-하니 눈확만 남아서

태양 없는 하늘 향해

일가친지 찾으면 어떻하노?

오호 오호 오호 능차 오호

 

산마루 지는 해야

엉덩이 붙이고 일어 안 서는 저 령혼

등장 떠서라도 빨리 데려가소

오호 오호 오호 능차 오호

 

*오호 오호 오호 능차 오호: 경북 북부 지역 상여군들 받는 소리.

 

전병칠

19499월 길림성 화룡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군중예술관, 연변예술집성판공실 등 근무함.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시인협회 회장, 시집 종려나무》 《인류는 이제 한가닥 진화만 남았다등 출간. 연변작가협회 정지용문학상, <시향만리> 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 문학상 등 수상.


 

현풍 할매곰탕집에서

- 서탑 150

 

김창영

 

현풍 할매곰탕집에서 곰탕 한 그릇 먹을 때마다

뽀얀 국물이 뽀얗게 되기까지의

인내의, 그 시간들을 생각한다

 

바다 건너, 대구의 현풍(玄風)에서

마디도 모자라 뼛속까지 녹아내린

누구나의 할매 이야기가

여기 서탑거리에 전해지기까지의

필연의, 그 시간들을 생각한다

 

대구의 현풍 할매곰탕집이나

서탑의 현풍할매곰탕집이나

마시면 속이 개운한 마시는 국거리를 넘어 위

한 점 변함없는, 그 시간들을 생각한다

 

뼈가 녹아내리듯, 한곳에 녹아드는

절절한, 그 시간들을 생각한다

 

김창영

1967년 집안 출생. 료녕신문 기자, 연변작가협회 이사, 료녕성조선족문학회 부회장. 중국시가학회 회원. 시집 산처럼 물처럼》 《서탑출간. <연변문학 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수상.

 

 

마의(馬蟻)일기

-어떤 바람의 터널 속에서

 

박만해

 

다행이다. 천지를 요동치는 굉음소리가 서서히 사라졌다. 실오라기 같은 빛 가닥이 어귀에서 망설이다 드디어 칠흑 같은 동혈(洞穴)을 더듬으며 기어들려고 시도를 한다. 엇갈린 갱도 속엔 짙은 어둠과 굳어버린 밤들이 중첩되어 우리는 시커멓게 찌들은 토템을 껴안고 한 가닥 또 한 가닥의 빛줄기가 반복적으로 끼어들다 죽어가는 따분함에 지쳐 잠이 들었다 또 깨여나곤 한다.

 

새까맣게 뭉쳐진 우리는 마냥 든든하기만 하다. 허나 나의 고독은 왜 나날이 깊어가고만 있을까? 또한 반짝이는 광원(光源)이 두어 알의 모래에 가로막혀 동구 밖에서 온종일 흐느끼는 소리는 왜 나의 심금을 이토록 괴롭게 만들까? 지금 우리는 세상의 밑창에서 여전히 숨을 쉰다. 그리고 또 숨을 쉰다. 서성거린다. 지겹게 한가로운 호흡의 반복이다.

 

그 빛은 끊임없이 알른거린다. 알 수 없는 새들의 지저귐까지 들린다.

밖은 무척 청명한 날씨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깊은 동굴의 시궁창을 벗어나 가물거리는 그 광원의 따뜻함을 맞아 더 넓은 광야로 향해 올라 나설 때가 아닐까 싶다. 전도양양한 앞길은 결코 평탄하지는 않을 거다. 티끌을 제외하고 미소한 모래알마저 우리로서는 늘 힘겹게 지고 넘어야 할 육중한 거암(巨巖)들이라 생각한다.

 

! 세상은 한없이 넓다. 나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빛깔과 그 형태들이다. 햇빛은 나를 감싸주기도 하고 때론 살짝 찌르기도 한다. 현묘한 투각으로 육신을 허황케 하는 순간순간들이다. 나는 이미 빛과 빛 사이에 가려져 있는 어두움의 무게를 느낀다. 그리고 모든 빛줄기 속에 또 하나의 어둠의 터널이 숨겨져 서로 공생,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내가 경건하게 군산들을 우러러볼 때 민들레홀씨들이 휙- - 소리를 내며 황막한 벌판을 쓸고 지나간다. 정말로 경의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소!

광활한 대지에 조화를 이룬 비금주수와 산천초목은 모두 무슨 까닭으로 사는 건지 알바가 없네. 그리고 더 거센 인류들은 지금 막 무리 지어 떠들어대며 온갖 들을 향해 덥석거리고 동족상잔으로 저들만의 제궐(帝闕)을 구축하고 있다. 이렇게 균형이 깨진 황폐한 자연을 흔히 인간들은 사람 사는 세상이라 자찬하고 있지. 우리는 항상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운명에 맡겨 야 할 것인가.

 

인간에 비해 우리는 턱없이 미약하고 보잘것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람들 속에 자비로운 자가 이 땅에 강림하여 개미의 시각으로 천지만물을 가늠할 것이며 그들이 함부로 흘린 한 방울의 눈물마저도 개미 한 쌍의 사랑을 흩뜨릴 수 있다, 라는 사실을 차차 깨달을 것이다.

 

나와 모기는 교제가 깊은 친구 사이는 아니다. 단지 가끔 지날 때 나에게 인간 속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몇 가지 들려주는 정도뿐이다. 오늘 허둥대는 그녀의 넋두리가 사뭇 예사롭지가 않다. 나에게 와인 한 병을 건네주고 이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인간 생명의 유전물이라 보신도 되고 선악 시비도 가릴 수 있는 보약이라고만 말을 아꼈다.

 

세상에 이런 신비한 일도 있나? 내 발밑에서 당당하게 피어 있는 조그만한 오색찬란한 꽃들이 보인다. 나의 손톱보다 천만 배나 더 작고 정교한 생명체들이 보인다. 저 아득한 밤하늘에 별이 보인다. 이 깊은 땅속의 모든 뿌리와 씨앗의 대화소리도 들린다.

 

때는 이미 한로(寒露). 요즈음은 웬지 한동안 요란을 피우던 풀벌레 소리가 제법 뜸해진 느낌이다. 아니, 전혀 소리가 없는 듯하다. 한때는 내 마음을 산란 하게 만들어 놓았던 귀뚜라미도 행방불명이다.

 

지금은 많이 수척해진 몸이다. 들고뛰는 일상에 늘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지만 오늘도 여전히 몇 가닥의 먼지를 일으켜 송구스럽다. 한 톨 한 톨의 먼지가 허공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볍게 날리다가 그 작은 몸체들이 땅에 부딪히는 순간 예전에 그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비명? 아니, 어쩌면 한번 비상하였다가 다시 대지로 귀의(皈依)할 수 있는 희열의 절규일지도 모른다.

 

밤이다.

잔잔한 달빛에 살짝 기대어 천뢰를 경청할 수 있는 정적(靜寂)이 너무나 고맙다. 그 어떤 바람의 터널 속에서, 나 역시 한 알의 티끌처럼 지금 분명 어딘가로 날고 있다. 나와 스쳐 지난 당신이여! 우리들의 존재는 어디에서 다시 시작 될 것인가.

 

박만해

료녕성작가협회 회원, 료녕성조선족문학회 이사,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한글과 중국어로 시 수십 편 발표, 료녕성조선족문학회 문학상 대상 수상.

 

 

아버지

 

강매화

 

굳은 땅 깊은 속살

파헤치면서도 소의 눈동자에는

높은 청산 솟아 있고

 

깊이 파인 주름 속에는

삶의 무덤 숨어서 꿈틀대어도

아버지의 눈동자엔

밝은 별이 뛰놀고 있다

 

추수를 지향하는 봄밤은

뚜벅뚜벅 깊어가는데

아버지의 주름 속의 소 한 마리

무거운 걸음 멈추지 않는다

 

강매화

1976년 흑룡강성 철려시 출생. 연변작가협회 회원, 료녕성조선족문학회 리사. 한글과 중국어로 작품 활동. 중국어시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번역시집 취객(공저) 출간.

입력 : 202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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