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이 입수해 2013년 8월 22일 동북아역사재단 학술대회에서 공개한 관동대지진 장시의 사진.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 광경이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일어난 진도 7.9 관동대지진은
사망 및 행방불명 10만5천여 명피해자 190만 명
이재민 340여만 명이 발생했다
1차 피해는 지진 2차 피해는 화재 3차 피해는 제노사이드
조선인 6,661명이 대학살 당했다
1924년 이후에는 잊혀졌다
지금까지 피학살자 중 이름이 밝혀진 이들은 400여 명
이름과 고향 주소가 기록된 사람은 30여 명이다
희생자의 영혼은 100년이 흘러가도 중음신으로 구천을 떠돈다
일본 땅 22곳에 위령비 위령탑 위령의 종 묘지 등 26개를
대부분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 건립했다
그나마 둘은 민단 둘은 총련 4곳은 재일한국인들이 세웠다
총련은 학생들의 소풍지로 참배하고 관리한다
1985년 한국인들이 기금을 모아 한국의 재료와 손으로
일본에 세운 유일한 기림시설 <보화종루>가 무너져 가고 있다 고국에는 충남 천안 <망향의동산>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사이타마현 · 현북지부가 2003년에 건립한
'관동대진재 기옥현 · 현북지역 재일동포희생자위령탑' 단 한 기 뿐이다
-정종배의 시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100년’ 전문
올해는 일본 관동(關東)대지진 100년이 되는 해다. 1923년 9월 1일 아침에 간토(關東) 지방에서 진도 7.9의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일본 전역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관동대지진은 사망자 및 행불자 10만5000명, 피해자 190만 명, 이재민 340여만 명을 발생시켰다. 이 가운데 조선인 6661명이 학살당하거나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름이 밝혀진 조선인은 400여 명. 이름과 고향 주소가 기록된 이는 30여 명뿐이다.
당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참상을 검열로 인해 쓸 수 없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비극 중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이 제노사이드다.
정종배 시인은 최근 다큐시집 《1923 관동대학살 – 생존자의 증언》(창조문예사)을 펴냈다. 시집이라기보다 증언록, 기록물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시인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정 시인은 “일본인에게 ‘간토진재’는 자연재해였지만 대학살 피해자인 한국인에게는 민족과 인종과 타국민의 갈등이 분출한,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제노사이드”라며 “희생자의 영혼은 100년이 흘러도 중음신(中陰身)으로 구천(九泉)을 떠돈다”고 했다.
정 시인은 또 “항일 저항시와 항일문학의 근간은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대학살”이라며 당시 참상을 목격한 문인으로 ▲시인 김소월, 이상화, 김동환, 김영랑, 박용철, 유치환, 유치상, 장정심, 고한용 ▲소설가로 이기영, 채만식, 한설야, 정우홍, 이익상, 정연규 ▲수필가로 이양하, 김소운 ▲극작가 유치진, 이서구, 조준기 ▲아동문학가 최신복 ▲평론가 김문집 ▲불문학자 손우성 ▲비교문학가 이하윤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김기림, 김말봉, 김영진, 박승희, 손진태, 정지용, 진장섭, 한식, 김두용, 김희명, 최현배, 김상용 등은 당시 현지에 있었는지 확인이 필요하고 양주동, 이장희, 유엽 등은 방학 중 귀국하여 다신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정 시인은 “이후 한국 문인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 참상을 체험한 작가와 비체험 작가로 구분된다”며 “고국으로 돌아온 지식인 대부분이 민족적 참상을 일제 검열로 오감(五感)을 닫아야 했다. 반면 파스큘라와 카프 등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파스큘라는 1923년에 김기진, 박영희 등 도쿄 유학파 출신의 신경향파 문인들이 창립한 문학단체다. 카프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약자로 1925년 최서해, 조명희, 이기영, 한설야 등에 의해 결성된 사회주의 문학단체다. 다음은 정 시인이 쓴 다큐시 ‘참혹한 제노사이드’다.
나무에 묶어두고 오가며 일본도나 죽창으로 찔렀다
양손을 묶은 상태에서 강 속에 던져놓고는
목을 강물 위로 내밀면 작은 배를 타고 가서
독수리 부리 같은 쇠갈고리인 도비구치[鳶口]로 목을 찍어서
다시 물속으로 조선인을 밀어 넣고
대지진 때문에 활활 타고 있는 석탄불 속에
조선인을 산 채로 집어던지거나
오토바이 뒤에 긴 줄로 몸을 묶은 조선인을 매달고
죽을 때까지 달렸으며
구덩이를 파고 조선인을 생매장
임산부의 음부에 죽창이 꽂혀 있었다는 증언과
군인들이 만삭인 임부의 배를 갈랐다
배 속 아이가 울자 아이마저 찔러 강에 던졌다
너무 참혹해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도쿄의 경우 수도라는 특성 때문에
가장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곳으로
군대에 의한 학살이 많았다
조선인 희생자 6661명 중 반 이상의 참상이 일어난
요코하마의 경우는 경찰이 앞장서
자경단 조직을 종용했다는 증언도 많이 있다
이처럼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제노사이드는
자연재해를 이용한 타민족 학살로 세계 근현대사에 유일하다
- 정종배의 ‘참혹한 제노사이드’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