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토, 포토니스 4세대 야간투시경을 ‘표준 모델’로 채택
⊙ 육군 특전사 등 대테러부대에 무게 1kg의 4안식 야투경 900여 대 보급
⊙ 4세대 야간투시경의 무게는 400g 이하, 수명주기 1만 시간
⊙ “한국군, 4세대 야간투시경 도입해 예비군전력 증강까지 고려해야”
- 지난해 3월 27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마을에서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앞에 서 있다. 왼쪽에 있는 특수부대원이 야간투시경(DTNVS)을 착용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장은 세계 각국의 무기체계들의 효용성을 확인하는 ‘검증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배낭에 넣고 다니며 장갑차를 관통 파괴할 수 있는 미국제 스위치 블레이드600이나 미국 리퍼와 함께 무인 공격기의 ‘대표 선수’가 된 튀르키예의 바이락타르 TB2, 재블린 휴대용 대전차미사일 등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일견 이러한 전투기와, 미사일, 무인 공격기가 전장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숨겨진 무기체계가 전장에서 승패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그중 눈여겨볼 만한 게 바로 야간투시경(NVG, night-vision goggles)이다. 야간투시경하면 특수부대원들이 헬멧에 장착하고 작전을 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야간투시경은 말 그대로 한밤중 또는 동굴처럼 빛이 안 들어오는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특수부대원들이 은밀히 작전하기 위해 필요한 워리어 플랫폼의 필수장비다.
우크라이나군, 러시아 야시장비 공장 드론 공격
실제로 야간투시경이 우크라이나전에서 어느 정도 기여를 했길래 ‘게임체인저급(級)’이란 말이 나온 것일까.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군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러시아의 전차부대였다고 한다. 실제로 전차들이 독일의 ‘전격전(Blitzkrieg)’처럼 대규모로 우크라이나 영토로 밀고 들어가면, 단기간에 승패가 결정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까 예상은 빗나갔다. 러시아 전차, 장갑차들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맥을 못 추고 말았다.
야간투시경으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전쟁 초반부터 밤만 되면 어둠을 활용해 매복 공격을 펼쳤던 것이다. 영상증폭관이 장착된 최신 야간투시경을 보급받아 밤마다 정찰, 매복작전을 펼치면서 러시아 전차와 병력 위치를 파악하고, 대전차 미사일로 근접해 파괴하면서 러시아군의 사기는 급속도로 땅에 떨어졌다. 러시아군은 야간투시경으로 무장한 우크라이나 병사들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사냥’을 당하는 꼴이었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야간투시경 숫자를 보면 이런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러시아 병사들의 경우, 특수부대를 제외하고는 야간투시경을 착용하지 않은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부터 첨단 야간투시경을 보급받았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이후부터는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으로부터 보급받은 최신형 야간투시경을 보유하고 있다.
야간투시경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병사들이 야간투시경으로 무장할 것을 우려해 모스크바 인근의 공장시설을 공격하기도 했다. 8월 초 모스크바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의 공업도시 세르기예프 포사트는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의 표적이 됐다. 이 지역에서는 폭발이 이어졌고, 도시 상공에 검은 버섯 구름이 관측되었다고 한다. 서방 전문가들은 폭발이 일어난 공장이 야간투시경이나 조준경과 같은 군사 시야 장비의 주된 생산지였다고 보고 있다.
야간투시경은 베트남전부터 사용
4세대 야간투시경을 장착한 수색구조대원들이 야간에 전투기에서 탈출한 조종사를 구조하는 자료영상. 영상=포토니스
야간투시 장비는 베트남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다 광범위하게 일선 부대에 보급된 것은 2000년 이후다. 야시경의 핵심은 ‘영상증폭관(Image Intensifier)’이라는 것이다. 어두운 밤이나 동굴, 지하 이런 곳에서 물체에 반사되는 아주 작은 빛을 증폭시켜서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정도의 나라들이고, 이들 국가는 기술의 해외 이전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야시경은 렌즈 숫자가 1개짜리, 2개짜리, 4개짜리로 나뉜다. 렌즈가 하나인 ‘단안식 야시경’은 가볍다는 장점은 있지만, 시야 반경이나 투시 능력이 떨어진다. 렌즈 숫자가 많으면 식별능력은 높아지지만, 무게가 나가 전투에 불리하다.
야간투시경도 전투기처럼 2세대, 3세대로 세대가 나뉜다. 얼마나 더 잘 보이냐, 선명도가 뛰어나냐에 따라 세대가 구분된다. 현재는 4세대 기술이 현대전에 가장 적합한 첨단 기술로 알려졌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면서 아프간 반군은 미군이 사용하던 3세대급의 야간투시경을 입수하는 바람에 이미 3세대급 야시장비 기술은 미국의 적성국가들에게 노출된 상태여서 전장에서 비교우위를 상실하고 있는 실정이다.
4세대 영상증폭관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예컨대 선명도와 해상도가 기존 3세대 대비 50% 정도 더 높아졌다고 한다. 두 번째는 초고속 자동 차단 기능. 캄캄한 곳에서 불꽃이나 섬광이 일어나면 눈에 잔상이 남으면서 몇 초 간 사물을 분별할 수 없는 ‘실명상태’가 된다. 그것을 전문용어로 ‘시야 가림 현상’이라고 하는데, 4세대 장비에선 이러한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야간작전 시 적과 교전을 하거나 폭발에 의한 섬광이 발생해도 즉시 초점을 맞춰 공격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한다.
게다가 4세대 야시경은 수명주기에서 3세대에 비해 압도적 진보를 가져왔다. 야시경은 소모품이다 보니 몇 년 사용하면 선명도도 떨어진다. 그런데 4세대 야시경은 1만 시간 정도 수명주기를 갖고 있어 10~11년 정도 사용이 가능하다. 전원은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AA바테리를 장착하는데, 1개를 장착하면 24시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토, 4세대 야간투시경을 표준 모델로 채택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야간투시경의 위력이 알려지면서 폴란드와 스웨덴, 핀란드 등 러시아 주변국은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도 앞다퉈 야간투시경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최근 독일과 벨기에 육군은 3만여 대의 야간투시경을 도입한 데 이어, 4만여 대의 양안 야간투시경을 더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로리나스 카스이우스나스 리투아니아 의회 국방위원회 의장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벌이는 전쟁을 위해 야간투시경이 필수적”이라며 “우크라이나전은 야간투시경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절실하게 학습시켰다”고 했다.
프랑스 포토니스(Photonis)사의 경우, 첨단 4세대 야간투시경을 내세워 유럽 기반으로 판매를 급격하게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가볍고 작으면서 선명도가 대폭 개선된 포토니스사의 야간투시경이 전 세계 육군의 주목을 받고 있다. 포토니스의 4세대 양안식 야시경은 16mm 영상증폭관이 탑재됐고, 무게가 400g 이하로 가벼워 전투효율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기존 단안식 야간투시경보다 DRI, 즉 탐지(Detection), 인식(Recognition), 식별(Identification) 능력이 50% 이상 향상됐다.
초고속자동차단 기능을 통해 폭발 등 갑작스러운 빛의 변화에도 시야 가림 현상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전장에서 적이 총기를 발사하는 것을 가상해 플래시를 번쩍였음에도, 눈에 시야가림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 4세대 영상증폭관은 1만 시간 이상의 수명주기를 가지고 있어 길게는 약 11년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우) 미군 특수부대가 사용하고 있는 ‘L3해리스’ 제작 야간투시경. 사진=L3해리 홈페이지 캡처
경쟁상대인 미국 회사(L3해리스와 엘빗USA)가 만든 렌즈 4개짜리가 야간투시경은 성능도 우수하다. 시야각도 넓고 투시 능력도 뛰어나 대테러, 특수작전 부대가 사용한다. 그러나 장비 하나에 1kg이 넘어 헬멧에 장착하기가 무겁고, 고가여서 대량 보급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간투시경은 성능이 아무리 좋더라도 휴대가 무거우면 병사들의 기동에 큰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산 방산제품은 미국 정부의 정보기술협정(ITA)이나 미국산 우선구매법(Buy American Act)에 막혀 수입이 까다로운 점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한국군이 도입을 시도하는 야간투시경은 하이테크 장비다. 때문에 기술 통제가 심한 미국은 우리 군이 원하는 야간투시경 장비의 공급을 꺼리고 있다. 1991년 미국이 이라크전쟁 당시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을 펼칠 때 한국군은 야시경 장비 수출을 요청했지만, 미군 우선 제공 원칙에 의해 수출을 거부한 적이 있다.
16mm 4세대 야간투시경으로 사격하는 병사를 바라보는 영상. 야간에 적과 교전할 때, 사격 불빛이나 폭발 섬광을 목격해도 ‘시야 가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즉시 초점을 맞춰 공격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한다. 영상=포토니스
북한군도 열병식에서 야간투시경 공개

우리나라도 4세대 야간투시경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경우, 열병식에 등장하는 군인들의 개인전투장구류도 서방 군대와 비슷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카키색 민무늬 전투복에 AK소총을 사용하고, 일부 특수전 부대만 위장복을 입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야간투시경과 조준경, 방탄복, 위장무늬 전투복 등을 갖춘 병력이 등장하고 있다. 일본 육상자위대도 포토니스의 최신형 16mm 양안식 야간투시경 4만 대를 NEC(일본전기)를 통해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도 최근 워리어플랫폼 사업을 추진하면서 최신 야간투시경 보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워리어 플랫폼은 2040년까지 전투장비와 장구, 피복 등 병사들의 개인전투체계를 대폭 개선하는 사업이다.
일반 보병부대엔 2005년부터 2018년까지 포토니스가 개발한 18mm 영상증폭관이 탑재된 단안식 야간투시경 5만여 대가 보급됐다. 해외 영상증폭관을 들여와 국내업체(이오시스템)에서 조립생산해 판매한 이 장비는 무게가 280g으로 가벼운 게 장점이지만, 시야각이 12도에 불과하고, 헬멧에 부착한 채 총기를 조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2018년부터 육군 특전사와 707특임여단, 군사경찰 특임대대 등 대테러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4안식 야간투시경 900여 대가 보급됐다. 미국이 최초로 개발한 이 4안식 야간투시경은 착용 시 시야각이 좌우 90도까지 넓어지는 장점이 있으나, 무게가 800g에 달해 전투현장이나 대테러 임무 수행 시 신속한 기동에 방해가 되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이 4안식 투시경은 가격이 비싸 대량 보급이 쉽지 않았다.
한국군, 4세대 장비 도입 서둘러야

한국군은 현재 단안식 야시경(PVS-04K)의 개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구형 단안식 야시경 업그레이드는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떨어지고 기동력을 요구하는 전장 환경에서 활용도가 낮아, 작고 가볍고 선명도 높은 16mm 영상증폭관탑재 야시경 도입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한다.
16mm 야시경은 무게가 400g이하이고 크기가 작고 헬멧부착, 착용 등이 용이해 작전수행에 훨씬 도움이 된다. 실제로 현역병들에게 야시경 성능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물어보면 “무게와 크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기존 야시경 업그레이드를 통해 영상증폭관 성능은 일정 부분 향상될 수 있지만, 장비 소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VS-04K는 플라스틱 재질인데, 이는 오래 사용하다보면 내구도가 떨어진다. 반면, 최근 출시된 제품은 메탈 소재(알루미늄 또는 마그네슘)로 만들어져 무게도 가볍고 내구도도 강하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프랑스와 독일, 영국, 스페인, 벨기에,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9개국은 포트니스의 16mm 양안식 야간투시경과 같은 4세대 야간투시경을 ‘표준 모델’로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수로 따지면 약 20만 대가 보급됐다는 통계다.
안승범 디펜스타임즈 편집장은 “현재 운용 중인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예산 절감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기술 트렌드와 운용성, 병사들의 생존성 면에서는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다”라면서 “현재 운용 중인 단안식 야시경을 예비군 물자로 돌리고, 신형 양안식 장비를 도입함으로써 예비군 전력 증강과 함께 전투 병력들에게 최신 무장을 지급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포토니스는 한국의 광학전문기업인 이오시스템과 협력해 한국군에 지난 10년간 약 4만 대의 야시경(PVS-04K)을 공급했다. 사실 PVS-04K는 1990년대 초에 설계된 제품이고 그간 성능개량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생산‧납품되는 장비에 비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포토니스가 한국군에 제안하는 것은 나토가 채택한 16mm 영상증폭관탑재 야시경이다.
프레드릭 오자트(Frederic Hosatte) 포토니스 아시아태평양 담당 대표는 “군인 한 명당 고글(야간투시경) 하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을 우크라이나 전쟁이 증언하고 있다”며 “중국군도 50만 명에게 야시경을 장착시켰고, 유럽 제국들도 대대적으로 장비를 갖추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군도 가볍고 성능이 우수한 첨단 고글로 무장해야만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