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할머니들이 직접 뜯은 쑥을 넣어 만든 위로약방의 시그니처 메뉴. 왼쪽부터 ‘영월 쑥쉘’ ‘쑥살개아이스크림’ ‘초코나무쑥팥콜릿’.
비운의 역사에 매료된 청년 사업가의 새 출발점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식품, 위로가 되는 식품을 만들자는 게 저만의 경영 철학이에요. 그런데 영월은 비운의 왕을 위로한 역사가 있는 지역이더라고요. 마치 운명 같았죠.”
카페 ‘위로약방(강원도 영월군 북면 마차중앙1길 45)’을 운영하는 한은경(38) 대표는 서울 청년의 타 지역 창업을 지원하는 서울시 ‘넥스트 로컬(Next Local)’ 사업을 통해 창업에 성공한 귀촌 청년이다. 청년 창업이라면 새내기 사업가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한 대표는 이미 잔뼈가 굵다. 22살에 첫 창업 후 올해로 17년째, 당뇨를 앓고 있는 엄마를 위해 개발한, 팥을 주원료로 한 저당 초콜릿 ‘팥콜릿’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 ‘레드로즈빈(Red Rose Bean)’으로 수억 원대 매출을 올리며 이미 한 차례 성공 가도를 달려봤다. 팥콜릿은 엄마는 물론이고 단것을 마음껏 먹을 수 없었던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됐다. 그렇게 ‘위로’는 한 대표의 사업과 삶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단종에 얽힌 비운의 역사에 매료됐다는 한은경 대표는 영월을 새 보금자리 삼고 마을 주민과의 상생을 꿈꾼다.
그런 그가 영월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건 지역 상생(相生,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감)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지역 상권이 위태롭잖아요. 사업을 통한 상생이 그걸 해결할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좋은 식재료를 확보하기에 더 유리하기도 하고요. 그걸 실현해보고자 2021년에 영월에 왔습니다.” 굳이 영월을 선택한 데에는 단종의 슬픈 역사가 한몫을 했다. 한 대표는 “대부분의 지역이 위업을 이룬 인물의 역사를 내세우는 데 반해 영월은 비운의 역사를 품은 곳”이라며 “위로를 경영 철학으로 삼은 내가 영월을 닮은, 위로를 주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22년 5월 문을 연 ‘위로약방’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그런 위로와 치유의 의미를 담아낸 카페다. 약국이 없는 시골 마을이라 처음엔 약국이 생기는 줄 알고 좋아했던 어르신들이 카페인 걸 알고 무척 실망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물론 그 실망은 기대와 만족으로 바뀐 지 오래다.
영월 할매가 뜯은 쑥, 건강한 디저트로 재탄생
위로약방 내부 전경.
위로약방의 시그니처는 쑥을 넣어 만든 저당 파이 ‘영월 쑥쉘(3500원)’이다. 여러 지역의 유명 제과점에서 초코파이가 인기를 얻은 것에 착안, 영월의 식재료와 정서를 담은 파이 제품을 개발했다. 마을 할머니들이 직접 뜯어온 쑥을 구매해 쓰고, 통밀에 설탕 대신 대체 당을 사용해 혈당 염려 없이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한 대표는 “영월 쑥이 임금님 진상품이었는데 막상 단종에게는 전해지지 못했다고 한다”며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단종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상품성은 일찌감치 입증됐다. 위로약방에서도 인기지만 올해 초엔모 온라인 쇼핑몰에 론칭, 단번에 4000여 개를 판매했다. 팥콜릿에 쑥과 호두를 더한 ‘초코나무쑥팥콜릿(8개입 1만5000원)’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역시 온라인 쇼핑몰에서 3일 만에 3600만원에 달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지금은 소비자가 직접 영월을 찾아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온라인 판매는 중단한 상태다.
할머니들이 뜯은 영월 쑥을 재료로 한 제품은 더 있다. 쑥과 신선한 원유로 만든 ‘쑥살개아이스크림(4500원)’은 진한 맛과 은은한 쑥향, 달지 않은 맛으로 인기다. 금가루를 뿌려 영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소원사탕(50g 1만2000원)’은 설탕 없이 쑥과 천연 자일리톨로 만들어 양치 후에도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사탕이다. 이 밖에도 위로약방에는 아메리카노(4000원), 바닐라빈크림라떼(6000원) ‘솔티드 카라멜(6000원)’ ‘두유쑥블랜디드(6500원)’ ‘TWG 프렌치 얼그레이(5500원)’ 등 다양한 음료가 마련돼 있다.
지역 상생이 목표… “영월 대표 브랜드로 키워갈 것”
위로약방의 ‘영월 쑥쉘’은 지난 4월 열린 영월의 대표 축제인 ‘단종문화제’ 기념품으로 선정돼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역 상생을 꿈꾸는 한 대표가 먼저 시도 중인 건 마을 할머니들의 소득 증대다. 작게는 뜯어온 쑥을 구매해 재료로 쓰는 한편 지난 3월부터는 마을 할머니 10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디저트류를 만드는 쿠킹클래스를 열고 있다. 단순히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쿠킹클래스를 통해 만든 제품은 실제로 만든 할머니의 이름을 브랜드화해 위로약방에서 판매한다. ‘아무개 할머니의 스콘’ 같은 식이다.
한 대표는 “할머니들의 수익이 오르고 궁극적으로는 함께 운영하는 상태가 돼야 진정한 상생이라고 본다”며 “욕심이라면 제품이 잘 팔려 할머니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이라고 바람을 밝혔다.
사실 한 대표의 욕심은 이 정도가 아니다. 언젠간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갈 큰 꿈을 품었다. 그는 “직접 만든 제품이 영월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고, 제조기업으로 성장해 세계에 수출하는 게 장기 목표”라며 “그쯤 돼야 지역 사회에 실질적 도움이 되고 관광객을 불러 모을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영월군 청소년문화의집과 협약을 맺고 지역 청소년들의 진로·직업 교육에도 나섰다. 한 대표는 “학생들이 (위로약방을 보고)고향에서 창업해 살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며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쯤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면 나한테라도 올 수 있게 내가 꼭 성공해야 한다”며 웃었다. 한편 위로약방의 ‘영월 쑥쉘’은 지난 4월 열린 영월의 대표 축제인 ‘단종문화제’ 기념품으로 선정돼 지역 주민과 관광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위로약방은 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문을 열고 일·월요일은 휴무다. 문의 010-4783-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