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월 10경 청령포. 단종의 유배지로 강과 절벽으로 사방이 가로막힌 천연 감옥이다.
문화·관광자원으로 승화한 비운의 단종 哀史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바로 영월과 단종이다. 1452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조선의 6대 왕 단종(端宗, 1441~1457)은 충신들이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돼 처형된 사육신 사건을 계기로 영월에 유배된다. 결국 유배 넉 달 만인 1457년 10월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는데 당시 단종의 나이 17세였다.
단종대왕 유배길을 알리는 리본. 길을 잃지 않도록 전 구간에 걸쳐 매달았다.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하고 삶을 마감한 곳인 만큼 영월에는 그와 관련된 명소가 여럿이다. 유배지인 천연 감옥 청령포(淸冷浦)를 비롯해 홍수로 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옮긴 거처이자 사약을 받은 장소인 관풍헌(觀風軒), 단종이 올라 시를 짓고 읊었다는 자규루(子規樓), 단종이 승하하자 그를 모시던 궁녀와 시종들이 동강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는 낙화암(落花巖)과 지난해 11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단종 복위를 꿈꾼 충신 10인의 위패를 모신 창절사(彰節祠) 등이다. 단종이 영원한 안식에 든 무덤도 영월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사적 제196호로 지정된 장릉(莊陵)이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이 서울·경기 지역에 조성돼 있지만 유배지에서 목숨을 잃은 단종의 무덤만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에 있다는 점도 특별함을 더한다. 각 장소가 지금은 영월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가 됐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서린 슬픈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느덧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영월군은 비운의 왕 단종에 얽힌 역사를 문화·관광자원으로 승화시켜 ‘충절의 고장’이란 지역 정체성을 공고히 이어가고 있다. 1967년부터 매년 4월 말 열고 있는 지역 축제 ‘단종문화제’가 대표적이다. 축제를 통해 단종과 충신들의 넋을 위로하는 한편 영월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단종대왕 유배길’을 조성한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건 기본, 여기에 어린 왕의 짧은 생에 얽힌 비운의 역사가 더해져 여느 트레킹 코스와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한다.
솔치재에서 청령포까지, 울고 넘는 110리길
주천3층석탑을 지나 쉼터에 이르는 길에선 강변 정취 가득한 한적한 둑방길을 만난다.
2012년부터 본격적인 조성을 시작해 2013년 개장한 단종대왕 유배길은 영월군과 맞닿은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솔치재에서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청령포까지 이어지는 44.5㎞ 코스다. 크게 3개 구간으로 나뉘는데 1구간 ‘통곡의 길’은 14.5㎞로 약 3시간 40분, 2구간 ‘충절의 길’ 14.5㎞ 약 4시간 10분, 3구간 ‘인륜의 길’ 15.5㎞ 약 4시간 30분이 각각 소요된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설계한 길이지만 안전을 고려한 보행로 중심으로 조성해 실제 단종이 지난 길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또 우천 시 우회로를 이용하면 전체 거리는 좀 더 늘어난다. 전 코스에 걸쳐 곳곳에 ‘단종대왕 유배길’이라 적힌 노란 리본이 걸려 있어 길 찾기가 좀 더 수월하다.
출발점인 솔치재는 한양을 출발해 청령포로 향하던 군졸 등 50여 명의 단종 일행이 막 영월 땅에 들어서는 지점이다. 원주시 신림면과 영월군 주천면 사이에 있는 재(岾), 즉 고개로 오래전 큰 소나무가 우거져 솔치재라고 불리게 됐다. 해발 500m에 달하는 솔치재를 넘느라 지친 단종은 영월에 들어서 작은 샘터를 발견하곤 목을 축이며 지친 다리를 쉬어 간다. 단종대왕 유배길의 첫 목적지인 어음정(御飮井)이다. 어음정은 ‘임금이 마신 우물’이란 뜻으로 후세에 붙여진 이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지만 정자를 세워 잘 보전해 놨다. 여정은 역골로 이어진다. 조선시대 역참(驛站,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관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객사)과 나그네들이 묵어가던 원집인 공순원(公順阮)이 있던 마을이다. 원집 근처 주막에서 먼저 도착한 나그네들이 단종의 초라한 행차를 보곤 눈시울을 적셨다고 전해진다.
역골을 지나 다음 목적지인 주천3층석탑으로 향한다. 3㎞, 약 40분 거리인데 가는 길에 주천강(酒泉江)을 건넌다. 강가에 술이 솟았다는 전설을 품은 샘터가 있다. 양반에겐 청주가, 천민에겐 탁주가 나와 화가 난 천민이 샘을 부쉈고, 그 뒤로는 물만 솟아 강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주천(酒泉), 술샘이란 강 이름과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강을 건너면 주천3층석탑에 이른다. 석탑은 오래전 주천면 사자산(獅子山)에 있던 절인 흥녕선원(興寧禪院)을 안내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고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주천강을 따라 40여 분 더 걸으면 쉼터에 닿는다. 1구간 ‘통곡의 길’의 끝 지점이자 2구간 ‘충절의 길’의 시작점이다.
강줄기 따라 굽이굽이, 걸음마다 펼쳐진 절경
주천3층석탑. 고려 말~조선 초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쉼터라니 길을 걷는 이들을 위한 휴게 시설일 것 같지만 아니다. 유배지로 향하며 여독에 지친 단종이 큰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쉬어 간 자리다. 아무렴 어떤가, 단종대왕 유배길을 걷는 여행자도 평평한 바위를 의자 삼아 잠시 숨을 고르면 될 일이다. ‘쉼터’라고 적힌 커다란 표지석과 당시 단종의 모습을 표현한 동상이 있다. 근처에 있는 2기의 봉분은 무덤이 아니라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품, 즉 젖가슴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쉼터를 지나 군등치(君登峙) 조망대까지 4.5㎞ 구간은 주천강을 따라 이어진다. 걷는 동안 주천면을 지나 한반도면으로 들어선다. 길이 제법 험하고 강가라 미끄러운 곳도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깎아지른 절벽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던 단종이 ‘무슨 고개인데 이다지도 험한가?’ 물으니 수행하던 이가 ‘노산군(魯山君)이 오르시니 군등치(임금이 오른 고개)라 하옵지요’라고 답해 지금의 지명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노산군은 상왕(上王,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난 임금)에서 왕의 친족을 뜻하는 군(君)으로 강등된 당시 단종의 칭호다. 가파른 비탈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군등치 조망대에 도착한다. 도로변에 조성된 조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근사하다. 유유히 흐르는 주천강 너머 너른 하늘과 겹겹이 포갠 산등성이가 펼쳐진다. 고개를 넘는 길에 돌연 단종이 탄 말의 목에 걸린 방울이 땅에 떨어졌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길이란 불안이 어린 왕의 가슴을 짓누른 때, 마을주민들이 울며 단종을 맞이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고개 이름은 방울재가 됐다.
유배길 여독에 지친 단종이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쉬어 갔다는 ‘쉼터’.
방울재를 지나 1시간쯤 걸으면 배일치마을이다. 2구간이 끝나고 3구간 ‘인륜의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마을을 지나면 또 고개를 만난다. 참 많기도 한 고개 중 이번 고개의 이름은 배일치재(拜日峙岾)로 해발 528m 도덕산 정상이다. 단종이 아버지 문종과 사육신을 떠올리며 석양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는 이곳엔 실제로 엎드려 절하는 단종의 동상이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코끝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마치 눈물 같아 숙연해진다고. 배일치재를 지나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산봉우리를 만난다. 예쁘고 다소곳한 봉우리가 아내 정순왕후를 떠오르게 해 단종이 ‘옥녀봉(玉女峰)’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왕의 슬픔 머금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
단종대왕 유배길의 종착점 청령포.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정면의 집은 단종이 유배 생활을 했던 ‘단종어소’를 재현한 것.
길은 다시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주천강이 평창강을 만난 서강이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이제 영월읍으로 접어든다. 곧이어 만나는 거대한 절벽, 양 갈래로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는 영월 10경 중 하나인 선돌(立石)이다. 여행자들에겐 선돌 위로 마련된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익숙하지만 아래쪽 강변에서 보는 풍광은 또 다른 모습이다. 오래된 석회암에 생긴 갈라진 틈을 따라 암석이 부서져 내리며 양옆으로 우뚝 선 기둥 모양이 됐는데, 70m 높이 암석이 우뚝 서 있다고 해서 서 있는 돌, 선돌이란 이름이 붙었다.
단종이 넘을 당시 하늘도 슬퍼 소나기를 뿌렸다는 또 하나의 고개, 해발 320m 소나기재에 너른 주차장과 선돌 전망대로 이어진 나무 데크 길이 있다. 차를 세우고 2~3분만 걸으면 전망대에 도착하니 선돌을 위에서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꼭 찾아가 볼 것. 선돌을 지나 4.4㎞, 강줄기를 따라 1시간가량 걷다 보면 단종대왕 유배길의 백미이자 종착점인 청령포에 도착한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는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이고 나머지 한 면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섬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영월 10경 중 하나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 명소가 됐지만 당시 단종에게는 창살 없는 감옥과 다름없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어른 3000원, 청소년·군인 2500원, 어린이 2000원)을 산 뒤 수시로 왕복하는 배를 타고 청령포에 들어선다. 먼저 맞이하는 건 짙은 솔향.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觀音松)도 볼 수 있다. 약 600년을 살아온, 국내에서 가장 큰 소나무다. 단종이 유배 당시 이 소나무의 갈라진 가지에 걸터앉아 쉬곤 했다고 전해진다. 청령포의 소나무 숲은 지난 2004년 산림청 주관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서강 강줄기를 따라 걷다 보면 영월읍에 접어든다. 강변에 우뚝 솟은 절벽이 선돌이다.
단종이 머물던 처소를 재현한 시설을 비롯해 그가 한양을 그리며 쌓았다는 돌탑인 망향탑(望鄕塔)도 볼 수 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돌탑이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물녘 올라 한양 방향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바위 언덕의 이름은 노산대(魯山臺)다. 석양에 물든 저녁놀이 아름다울수록 마음은 더욱 무너져 내렸을 거다. 560여 년 전 어린 임금과의 동행은 여기까지다. 내내 그를 기억하며 걸어온 끝이라 청령포를 뒤로하는 발걸음은 또 한 번 그를 홀로 두고 간다는 생각에 더뎌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