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탄고도 1330 통합안내센터가 있는 영월관광센터. 173.2㎞에 이르는 운탄고도 1330의 출발 지점이다.
석탄 나르던 고도 따라 173.2㎞, 영월의 새 걷기 명소
운탄고도 1330은 영월군에서 출발해 정선군, 태백시, 삼척시까지 이어지는 총 구간 173.2㎞의 트레킹 코스다. 운탄고도(運炭高道)는 석탄을 나르던 높은 길을 뜻한다. 1960~1980년대 석탄 산업의 활황기에 석탄을 실은 차량이 실제로 오가던 길을 따라 조성됐다. ‘1330’은 전체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인 함백산 만항재(晩項岾)의 높이인 해발 1330m에서 따왔다. 아쉽지만 만항재는 영월은 아니다. 영월과 정선, 태백의 접경 지역에 있지만 행정구역으로는 정선군 고한읍에 속하는 운탄고도 1330 5길에 있다. 운탄고도 1330은 지난해 10월 전체 9개 길(구간) 중 1~6길을 우선 개통했다. 태백시 황지동 순직산업전사위령탑과 삼척시 교동 소망의 탑을 잇는 7~9길은 구간 정비 등이 마무리되지 않아 아직 개통 전이다.
운탄고도 1330 홈페이지(untan1330.com)에서 7~9길 코스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위험한 구간이 많아 아직은 걷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게 운탄고도 1330 통합안내센터 측의 설명이다. 영월관광센터(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청령포로 126-3) 내에 있는 운탄고도 1330 통합안내센터에서는 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구간 완주를 인증할 수 있는 패스포트도 발급해준다. 1~6길을 걸으며 중간중간 비치된 13개 스탬프를 패스포트에 찍어 인증하면 ‘운탄고도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 지금까지의 완주자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통된 구간 중 영월에 해당되는 건 1~3길이다. 먼저 1길은 운탄고도 1330 통합안내센터가 있는 영월관광센터에서 각동리(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각동리 3713)를 잇는 15.6㎞ 약 5시간 30분 코스다. 출발지인 영월관광센터 인근에 단종대왕 유배길의 종착점인 청령포가 있어 둘러본 뒤 본격적인 코스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영월관광센터를 출발해 세경대학교 입구와 각고개를 지나 걷다 보면 팔괴리
카누마을에 닿는다. 여름철이면 카약을 즐길 수 있는 곳인데, 여기선 강변을 따라 탁 트인 동강 경치를 감상하며 걷는 맛이 쏠쏠하다. 카누마을을 지나 1㎞쯤 걷다 보면 태화산 자락과 만난다. 오르막과 평지가 반복되는 산길이 이어지는데 산 정상(1027m)까지 오르는 건 아니어도 가장 높은 구간이 해발 637m에 달해 그리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태화산 경관숲 안내 표지판이 나타나면 오르막은 끝난다.
1구간 종착점인 각동리 입구까지 이어진 길은 완만해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중간중간 길이 헷갈리기도 하지만 안내 표식을 찾아 잘 따라간다면 어렵지 않게 정해진 구간을 걸을 수 있다. 각 구간의 시작과 끝에 노선과 정보가 담긴 안내판이 있고 중간중간 녹색 기둥 모양의 상징물과 방향 표지판, ‘운탄고도 1330 강원을 걷다’라고 적힌 녹색과 주황색의 리본이 매달려 있다.
동강 경치 만끽하고 구름 모여드는 산골 마을로
2길은 각동리에서 모운동(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리 98-1)까지의 18.81㎞ 구간으로 약 6시간 45분이 걸린다.
김삿갓면은 조선 후기의 방랑 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 1807~1863)의 고향으로 생가와 묘소가 보존돼 있다. 영월군은 이를 기념해 ‘난고 김삿갓 문학관’을 운영 중이며 매년 가을 ‘김삿갓 문화제’를 열어 방랑 시인의 시대정신과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각동리 입구를 출발해 가재골교로 남한강을 건너면 본격적인 2길의 시작이다.
가재골로 향하는 코스는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아스팔트 길이지만 옆으로 남한강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져 눈이 즐겁다. 강 너머 겹겹이 펼쳐지는 산등성이도 장관이다. 가재골에서 대야리로 이어지는 구간에선 정상에 대야산성(大野山城)이 있는 고개를 넘어야 한다. 삼국시대에 지어진 대야산성은 지금은 무너져 성벽 일부만 남아있다. 산길을 따라 해발 400.8m 높이를 오르지만 1길에 지나온 태화산 자락 구간을 생각하면 수월한 편이다. 중간중간 전망이 트여 김삿갓면의 수려한 자연 경관을 감상하기도 좋다. 대야리를 지나 김삿갓면사무소, 예밀교차로를 지나면 영월 포도로 유명한 예밀촌마을을 만난다. 마을 주민들의 손길로 길이 깔끔하게 정비돼 있고 포도밭과 함께 예밀와인을 생산하는 예밀와이너리와 와인 족욕과 시음을 즐길 수 있는 예밀와인 힐링족욕체험센터가 있어 걷느라 쌓인 피로를 풀며 쉬어 가기 제격이다. 예밀촌마을에서 모운동(募雲洞)까지는 완만하게 경사가 높아진다. 사실상 석탄을 나르던 운탄고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구간이다.
해발 700M 산골 마을 모운동. 알록달록한 벽화로 꾸며진 예쁜 마을이 2길의 종착점이다.
모운동 구석구석 눈길 끄는 포인트가 많아 천천히 둘러보며 쉬어 가기 좋다.
장재터를 지나 굽이굽이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 약 4.5㎞, 1시간 20분쯤 걷다 보면 만경대산 해발 700m 높이에 자리 잡은 모운동 마을을 만난다.
‘구름이 모여드는 마을’이란 뜻의 모운동은 단연 운탄고도 1330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알록달록 벽화로 꾸며진 옛 산골 마을로 접어들면 이색적인 풍광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석탄 산업이 활황이었던 1960~1970년대엔 1만여 명이 모여 살았다는, 동네 강아지들도 돈을 물고 다녔다는 구름 속 마을은 이제 30여 가구 4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폐광촌 오지 마을이 됐다. 아기자기한 구옥들이 알록달록 동화 속 이야기를 담은 벽화로 꾸며져 천천히 돌아보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해 8~10월 방영된 tvN 예능 프로그램 ‘운탄고도 마을호텔’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는데 당시 마을호텔로 쓰인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은 마을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쉼터로 운영 중이다.
석탄 산업 흥망 고스란히… 운탄고도 대표 코스
모운동을 천천히 감상하며 땀을 식힌 다음 이어지는 코스는 예미역(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 200-1)까지 16.83㎞ 약 5시간 30분 코스의 3길이다. 해발 1010m 망경대산까지 고지대가 이어지며 과거 석탄 산업의 주역이었던 광부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구간으로 ‘운탄고도’란 이름에 가장 걸맞은 대표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폐광과 삭도(索道, 공중에 설치한 강철선에 운반차를 매달아 사람이나 물건을 나르던 장치), 옛 광업소 터와 광부들을 위한 목욕탕 건물 등을 볼 수 있어 ‘광부의 길’이란 별칭이 붙었다.
광차와 광부를 표현한 조형물.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사진 스팟이다.
3길에 접어들어 호젓한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무너진 건물의 밑부분이 남아있는 옛 ‘동발제작소’가 보인다. ‘동발’이란 갱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받치는 나무 기둥을 말하는데 붕괴 사고가 잦아 나중엔 콘크리트로 만든 동발을 사용했다고. 산길이지만 차가 다닐 수 있게 잘 닦인 길이 이어진다. 얼마간 걷다 보면 황금폭포 전망대에 오를 수 있는 나무 계단이 나온다. 황금폭포라니, 궁금증이 인다. 계단을 올라 나무 데크 전망대에서 굽어보면 왼쪽 아래로 누렇고 붉은 빛깔의 물줄기가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볼 수 있다. 폐광인 옥동광산에서 흘러나온 물을 낙차를 이용해 끌어다 만든 인공 폭포다. 갱도에 풍부한 철분 성분 때문에 물이 누렇게 변하고 암벽까지 물들여 황금폭포가 됐다. 겨울에 찾으면 황금색 얼음벽을 만들어 더 이색적인 풍광을 즐길 수 있다고. 황금폭포 전망대를 조금 지나면 광차(鑛車, 광석을 실어 나르는 수레)에 기대선 광부 조형물이 보인다. 이희경 작가의 작품 ‘휴식’이다. 작품 옆에서 광부의 포즈를 따라 기념 사진을 찍는 여행자가 많다. 이후 망경대산까지는 계속 고도가 높아진다. 1010m 정상에 오르기 전 망경산사에 들러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다. 망경산사는 해발 800m 망경대산 고지에 있는 작은 사찰로 잘 정돈된 너른 분지 곳곳 야생화와 산나물이 자라고 고즈넉한 경관이 일품이다. 운이 좋다면 ‘산채 맛집’으로 소문난 망경산사의 공양(供養, 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을 맛보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코스 중후반부터는 고도가 급격히 낮아진다. 망경대산을 내려와 석항삼거리를 지나면 폐역인 석항역과 열차 객실을 개조한 특별한 숙박 시설인 ‘석항트레인스테이’를 볼 수 있다. 운탄고도 1330을 걷다 숙소 삼기 제격이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다. 석항 삼거리를 지났다면 곧 정선군으로 접어든다. 신동읍 농산물 집하장과 예미농공단지를 지나 정선 예미역까지 1시간 정도면 3길이 끝난다.
전망대에서 본 황금폭포. 갱도의 철분 성분 때문에 물이 누렇게 변하고 암벽까지 물들여 황금빛을 낸다.
트레킹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안전이다. 고도가 높은 산길이 많은 만큼 자신의 체력과 날씨 변화 등을 고려해 무리하지 않은 여정을 계획해야 한다. 엄기현 운탄고도 1330 통합안내센터 사업운영팀 팀장은 “가급적 여러 명이 함께 걷고 혼자 걷는다면 자신의 위치를 수시로 지인에게 알리고 휴대전화 GPS 등 위치 기반 서비스를 켜두는 게 좋다”며 “하절기는 오후 6시, 동절기는 오후 5시 이후 걷기를 자제하고 운탄고도 표식을 놓쳤다면 마지막 표식을 본 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