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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새 보물_ 창절사(彰節祠)

충신(忠臣) 넋 기리는 사당… 역사·학술적 가치 높은 평가

최덕철  기자 dch@chosun.com

사진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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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6대 국왕 단종(端宗, 1441~1457)의 유배지로 잘 알려진 영월은 충절(忠節)의 고장으로 불린다.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세조(世祖, 1417~1468)에게 죽임당한 충신들의 넋이 잠든 곳이기 때문이다. 그 충신들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 지난 연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영월 창절사. 사육신을 비롯한 충신 10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지난해 11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단종 복위 꿈꾼 충신 10인 위패 모신 사우

창절사(彰節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63-1)는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어간 충신 10인의 위패(位牌, 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을 적은 나무패)를 모신 사우(祠宇, 위패를 모셔 놓은 집)로 지난해 1125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은 중요도와 가치가 뛰어난 유형문화재 중 지정되며 국보와는 구분된다. 국보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의 문화에 있어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대상으로 지정한다.

창절사는 원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죽임당한 사육신(死六臣)의 위패를 모시고자1685년 장릉 경내에 지어졌는데 170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이후 경내에 유학(儒學) 교육 기관인 창절서원(彰節書院)이 세워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건립 당시엔 성삼문(成三問, 1418~1456), 박팽년(朴彭年, 1417~1456), 이개(李塏, 1417~1456), 하위지(河緯地, 1412~1456), 유성원(柳誠源, 미상~1456), 유응부(兪應孚, 미상~1456) 등 사육신을 모신 곳이란 의미로 육신사(六臣祠)라 불렀으나 1709년 조선 19대 국왕 숙종(肅宗, 1661~1720)이 창절사라 이름 짓고 사액(賜額, 왕이 지은 사당·서원 등의 이름을 적은 액자를 하사하는 것)해 지금의 명칭을 갖게 됐다. 지금은 사육신의 위패에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한 충신 엄흥도(嚴興道, 생몰년 미상), 생육신(生六臣) 중 김시습(金時習, 1435~1493)과 남효온(南孝溫, 1454~1492), 사육신의 참형 소식을 듣고 자살한 박심문(朴審問, 1408~1456)의 위패를 더해 충신 10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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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신 10인의 위패를 모신 창절사 내부.

 

18세기 건축 양식, 조선시대 서원 구성 한눈에

창절사는 다른 사우에 비해 큰 규모와 함께 새 날개 모양의 지붕 장식인 익공식(翼工式) 18세기 건축 양식의 특징이 잘 반영돼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이 창절사를 보물로 지정한 사유다. 또 사우 외에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이 이용했던 강당과 기숙사 역할을 한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정문 누각(樓閣)인 배견루(拜鵑樓) 등을 갖춰 전형적인 조선시대 서원의 구성을 보여준다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창절서원과 창절사의 관리는 사단법인 영월창절서원이 맡고 있다. 영월창절서원은 창절사에 모신 충신들의 후손을 비롯해 영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형성된 비영리단체다. 현재 3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며 충신들의 충절을 기리고 창절사와 창절서원의 문화·역사적 가치를 알려가고 있다. 회원들은 매월 음력 1일과 15일 창절사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대제(大祭)1년에 한 번, 매년 한

글날에 지낸다. 사육신의 대부분이 한글 창제에 힘쓴 집현전 학자였다는 점에서 한글날을 대제일로 정했다는 게 영월창절서원 측의 설명이다. 창절사와 창절 서원은 평소에는 닫혀있지만 제삿날을 비롯해 학교 등 기관·단체의 견학 요청이 있을 경우에 한해 일반에 공개된다. 문의 (033)373-3113

 

인터뷰_충절의 소중한 가치 후손들에게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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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정태교 ()영월창절서원 원장

 

왕조에 대한 충절이 요즘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굳은 절개는 시대를 막론하고 존경받을 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소중한 가치를 전하고자 수백 년간 창절사를 지키고 제사를 지내온 거죠.”

정태교(75·사진) ()영월창절서원 원장은 바람직한 충신상을 전하는 것을 창절서원과 창절사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는다. 보물로 지정될 만큼의 문화재적 가치 못지않게 충신들의 충절 또한 잊혀선 안 될 숭고한 가치란 설명이다. 국가가 주도해 만든 서원이란 점도 창절서원이 타 서원과 비교해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부분이다. 정 원장은 다른 서원이 특정 문중이나 학파에서 세운 것과 달리 창절서원은 국가가 주도해 세운 곳이라며 많아야 너덧 분을 모신 타 서원과 달리 10명의 충신을 모시고 있어 규모 면에서도 따라올 곳이 없다고 소개했다. 이어 세계문화유산인 장릉과 함께 단종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건립된 역사적 주요 건축물이라며 후손들이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덧붙였다.

정 원장은 창절서원의 관리 못지않게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을 ()영월창절서원의 중요한 책임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영월창절서원 회원들은 매년 봄·가을마다 장릉과 청령포에서 자연 정화 활동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다.

정 원장은 보물 지정으로 창절서원의 위상이 더욱 높아진 만큼 유지·관리에 대한 책임감도 늘었다고 말한다. 그는 보물에 걸맞은 보존 및 관리 계획의 수립은 물론이고 세제 혜택이나 전문 관리 인력 지원 등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입력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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