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도 대표가 키우는 흑염소들. 볕 좋은 날이면 우리에서 나와 너른 자연에서 뛰놀고 풀을 뜯는다.
도시 생활 접고 대 이어 흑염소 키우는 청년 후계농
“고향을 떠나 여러 도시를 전전했지만 시골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돌아와 대를 이어 흑염소 농장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영월에서 나고 자란 신현도(40) ‘무릉도원흑염소(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길 108-25)’ 대표는 고향을 떠나 한동안 외지 생활을 하다 돌아온 귀향 청년이다. 전국 각지를 돌며 여러 일을 경험했고 2018년 영월에 돌아와 정착하기 직전에는 충북 제천시에 있는 한약 회사에서 일했다.
도시에서의 직장 생활은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치 않았다. 끊임없는 경쟁에 지치기도 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날로 커졌다. 결국 연로한 부모님을 대신해 농장 운영을 이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신 대표는 35년간 흑염소 농장을 운영해온 아버지의 대를 이어 청년 후계농이 됐다.
‘농부’라는 새 옷은 맞춤한 듯 꼭 맞았다. “도시에서는 사실 사람에 치이고 경쟁에 치이고 정신없었죠. 제가 원래 주도해서 이끌어가며 일하고 자기계발 하는 걸 좋아하는데 직장 생활은 그게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좋은 환경에서 제 방식대로 일하고 공부하면서 만족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한약재 먹이고 자연 방목, “냄새 줄고 육질 좋아져”
본격적인 흑염소 농장 운영을 시작하면서 신 대표는 아버지의 노하우에 자신만의 방식을 더해가며 하나하나 개선점을 찾아갔다. 항생제와 성장 촉진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 변형 농산물) 사료를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고 인공 수정 없이 자연 그대로의 번식을 유도했다.

철마다 좋은 풀을 먹고 충분히 뛰놀며 자랄 수 있도록 자연 방목해 키웠다. 한약 회사에서 근무했던 경험도 도움이 됐다. 합성 사료 대신 칡, 황기 싹, 더덕 등 약을 짜고 남은 한약재를 섞어 천연 한방 사료를 만들어 먹였다.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약재를 먹인 뒤부터 염소 특유의 냄새가 줄고 육질도 훨씬 좋아졌다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판로를 넓히고자 서울에 가서 통신 판매 교육도 받았다. 2019년부터 본격적인 통신 판매를 시작했다. 품질 좋은 흑염소 고기와 흑염소 엑기스를 무기로 네이버 쇼핑을 비롯해 쿠팡, G마켓 등 주요 쇼셜커머스에 입점했다. 청정 자연에서 건강하게 자란 흑염소란 이미지와 함께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 체력 증진과 면역력 증강에 좋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개고기를 먹는 식문화가 사라져가는 분위기도 흑염소 고기의 인기에 한몫했다.
신 대표는 “농장 운영 초기엔 1㎏에 4000원 정도여서 사료 값도 안 나왔는데 지금은 1㎏에 1만5000원으로 가격이 뛰었다”며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건강식으로 인식을 넓혀가고 있어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초기 3000~4000만원 수준이었던 연매출도 지금은 4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철저한 준비, 작물에 대한 공부가 귀농 첫 단추
흑염소의 효능에 대해 묻자 줄줄이 답변이 쏟아진다. 오랫동안 직접 먹고 느껴봤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자신 있다는 신 대표다. 그는 “흑염소 고기가 따뜻한 성분이라 속이 차가운 사람에게 좋고 기력 회복에 이만한 게 없다”며 “엑기스는 입맛 돌게 하는데 직방이라 꾸준히 찾는 고객이 많다”고 했다.
신 대표가 사육하는 흑염소는 2곳 농장에 250여 마리다. 토마토와 오이 농사도 짓고 있지만 흑염소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내년부터는 다른 농사는 접고 흑염소에만 집중할 계획을 세웠다. 살림집 뒤편 부지에 짓고 있는 제조 공장도 그 계획의 일환이다. 지금은 외부에서 고기와 엑기스 등을 제조하는데 공장이 완공되면 가공 공정을 직접 관리할 예정이다. 인근에 캠핑장도 조성 중이다. 캠핑장이 조성되면 캠핑을 즐기며 맛볼 수 있도록 흑염소 고기를 판매할 계획도 세웠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철저한 준비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공부가 우선이라고 힘줘 말한다. 신 대표는 “단순히 직장 생활이 싫어서, 농사를 쉽게 보고 도전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고 실패하기 십상”이라며 “누구나 배우면 농사는 지을 수 있지만 상품성 있는 작물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건 또 다른 얘기”라고 했다. 이어 “내가 생산하는 상품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비교해 물어오는 똑똑한 소비자들을 응대하려면 나 자신이 전문가가 되는 건 필수”라고 했다.
청정 환경, 큰 일교차… “농사 짓기 좋은 영월로 오세요”
한두 달 귀농‧귀촌할 지역에서 미리 살아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신 대표는 “주말마다 최소한 1년은 다니면서 농장을 견학하고 신중하게 작물을 선택해야 한다”며 “토양에 따라 필요한 비료의 양이 다르니 토양 성분도 조사해보고 기후 변화도 고려하고 하나하나 따지면 준비할 게 산더미”라고 했다. 이어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게 농업”이라며 “수입이 없어도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은 버틸만한 자본을 마련하고 도전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지자체 농업기술센터 등을 통해 정보를 얻고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것도 신 대표의 조언이다. 귀농‧귀촌할 지역이 영월이고 만 39세 이하 청년이라면 청년사업단의 문을 두드리는 건 필수다. 신 대표 역시 영월군의 귀농‧귀촌 지원 사업을 통해 시설 비용을 지원받았고 공장과 캠핑장 운영이 본격화되면 지역 청년 고용 시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을 활용해 직원을 채용할 방침이다. 청년사업단이 연계해준 유명 셰프 멘토와 함께 새로운 흑염소 고기 메뉴도 개발 중이다.
마지막으로 영월 자랑. 신 대표는 “영월은 청정 지역 이미지가 강해 농축산물 홍보에 유리하고 석회질 토양과 큰 일교차 등 농작물을 키우기 적합한 곳”이라며 “동서고속도로 제천-영월 구간 착공과 고속열차 도입 등 교통 인프라도 개선되고 있어 농업 경영에 더 나은 여건이 갖춰지고 있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