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여정은 8월 19일 담화에서 "우리의 국체인 핵"운운했다. 사진=KBS유튜브 캡처
북한 김여정은 8월 19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경우 담대한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제안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김여정은 문재인 정권 시절 그랬던 것처럼 온갖 막말을 동원해 가면서 윤 대통령을 조롱했는데, 그 가운데 눈에 확 들어오는 표현이 하나 있었다. “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 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윤석열의 푸르청청한 꿈이고 희망이고 구상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천진스럽고 아직은 어리기는 어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자기들이 보유한 핵을 온갖 화려한 수사(修辭)로 치장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것을 ‘국체(國體)’라고까지 표현한 것은 처음 본다. 국립국어원의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국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나누는 나라의 형태. 군주국, 공화국 따위로 나눈다.
② 나라의 체면
김여정이 문맥상 ‘국체’를 ‘주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나누는 나라의 형태’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나라의 체면’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좀더 의미가 통하기는 하지만, 그걸로도 의미가 충분히 와닿지는 않는다. 김여정이 말한 ‘국체’라는 단어 속에는 ‘그 누구도 감히 훼손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절대적 가치’라는 아우라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국체’라는 개념을 사용한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이다. 군국주의 일본에서 ‘국체’는 ‘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의미 외에도 천황제와 결부된 일본 고유의 의미로 사용됐다. 군국주의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던 1938년 일본 제국학사원은 ‘국체’를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天皇)이 일본에 군림하고, 천황의 군덕(君徳)이 천양무궁(天壌無窮)히 사해(四海)를 덮고, 신민(臣民)도 천황의 사업을 협찬하여, 의(義)는 군신과 같고 정(情)은 부모자식 같이 하여, 충효일치에 의해 국가의 진운을 부지(扶持)하는, 일본 독자의 사실(事實)”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식의 ‘국체’ 관념은 원래 도쿠가와 막부 말기 일본 국수주의 사상인 미토학(水戶學)에서 비롯되어 메이지시대 교육칙어, 군인칙유, 수신(修身)교과서 등을 통해 강화되다가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그 절정기를 맞았다. 군국주의 일본은 1910~20년대의 자유주의 사조나,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해 ‘국체명징(國體明徵)운동’이라는 것을 벌였고, 문부성은 《국체의 본의》라는 책을 발간해 국민들에게 보급했다.
1945년 8월 궁지에 몰린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연합국에 내건 조건은 일본군과 일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도, 전쟁 주도자들에 대한 사면도 아닌, ‘국체호지(國體護持)’였다. 어떻게든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고유의 국가체제는 유지하게 해 달라는 애원이었다. 전후(戰後) 일본의 통치를 맡은 맥아더 원수는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천황제는 존속시켰지만, 국정에 관한 실제 권력은 박탈했다. 전후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했다.

그렇게 해서 국체 개념과 절대천황제는 일본에서는 사라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항일(抗日)빨치산의 전통’을 내세우는 북한에서 고스란히 부활했다.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회주의헌법 서문에 보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다”로 시작해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여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다”와 같은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찬양, 그리고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위대한 사상과 령도업적은 조선혁명의 만년재보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륭성번영을 위한 기본담보이며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금수산태양궁전은 수령영생의 대기념비이며 전체 조선민족의 존엄의 상징이고 영원한 성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를 주체조선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나갈 것이다”라는 충성의 맹세는 앞에서 소개한 군국주의 일본의 ‘국체’사상과 흡사하다.
이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신민들의 삶의 방식도 흡사하다. 메이지시대부터 2차대전 패전에 이르기까지 각급 학교에 봉안(奉安)된 천황의 초상을 시키려다가 순직(?)한 교원은 20여명이 넘는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나가노현 난조보통소학교 교장 나카지마 나카시게이다. 그는 1921년 1월 6일 학교에서 불이 나자 학교로 달려가 2층 봉안실에 있던 천황의 초상을 구하려다가 불에 타 죽었다. 전소된 학교 건물 더미에서 발견된 나카지마 교장의 시신은 새카맣게 불에 타 있었는데 ‘두 팔의 팔꿈치가 몸에 붙어 두 손으로 천황의 초상을 받드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나카지마 교장은 ‘국가적 영웅’으로 현창되었다. 2차 대전 말기 히로시마가 원폭에 맞아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 학생들은 낮에는 시신을 매장하는 작업에 동원되고, 밤에는 천황의 초상을 모신 봉안전 경비를 서야 했다.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2017년 11월에는 홍수 때는 교사 7명과 학생 6명 등 13명이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었다. 어로작업을 나갔나가 풍랑을 만나 침몰하게 된 선원들이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를 물에 젖지 않게 겹겹이 비닐로 싸서 구해 낸 후 자신들은 배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비일비재하다. 2003년 8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 왔던 북한 응원단이 김대중-김정일의 사진이 들어간 플래카드를 보고 “장군님께서 비에 젖고 계신다”고 울며 플래카드를 뗀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나 학교 조회를 하면서 천황이 있는 도쿄를 향해 허리를 굽혀 절하던 궁성요배를 하는 모습과 김일성-김정일 동상 앞에서 절하는 북한 인민들의 모습도 참 닮았다.

비슷한 행태는 또 있다. 군국주의 시절 메이지천황 등이 지방 순행을 했을 때 그가 묵었던 집이나 그가 앉았던 자리는 ‘성역(聖域)’이 되었다. 그 주위에는 금줄이 쳐지고 ‘천황폐하께서 묵으셨던 곳’ ‘천황폐하께서 앉으셨던 곳’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지거나 표지판이 붙었다.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했던 곳, 그들이 묵거나 앉았던 곳에는 이를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금줄이 쳐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북한의 ‘김일성 유일사상체계’와 김일성 일가의 신격화(神格化)는 천황을 ‘현인신(現人神)’으로 떠받들었던 일제의 천황 숭배 체제의 판박이다. 무엇보다도 김일성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라고 신격화하면서 ‘백두혈통’만이 최고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아마데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의 후예인 진무(神武)천황의 후손 126명이 2600 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본을 통치했고, 그 때문에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할 바 없는 특별한 국체를 간직한 신의 나라(神國‧神洲)라고 하던 군국주의 일본의 인식과 아주 흡사하다. 김정일이 내세웠던 ‘선군사상’이라는 것 역시 군(軍)과 국방을 국가의 첫째가는 과업으로 여기면서 군을 국가운영의 주역으로 여겼던 군국주의 일본의 사고방식과 아주 닮았다. '항일 빨치산 전통'을 말끝마다 내세우는 '김씨조선'이야말로 '천황제 파시즘'의 상속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