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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났지만 관련 법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은 10곳 중 3곳 수준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가 중대재해처벌법 순회설명회에 참여한 5인 이상 기업 930개 사를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 기업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 기업 중 30.7%가 중대재해처벌법의 내용을 이해하고 대응이 가능하다고 했다. 반면, 68.7%는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설명회에 참석한 대다수 기업은 법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차례 설명을 듣고 다양한 자료를 살펴보고 있지만 여전히 법 준수를 위해서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막막해하고 있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 여부에 대해 응답 기업 중 63.8%가 ‘조치 사항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별다른 조치 없는 기업’도 14.5%였다. 반면 ‘조치했다’는 기업은 20.6%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고 있는 50인 이상 기업에서도 ‘조치했다’는 응답은 28.5%였다.
조치했다고 응답한 기업들의 세부적 조치 사항으로는 ‘안전문화 강화’가 81.0%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영진 안전경영 선포’(55.5%) ▲‘보호장비 확충’(53.5%) ▲‘전문기관 컨설팅’(43.3%) 등 순이었다(복수 응답).
응답 기업 중 80.2%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경영 부담이 된다’고 했고 ‘경영 부담이 안 된다’는 응답은 18.6%였다.
설명회에 참석한 중소기업 대표는 “우리 공장을 포함해서 주위 다른 사업장에서도 직원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적이 없어 아직 대응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며 “새 정부에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명확히 하는 지침이나 매뉴얼이 나온다고 하니 이를 토대로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했다.
대한상의는 “기업 규모별 안전보건관리체계 현황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체 응답 기업 중 안전보건업무 전담 인력을 두고 있는 기업은 31.6%였다. 규모별로 대기업(300인 이상)은 86.7%가 전담 인력을 두고 있지만 중기업(50~299인)과 소기업(5~49인)은 각각 35.8%, 14.4%였다.
전담부서 설치 여부도 대기업은 88.6%가 전담부서를 조직하고 있지만 중기업은 54.6%, 소기업은 26.0%였다.
안전보건 예산을 두고 대기업은 ‘1억원 이상’ 편성한 기업이 61.0%로 가장 많았다. 반면, 중기업은 ‘1000만원 이하’(27.7%) ,‘1000~3000만원’(21.8%) 구간이 많았고, 소기업은 ‘1000만원 이하’(47.8%)가 가장 많았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2024년부터 5인 이상 49인 이하의 소기업에도 법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중대재해법 적용 기업이 약 78만3000개 사로 늘어난다. 올해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50인 이상 기업(4만3000여개) 수와 비교하면 18배 큰 규모”라며 “안전보건관리 역량이 떨어지는 중기업과 소기업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법 부작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질 것”이라고 했다.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중 보완이 시급한 규정으로 ‘고의‧중과실 없는 중대재해에 대한 면책 규정 신설’(71.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근로자 법적 준수 의무 부과’(44.5%) ▲‘안전보건확보 의무 구체화’(37.1%) ▲‘원청 책임 범위 등 규정 명확화’(34.9%) 순이었다.
정부의 정책 과제에 대해서는 ▲‘업종별 안전매뉴얼 배포’(64.5%) ▲‘명확한 준수 지침’(50.1%) ▲‘안전인력 양성’(50.0%)을 핵심 정책으로 꼽았다. 그 외 ▲‘컨설팅 지원’(39.0%) ▲‘안전투자 재정‧세제지원’(38.8%) 등도 뒤따랐다.
유일호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가장 큰 문제는 법이 불명확해 기업이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라며 “수사나 재판을 거치며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불확실한 해석이 어느 정도는 제거되겠지만 실질적인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명확한 의무 내용을 제시하고 이를 이행한 경영책임자에 대해 면책하는 등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번 조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전국 순회 설명회에 참석한 개업 930개 사를 대상으로 현장 설문으로 진행됐다. 대기업은 107개 사, 중기업은 417개 사, 소기업은 406개 사가 참여했다.
글=이경훈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