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군인이 대전차 미사일을 옮기고 있다. 사진=뉴시스/AP
지난 15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한 병력 일부를 철수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해소됐다는 전망이 나왔다.
고려대학교 러시아 CIS연구소 윤성학 교수는 지난해 12월 7일 자기 페이스북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글을 남겼다.
윤 교수는 러시아의 병력 철수 소식이 보도된 후인 16일 오전 지난해 작성한 글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이유’를 분석했다.
윤성학 교수는 “푸틴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지난 4개월 가까이 세계를 전쟁 위기로 몰고 간 분쟁이 일단 멈춘 것”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러시아 푸틴이 전쟁을 개시할 명분이 없었다고 분석했다.
윤성학 교수는 “푸틴은 전쟁 명분으로 나토(NATO) 동진(東進)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문제 삼았지만 나토 동진은 발틱 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과 폴란드가 원해서 이루어졌지 나토가 강요한 게 아니었다”며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토 가입을 유보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이 어떤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갈 수 있겠는가. 공격했더라면 푸틴은 아마 히틀러로 낙인찍히고 러시아의 국가 이미지도 완전히 망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전술적인 이유도 침공 불가 사유로 작용했다.
윤성학 교수는 “러시아 14만 정예부대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장악할 순 있지만 절대 유지는 할 수 없다. 아무리 무장 수준이 낮아도 우크라이나군은 40만명, 예비군은 600만명”이라며 “여기에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 지원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정말 전쟁이 벌어졌다면 러시아군은 일주일은 승리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 국민이 보인 결사항전 의지도 침공을 주저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전쟁 위기가 짙어질수록 우크라이나 재벌 일부는 도망갔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의지는 갈수록 단호해졌다”며 “70대 할머니가 총을 쥐고 여성들도 입대했다. 만약 들판이 아니라 키예프 등 대도시에 러시아군이 들어온다면 제2의 볼고그라드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는 같은 슬라브 민족이다. 어떠한 이유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순간 러시아는 도덕적으로 실패한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러시아 내부에서 고조하는 푸틴에 대한 반발도 침공을 포기한 이유로 작용했다.
윤성학 교수는 “(푸틴에 대해) 러시아 국민은 겉으로 침묵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부에서는 부글부글 끓었다”며 “어떠한 실익도 없이 같은 슬라브 민족을 침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텔레그램 익명방의 대세”라고 했다.
또 “심지어 작전에 참여한 러시아군 내부에서도 도대체 이 전쟁의 목적이 무엇인지 지휘관에게 따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만약 이번 공격이 실패로 끝난다면 푸틴 정권은 결정적 위기에 빠진다. 그런데 이미 종신 대통령이 된 푸틴이 무엇이 아쉬워서 모험을 하겠는가”라고 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도 침공을 가로막았다.
윤 교수는 “‘러시아는 경제 제재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는 러시아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며 “비록 작년 말부터 유가와 가스 가격이 상승하지만, 러시아 경제는 아직 그 햇볕(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러시아산 가스는 대부분 장기 공급계약이라 가격이 올라도 당장 혜택을 받지 못한다. 유가는 워낙 변동성이 커서 언제 폭락할지 모른다”며 “구체적 거시경제 지표보다 지금 러시아 국민은 루블화 폭락과 소득 하락, 일자리 부족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또 “전쟁이 벌어지면 러시아에 재앙적인 경제 제재가 벌어질 텐데, 이렇게 되면 푸틴 권력도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윤성학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는 일단락됐지만 해결된 것은 아니다”며 “푸틴은 언제든 다시 군대를 이끌고 컴백(combakc, 돌아올)할 수 있다. 이번에 러시아 군사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해 세계는 G2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어 “안보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를 서방에 강력히 전달하고 프랑스와 독일을 모스크바 협상장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윤 교수는 러시아가 전운(戰雲)을 조성한 것을 두고 “이번 위기 조장을 성공이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며 “(러시아의 군사적 긴장 고조로) 북유럽 중립국인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심각히 고려하게 됐고 동유럽과 터키 등은 러시아를 더 경계하게 됐다“고 했다.
또 ”약소국에 대한 전쟁 위협을 가한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전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됐다“고 했다.
윤성학 교수는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는 여전히 분쟁 지역”이라며 “미국은 동맹국 이외에 관심도 없고 지켜줄 능력도 없다는 것을 이번에 드러냈다. 이번 위기로 동유럽, 한반도, 대만 등이 안보상 얼마나 취약한지 인식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구한말 조선은 내정과 외교가 실패하며 청나라와 일본이 벌인 전쟁 무대가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강대국 사이에 약해진 지역은 언제든 배틀그라운드가 될 수 있다는 끔찍한 경험을 일깨워줬다”고 밝혔다.
글=이경훈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