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1일 화상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해 핵과 모든 탄도미사일의 폐기를 요구했다. 이는 북한이 전날 밝힌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재개 움직임에 대한 공동 대응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양국 정상은 또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북한의 모든 핵무기, 그 외의 대량살상무기, 모든 사거리의 탄도미사일 및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 및 설비들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해체(CVID)를 강력히 결의한다"고 밝혔다.
CVID는 이른바 '제2차 북핵 위기(2002년~)'가 시작된 부시 행정부 이래 미국이 일관되게 유지해 온 북핵 폐기 원칙이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에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란 의미로 'FFVD'를 언급하기도 했다. CVID는 미국 뿐 아니라 북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간 문재인 대통령이 '핵 폐기' 의지를 밝혔다고 옹호한, 북한 김정은은 국제사회의 핵 사찰을 받을 의사가 전혀 없었다. 핵을 폐기하지도 않았다. 핵 관련 시설도 해체하지 않았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를 언급했을 뿐이다. 국제사회의 CVID에 대해서는 '강도적 요구'라고 반발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국제연합(UN) 기조연설에서 북한 김정은에 대한 지지와 대북제재 해제 또는 완화, '언제든 번복할 수 있는 종전선언'을 주장했다. 그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 북한 평양에 가서 CVID를 요구하자, 문 대통령은 그해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유럽 순방에 나서면서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정상을 만나 대북제재 해제 또는 완화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리저리 다닌 게 무색하게도 당시 아셈 51개국 정상은 ▲북핵 CVID 촉구 ▲완전한 대북 제재 이행 약속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외교 노력 등을 의장 성명으로 채택했다.
이처럼 자신의 ‘대북 제재 완화론’이 국제사회에서 거부당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23일 유럽 순방 귀국 후 첫 국무회의에서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했다.
한편, 미국과 일본의 CVID 언급에 대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하부 조직인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는 기관지 '조선신보'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는 조선의 국방력 강화를 위한 조치를 걸고 단독 제재를 발동하는 한편 유엔 안보리를 도용한 국제적 포위환 형성을 획책하면서 핵, 미사일을 포한한 조선의 모든 무기체계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강도적 논리를 국제 사회에 다시 유포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조총련은 "바이든 행정부는 조선의 강 대 강 원칙을 작동시키는 방아쇠를 끝내 당긴 셈"이라며 "최대의 주적으로 지목한 대방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조선의 정책 기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부각돼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북한 독재정권은 CVID 얘기만 나오면 '발작증'을 보이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들고 일어선다. 그렇다면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에 주장하고 다닌 '북한 비핵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무엇인가. 2019년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이 말하는 비핵화와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얘기하는 CVID 비핵화는 다를 것이라고 의견이 많은데 전혀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한 얘기는 무엇인가.
앞서 살핀 것처럼 북한 독재정권은 지금껏 단 한번도 국제사회의 CVID를 수용하지 않았고, 그와 비슷한 개념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원칙이 언급될 때마다 길길이 날뛰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대체 무슨 근거로 "김정은의 비핵화는 CVID와 같다"고 주장하고 다녔을까. 김정은이 문 대통령에게 '사기'를 친 것인가. 문 대통령이 국민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이른바 '가짜뉴스'를 얘기한 것인가. 그 어떤 경우라고 해도 이는 차기 정권에서 그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