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사히신문이 16일 공개한 을미사변에 가담한 일본 외교관이 사건 직후 친구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아사히신문 홈페이지 캡처
일본 아사히신문은 16일 126년 전 일본 군인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는 내용이 담긴 서한이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서한 작성자는 “담장을 넘어 점차 어전에 이르러 왕비를 시해했다”며 자신의 행동을 상세히 기록해놨다. 아울러 “의외로 쉬웠고,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다”는 소회도 밝혔다.
해당 서한은 시해 실행 단원이었던 호리구치 구마이치(堀口九万一) 당시 주조선 영사관보가 사건 다음 날 적어서 자신의 고향 친구이자 한학자 다케히코 사다마츠(武石貞松)에게 보낸 것이다.
호리구치가 다케이코에게 1984년 11월17일부터 1895년 10월18일까지 보낸 총 8통 중 6번째 편지에 해당했다. 이는 나고야(名古屋)시(市)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 우표·인지 연구가 스티브 하세가와(スティーブ長谷川·77)에 의해 골동품 상점에서 발견됐다.
이어 책 ‘조선 왕비 살해와 일본인’ 저자이자 역사가 김문자씨 판독 결과 편지 보관 장소, 기록 내용, 소인(消印), 봉서(封書) 작성 등으로 보아 본인 친필로 보인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김씨는 “사건의 세부 사항이나 가족에 대한 기술 등을 보더라도 작성자 친필이 틀림없다”며 “아직도 불분명한 점이 많은 이 사건의 세부 사항을 밝혀주는 가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사히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 청(淸)과 러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군이 한반도에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상세 연구는 이제 막 진행 중이며 현대 일본인들에게 이 같은 인식은 희박하다고 한다.
그 가운데 126년이 지난 오늘날 당시 사건 당사자의 1차 자료가 공개된 것은 매우 의미가 있으며 사건 전말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아사히는 전했다.
한편 1985년 10월 8일 발생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은 그해 9월 조선공사에 취임한 조슈(長州)번(藩) 출신 군인 미우라 고루(三浦梧樓)가 주도했고 실행단에는 일본 외교관과 경찰, 민간인들이 포함됐다.
글=정광성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