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20년 7월 2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 긴급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랜만이었다. 토론 프로그램을 다시보기로 되돌려보기까지 한 게 말이다. 지난 1월 30일 밤 방송한 KBS <심야토론>엔 두 사람이 출연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와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이다. 주제는 간결했다. ‘바이든 시대, 한반도 미래는?’
의견과 사실도 구분 못하는 잡다한 패널들 없이 깔끔하게 두 사람만 출연한 게 간만에 흥미로웠다. 게다가 이들이 누구인가.
문 특보는 현 정부 대북, 외교 정책의 실질적 수장으로 통한다. 3년 8개월째 통일외교안보특보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그의 제자들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들은 대북 외교 라인 곳곳에 포석해 있다. 문 특보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속내로 봐도 무방하단 얘기다.
문 특보가 대북, 외교 분야의 학문적 권위자라면, 송 전 장관은 현장 전문가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실무 지휘하며 북한을 직접 만났다. 태영호 의원은 한국으로 탈출한 후 이런 말을 했다. “북한 외교 라인에선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상대로 송 전 장관을 꼽는다”
두 사람의 토론을 본 후 느낀 점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문 특보는 미국과 북한의 2018년 싱가포르 회담을 문재인 정부의 굉장한 치적으로 여기는 듯 했다. 송 전 장관이 싱가포르 회담을 냉정히 평가하자 문 특보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싱가포르 회담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삶과 현상을 잘못 보는 오도된 사람이다’. 초장부터 상당히 격렬한 반응이었다. 감정적인 반응으로 보이기도 했다.
문 특보는 싱가포르 회담을 두고 ‘2018년 모델’이라며, ‘남북 대화가 북미 대화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촉진자 역할을 한 것’이라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중간에서 중매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이뤄졌는지도 의문이지만, 회담 결과도 보자. 2018년 정상회담은 2년 8개월이 흐른 지금, 이 회담은 두 명의 보기드문 특이한 지도자가 벌인 일탈적 쇼 정도로 회자되고 있다.
문 특보가 퇴임을 앞두고, 싱가포르 회담을 아마 자신이 이룬 최고의 성과로 여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둘째, 문 특보의 독특한 현실 인식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한은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한다. 2019년 김정은 신년사에서도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란 구절이 등장한다. 송 전 장관이 이 점을 지적하며, 북한이 주한미군의 실질적 철수를 요구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건 송 전 장관만의 독창적인 이론이 아니다. 대북 정책을 연구하는 이들에겐 상식에 가까운 얘기다.
그런데 문 특보는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가 ‘1992년 1월 31일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같은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이게 현정부 고위 외교 인사의 발언이 맞는지,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북한이 원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무엇인지 조선중앙통신이 직접 친절히 설명한 적이 있다. 2019년 신년사 직전인 2018년 12월 2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북)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한미군의 전술핵이 먼저 철수해야 북한 핵 무장 철수를 고려한단 얘기다.
조선중앙통신이나 로동신문은 언론이 아니다. 북한 정권의 대변인이라고 보면 된다. 백번 양보해 문 특보가 대북 정책 수장으로서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저런 설명을 했다고 이해해 보려 해도, 새해 벽두부터 공영방송의 진지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저런 얘기를 하는건 국민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셋째, 어쨌든 문 특보와 문재인 대통령 간에 의견의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다. 문 특보는 문 대통령이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 문제와 별개’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얘기다. 문 특보는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주한미군도 철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이 주한미군과 북한은 별개라고 일종의 반박을 했단 얘기다.
이외에도 문 특보는 두루뭉술한 이상적인 언사들로 남북관계와 과거와 앞날을 표현했다. 마치 소득주도성장스러운 언사들이었다. 여기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나, 우리 공무원 피격 혹은 총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토론이 끝난 후 떠오른 단어는 ‘답정너’.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로 이런 뜻이다.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 토론을 마치며 문 특보는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에) 국민적 합의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밑도끝도 없이 갑자기 등장한 ‘합의’라는 말은 마치, ‘우리가 가는 방향에 국민들은 동의하라’는 말로 들렸다. 문 특보의 3년 8개월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답정너 대북 정책’이었던 것 같다.
글=하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