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 비자금 추적에 나섰던 미국 국세청(IRS) 조사관이 신원도용과 송금 사기(wire fraud)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복수의 미(美)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연방검찰청 산하 뉴욕 동부지검은 지난 1월 26일(현지 시각) IRS 조사관 브라이언 조(한국이름 조용희·49)가 “업무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도용해 이득을 취했다”며 그의 기소 배경을 밝혔다.
연방검찰이 작성한 기소장에 따르면, 2008년 IRS에 채용된 브라이언 조는 범죄수사 특수요원으로 활동하던 중 ‘존 도’(John Doe)라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정보를 입수했다. 브라이언 조는 ‘존 도’ 명의의 정보를 이용해 허위 신원확인 문서를 만들고, 이 문서를 통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는 신원도용 사기를 저지른 혐의도 받고 있다.
연방검찰은 또 브라이언 조가 도용한 신분과 허위서류를 이용해 소득 및 재산을 부풀린 해외 은행 잔고 증명 등으로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고급 콘도를 구입하고, 해외 은행에서 수십만 달러를 불법적으로 들여왔다고 판단했다.
연방검찰은 브라이언 조의 사진이 촬영된 타인 명의의 필리핀, 마셜 제도 신분증과 기니비사우 여권을 입수했다고도 했다. 브라이언 조의 유죄가 확정되면 최장 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게 미국 언론의 시각이다.
브라이언 조는 국정원과 우리 국세청의 요청으로 미국 내 DJ 비자금을 추적했던 인물이다. 《월간조선》이 지난해 입수·보도한 국정원 극비 보고서에 따르면, 이명박(MB) 정부 시절인 2010년 5월 경,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를 받은 최종흡 국정원 차장은 이현동 국세청 차장과 박윤준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국장·후에 국세청 차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박윤준 국장은 자신이 미국에서 근무할 때부터 알고 지낸 IRS 소속 브라이언 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브라이언 조가 DJ 비자금 추적에 나설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최종흡 차장에게 한 것이다.
국정원과 국세청의 요청을 받은 브라이언 조는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DJ 동부 비자금 추적에 나섰다. 브라이언 조는 비자금 관련 사항을 파악해 국세청(박윤준 국장)에 보고했고, 박윤준 국장은 브라이언 조의 보고 내용을 국정원에 보냈다. 국정원에서는 김○○ 방첩국장이 브라이언 조가 건넨 DJ 비자금 관련 각종 영문 자료들을 분석한 것으로 국정원 자료 등에 기재돼 있다.
브라이언 조는 미국 동부에 예치된 DJ 비자금 추적을 맡았다. 그는 2010년 9월 말 경, 자신이 파악한 동부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내역 일부를 국정원과 국세청에 보고했다. 요지는 DJ 일가와 관련 있는 세 사람의 ‘비정상적 재산 형성 내역’이었다. 조사 결과, 이들 중 한 명인 A씨는 1억 1300만 달러를 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은 브라이언 조의 보고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에서 “A의 비정상적 재산 형성(1억1300만 불) 과정을 확인하고 재산 대부분(8500만 불)이 캐나다의 미상처(未詳處)로 전달된 사실 확인”이라고 적었다. 국정원은 A씨 외에 B씨는 1억600만 달러, C씨는 1억2000만 달러를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토대로 A, B, C 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총 3억6000만 달러가 DJ 비자금과 관련이 있다고 국내 정보 당국은 추정했다.
브라이언 조가 확인한 건 비자금 액수만이 아니었다. DJ 비자금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은행명, 계좌번호까지 국정원과 국세청에 보고했다. 브라이언 조의 보고를 들은 박윤준씨는 훗날 법정에서 “A가 조성한 돈이 1억 달러가 넘는다”며 “자산관리공사, 중국계 은행에 대출을 받고, 산업은행이 지급보증하는 이상한 거래였다. 추적을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국정원은 DJ 비자금을 조사하는 대가(代價)로 한국에 거주하는 브라이언 조 가족에 35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최종흡 전 차장과 김승연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이 국고 손실 혐의 등으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한편, 브라이언 조는 DJ 비자금 수사와 관련된 정보를 국정원과 국세청에 넘긴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았지만, 이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다고 복수의 미국 언론은 덧붙였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