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에 나포된 한국케미호.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은 1월 4일 호르무즈해협에서 우리 국적 선박(케미컬 운반선)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 이란 파르스통신은 “이란 혁명수비대가 걸프 해역에서 한국 선박을 나포해 항구로 이동시켰다”며 “기름 오염과 환경 위험을 이유로 나포했다”고 전했다. 해당 선박의 소속사는 그럴 이유가 없다면서 이란측 주장을 반박했다. 우리 정부는 이란측에 해당 선박의 억류 해제를 요청하는 한편, 청해부대를 급파했다.
의문은 왜 이란이 우리 선박을 나포했느냐 하는 것이다. 당초 이란 해군은 “영해 침범”을 이유로 한국케미호를 정선시켰지만, 선장이 “공해 상”이라고 항의하자 말을 바꾸어서 ‘기름 오염과 환경 위험’을 이유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란이 내세우는 이유는 핑계일 뿐이고, 실제 원하는 것은 미국의 대(對)이란 금융제재로 묶여 있는 70억 달러[한화(韓貨) 7조 6000억원 상당]의 자금을 받아내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내 금융기관에는 한국이 이란에서 수입한 석유‧가스대금 70억 달러가 예치되어 있다. 당연히 이란에게 지급되어야 할 돈이지만, 미국의 대이란 제재 때문에 이란측에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란과 금융제재를 할 경우 글로벌 금융망에서 배제되는 등 미국측이 세컨더리 보이콧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란측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려 이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해 왔다. 주한이란대사관은 작년 3월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인도적 물품의 제재와 관련한 미국 책임자들의 거짓 주장으로 인해 이란 국민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조차 한국 은행에 묶여 있는 자산(제재 이전 가스와 액화 가스 판매액)을 사용하지 못한다”며 “비제재 품목과 필수품 중 특히 생명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의약품과 의료 장비 등의 인도적 물품을 구입할 수 없고, 한국이나 외국 기업으로부터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는 데에도 이 재정을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대응을 위한 인도적 목적으로 사용할 테니 해당 대금을 내달라는 요구였다.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중앙은행 총재는 작년 6월 10일 블룸버그통신과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측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동결된 한국 내 은행에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을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헴마티 총재는 “한국의 은행들(우리은행. IBK기업은행)이 편의적으로 그들의 의무와 상식적인 국제 금융합의를 무시하는 모습이 참담하다”면서 “그 은행들은 정치적으로 행동해 일방적인 미국의 불법 제재에 순응하기로 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만났을 때 그가 이 동결 문제를 푸는 데 돕겠다고 개인적으로 약속했지만 아직 그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 7월에는 "(이를 상환하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한국 정부의 부채 상환을 강제할 것”이라며 “한국은 미국의 종”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중동문제 전문가는 “이란이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것은 대이란 제재망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건드린 것”이라면서 “다만 혁명수비대가 이란 정부와 교감 하에 그런 것인지, 혁명수비대 강경파의 독단적 행동인지는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도 이란 정부에 나포된 한국 선박 억류 해제를 촉구하면서 “이란 정권은 국제 사회의 제재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르시아 만에서 항행의 자유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 이번 사태가 대이란제재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했다.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도 1월 5일 열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무장 인원이 선박을 나포한 뒤 탑승 선원을 인질로 삼았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 "그러나 인질범으로 불려야 하는 건 70억 달러의 이란 자금을 근거 없이 인질처럼 붙잡고 있는 한국 정부"라고 주장해, 이란의 속내가 어디 있는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