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뉴스프레스
최명(崔明) 교수의 《칼 이야기》(조선뉴스프레스 刊)는 단순한 무기의 역사를 넘어 인간과 칼의 얽히고설킨 서사를 탐구하는 책이다. 칼이 가진 상징성과 전쟁 속에서의 역할, 그리고 인간의 삶과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저자인 최명 교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1962년)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서울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2006년 명예교수로 정년퇴임한 인물이다.
이 책은 영국군이 의식용으로 사용한 칼에서부터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에 쓰였던 다양한 칼과 총검의 변천사를 서술한다. 또한 일본 사무라이의 검과 유럽 중세 기사들의 검술 발전사도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다.
특히 칼의 형태와 용도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치밀한 분석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설명하는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칼은 무기의 여왕(queen of weapons)”이라고 말하며, 칼이 단순한 도구를 넘어선 인류 문명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흑색화약이 등장하고 총기가 보급된 이후에도, 칼은 여전히 중요한 전투 도구로 기능하며 전장의 상징으로 남았다. 이순신 장군이 애지중지했던 두 자루의 검과 그에 새겨진 검명(劍銘) 역시 칼이 단순한 무기를 넘어선 신념과 정신의 상징임을 시사한다.
<진승(陳勝)은 젊은 시절, 지주(地主) 집에서 날품팔이를 하였다. 그러나 큰 뜻이 있었다. 또래의 친구들에게,
"이 다음에 훌륭하게 되더라도 우리 패를 잊지 않도록 하자!"
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우리같이 가난한 농민이 무얼 할 수 있어."
하며 냉소(冷笑)하였다. 그러자 진승은,
"아아! 제비[燕]나 참새[雀]가 기러기[鴻]나 고니[鵠]와 같은 큰 새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제비나 참새 같은 조무래기들은 큰 인물들의 원대한 이상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본문 내용 中
책 속에서 인용된 진승(陳勝)의 일화는 칼이 단순한 무기가 아닌, 시대를 바꾸는 혁명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지주 집에서 날품팔이를 하던 진승이 ‘제비와 참새가 어찌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라며 자신의 포부를 외쳤던 장면은 인간의 신념과 이상이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칼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한 강철 조각이지만, 그것을 쥐는 자의 신념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 혁명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지배와 억압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칼 이야기》는 단순한 병기(兵器)의 역사를 넘어, 칼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신념,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는 책이다. 칼을 통해 인간을 보고, 인간을 통해 역사를 읽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글=고기정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