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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深淵)의 강물이 흐르는 …영화 <주홍글씨>(1995)의 OST

[阿Q의 ‘비밥바’] 원작은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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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심연 속에 어떤 글씨를 새기며 살아간다. 소설 <주홍글씨> 속 주인공은 A를 새기며 살아간다. A는 간통죄를 뜻한다.

롤랑 조페 감독이 지휘하고, 데미 무어와 게리 올드만이 전성기 시절 연기한 영화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1995)는 잘 만든 작품이다빔 벤드더스 감독의 <주홍글씨>(1972), 빅터 소스트롬 감독의 <주홍글씨>(1926)도 고전으로 꼽힌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의 소설 주홍글씨(1850)를 꺼내어 다시 읽어 본다. 국내 번역 소설은 ‘주홍글씨’, 혹은 ‘주홍글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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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주홍글씨>(1995) 포스터. 데미 무어와 게리 올드만의 전성기 시절 연기를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죄에 대한, 인간의 부끄러움에 대한 이야기다. 법이나 사회 제도가 만든 부끄러움은 어쩌면 부끄러움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 소설을 통해 하게 된다. (참조: 박승용, 인간의 심연, 조갑제닷컴, 2010)


소설의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간통죄로 복역하던 헤스터 프린이 감옥에서 이끌려 교수대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헤스터는 3개월 된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있다. 그녀의 가슴에는 ‘A’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A는 간통(adultery)을 뜻하는 단어의 머리글자. 소설에서는 명시적으로 ‘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언급되지는 않는다. 호손은 다만 이렇게 표현했다.


<그녀가 걸친 웃옷의 가슴팍에서 화려한 붉은색 헝겊에 금실로 정교하게 수를 놓아 환상적으로 꾸며진 A자가 드러났다. 그것이 어찌나 예술적이면서도 풍부하고 찬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던지, 마치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식품같이 보였다.>

- 72~73쪽, 김지원과 한혜경이 번역한 《주홍글자》(팽귄클래식 코리아, 2009) 중에서


 화면 캡처 2022-09-13 113841.jpg

영화 <주홍글씨>(1926)에서 헤스터 역을 맡은 배우 릴리안 거쉬


헤스터는 군중 앞에서 3시간 동안 전시된후에 죽을 때까지 그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엄격한 청교도 교리에 바탕한 형벌을 받는다.

헤스터가 교수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손가락질 하며 야유를 퍼붓는 군중들이 보이고 매사추세츠 주의 지도층 인사들도 보인다. 군중 속 여성들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조용한 위엄에 더욱 분노한다. 일부는 "헤스터의 마빡에다 뜨거운 인두로 낙인 정도는 박아줬어야 한다"고, "저런 글씨는 브러치나 이교도의 장식물 같은 걸로 가려버리곤 뻔뻔하게 거리를 싸돌아다닐 것"이라고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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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소스트롬 감독의 영화 <주홍글씨>(1926) 포스터 


그들 가운데 윌슨 목사, 딤즈데일 목사가 있다. 주지사와 윌슨 목사는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히라고 다그치지만 헤스터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깊은 학식과 높은 덕망을 지닌 젊은 목사 딤즈데일이 우수에 찬 목소리로 간곡하게 권유한다.

불륜을 저지른 연인의 실체가 누구냐.


군중 속 그녀의 남편 칠링워스도 있다. 그는 헤스터와 눈이 마주치자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대면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못하게 한다. 늙은 의학자 칠링워스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도중 배가 난파 당해 1년 넘게 행방을 몰랐다. 죽은 줄만 알았던 게다. 나중에 감옥에 찾아와 헤스터에게 간통 상대를 실토하라고 집요하게 다그치지만 끝내 거절당한다. 자기는 부정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며 남편이란 것을 비밀로 할 것을 맹세하게 만들곤 만약 당신이 맹세를 깨뜨리면 그놈의 명성과 그놈의 지위와 그놈의 목숨은 끝장날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런데 아기의 아버지는 딤즈데일 목사였다. 죄의식에 사로집힌 딤즈데일은 가슴에 ‘A’라는 문신을 새긴 채 살아간다.

감춰야 했던 자신의 욕망, 그 죄를 공개적으로 참회하지 못한 비겁함 때문에, 그리고 교묘하게 그의 양심을 찌르고 죄의식을 증폭시키는 칠링워스의 간악한 계략에 의해 극도로 쇠약해져 간다. 칠링워스는 간부(姦夫)의 실체가 딤즈데일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7년이 흐른 뒤 헤스터는 자비로운 수녀가 되어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야했지만 가난한 이와 병자를 위한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산 것이다. 사람들은 더는 주홍글씨를 비난하지 않았다. 수치와 죄악의 징표의 ‘A’가 아니라 여성의 힘을 상징하는 에이블(Able)‘A’로 바라본다. 헤스터의 주홍글씨 ‘A’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와 같은 상징이 되었다.


화면 캡처 2022-09-13 113657.jpg

1934년작 로버터 G. 비뇰라 감독의 영화 <주홍글씨>. 헤스터 프린 역으로 배우 콜린 무어(Colleen Moore)가 나왔다. 


점점 병약해진 딤즈데일은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진짜주홍글씨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헤스터의 팔에 안겨 죽는다.


<...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천사들도 항상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악마도 그것을 잘 알고 있어서불타는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그것을 건드려 괴롭혔습니다! (중략)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그 무서운 증거를 보십시오!”

 

그는 발작적인 몸짓으로 앞가슴에서 목사복의 띠를 잡아뗐다. 그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것을 여기서 묘사한다는 것은 불경스러운 노릇이다. 한순간 공포에 사로잡힌 군중의 시선이 일제히 이 무서운 기적 위에 쏠렸다. 그동안 목사는 가장 극심한 고통의 절정에서 승리를 쟁취한 사람처럼 얼굴에 환한 홍조를 띠고 서 있었다. 그런 다음 처형대 위에 쓰러졌던 것이다!...>

-340~341쪽, 《주홍글자》 중에서 


인간의 약함이나 인격의 비극적 불완전함이 죄가 아니라 어쩌면 결정론적 사회환경이 주홍글씨의 비극을 초래한 것이 아니냐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소설 배경에는 청교도 교리의 경직된 전통 때문에 인간 운명이 패배한다는 가정을 담고 있지만 죄, 혹은 부끄러움을 뛰어넘는 인간의 의지를 소설은 보여준다.

비록 죄를 지었을망정 헤스터처럼 부끄러움이 없이 살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죄를 고백하지 못한 딤즈데일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고 남는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은 칠링워스처럼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한 채 타인의 허물과 이웃의 죄에 분노하고 저주하며 살아간다.

다음은 소설 속 딤즈데일의 말이다.


(찰링워스)는 인간의 존엄성(the sanctity of a human heart)을 냉혹하게 파괴해 버렸어요. 당신과 나는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화면 캡처 2022-09-13 113911.jpg

딤즈테일 목사는 스스로 가슴에 ‘A’를 새기며 살아간다. 끝내 교수대 위에 올라 군중들에게 자신의 가슴에 새긴 주홍글씨를 공개한다. 영화 <주홍글씨>(1926)에서 교수대 위에선 배우 라스 해슨과 릴리안 거쉬.


영화음악을 만든 존 배리(John Barry, 1933~2011)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늑대와의 춤을>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를 만든 작곡가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음악 언어를 구사하는데 한번 그의 곡에 빠져 들면 헤어나기 어렵다. 마치 거대한 강물,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접하고 있는 듯하다.


81tTG5diPOL._SL1500_.jpg 음악가 존 배리(1933~2011)


화면 속 대사와 어우러지는 음악이 특징이라면 특징. 캐릭터 목소리의 톤을 적절히 살리면서 음악의 본역에 충실한 곡을 만들기로 정평이 나 있다.


존 배리의 인간 심연의 깊이로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소설 주홍글씨를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의 심연에 새겨진 어떤 글씨를 찾을 수 있다면... 그 글씨가 어떤 것인지는 본인만 알고 있다.



 

 

입력 :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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