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을 쏜 다음날인 2017년 7월 29일 6박7일간의 여름 휴가에 들어갔다. 사진=유튜브 캡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기록적인 호우 사태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자택 주변이 침수돼 현장을 방문하지 못하고 한덕수 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게 전화로 지시를 한 데 대해 다투어 비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인 고민정 국회의원은 8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지하 벙커에 있는 위기관리센터를 찾아 전반적인 상황을 보고 받고 체크해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폭우로 고립된 자택에서 전화 통화로 총리에게 지시했다고 할 일을 했다 생각하시는 건 아니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대한민국의 재난재해의 총책임자는 대통령”이라고 덧붙였다.
박찬대 최고위원 후보도 “상황실로 나와 비상한 조치를 해야 함에도 윤 대통령은 집 안에서 전화로만 지시했다”면서 “멀쩡한 청와대를 왜 나와서 이런 비상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난했다. 윤영찬 최고위원 후보도 “전국에 연결된 회의시스템이 갖춰져 이동할 필요도 없는 청와대를 굳이 버리고 엄청난 세금을 들여 용산으로 옮기더니 기록적 수해 상황에서 전화로 업무를 본다”고 비판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도 “국민이 힘들고 어렵고 불안할 때 대통령이 보여줄 모습은 출근하지 못하고 전화로 지시하는 것보다는 국민의 책임자와 대책을 마련하고 문제 해소를 위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주장 가운데 집무실과 관저의 분리로 인해 위기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전화 지시'를 문제 삼는 것은 또 하나의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위기 상황 속에서 집무실을 비우고 전화로 사태에 대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21일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다.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한 지 1주일 만이었다. 이때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경남 양산에서 휴가 중이었다. 하지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전화로 보고를 받은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 소집을 지시했다. 이후 문 전 대통령은 1시간 20분 동안 5차례 전화보고를 받았다. 청와대는 “NSC 상임위 차원에서 확고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옥외에서 간편복 차림의 문 전 대통령이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모습이 사진기자에게 포착되어,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통화가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사실 정의용 안보실장은 그날 아침 안보실장으로 임명됐다. 정 실장은 통상분야에 오래 근무했던 외교관 출신으로 안보 문외한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문 전 대통령은 전화 지시만 했던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이 양산을 떠나지 않은 것은 그곳에서 휴가를 보낸 후 5월 23일 경남 김해에서 열릴 예정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행사에 참석하겠다는 계획 때문이었다.
두 달여 후인 2017년 7월 28일 북한은 ICBM을 발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중대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예정보다 하루 늦은 7월 30일 6박 7일 일정으로 휴가를 떠났다. 청와대는 ‘노동시간 단축과 연차휴가 사용 의무화’를 위해 자신의 연차휴가를 다 사용하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하면서 “휴가지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는 만큼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안보 위기 상황에서 ‘전화’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바로 고민정 의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8일 자택에서 전화로 호우 대책을 지시한 것을 두고 '국정공백'이라고 비난한 <한겨레>는 2017년 7월 30일 '문 대통령의 여름 휴가 부정적으로 볼 일 아니다'라는 사설까지 써가면서 안보위기 상황 속 대통령의 부재를 변호했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전화도 아니고 페이스북으로 초동 대응한 경우도 있었다. 대선 후보 시절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바로 그 사람이다.
대선 막바지 유세가 한창이던 3월 4일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서 큰 산불이 일어났다. 마침 인근 경북 영주에서 유세를 했던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그날 밤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반면에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는 처음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선대위 상황실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점검하겠다”며 “민주당도 선대위 차원에서 당장 이재민을 도울 모든 방법을 찾아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대응이 대비(對比)되자 이재명 후보는 3월 5일 새벽 뒤늦게 현장을 방문했다.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은 “보여주기식 방문이 아니다”라면서 이 후보가 윤 후보보다 늦게 현장을 찾은 것을 감쌌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재민들이 단잠이 들었을 시간에 민폐를 끼쳤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시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재난재해의 총책임자’였던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이틀 뒤인 3월 6일에야 현장을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