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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문학상 수상 작가를 찾아서 ⑫ 정영문

자유로운 영혼에서 태어난 팅커벨

글 : 이재은  시인·월간조선 객원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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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
⊙ 48세.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작가세계》로 등단.
⊙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 《핏기 없는 독백》 《달에 홀린 광대》 《바셀린 붓다》.
⊙ 단편소설 《검은 이야기 사슬》 《목신의 어떤 오후》.
⊙ 동인 문학상, 대산 문학상, 한무숙 문학상, 동서 문학상 수상.
  7월의 꽃이라 하는 트럼펫 모양의 페튜니아를 보려면 꽃가게보다 큰 거리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화이트, 핑크, 퍼플, 블루, 레드 그 빛깔도 크레파스만큼 다양하다. 누구의 아이디어로 버스정류장에 꽃 정원이 꾸며진 걸까. 플라스틱 항아리 화분에 담긴 페튜니아를 보며 버스를 기다린다. 하염없는 햇살 아래 꽃과 눈을 마주치고 서 있다 보면, 저 멀리 달궈진 아스팔트 길을 버스가 아닌 리무진이 달려올 것만 같다.
 
  동인문학상 수상작 《어떤 작위의 세계》는 국내 문학작품으로는 드물게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외국이다. 정영문 작가가 어느 해 두 계절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내고 그 체험기를 소설로서 형상화한 일종의 체류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표류기라고 한다. 어느 것이든 다 맞는 것 같다. 수상작 《어떤 작위의 세계》를 읽다 보면 어느새 독자도 북아메리카의 넓은 평원을 떠돌고 있다. 그곳에 무작정 머물고 싶기도 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소설의 시작은 한국에서 사귀었던 옛 여자친구를 이국에서 다시 만나는 것에서 비롯한다. 옛 여자친구는 멕시코계 남자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다. 딱히 잘 곳이 마땅치 않은 주인공은 옛 여자친구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세 사람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옛 여자친구는 주인공이 보란 듯이 문을 열어놓고 멕시코계 애인과 섹스를 하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주인공의 동선은 남과 여의 애정행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비현실적이면서도 작위(作爲)의 어떤 세계에서나 가능할 법한 말들이 사실은 사람들의 무의식과 맞닿아 있다. 정영문 작가는 아무렇지 않은 태연한 어조로 배설하듯 글을 쓴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피터팬을 사랑한 귀여운 요정 팅커벨이 떠오른다.
 
  〈한데 그날 오후에 그들이 자신들의 방 침대에서 문을 열어놓은 채로 섹스를 하고 있는 것을 복도를 지나가다 보게 되었을 때—나는 그들을 보며 그들 사이에 내가 끼어들어 할 수 있는 일에 뭐가 있을지 생각했지만 별로 없는 것 같았음에도 내가 끼어들 경우 힘이 센 멕시코 녀석이 나를 힘으로 밀어내거나, 심지어는 발길질을 해 나를 나가떨어지게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었다….(중략)
 
  언젠가부터 그런 식으로, 어떤 순간을 순수하게 경험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의식하며, 의식과 감정까지 조작하며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어떤 잘못처럼 여겨졌고, 나 자신이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뻔한 수작을 벌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편안함은 내가 어떤 작위의 세계 속 한가운데 있기에 주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래도록 너무도 작위적인 삶을 살아왔고, 이제는 작위적인 것이 내게는 자연스러웠다. 내가 작위적인 삶을 산 것은 삶의 그 무엇도 사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그에 따라 삶에 진지할 수 없었고, 삶의 어떤 사실들이 아니라 그 사실들에 대한 생각들에만 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것이 나의 삶의 가장 큰 실질적인 어려움이기도 했다.-본문에서〉
 
 
  정통 스타일이 아닌 소설도 나와야 한국 문학계 다양해져
 

  —《어떤 작위의 세계》라는 한 작품으로 동인, 대산, 한무숙 문학상을 받았어요. 문학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셈인데 얼떨떨했겠는데요.
 
  “거의 16년 가까이 소설을 쓰면서 제대로 조명을 받고 싶단 생각도 있었고, 늘 절망적인 건 아니지만 때로 절망적으로 느껴질 때, 그러던 차에 받게 되어 굉장히 기뻤어요. 제 작품 같은 경우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아요. 일반적인 한국 소설 같지 않고 그래서 좀 수용되기 힘든 요소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대로 평가받고 그런 날이 오게 될지에 대해서 사실은 좀 회의적인 생각이었어요. 어쨌든 한꺼번에 찾아와서, 그래서 좀 여러 가지 심정이 복잡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꼭 나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이런 식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소설들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어떤 몇 개의 길이 있다는 자체는 그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소설을 쓰는 후배 소설가에게도 굉장히 다행한 일이죠.”
 
  —데뷔 후 16년 동안 문학상 예심을 통과한 적도 여러 번 있었을 텐데, 번번이 떨어지거나 그럴 때 심사위원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나요.
 
  “원망이 없지는 않았죠. 정통적이지 않은 다른 형식의 소설을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원로문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앞으로 한국문학이 더 다양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그래서 이번 수상은 그런 의미로 다소 희망이 보였어요.”
 
  —고참작가 입장에서 언제까지 나를 무시하나 보자 그런 심산도 있었던 것 아닌가요?
 
  “이번이 동인문학상 본심 심사에 세 번째 오른 거였어요. 제 소설을 지지하는 분과 그렇지 않은 세력이 나뉘어 있었는데, 어쨌든 나름 제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나가니까 그렇지 않은 쪽이 납득을 한 것 같아요.”
 
  —흔히 정영문 작가는 상이나 돈과는 거리가 먼 작가라고도 해요. 갑자기 큰 상금을 받으니 어땠나요.
 
  “순수한 전업작가에게 큰 액수였죠. 일단 저 같은 경우는 완전한 전업작가라기보다는 주수입원이 번역이었어요. 건강이 안 좋아져서 번역 일도 과거만큼 못 했거든요. 상금을 받은 것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됐어요. 사실 전업작가라 해서 옛날과 비교해 크게 나아진 것이 별로 없어요. 작가에게 돈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요.”
 
  —문학상은 더 많아졌는데, 받기는 쉽지 않은 거죠.
 
  “그렇죠. 문학상이 많아지긴 했지만, 몇몇 작가에게 한정된 혜택이고 다수의 작가는 소외되어 있다고 봐야죠.”
 
  —번역도 꽤 많이 했는데 소설가나 시인이 외국어와 한국어를 같이 잘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저는 우리말을 잘 못해요. 어릴 때부터 영어를 더 잘했거든요. 그것도 월등히 잘했어요. 따로 영어를 배우지 않았어도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앞서 갔어요. 영어가 재밌었어요. 지금도 우리말보다 영어가 편해요.”
 
 
  유머를 알면 선량할 수밖에 없어
 

  —번역가에서 언제부터 소설가로 ‘전향’하게 됐나요.
 
  “비슷하게 썼어요. 소설을 쓰고 싶어할 무렵 번역도 자연스레 하게 됐거든요. 번역은 해부된 언어의 조각을 맞추는 일이죠. 책 두 권 정도를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제 소설을 쓸 수 있었어요. 오류 문장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느 날 제 문장도 자연스레 습득된 거죠.”
 
  —이 소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두 계절을 보내며 쓴 소설이잖아요. 외국 배경을 일부러 설정한 건가요.
 
  “일부러 배경을 그쪽으로 잡은 건 아니고요.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원래 3개월 과정인데 개인적으로 좀 더 머물렀어요. 처음에는 그 도시를 배경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자연스레 쏟아졌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이건 내 상상의 세계, 내 무의식의 세계이기도 해” 이렇게도 읽히는데 잘못된 건가요?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생각의 묘사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들은 다 지나쳐버릴 생각들에 대해 너무도 디테일한 표현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은 정말 별일 아닌 것이죠. 그 순간에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그런 사소한 일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적어봤습니다. 그냥 두지 않고 집요하게 생각을 이어가는 식으로…. 그런 부분에서 약간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나 스스로 그것에 대해 생각을 떠올리고 더하고 하는 것들이 어떨 땐 나를 질리게 한다고. 생각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그런, 물론 그런 생각들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이 책 자체가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독자를 질리게 만드는 부분도 있어요. 그만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끝까지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정신이 지나치게 멀쩡하고 경직된 사람들은 내 소설을 못 견딜 것이다”, “나사가 약간 풀리긴 했지만 착하고 마음이 예쁜 사람들은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는 작가의 말을 봤는데, 왜 그렇나요.
 
  “일단은 삶의 희극성을 보는 것, 거기서 유머라는 것이 나옵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우리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보죠. 믿음이나 사랑 등등. 그중 유머가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머를 모르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유머는 그런 식으로 우리의 삶을 덜 힘들게 만들어주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머를 알면 선량할 수밖에 없죠.”
 
  —작품을 보면 옛 여자친구에 대해 상당히 관대해요. 일종의 관용이랄까, 그걸 허용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보통 사람들로선.
 
  “여러 측면에서 자유를 말할 수 있는데, 사람들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 가운데 가장 큰 게 누군가의 관계에 의한 구속이죠. 그런 것들에 의해 자유가 상당히 많이 제약을 받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관계에 있어 자유로운 것을 지향합니다. 가령 사랑하는 사이의 경우,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구속들이 있습니다. 자기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런 것도 물론 좋지만 될 수 있으면 사랑할 때는 그 상대만을 사랑하되,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가 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관계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개인적인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가령 남자가 자기 스케줄에 대해 일절 공개하지 않고, 갑자기 만나자고 한다면.
 
  “그건 자유의 문제라기보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건 당연히 배려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행동하진 말아야죠. 사랑한다면 가장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배려와 함께 상대에 대한 존중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기초와도 같은 것이죠. 저 같은 경우 누군가와 사귀면서 커다란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어요.”
 
 
  “돌도 한곳에만 머물면 갑갑하지 않을까”
 
  —소설을 읽으며 “이분은 틀림없이 자유로운 영혼(누구나 그럴 테지만 유난히)일 거야”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한데 사진을 보고 그것을 더 확신했어요. 직접 뵈니까 머리카락을 잘랐네요.
 
  “자유로운 영혼, 그런 것 같아요. 머리는 20대부터 계속 길렀습니다. 너무 길면 자르고. 그러다 지난달에 갑자기 머리를 자르게 됐습니다.”
 
  —작가님을 보고 노천명 시인의 시 ‘사슴’이 떠올랐어요.
 
  “그렇죠. 목이 길어 기린 같다는 얘기도 듣고 사슴 같다는 얘기도 듣고.”
 
  —훤칠한 외모를 보고 문인들이 한 칭찬 같은 게 있다면.
 
  “동료 작가들은 그것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고,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나를 무용수로 본 적은 있습니다. 옛날에 머리 길었을 때 특히.”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도 보이네요. 실제 무용을 한 경험은.
 
  “오래전에 무용을 해보고 싶었어요. 뜻을 조금 둔 적은 있지만 재주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무용도 정말 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이긴 합니다. 아는 소설가 후배가 있는데 그 친구가 무용을 잘했어요. 그 친구가 나에게 무용을 자주 권하기도 했죠.”
 
  —소설 한번 쓰고 나면 진이 다 빠질 텐데, 따로 체력관리를 합니까.
 
  “산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전거도 가끔 타고.”
 
  —“이 소설은 세상의 루저(loser)들은 물론이고 승리자들도 꼭 읽어야 할 소설이다. 승리자에게는 한 길밖에 없으나 성공을 반납하고 방랑을 선택한 사람 앞에는 무한한 길이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라고 쓴 심사평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는 소설을 쓰면서 승자와 패자를 떠나 어떤 점에 있어서 인간적인 부분들, 그런 부분들을 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것들이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견디게 하는 듯합니다. 비극적인 요소와 늘 공생하는 희극적인 요소들을 보며 그 속에서 웃음을 찾으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 데 굉장한 의지가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죠. 그런 것들을 독자들이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자 스스로도 기본적으로 이 삶이 영원하지는 않다고 받아들입니다. 동시에 상당한 권태를 느끼면서. 젊을 때 많은 것을 새롭게 느끼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는 의지가 남아 있다면 그것 자체가 살아갈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삶의 결정적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소설이라는 커다란 버팀목이 있지 않나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설을 쓰면서 보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 자체도 때론 무료한 작업입니다. 가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 낼 때 희열감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러나 괜찮은 생각들이 자주 떠오르진 않거든요. 그런 것들이 소설가로서 좀 힘든 부분입니다.”
 
  —작중 화자가 가는 곳마다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요정 팅커벨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는 게 재미있네요. 보통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과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게 조금은 다르더라고요. 얼마 전에 영국에 가서 한 달 정도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템스강이 굽이쳐 흐르는 리치먼드란 동네에 살았죠. 하루는 어떤 사람과 함께 샌드위치를 들고 거닐다가 바닷가에 갔습니다. 거기 예쁜 돌들이 많더라고요. 바닷가 예쁜 돌들을 주워다가 템스강에 던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은 우리나라 남해 어느 바닷가에서 주운 돌들을 충청도의 어느 산에다 던지고, 다른 몇 개는 가지고 돌아왔죠. 그 이후 강원도에 갔을 때는 그 강에다 던지고…. 돌들도 한곳에만 있으면 얼마나 갑갑하겠어요. 이렇게 저 같은 사람들 때문에 돌들도 여행을 하게 되잖아요.”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노력

 
   —영어를 한국어보다 잘한다니 외국에 가서 살 때도 외국인들이 동양인으로 보지 않겠는데요.
 
  “한국인이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 듯하더라고요. 대부분 일본인으로 봤습니다. 제 생김새가 그런가요?”
 
  —서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인문학의 한 갈래로서 심리학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선택하게 됐나요. 심리학이 소설 쓰기에도 제법 영향을 미쳤을 법한데요.
 
  “나의 소설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습니다. 학교에 갔지만 심리학을 그다지 공부하지 않아서 잘 아는 것은 없었어요. 하지만 늘 심리에 대해서 생각하긴 했죠.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가, 하는 것들요. 심리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전엔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이 소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맞죠. 다른 학문을 전공했더라면 몰랐을 그런 것들을 심리학과에서 배우긴 했어요. 공부는 못했지만. 그 당시 주워들은 심리학적 지식들이 사람을 유형화하고 사람을 파악하는 데 약간은 도움을 준 듯합니다.”
 
  —특히 어떤 심리학자가 기억에 남습니까.
 
  “처음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읽고 심리학과에 가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대학 때 여러 심리학 관련 책들도 좋아했고. 그런데 그리 오래지 않아 심리학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오히려 대학 때 미술사에 더 관심을 두었습니다.”
 
  —심리학의 곁가지인 것 같은데, 요즘 각종 테라피가 대세입니다. 독서치료사라는 것도 있고요. 최근 유행처럼 퍼져가는 테라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선 나에게는 소설이 치유는 아닌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기는커녕 항상 삶이라는 자체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됩니다. 오히려 소설을 쓰면 쓸수록 그 혼란이 가중되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일종의 병적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그와 동시에 내 나름 그런 혼란을 정리할 수 있는 것 또한 글이라는 매체입니다. 아마 예술가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근원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가령 극단적으로 간 예술가들, 화가의 경우엔 반 고흐라든지, 그의 미술작업이 결코 그를 마음의 평화의 상태로 데려가 주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극단으로 몰아넣었죠.”
 
  —본인도 고흐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될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보통 사람들은 많은 작가들, 예술가들을 극단적이거나 때론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제가 겪어 보니 그런 경향이 내재돼 있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항상 그런 경향을 잘 다스려야죠.”
 
  —본인만의 심리적 테라피 요법이 있다면.
 
  “뚜렷한 테라피를 못 찾고 있어요. 그런데 결국엔 역설적이게도 글 쓰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유일한 테라피 같습니다.”
 
  —종교를 갖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한데요.
 
  “종교를 갖게 되면 분명히 의지할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가 생기니까 좋은 점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단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들이 그런 식으로 가서 나중에 종교에 빠지게 되어 더 이상 글을 못 쓰게 되는 경우가 꽤 있더라고요.”
 
 
  9월과 10월 프랑스와 영국에서 소설 발간
 
  —곧 프랑스로 작가 연수 같은 여행을 간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여행입니까.
 
  “거창한 여행은 아닙니다. 그냥 작은 도시에 가서 마음을 치유하려는 목적으로 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조금 돌아다닐 수도 있고. 딱히 계획은 없습니다. 원래 계속해서 짧은 일정으로 옮겨다니면서 하는 여행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어디에 가면 무엇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요.”
 
  —일정한 비용을 기관에서 지원해서 가는 건데 요구사항이 있지 않나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작가협회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소설가나 시인들이 지원을 해서 선정되면 가는 겁니다. 책을 1권 이상 낸 작가여야 하고 보통 분과별로 여러 명이 지원하는데 최종적으론 1명을 선발합니다.”
 
  —여비도 나오나요.
 
  “네, 그럼요. 충분한 생활비도 지급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소설가들과의 만남도 있습니까.
 
  “어떤 프로그램은 여러 소설가와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가는 프로그램은 나만 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쪽에서 초청하는 형식으로 해서. 숙식도 모두 제공하고.”
 
  —그곳에서 시간은 어떻게 보낼 예정입니까.
 
  “9월에 프랑스에서 《달에 홀린 광대》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합니다. 그때 파리를 비롯한 몇 군데에서 낭독하는 행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를 만나는 시간도 있고. 10월 말에서 11월 초에는 영국에서 《목신의 어떤 오후》를 출간합니다. 그때 또 행사가 있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행사 몇 개 참가하고 그 외에는 완전히 자유롭게 보낼 생각입니다. 근래 몇 달 글을 쓸 시간도 없었고 여러 일도 많았는데 거기 가서는 여유를 가지면서 글을 쓸 생각입니다. 프랑스는 가장 가고 싶었던 휴양지 중 하나입니다. 기후도 좋고. 그곳 환경이 좋아 작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고. 그렇다고 억지로 영감을 받겠다는 생각은 없고 그냥 있다 보면 저절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요. 나중에 그런 것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 젊은 작가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김태용과 한효주, 박민규.”
 
  —친한 작가는요.
 
  “역시 김태용, 한효주랑 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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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유주    (2018-03-31) 찬성 : 72   반대 : 60
한유준데요. 한효주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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