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聖 佑
1934년 경남 통영 출생. 서울大 문리대 정치학과 졸업. 1956년 한국일보에 입사, 「週刊한국」 초대부장, 파리 특파원, 편집국장, 주필, 논설고문을 거친 뒤 2000년 퇴사할 때까지 44년 동안 언론계에 근속. 재직 중 「金聖佑 문화칼럼」, 「金聖佑 에세이」 등 칼럼을 집필. 우리나라 유일의 명예시인이자 명예배우다. 서울시문화상(언론), 삼성언론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문화)을 수상. 저서: 「세계의 문학기행」, 「문화의 시대」. 「파리知性기행」, 「돌아가는 배」 등.
괴테의 名詩 중에서도 「나그네의 밤노래」는 특히 유명하다. 「산봉우리마다 /안식이 있다/나뭇가지 끝에는/ 바람도 자고/ 숲속의 새들도/ 노래 그쳤다/ 기다려라, 잠깐만/이내 그대 또한/ 쉬게 되리니」라는 詩다. 괴테는 이 詩를 31세 때 독일의 일메나우(Ilmenau) 인근에 있는 키켈한山 頂上의 사냥꾼의 집 벽에 썼고, 51년 뒤 82회 생일 전날 이 오두막집을 다시 찾아와 이 詩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1934년 경남 통영 출생. 서울大 문리대 정치학과 졸업. 1956년 한국일보에 입사, 「週刊한국」 초대부장, 파리 특파원, 편집국장, 주필, 논설고문을 거친 뒤 2000년 퇴사할 때까지 44년 동안 언론계에 근속. 재직 중 「金聖佑 문화칼럼」, 「金聖佑 에세이」 등 칼럼을 집필. 우리나라 유일의 명예시인이자 명예배우다. 서울시문화상(언론), 삼성언론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문화)을 수상. 저서: 「세계의 문학기행」, 「문화의 시대」. 「파리知性기행」, 「돌아가는 배」 등.
일메나우는 독일의 바이마르市에서 가깝다. 에어푸트에서 기차를 갈아탄다. 驛에 내려 키켈한山 입구까지 택시로 간다. 산길을 약 20분 걸으니 山莊(산장)이 보인다. 옛 오두막은 불타고 그 자리에 복원된 것이다. 山莊에서는 「독일의 푸른 山莊」이라는 튀빙겐 숲의 산봉우리들이, 바로 괴테의 詩 세계가, 한눈에 眺望(조망)된다.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 갔던 길에 歸路(귀로)는 버스를 타고 이탈리아의 코모호 쪽으로 알프스 고산지대의 絶景(절경) 속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생모리츠를 지나 10여km 달렸을까. 문득 큰 호수변에 실스 마리아(Sils Maria)라는 표지의 마을이 나타난다. 「아, 여기가 실스 마리아였구나」
뜻밖의 발견에 나는 급히 버스를 세우고 무작정 내렸다. 철학자 니체를 아는 사람이면 실스 마리아를 기억할 것이다. 니체가 永劫回歸(영겁회귀)의 사상을 得道(득도)한 곳이 실스 마리아요, 그래서 니체의 聖地(성지) 같은 곳이 실스 마리아다.
白雪(백설)로 뒤덮인 엔가딘 골짜기의 실바플라나 호반 숲에는 니체가 散步(산보)를 하다 이 思想을 受胎(수태)한 자리 근처의 바위에 기념판이 걸려 있었고, 人家가 드문드문한 외딴 곳에 그의 名著(명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를 완성한 집이 남아 지금 니체 기념관으로 문이 열려 있었다.
●생모리츠는 스위스 동쪽 끝 엥가딘 산맥 남쪽에 있는 세계적 휴양도시다. 어느 계절에 찾아도 즐길 것과 볼 것 많은 곳이다. 서울에서 취리히까지 12시간 정도를 날아간다. 생모리츠에서 열차를 타면 넉넉히 4시간 후에 도착한다. 호화로운 호텔과 富豪(부호)들의 별장이 있고, 온천으로 유명한 바트(Bad)에는 깨끗하고 편안한 유스 호스텔도 있다. 니체 기념관은 월요일을 제외한 오후 3~ 6시 정도까지 개방된다. 조반니 세간티니의 미술관도 볼거리다. 생모리츠와 다보스는 毛織(모직) 등으로 유명하고 꽃그림을 그려 넣은 카우 벨(cow bell)과 초콜릿 선물도 기념품으로 그만이다.

나는 신문기자로서 취재를 위해 세계 각국의 위인이나 大家들의 무덤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그 중에서 名墓(명묘)를 하나만 고르라면 프랑스의 생말로(Saint-Malo)로 안내하겠다.
대서양에 면한 브르타뉴의 항구도시 생말로는 해안의 절벽 위로 솟은 古城(고성)이 護岸(호안)을 하고 있다. 이 성벽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바로 앞에 조그만 섬이 하나, 이것이 그랑베島(도)다. 干潮(간조) 때면 연륙이 되어 걸어갈 수 있다.
텅 빈 채 잡초만 무성한 섬이다. 이 섬의 맨 끝 쪽 물결이 발목에 철썩이는 낭떠러지 바위 위에 섬을 독차지한 무덤이 있다. 大王의 왕릉이 부럽지 않다. 바라보아야 허허한 대서양 바다. 이 수평선을 향해 화강암의 십자가가 서 있을 뿐, 墓石에는 아무 이름도 없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안다. 이것이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생말로가 고향인 샤토브리앙의 무덤이다.
●파리 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城과 바다가 있는 생말로를 많이 찾는다. 이곳에는 몽생미셸로 가는 버스도 있다.

聖歌(성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의 고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북쪽으로 20km쯤 가면 오베른도르프(Oberndorf) 마을에 이른다. 인구 3000명의 小村(소촌)이다. 여기 鐘(종)을 엎어 놓은 듯한 조그만 예배당이 있다. 이것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념 예배당이다.
아하, 이렇게 작은 교회도 있었던가. 안에 들어가 보면 긴 나무 걸상 4개뿐, 20명 정도가 앉으면 가득 찰 것 같은 넓이다. 양옆의 채색 유리창에 聖歌의 작사자 모르 신부와 작곡자 그루버 교사의 얼굴이 각각 그려져 있다. 1818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 이 예배당 자리에 있던 聖니콜라우스교회에서 두 작사, 작곡자의 2중창과 성가대의 합창으로 이 노래가 처음 불렸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그렇게 全세계로 퍼진 노래가 나왔다니.
●빈에서 약 300km 떨어져 있는 잘츠부르크는 뮌헨에서는 기차로 2시간, 서역(Westbahnhof)에서 기차로 4시간 남짓 걸린다. 여기에서 오베른도르프는 승용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오베른도르프의 강 건너는 독일이다.
인근 잘츠부르크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가 되었던 미라벨 정원(Mirabellgarten)과 모차르트 生家, 호헨 잘츠부르크 城(Festung Hohensalzburg), 헬브룬 궁전(Schloss Hellbrunn) 등의 명소가 있다. 舊시가의 여행 안내소에서 시내 지도(무료)를 받아 여행하자.

로버트 플라허티의 영화 「아란의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는지 모르겠다. 바다와 싸우는 섬사람들의 苦鬪(고투)를 全員 현지인 출연과 전편 현지 로케이션으로 그린 명화다. 그 섬이 너무나 특이했다.
유럽에서도 서쪽의 나라 아일랜드, 아일랜드에서도 최서단의 항구 골웨이. 이 골웨이에서 다시 더 서쪽인 섬 아란(Aran)島를 가는 輕비행기를 탄다. 船便(선편)으로는 세 시간 걸린다. 아란은 3개의 섬이 나란한 諸島(제도)다. 그 중 영화의 섬인 가운데의 이니쉬만 섬에 20분 만에 내린다.
섬은 하늘에서 보면 거북등같은 岩甲(암갑)으로 덮였고, 내려서 보면 온통 돌천지다. 어디를 가나 돌담, 돌담, 돌담이다. 흙이 귀해 산도 큰 나무도 없다. 영화 이전에 아일랜드 극작가 싱의 名作 희곡,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도 이 섬을 무대로 한 것이고, 작품을 쓴 돌의자가 남아 있다. 먼 서쪽 끝의 아란島를 모르고 섬을 안다 할 수 없다.
●아란 군도(Aran Islands)의 북쪽 해안에서 경사져 올라 있는 이니쉬모어(Inishmore)는 아란도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찾는 가장 큰 섬이다. 그 다음으로 이니쉬만(Inshmaan)과 이니쉬어(Inisheer) 섬은 걸어서 둘러볼 만큼 작다. 이니쉬만은 그 중 방문객이 적고 한적하다.
배편으로는 골웨이港(항)에서 출항하는 오브라이언사(O’Brien Shipping), 로자빌(Rossaveal)에서 출항하는 아일랜드 페리사(Island Ferries)의 연락선 外에 골웨이 남쪽 둘린(Doolin)에서도 연락선이 있다. 비행기로 가려면 골웨이에서 로자빌까지 1시간, 로자빌에서 이니쉬만까지 또 1시간 정도 걸린다.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姉妹(자매)의 고향인 영국 중부의 하워드(Haworth)에는 이들이 살던 옛 목사관이 브론테 기념관으로 되어 있다. 이 기념관을 돌아나가면 바로 집 뒤에서 황야로 올라가는 길이 시작된다. 「무어」라고 불리는 이 荒蕪地(황무지)는 숲이라고는 없이 가도가도 「히드」라는 野生의 관목으로 뒤덮인 언덕이 이어진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그야말로 非山非野(비산비야)의 땅에 광활한 히드 밭의 황량이 장관이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깨알 같은 자줏빛 히드꽃이 온 언덕에 紬緞(주단)을 깐다고 한다. 3km 쯤 걸었을까. 황야의 마루턱에 바람에 지붕을 날리고 돌벽만 남은 廢屋(폐옥)이 나타난다. 톱 위든즈라 부르는 이곳이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제목이 된 「폭풍의 언덕」이다. 이 소설은 하워드 마을을 둘러싼 이 웨스트 라이딩 황야가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런던 킹스 크로스驛(King’s Cross Station)에서 리즈(Leeds)驛까지 직행 기차가 있다.
요크(York)驛에서 리즈驛, 다시 키슬레이(Keighley)로 가는 기차를 탄다. 키슬레이에서 하워드로 가는 기차나 버스를 갈아타는 방법도 있다. 소설 「폭풍의 언덕」의 저자 브론테 기념관(Bronte Parsonage Museum)을 관람한 후 언덕 정상에 있는 브론테 길(Bronte Way)로 가보자. 입장료는 없다.

파리에서의 미술관 순례는 대개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로 끝난다. 그러나 적어도 인상파의 대표적 화가 모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르모탕 미술관을 빠뜨릴 수 없다.
인상파라는 이름을 낳은 「인상-일출」 등 모네의 작품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마르모탕에서 모네의 연꽃들을 봤으면 이 그림들의 현장이자 産室인 지베르니(Giverny)를 또 찾아가지 않을 수 없다. 파리에서 AB고속도로를 타고 루앙 쪽을 향해 달린다. 베르농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센江을 건너면 강변의 한적한 마을 지베르니에 이른다.
여기 모네가 40여 년 살다 죽은 집이 있고 지금 기념관으로 쓰인다. 화가가 손수 만든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하다. 모네의 명화를 原畵 아닌 「原景(원경)」으로 만난다. 모네는 말년까지 연못 원경가에서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연꽃의 빛의 變幻(변환)을 섬세한 색채로 캔버스에 담았다.
●모네 기념관은 파리의 생 라자르驛에서 루앙(Rouen)行 열차를 타고 베르농(Vernon)驛에 내린다. 지베르니까지는 베르농驛에서 버스를 이용한다. 택시를 타면, 지베르니까지 5km 정도다. 5∼6월 이곳을 찾는 이들은 모네의 정원을 둘러보고 가까운 곳에 있는 보디(Baudy)호텔에 들러 보라. 이곳에는 모네의 정원과는 다른 향기가 가득한 키 큰 나무와 꽃을 만끽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즐겨 불리는 노래의 하나인 포스터의 「스와니江」. 全長 410km의 흐름 어디인들 스와니가 아닐까. 포스터 센터를 만들어 스와니江의 母村(모촌)을 자처하는 화이트스프링(Whitespring)을 찾아본다. 미국 플로리다州의 잭슨빌에서 10번 프리웨이를 타고 서쪽으로 약 100km달리다 US 41번 도로로 접어들어 북쪽으로 10km 더 가면 화이트 스프링이다.
동네에 들어서기 전에 강을 건너게 되고, 그 다리 위에 「SUWANEE RIVER (스와니江)」라는 푯말이 서 있다. 상류 쪽이라 아직 강폭은 좁고 流速이 빠르다. 강 양쪽은 숲으로 우거졌다. 그런데 강물이 먹물이다. 이렇게 시커먼 강을 본 적이 없다.
다가가 보면 물빛이 쌍화탕 같다. 강물을 손바닥에 떠보니 다갈색이다. 강기슭의 나무가 대부분 실편백이어서 여기서 나오는 타닌酸(산) 때문이라고 한다. 名歌(명가)로 우리에게 그리움의 강이 된 스와니는 이렇게 물빛이 신비스럽다.

캐나다 東岸의 반도인 노바 스코샤州의 핼리팩스에, 비행기에서 내려 기차를 갈아 탄다. 기차는 1시간 반 만에 그랑프레에 닿는다. 둘러보아야 民家는 안 보이고 광대한 풀밭이다. 地名만 있고 동네는 없다. 빈 들판에 관광객만 득실거린다. 지금 그랑프레 국립역사공원이 되어 있는 이 자리가 18세기 때 영국군에 추방당한 아카디 원주민의 마을이 있던 悲戀(비련)의 장소다. 그 비극을 그린 것이 롱펠로의 장편詩 「에반젤린」이었다.
옛 아카디안 교회의 모양을 재생시킨 박물관 정면에는 에반젤린의 立像(입상)이 서 있다. 마을에서 제일 부자인 농부의 딸이던 에반젤린은 손에 양치기의 막대기를 들고 고개를 갸웃이 치켜든 채 흘러가는 구름에 애원의 눈짓을 하며 헤어진 대장장이의 아들 가브리엘을 찾고 있다. 동상이 어느 名배우의 연기보다 더 그 哀傷(애상)을 열연한다. 글씨가 바랜 책장처럼 역사가 지워진 초원에서는 소떼들이 아카디의 슬픈 옛 이야기를 「음매~」하고 운다.

파리를 여행하면서 시내의 바렌街에 있는 로댕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정원에 있는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사람」은 미술관 바로 옆의 지하철역인 바렌역 구내에도 있다. 파리뿐 아니다. 日本 등지의 미술관에도 있다. 그런데도 이 銅製(동제) 조각의 석고 원형이 어디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로댕이 어디 묻혔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물어보지도 않는 사람들을 안내하여 나는 여러 차례 파리 근교인 뫼동(Meudon)으로 갔다. 이곳 오귀스트 로댕街 19번지에 또 하나의 로댕미술관이 있다. 여기에 「생각하는 사람」 등 그의 주요 작품들의 원형을 다 모아 놓고 일반 공개를 한다. 최근에는 「생각하는 사람」의 때 벗기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로댕은 晩年(만년)의 거처이던 이 집에서 永眠(영면)하여 아틀리에 앞 뜰에 묻혔고 무덤 위에 또 하나의 「생각하는 사람」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