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그가 2012년에 출간한 《사람이 먼저다》라는 저서의 제목에서부터다. 그리고 제19대 대통령 경선 때 당시 야당의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출범식장 무대 후면 전체를 ‘사람이 먼저다!’라는 커다란 글씨로 장식했다. 일반 국민들은 이것을 보고 다소 생소했을 것이다. 평소 잘 쓰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가 대선에서 실패하자 그 구호문은 자연히 잠적했다. 그러다 5년 후 ‘사람’은 다시 부활해 지금은 문재인 정권의 중심 슬로건이며 핵심 키워드로 사용되고 있고 국정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은 지금도 이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모른 채 집권 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그저 좋은 말처럼 들려 깊게 생각을 안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생겨난 뿌리와 숨기고 있는 본뜻을 알게 되면 생각은 달라진다. 그 파급력과 결과를 생각하면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우려스런 문제이기도 하다.
북한 헌법 제3조의 ‘사람’
이런 ‘사람 중심’이라는 말은 북한 헌법 제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제8조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제도는 근로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있으며 사회의 모든 것이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람 중심의 사회제도이다. 국가는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되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된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며 보호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북한 헌법상의 ‘사람’이라는 말과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사람’은 그 개념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니고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상당히 근접해 있다. 그것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국정의 지표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경쟁을 통한 시장경제 발전 정책이라기보다는 평등가치를 앞세우고 노동자 중심의 경제구조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고 촛불정신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중심의 활동영역을 넓혀주고 있는 것도 북한 헌법에서 나타내고 있는 노동자와 근로대중의 사람 중심 사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사람중심론은 1980년대 말 공산국가의 종주국인 소련의 붕괴로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멸망하자 한때 일부 공산주의 학자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새로운 공산주의론’을 들고나온 데서 비롯한다. 사람 중심의 공산주의 이론이다. 또한 1997년 남한으로 망명한 황장엽 북한노동당 비서도 망명 직후에 쓴 《인간중심 철학의 몇 가지 문제》(비매품)라는 저서에서 자신이 창안한 ‘주체’라는 말 대신에 ‘사람’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결국 김일성의 주체사상이나 황장엽이 말한 ‘인간중심 철학’, 그리고 동구 공산권 학자들이 한때 내세운 ‘인간의 얼굴론’은 그 뿌리는 하나라고 본다. 김일성의 주체사상도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요약하고 있다. 다만 실제로는 사람이 인민대중이 아니라 김일성 자신이라는 점이 다를 뿐 그 의미 구조는 같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주체사상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학교교육 등 모든 사회의 각 분야에 적용되면서 ‘주체’라는 단어가 하나의 접두사로 사용되면서 북한 사회는 온통 주체사상으로 주체를 못 하는 형편이다.
문재인 정부도 ‘사람 중심’이라는 말이 대통령의 뜻이라고 보고 일부 진보적인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대표 브랜드로 선전하고 있다.
노동자만 ‘사람’인가
‘꼴뚜기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는 말처럼 임금님이 자주 쓰니까 방백(方伯)들 중 말의 진의도 모르면서 섣부른 흉내로 아부하는 사람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가령 창원시장은 ‘사람 중심 행정’이라는 슬로건을, 경남교육감은 ‘아이가 먼저다’라는 구호를, 부산시장은 ‘사람 중심, 걷고 싶은 부산 만들기’ 등등의 유사 단어를 만들어 ‘임금님’에게 어필하고 있다. 현대판 용비어천가를 읊고 있는 개념 없는 벼슬아치들이다. 상감마마의 깊은 속뜻(?)이나 알고 쓰는지 참으로 한심하다. 그러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 중심이 아닌 무슨 동물 중심 정치와 동물이 먼저인 생활을 해왔다는 말인가?
그러면 대관절 대통령이 말하는 ‘사람 중심’이란 무슨 뜻인가? 김일성이 말한 주체사상으로서의 사람 중심 사상이기도 하고 황장엽이 말한 인간 중심 사상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의 사람은 필자가 보기에 대다수의 일반 국민 또는 대중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 중심의 계층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들만이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 사회를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의 관계에서 착취와 억압으로 요약한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사관과 같다.
운동권의 무식과 무능, 무책임
문재인 정권의 국정을 주도하고 있는 청와대의 비서진은 이른바 386의 전대협 운동권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대 비서실장으로 전대협 의장 출신(임종석)을 기용하면서부터 국정 방향의 모든 것을 암시했고 대통령 스스로 촛불혁명 정부라고 선언하면서 강성노조들의 부당한 요구조건도 용인하는 것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의 성격과 특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대협 간부 출신들, 이른바 3무(3無) 세대가 국정 운영의 중심에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3무란 무식(無識), 무능(無能), 무책임(無責任)을 말한다. 무식이란, 전대협이나 한총련과 같은 대학가의 운동권 출신 가운데서 주로 학생간부 출신인 경우 대학 강의시간에는 거의 출석하지 않고 날마다 거리 데모로 전경들과 충돌하면서 당시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알려진 《소련공산당사》 《레닌 선집》,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를 비롯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과 같은 진보좌경적인 민중사관의 이념서적이 아니면 북한의 주체사상 시리즈와 같은 불온서적만 탐독하는 가운데 더러는 경찰의 지명수배로 지하 도피생활 아니면 감옥에서 복역하면서 대학 4년을 보냈으니 미래사회 적응에 필요한 전공지식의 습득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사회는 캠퍼스와는 전혀 다르며 생활전선은 냉철하다. 그들은 이념교육의 지식보다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일반교양과 취업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습득하지 못했고 졸업 후에는 또 다른 주변인으로 전락했다.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배워야 할 때 배우지 못해 무식하고 무식은 곧 무능으로 연결됐다. 그들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혁명과 투쟁, 반제반봉건, 미제와 일제, 반봉건 식민지, 주체사상과 마르크스 레닌주의, 변증법적유물사관과 군사독재 타도 등등의 이념적인 이론과 선전선동 문구들이었으며 그런 용어들은 그들에게 젊은 패기와 자존감을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던 것이다.
새로운 독재 출현
문재인 정부의 출발은 이처럼 행정 능력이나 정치 경험을 갖춘 실력 위주의 인사라기보다는 이른바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원칙에 맞추다 보니 직위에 전혀 안 맞는 무능력의 인사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래서 그들의 대부분은 손쉬운 포퓰리즘에 빠지고 전형적인 아마추어리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래 진보 진영에서는 인재풀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왜 대통령은 탕평책을 꺼리는 걸까? 오히려 인기도 오르고 국정도 원만해질 터인데 말이다. 내부의 견제 세력 때문인지, 대통령 자신의 너무나 새로운 국가관과 평등과 민중 중심 사회 건설이라는 확고한 가치관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이 먼저다’에서의 사람, 즉 하층 노동자들을 위해 대기업들의 부당한 횡포나 갑질들을 찾아내고 처벌, 정의와 공정한 사회를 구축하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기도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이른바 민노총과 같은 강성노조원들의 불법행위와 행패를 다만 고용자라는 을의 위치에 있는 소수의 노동자 계급이라는 이유로 묵인하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민노총의 고용세습 문제나 사업주의 감금과 폭행 등의 횡포는 또 다른 엄청난 갑질이며 자기모순과 자가당착으로 새로운 적폐 세력이며 독재계급의 출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신만의 가치 기준에 맞춰 사회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근대사의 독재자들이 보여준 통치 형태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지향해 온 폭력적 계급투쟁사관이다. 사회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이익에 어긋나면 무조건 혁명의 적으로 규정하고 타도하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역사였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 국정 형태가 이와 같은 것들과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제부터 이처럼 사회주의적 가치관과 국가관이 무의식 가운데 각인되었는가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가정적인 배경과 초기 인권변호사의 경력,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통치기간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이러한 잠재의식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최고 통치권을 장악하고부터라고 하겠다. 지금 우리나라는, 영국의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하이에크가 ‘정부가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을 때 그 사회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면서 동시에 독재정치가 탄생하게 된다’고 한 말과 비슷한 길을 걷는 듯하다.
무식과 무능, 무책임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는 이른바 386세대인 전대협 출신들이 문재인 정권의 핵심부에 침투해 국정을 이끌고 있는 현실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이념과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원리는 하나의 적폐의 근거요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투쟁시절에 머릿속에 각인된 논리이기 때문이다.
증오와 투쟁
운동권 출신들의 행동 특성은 반드시 적대 세력이 있어야만 삶의 의미와 활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외부에 증오와 투쟁의 대상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하기까지 하면서 자기 존재감을 잃게 되는 특이한 심리현상이다. 이것은 운동권 학생운동의 투쟁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갖는 특성이 아니고 자본주의 국가와 대결하고 투쟁하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사회 구성원들도 공통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과거 소련도 그랬고 중국도 그랬다. 오늘날 북한 사회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회를 적과의 대립과 투쟁으로 본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설에서 발견되는 특성이다.
386 학생운동권 출신들은 군사독재 타도와 반제반미투쟁의 목표 아래 데모가 그들의 젊음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이러한 인지구조를 지닌 사람들에게서는 화합이나 통합의 개념은 찾기 힘들다. 현 정권이 대선기간에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표방한 것은 선거전략일 뿐이고 집권하자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갈라 코드인사 행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내 임기 끝날 때 삶이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한 것을 성취하려면 지금부터라도 화합과 통합의 정치가 필요하지 편견과 오만, 독선으로 국민과 야당을 대해서는 안 된다. 자기 집안 식구들도 모두 품지 못하면서 옆집 식구들을 어찌 모두 품겠는가. ‘사람이 먼저다’를 ‘모두가 먼저다’라고 말하면서 화합의 양손을 내밀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