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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4·11 총선 이후 - 박근혜의 대권 再修와 한계는

혼자 뛰는 대선 街道… 관심 못 끌수도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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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수도권 맹주 못 벗어나면 대권 빨간등
⊙ 김종인은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구성 촉구, 박근혜는 고심
⊙ “대통령 될 사람은 원칙도 좋지만 적당한 융통성도 필요”(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 5월 대선후보 경선캠프 꾸릴 계획이나 규모는 최소화
지난 4·11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새누리당 내에서 박근혜 위원장의 대권 가도는 탄탄해졌다.
  4·11총선 이후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새누리당 박근혜(朴槿惠·이하 존칭 생략) 의원의 대권 고지 점령 여부다. ‘원우먼쇼’로, 빗발치는 정권심판론을 뚫고 코마(coma·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새누리당을 부활시켰으니 그 과실도 고스란히 박근혜가 따 먹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수락, 선거 기획과 연출을 주도한 것은 일생일대의 승부수였다. 패배할 경우 정몽준(鄭夢準) 전 한나라당 대표, 김문수(金文洙) 경기도지사 등 여권 ‘잠룡(潛龍)’과 친이(친이명박)계,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되는 야권의 파상공세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박근혜 체제’로 총선을 치르는 것에 대해 주저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총선 승부수 일단 성공
 
  비상대책위원의 일원이었던 김종인(金鍾仁) 전 대통령 경제수석의 이야기다.
 
  “2010년 6·2 지방선거부터, 2011년 4·27 재보선,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10·26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완패(完敗)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로는 박 전 대표의 대권 가도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10월 말 박 전 대표에게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로 전환해 총선을 치러야 한다. 총선에서 승리해야만 대권을 바라볼 수 있다’고 건의했습니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저의 제안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박 전 대표에게 더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당이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등으로 몰락 위기에 처한 탓이었다. 결국 박 전 대표는 결단을 내린 뒤 김 전 수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 전 수석은 “2011년 12월 15일 한나라당 의총에서 비대위를 구성키로 결정했는데 곧바로 박 전 대표에게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며 “그래서 비대위원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박 전 대표는 정강·정책 개정→공직추천위 구성→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 등 당 쇄신작업을 신속하게 추진하며 본격적인 총선 체제에 돌입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총선 완승에 따른 탄력으로 박근혜는 12월까지 웃을 수 있을까.
 
  이동욱 (李東昱) 전 한국갤럽 전문위원은 “선거는 전쟁과 마찬가지로 C4&I가 가장 중요한데 이번 총선 과정을 보면 박 전 대표는 C4&I를 완벽히 장악했다”며 “이런 식이면 대선에서도 충분히 승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C4&I는 Command &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and Intelligence로 즉 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정보를 뜻한다.
 
  그가 설명을 이어 갔다.
 
  “박 전 대표는 공천 잡음을 민주통합당보다 훨씬 빨리 수습했습니다. Command(커맨드)가 잘 발휘된 것이죠. 또 후보들과의 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도 원활했습니다. Communication이 잘되면 Control(컨트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고요. Computer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뜻하는데 박 위원장은 SNS에 ‘올인’하지 않았습니다. SNS에 역점을 두게 되면 작은 사안에 민감해져 대세를 읽지 못하게 되는 점을 잘 파악한 것이죠. 통합민주당의 패인(敗因)에는 SNS에 너무 의존한 점도 포함돼 있습니다. Intelligence는 정보인데 정보전에 대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평가가 쉽지 않지만, 통합민주당보다 앞섰기 때문에 선거에서 승리한 것 아닐까요.”
 
  박근혜에 비해 지지 확장성이 좋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란 예상을 담은 《보수집권 플랜B》의 저자 홍기표씨조차 “이번 총선을 통해 박근혜 대세론이 꺼질 것으로 봤는데 내 예상이 빗나갔다”며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의 모험이 성공했다. 중요한 장애물(총선 실패) 하나를 넘었다”고 평가했다. 홍씨는 2002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캠프에서 비서관을 지낸 야권(野圈) 인사다.
 
  핑크빛 전망이 점쳐지지만 그렇다고 박근혜가 청와대에 무혈(無血) 입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친박 핵심 관계자는 “박 전 대표도 이번 총선 승리가 대선 승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 승리로 인해 대권 가도에 탄력이 붙은 것은 사실이지만 청와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극복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그는 이를 어떻게 뛰어넘을까.
 
 
  “6년간 고정 지지율론 대통령 안돼”
 
신율 명지대 교수.
  취재차 만난 인사 대부분은 박 전 대표가 수도권에서 드러난 영향력의 한계를 먼저 극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과 수도권을 잡지 못하면 대선 승리를 낙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실제 대한민국 정치사(政治史)를 되짚어 보면 역대 정권은 서울 선거에서 패배하고 나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58년 5월 2일에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다수당인 자유당은 서울에서 1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이후 자유당은 1960년 7월 29일에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1971년 5월 25일에 치러진 제8대 국회의원 총선에서는 공화당이 서울에서 1석밖에 얻지 못했고 이는 곧 공화당 몰락의 출발점이었다. 그만큼 수도권 표심(票心)의 파괴력은 상당하다.
 
  이와 관련, 이원종(李源宗) 전 대통령 정무수석은 “새누리당이 수도권에서 패배한 것은 수도권 유권자들이 정권교체의 여지를 열어 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박 위원장은 50~60대 노인층의 지지를 받아 버티는 영남 맹주의 모습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신율(申律)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같은 견해를 내놨다. 신 교수와의 문답이다.
 
  ―박 전 대표가 수도권 민심을 잡지 못할 경우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라 했는데요.
 
  “맞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주당이 공중 폭파하지 않는 이상 박 전 대표는 대권을 잡을 수 없다고 봅니다.
 
  현재 총 유권자는 4018만명 정도인데 박 전 대표는 30%대의 지지율을 갖고 있습니다. 대선의 경우 투표율은 60%가 넘습니다. 수학적으로 계산해도 박근혜는 대선에서 많은 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본선에서 다자구도가 형성될 때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요.
 
  야권 통합후보가 나올 경우에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정치에서 바람은 선거를 2주 앞두고도 불어서 누군가를 당선시킬 수 있는데 그 바람이 박근혜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박 전 대표가 수도권에서의 영향력 한계 극복에 실패한다는 이야기인가요.
 
  “네.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정치인 중 지지율이 그대로인 사람은 박근혜 한 명뿐입니다. 안철수 원장이나 문재인 고문은 모두 지지율이 상승했습니다. 박근혜는 지지율이 6년간 고정돼 있습니다.”
 
  ―다른 전문가들은 다들 박근혜를 꼽는데요. 돌파 전략이 나올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을 알았다면 박근혜 위원장 쪽으로 스카우트(scout)됐겠지요.”
 
  박 전 대표가 수도권 민심을 되돌릴 방안은 전무(全無)하다는 신 교수의 분석과는 달리 박 전 대표의 자문역을 하는 핵심 원로 그룹의 한 멤버는 이렇게 말했다.
 
  “야권연대는 수도권 112곳 중 69곳을 챙겼고, 새누리당은 43곳만 건졌다. 완패다.
 
  하지만 득표율 차이는 크지 않다. 수도권 전체로는 야권연대(48.3%)가 새누리당(45.5%)을 3%포인트 미만 앞섰을 뿐이다. 서울만 보면 야권연대는 48.8%(225만3242표), 새누리당은 44.4%(204만8743표)였다.
 
  야당의 압승으로 나타난 선거 결과와 달리 실제 득표율 차이는 4%포인트 수준밖에 안된다. 박 전 대표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했던 유정복(劉正福) 의원은 “수도권과 2040세대 민심을 잡기 위해 이벤트 냄새가 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국회 차원에서 관철해 준다면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고 했다.
 
 
  섀도 캐비닛 구성도 한 방법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홍기표씨는 “복지콘텐츠를 확충하는 강한 액션을 보이는 등 본격적인 중도 장악을 위한 행보를 한다면 해 볼 만하다. 중도로 나가면 당내 다른 도전자들과의 차별성을 얻기 어려워 망설인 바 있는데 이제는 맘 놓고 중도 성향을 잡으려고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다 기존 보수 우파 측이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전 대표를 떠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보수 우파 쪽의 입지는 이미 박근혜 전 대표가 탄탄하게 다진 상태입니다. 당내 반발 세력도 없을 것이고, 보수층 이탈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김종인 전 수석은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을 공개해 국정 컬러를 밝힌다면 수도권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현 정부 국정 난맥의 가장 큰 원인은 인사(人事)”라며 “같은 색깔의 사람들을 모아 놓으면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진다. 물론 사람이 습관상 자신과 오래 일했던 말 잘 듣는 핵심 측근을 앉히는 게 가장 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대권을 생각하는 사람이면 그런 사람들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대통령 되고 난 뒤 인명사전 보고 인사하는 대통령은 성공할 수가 없다. 때문에 박 전 대표라도 인사팀을 미리 정해 섀도 캐비닛 구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표가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수도권 민심을 얻으려면 폭넓은 인사 후보군을 정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한 친박계 의원도 “개인적으로 박 전 대표가 향후 박근혜 정부 5년간 함께할 신망 있는 지도자를 국민에게 공개하면서 그들에게 외교부 재정부 법무부 국방부를 맡기겠다는 정도의 낮은 단계 섀도 캐비닛을 구성해 보는 것도 박근혜 정치의 신뢰성을 높이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내용은 건의서나 구두(口頭)로 박 전 대표에게 이미 여러 차례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칙과 신뢰’는 박근혜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다.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 준 것도 그가 쌓아 온 ‘원칙과 신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조적(敎條的)인 원칙 고수는 자칫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원칙에만 집착할 경우 융통성 발휘와 소통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원종 전 정무수석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박 전 대표는 융통성이 없다는 약점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의 말이다.
 
 
 
박근혜의 원칙과 고집 사이

 
이원종 전 정무수석비서관.
  “1992년 대통령 선거 때였습니다. 민자당 대통령 후보였던 YS(김영삼)는 ‘대통령이 되면 절대 쌀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보니 국익을 위해서는 쌀 수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쌀을 개방했지요. 국익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국민과의 약속을 깰 수밖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박 전 대표가 정치적 신뢰를 정치지도자의 최고 덕목으로 생각하는 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지도자가 되려면 융통성 있게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세종시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무조건 ‘국민과의 약속이니 원안대로 가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보다는 융통성을 발휘, 우선 수정안이 국민의 편의에 정녕 부합되는지 검토해 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면 지도자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YS는 1992년 대선 때 “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을 막겠다”고 공약한다. 표를 얻기 위해서였지 농업의 장래에 대한 비전은 없었다. 그러나 1993년 11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첫 발제 연설에 나선 그는 쌀 등 농산물을 포함한 ‘예외 없는 개방’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친박 핵심인 K 전 의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내뱉은 원칙도 수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세종시 원안 고수를 이유로 박근혜가 융통성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은 반대”라고 했다.
 
  ―왜 세종시 원안 고수와 융통성 문제를 연결하는 데 반대한다는 것이죠. 세종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박 전 대표는 고집불통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는데요.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수도 이전은 막겠다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돼 충청을 방문했어요. 분위기가 진짜 냉담했죠. 이 대통령이 아무리 세종시 원안대로 처리하겠다고 이야기해도 믿지 않는 거예요.
 
  민심이 흉흉하니까 MB 캠프에서 저희에게 연락이 왔어요. 박 대표가 나서서 충청권 민심 좀 돌려 달라고요. 그래서 박 전 대표가 충청권에 가서 이 대통령을 못 믿겠으면 나를 믿고 MB를 찍어 달라고 호소했죠. 그때야 사람들은 믿었고요. 박 전 대표가 MB가 끊은 어음에 배서를 한 셈입니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는 데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박 전 대표는 수정한다면 원안 플러스 알파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 전 대표가 생각하기에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수정안이 미흡했던 것이지요.”
 
 
  박근혜와 공주 이미지
 
새누리당 내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히던 정몽준 의원, 김문수 지사는 4·11총선 이후 입지가 좁아졌다.
  ‘공주’처럼 권위적이라는 점도 박근혜가 극복해야 할 약점 중 하나다. 박근혜를 옭아맨, 몸에 밴 권위주의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다 주변에 포진한 공무원 출신들의 과잉보호, 과잉충성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두 가지가 묘하게 접목돼 인(人)의 장막에 가려 신비화된 권위주의자 ‘박근혜 공주’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번 19대 총선 공천에서 낙천(落薦)한 친박계 중진의원은 사석에서 다소 충격적인 경험을 전했다.
 
  “낙천을 하고 지원유세를 하는 도중 20대 대학생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20대는 박 전 대표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서 물었죠.
 
  그런데 대답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박 근혜에 대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지만 문재인 안철수만큼의 역동성, 활동성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멍하게 있는데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하는 거예요. 이런 문제점을 박 전 대표에게 직언(直言)하는 분이 있느냐고요. 웃고 넘겼습니다.
 
  사실 친박 의원들은 이런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고 모두 인식하고 있긴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데,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상황에 대해 박근혜는 원로 자문그룹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개선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서민들이 박 대표는 구름 위의 공주님이라 우리하고는 다른 세상에 사는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소탈함과 친근함을 보강하면 권위적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워질 것 같다”는 원로들의 이야기에 요즘엔 박 전 대표가 귀를 기울이는 편이라는 것이다.
 
  원로 그룹의 한 멤버는 “예전에는 먼저 다가가서 악수하고 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좀 소극적이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먼저 농담도 하는 등 많이 고치려 한다. 물론 더 고쳐 나가야겠지만 그렇다고 몸뻬 입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회창(李會昌) 학습효과가 있는 만큼 귀족적이라는 이미지 대신 서민적이라는 이미지를 심는 노력은 하겠지만 ‘쇼’를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박근혜와 5월 전당대회에서 뽑힐 당 대표

 
  총선 승리는 박근혜에게 더욱 강한 당 장악력을 선사했다.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격이다. 하지만 독주(獨走)는 오히려 독배(毒杯)가 될 수 있다.
 
  4월 12일 만난 새누리당 전략기획국 관계자는 “본선 경쟁력을 생각하면 치열하게 경선하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으론 누가 나서도 박근혜 들러리 비슷해진다”며 “경선 없이 혼자 나서거나, 들러리 선거로 쉽게 (대선 후보로) 나서서는 정권 재창출이 안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혼자 뛰다 보면 땀을 흘리지만 넘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원종 전 수석도 “새누리당에서는 박근혜의 1인 체제가 계속되고, 민주통합당에서는 민주적 경선을 통해 모양새 있는 후보를 선출한다면 국민이 어떤 후보에 관심을 보이겠느냐. ‘어게인(again) 2002’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맞는 이야기로 보이는데, 현재의 여권에서는 박근혜의 대항마가 없다. 친이계 주자인 정몽준(鄭夢準)·이재오(李在五) 의원 등이 생환하고, 김문수 경기지사가 있지만, 이들이 ‘박근혜 당’에서 활동공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 152명의 당선자 중 친박계 인사가 80명을 웃돌기 때문이다. 40명가량인 중립 성향 당선자 상당수도 이제는 잠재적 친박계다. 한때 당을 장악했던 비(非)박계는 30여 명으로 축소됐다. 해 보나 마나 한 게임이다.
 
  정운찬(鄭雲燦) 전 총리와 김무성(金武星) 전 의원, 김태호(金台鎬) 의원이 다크호스로 꼽히지만, 정치인들의 평가는 냉혹하기만 하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운찬 전 총리는 신정아 스캔들이 다시 거론되기만 해도 추락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기는 하는데 국정의 중요사안에 대한 대안과 대책이 없더라. 사실 역사적으로 탁월한 학자가 훌륭한 정치인이 된 경우는 별로 없었다. 탁월한 사상가이자 정치학자인 공자도 현실정치에서 실패하지 않았느냐.”
 
  새누리당은 박 전 대표가 경선 없이 추대식으로 당 대선 후보가 될 경우를 대비, 어떤 식으로 박근혜의 비전을 적극 홍보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함께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5월 치러질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전당대회도 박근혜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당 안팎에선 신임 당 대표로 대전(중구)에서 당선된 6선의 강창희(姜昌熙) 당선자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대선에서 충청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고, 강 당선자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신임이 두텁다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그만한 대표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시대 인물, 그것도 친박 핵심이 당 대표가 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야 수도권 표심을 잡을 수 있다는 논리다.
 
  김종인 전 수석은 “박 전 대표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의 신선한 인물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면서 “6선의 홍사덕 의원이 종로에서 낙선한 사례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당이 사당화(私黨化)됐다는 비판이 일면 수도권 민심을 잡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정두언 의원 같은 친이계 인사나 김세연 의원과 같은 신선한 인물에게 맡기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와 2007년 경선캠프 멤버들
 
김재원 당선자.
  전통적으로 대선은 경험 적은 후보가 경험 많은 후보에게 승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동욱 전문위원의 말이다. “대표적으로 1963년 대선과 2002년 대선을 봐도 경험 적은 후보가 승리했다. 윤보선 후보와 박정희 대통령이 맞붙어 박 대통령이 승리했던 1963년의 경우 윤 후보는 두 번째 출마였고, 2002년의 경우는 두 번째 대선에 도전한 이회창 후보가 처음 출마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출마를 경험했던 후보들이 패배한 것은 인적 쇄신을 하지 않고 기존의 틀로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과거의 방식을 반복하면 질 수밖에 없다.”
 
  친박 핵심들은 2선으로 후퇴시키고 새로운 인물로 대선캠프를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칭기즈칸은 세계 각국을 정복하면서 여러 지역 출신 참모들을 골고루 쓴 덕분에 세계 최대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2007년 당내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대변인을 맡았던 김재원(金在原) 당선자도 비슷한 견해를 드러냈다.
 
  “현재 박 전 대표를 둘러싼 이른바 친박계 인물이나 인적 자산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크게 우호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과거 지향적 인물이거나, 박 전 대표를 맹종(盲從)하는 인물만 주위에 있다는 지적이 그런 유의 비판입니다.
 
  그 비판이 사실이든 아니든 또는 그것을 넘어 악의에 찬 모략이든 상관없습니다. 많은 국민이 그런 인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저는 박 전 대표가 국민에게 보다 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과감한 인적인 수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8대 총선 당시 친박 학살의 피해자로 공천에서 탈락한 뒤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재원 당선자는 19대 총선에서 부활했다.
 
홍사덕 의원.
  홍사덕(洪思德) 의원은 논란 자체를 차단하기 위해 대선 캠프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꾸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는 “박 전 대표에게 제대로 말한 사항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서 제도 정치권에 고개를 돌린 2040세대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그 연령층이 즐겨 사용하는 의사소통 방식, 예컨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이버 공간을 총괄하는 플랫폼(platform)을 독자적으로 구축, 박 전 대표가 직접 그들과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종전과 같은 방식의 대선캠프나 경선캠프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했다.
 
  박 전 대표가 4월 12일 “당내에서부터 계파니 당리당략이니 하면서 분열과 갈등으로 국민께 실망을 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한 만큼 현역 의원들은 캠프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친박 측은 5월 대선후보 경선캠프를 꾸릴 계획이나 규모는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박근혜와 4대 의혹
 
2007년 대선 당시의 박근혜 캠프. 올 12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친박 핵심들을 2선으로 후퇴시키고 젊고 참신한 인물들로 새 캠프를 꾸려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 측에서는 박 전 대표의 4가지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이는 고(故)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정수장학회 문제, 영남대 문제, 육영재단 문제다. 박 전 대표는 당시 의혹에 대해 모두 해명했다.
 
  김재원 당선자는 이렇게 말했다.
 
  “박 전 대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억측과 험담은 전혀 대세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박 전 대표는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통해 국민검증 청문까지 받은 바 있다. 그 당시 ‘저에게 딸이 있다면 DNA검사도 받겠다’는, 여성으로서는 치욕스런 말을 해야 할 정도로 자신의 모든 내면을 드러냈다.
 
  때문에 박 전 대표 개인에 대한 검증문제는 논란은 되겠지만 당락을 결정할 만한 중요한 쟁점이 되기 어렵다.”
 
  그는 “당시 제기된 4대 의혹이 박 전 대표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그러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으로 두 번의 대선에서 모두 패한 경험이 있어 안심하긴 이르다.
 
  실제 민주통합당 문재인(文在寅) 고문은 총선 기간 내내 정수장학회 문제를 비판했다. 2월 20일에는 부산일보를 찾아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 과거사조사위와 진실화해위가 강탈의 불법성을 인정했는데도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역사발전이 참으로 더디다”고 했다. 정수장학회는 부산 지역 최대 일간지 ‘부산일보’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문 당선자의 발언 4일 뒤인 2월 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재판장 염원섭)는 정수장학회(옛 5·16장학회)에 재산을 빼앗겼다며 김지태씨 장남인 김영구(74)씨 등 5명이 낸 주식반환청구 소송과 관련, “김지태(1982년 사망)씨가 1962년 정부 강압으로 문화방송 등의 주식을 5·16장학회에 증여한 것은 맞다. 하지만 김씨 스스로 의사결정도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증여는 무효가 아니다”며 패소 판결을 했다.
 
  박 전 대표 본인도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정수장학회 논란에 대해 “2005년 이사장직을 그만둬서 그 후로는 저와 장학회가 관련이 없다”며 “이것은 정수장학회에서 분명한 입장을 표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식으로 해명했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납득하고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동생 박지만씨가 구속된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과 가깝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했을 때도 박 전 대표는 “해명했으니 문제없다”는 식으로 대응해 비난을 자초했다. 자기 동생은 의혹에 대해 해명 또는 변명한 것을 다 진실이라고 믿는 ‘순진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각종 문제 제기에 대해 이런 식으로 뭉개고 넘어가는 수준이라면 의혹은 오히려 일파만파로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많다. 현재로선 박근혜의 이런 태도를 바로잡아 줄 측근이 보이지 않는다. 박 전 대표가 이런 측근을 싫어해 멀리하는지 아니면 주변 인물 중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는지 알 수 없지만, 네거티브 선거전에 대한 대응력은 박근혜로선 시급히 보강해야 할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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