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기지 내에서 해마다 폭행사건 발생.
그러나 쉬쉬하며 넘어가 문제되지 않았을 뿐”
‘원만하지 못한 성격’의 주방장에 대해 대원들이 교체 요구했으나 묵살돼. 대원들의 누적된 불만이 폭행사건으로 표출. 월동대마다 폭행사건 발생했으나 재발 방지 시스템 없어 감정충돌 되풀이
⊙ 총무가 술에 만취해 발로 주방장의 얼굴 걷어차는 등 무차별 폭행
⊙ 진모 기지대장 CCTV 화면 삭제 의혹, 폭행확인서 거절, 사직사유서 허위기재 종용 등 은폐 시도
⊙ 대원들 탄원: “월동대 전체의 감정 표출 대신한 것. 주방장은 처음부터 대원들과 갈등 많았다”
⊙ 폭행 재발방지 시스템은 全無
남극 세종과학기지 폭행 현장 동영상은 月刊朝鮮 인터넷 홈페이지(http://monthly.chosun.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쉬쉬하며 넘어가 문제되지 않았을 뿐”
‘원만하지 못한 성격’의 주방장에 대해 대원들이 교체 요구했으나 묵살돼. 대원들의 누적된 불만이 폭행사건으로 표출. 월동대마다 폭행사건 발생했으나 재발 방지 시스템 없어 감정충돌 되풀이
⊙ 총무가 술에 만취해 발로 주방장의 얼굴 걷어차는 등 무차별 폭행
⊙ 진모 기지대장 CCTV 화면 삭제 의혹, 폭행확인서 거절, 사직사유서 허위기재 종용 등 은폐 시도
⊙ 대원들 탄원: “월동대 전체의 감정 표출 대신한 것. 주방장은 처음부터 대원들과 갈등 많았다”
⊙ 폭행 재발방지 시스템은 全無
남극 세종과학기지 폭행 현장 동영상은 月刊朝鮮 인터넷 홈페이지(http://monthly.chosun.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CCTV 화면에 찍힌 박 총무의 폭행 장면. 박씨가 주방장 A씨를 밀쳐 쓰러뜨린 뒤 의자를 집어던지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A씨의 얼굴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
지난 7월 21일 밤 南極(남극)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 내에서 대원들 간에 야만적인 폭행사건이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날 밤 11시35분쯤 세종기지 주방장 A(38)씨가 기지 생활관 1층 식당에서 총무 박모(46)씨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 것.
그러나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이 삭제되는 등 세종기지 측이 사건을 은폐·조작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날 밤 벌어진 폭행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김모 대원은 진상 조사에서 “폭력행위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신체적 타격을 주는 폭행보다는 위협적인 행동 위주였다”고 증언했다.
A씨를 진료한 세종과학기지의 黃(황)모 공중보건의는 “A씨가 진찰 중 과장된 반응이나 가벼운 동작에도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였지만 신경학적 이상은 없었고, 외관상 및 신체검사상 부상이 심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황씨는 또 “폭행 장면을 목격한 대원에게 들어보니 총무가 술이 많이 취해서 주방장에게 손찌검을 조금 했고, 서로 승강이를 벌이는 중 주방장이 몇 번 넘어졌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진모(47) 기지대장은 김씨와 황씨 등의 증언을 토대로 세종기지의 상급기관인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당시 본인은 골프장에서 운동 중이어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생활동에 돌아와 보니 상황이 이미 발생한 후였다. 다음날 대원 전원 면담을 통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확인했다. 박 총무가 21일 밤 11시경부터 2층 통신실에서 1차로 조리대원과 폭력행위를 했고(주방장을 폭행했다는 뜻-편집자 주), 이어서 2층 식당에서 폭력행위를 했다. 조리대원의 증언으로는 박 총무가 이유 없이 자신에게 과도한 폭력과 욕설행위를 했다고 한다. 기지 의사는 조리대원을 진찰한 결과 ‘폭력에 의한 신체적 충격 정도는 경미하다’고 한다. 식당에서 폭력행위 현장을 유일하게 직접 목격한 김○○은 ‘폭력행위가 있었고 자신이 제지하려고 했으며, 직접적인 신체적 타격을 주는 폭행보다는 위협적인 행동 위주였다’고 증언했다.”
진 대장의 보고만 봐서는 그저 두 사람 간의 가벼운 몸싸움 정도로 여겨질 법하다.
대원들의 진술과 판이하게 다른 폭행현장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사건 당일 식당 내 CCTV 화면에는 박 총무가 A씨를 적나라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CCTV 화면의 시각은 한국시각으로 남극과 12시간 차이가 난다. A씨는 자신의 디지털 카메라로 CCTV에 녹화된 화면을 촬영했다. CCTV에 나타난 폭행장면은 다음과 같다.
박씨는 A씨를 밀쳐 쓰러뜨린 뒤 의자를 집어던지고, 도망치는 A씨를 쫓아가 주먹으로 때려 쓰러뜨리고 밟는다. 박씨는 이어 A씨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나와 쓰러뜨리고, CCTV 카메라의 사각지대인 기둥 뒤로 끌고가 넘어뜨린 뒤 짓밟는다.
식당 한쪽 구석에 있던 김모 대원이 박씨를 말리지만 박씨는 식당 집기를 잡히는 대로 A씨를 향해 던지고,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김씨를 업어치기로 메다꽂는다. 박씨는 이어 김씨를 부축하려고 다가온 A씨의 목을 손으로 내리치고, 이를 말리던 김씨도 밀어내며 위협한다.
박씨는 양주를 담는 얼음통을 들고 와 말리던 김씨를 밀치고 A씨의 머리를 내리친다. A씨가 쓰러지자 박씨는 발로 걷어찬 뒤 다시 얼음통을 A씨의 머리를 향해 내던진다. A씨가 바닥에 주저앉자 박씨는 한 번 발을 구른 뒤 A씨의 얼굴을 걷어찬다.
김씨가 박씨를 말리려 하지만, 박씨에게 질질 끌려다닐 뿐 속수무책이다. 급기야 박씨는 식당 한쪽 구석에 있는 소화기를 집어든다. 김씨가 박씨를 말리는 사이 A씨는 식당 밖으로 도망치고, 박씨는 웃통을 벗어 던진 채 A씨를 찾아 식당을 뛰쳐나간다.
A씨는 지난 7월 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폭행 현장 동영상을 첨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아, 이 글과 파일 잘 보관해 줘.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박○○ 총무와 관련된 거니까 극지연구소 얘길 믿지 말고, 이 글과 동영상을 모든 언론매체와 포털사이트에 터뜨려라. 나한테 뭔 일이 생기면 말이다. 난 하루라도 여기(남극기지-편집자 주)에 더 있고 싶지 않다. 여기 현지 사정이 9월이나 돼야 첫 비행기가 온단다. 그때까지 여기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신상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세종기지가 은폐하려고 했던 폭행사건을 세상에 고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A씨는 비행기 운항이 가능한 9월까지 두 달 가까이를 자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박 총무와 함께 남극 세종기지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남극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필자는 지난 7월 말 A씨의 친구를 통해 이 사건을 접했다. 관계기관을 통해 A씨가 안전하게 귀국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지만 날씨가 허락하지 않는 한 남극은 쉽게 오갈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남극의 여름인 11~2월 사이에나 비행기편이 있다고 했다. 비행기로도 한국에서 미국 LA와 칠레 산티아고를 경유해 칠레 남단 푼타아레나스까지 가서 다시 칠레 공군기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비행시간만 30여 시간에 이른다고 했다.
결국 인천에 있는 극지연구소를 통해 간접 취재에 돌입했다. 그런데 취재과정에서 언론이 남극기지 내의 폭행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A씨가 추가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A씨의 친구도 A씨가 남극에 머물고 있는 동안엔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1년 계약직이었던 A씨는 그의 바람대로 8개월 만에 계약해지가 이뤄져 9월 8일 세종기지를 출발, 12일 귀국했다.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연방 담배를 피워 물며 憤(분)을 삭이지 못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7월 21일 밤 11시쯤 세종기지 생활동 2층 통신실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만취한 박 총무가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똑바로 해 이 개XX야’라고 욕을 퍼부으면서 통신장비 등을 제 머리를 향해 집어던지는 거예요. 제가 피하자 제 머리를 잡고 수차례 주먹으로 머리를 때렸어요. 그러고는 통신실 집기를 저한테 마구 던지고 집기를 부쉈어요. 제가 밖으로 도망가면서 문을 닫자 저를 죽여버린다고 했어요. 제가 1층 식당으로 내려가서 숨을 돌린 후 생각해 보니 이렇게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올라가서 총무한테 얘기 좀 하자고 했더니 욕을 하면서 제가 식당으로 도망가니까 식당까지 쫓아와서 마구 폭행한 거죠.”
통신실 상황에 대한 다른 기지 대원의 증언은 조금 다르다. 정모 대원은 극지연구소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주방장이 통신실에 올라와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마침 총무님이 통신실에 올라와서 (술에 취하고, 약간 화가 나신 듯 보였음) ‘늦은 시간에 모여서 뭐하느냐. 당직자 방해하지 말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으나 주방장이 컴퓨터 검색에 집중하고 있어 총무님 얘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 주방장의 반응이 없자 총무님이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욕설을 하면서 주변에 사무용품들을 주방장에게 던지고 (주방장이 맞지는 않았음) 손을 들어 폭력을 하려는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새벽 3시경 주방장을 찾는 박 총무님의 방송을 들었다.”
술을 많이 먹어 이성 상실
박씨가 한 말을 A씨가 듣지 못했고, 위협적인 행동을 했지만 A씨가 맞지는 않았다는 정씨의 진술은 A씨의 주장과 배치된다. 이에 대해 A씨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죠. 거기(남극기지)서 누가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CCTV를 보니까 궁금한 게 있던데, 왜 도망가지 않고 그냥 맞고만 있었나요.
“박 총무란 사람은 사과를 한 손으로 부숴버리는 사람이에요. 완력으로 당할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못 말려요. 평소에도 서진룸살롱 애들(조직폭력배)과도 잘 알고, 부산 칠성파하고도 친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막 때리면서 ‘한국 가서 고소해라’라고 욕하더라고요. 말리던 김○○ 형님을 유도로 메다꽂는 거 못 보셨어요?”
―화면에서 사라져서 어디로 간 겁니까.
“박 총무가 나중엔 소화기를 들어 찍으려 하는데 그걸로 맞으면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주방 쪽으로 도망가는데 주방까지 쫓아오면서 ‘칼로 찔러 죽여버린다’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몰래 창고에 숨어서 추위에 떨면서 새벽 4시까지 숨어 있었어요.”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요.
“아무도 없었어요. 창고에 숨어 있을 때 대장님이 와서 박 총무와 얘기하는 걸 봤어요. 그런데 대장님이 박 총무를 막지 못하더라고요. 나중에 대장님께 왜 막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박 총무가 술을 많이 먹고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대장한테까지 행패를 부리면 도저히 수습이 안되는 거다. 문제가 더 커지니까 막지 않았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는 박씨가 새벽 3시에 방송을 틀어놓고 스피커에 대고 “야, 주방장! 내가 30분 여유 준다. 빨리 내 앞으로 와라, 안 그러면 너 죽여버린다”고 했다고 전했다. 대원들 역시 진술서에 박씨가 스피커로 방송하는 것을 들었다고 적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창고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숨어 있다가 새벽 4시가 넘어서 조용해져서 밖으로 나왔죠. 머리 가운데는 퉁퉁 부어 있고, 온몸이 쑤셨죠. 그 상태로는 아침밥을 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미리 아침밥을 하고는 회의시간에 못 나갈지도 몰라서 다른 대원한테 회의시간 전에 깨워달라고 부탁하고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려니까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대원에게 회의에 참석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조금 후에 박 총무가 제 방에 씩씩대며 들어오더니 ‘안 일어나!’라고 욕을 하더라고요. 제가 아파서 못 일어나겠으니 손을 잡아달라고 했더니 제 방에 있던 고무망치를 휘두르기 시작했어요. 머리를 안 맞으려고 왼손으로 막자 왼손을 찍더군요. 억지로 일어나 벽을 의지해서 내려오다가 대장님을 만났더니, ‘박 총무를 피해 있으라’고 하시더군요.”
20차 월동대 때도 폭행 사건 발생
공중보건의가 A씨에게 써준 소견서에는 정수리와 왼손 손등에 2×2㎝ 크기의 새로 생긴 멍이 관찰된다고 쓰여 있다. 공중보건의가 찍은 사진에는 그의 머리에 피가 맺힌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는 “세종기지에서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귀국 조치시킨다고 한 사람이 바로 박 총무인데 정작 본인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그는 해양연구원에서 20여 년 가까이 일해 와서 무서운 게 없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박씨는 해양연구원 초창기 시절부터 시설 부문 일을 해왔다고 한다.
A씨는 남극 세종기지 내에서의 또 다른 폭행 사례를 들려줬다.
“2년 전에 박 총무와 20차 월동대 생활을 같이 한 김○○ 대원 말로는 박 총무가 술에 취해 자기를 폭행했다는 거예요. 그 형님이 제게 ‘주방장이 맘만 먹으면 (한국에) 들어가서 형사 건으로 고소도 할 수 있어. 나도 그 생각까지 하고, 다 때려치우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세종기지에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었나 봅니다.”
박 총무는 2년 전 20차 월동연구대 때도 총무를 맡았다. 극지연구소 강천윤 기지지원팀장은 “지난해 세종기지에 갔을 때 대원들로부터 박 총무가 20차 월동대 때 폭행을 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며 “보고된 적은 없고, 기지 자체적으로 주의 조치했던 듯하다”고 말했다. 다시 A씨와의 대화.
―김○○ 대원 말고 또 다른 폭행 사례가 있나요.
“대장님이 이번 일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갈 것을 종용하면서 ‘이것도 연구소에서는 매 차대마다 한 번씩 있었던 폭행사건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또 ‘20여 년 동안 대원들끼리 비일비재했던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는 세종기지나 극지연구소가 폭행사실을 인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기보다 숨기기에 급급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사건 다음날 대장님께 CCTV를 보셨냐고 하니까 안 보셨대요. 그 다음날도 안 보셨다고 하고. CCTV 화면을 제게 달라고 해도 ‘뭐에 쓰려고 하느냐’며 연구소에 물어봐야 한다는 거예요. CCTV 화면을 줄 수 없다면 폭행 사건이 있었단 사실 확인서만이라도 써달라고 했더니 그마저 차일피일 미루는 거예요. 그러다 27일엔 CCTV가 지워져 보지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기지에서 CCTV 화면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은 대장님밖에 없습니다.”
그는 진 대장과의 대화 내용을 녹취했다. 그는 “세종기지와 극지연구소 사람들이 똘똘 뭉쳐 내 말이 거짓이라고 한다면 내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며 “동영상과 녹취록이 없었다면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진 대장은 7월 27일 “CCTV는 모니터링이 목적이기 때문에 3일이면 지워진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진 대장은 A씨의 동영상 요구에 “만약 주방장이 동영상을 외부로 공개하면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 극지연구소, 대한민국 전체에 데미지(충격)가 있다”며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이런 사건이 재발하면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세종기지의 CCTV의 녹화 기록은 대략 4주 정도 보존되며, 녹화 기록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은 기지대장에게 있다. 따라서 녹화 기록 보존이 3일간에 불과하다는 진 대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A씨는 앞서 진 대장이 동영상 제공을 거절했을 때 그 대안으로 폭행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서로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진 대장은 그 역시 거절했다.
진 대장은 CCTV 동영상이 3일 만에 지워졌다고 한 뒤 폭행 사실 확인서를 써달라는 그의 요구에 대해 “목격한 사람들한테 (직접) 받아. 왜 대장이 해야 돼”라며 묵살한다. 그가 “폭행사건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정해 달라는데 그것도 어려우냐”고 묻자 진 대장은 “어려워”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어떻게 이용하려는데? 증거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가 뭔데?”라며 되묻는다.
8월 중순쯤 진 대장은 A씨가 李洪錦(이홍금) 극지연구소장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에 대해 “소장이 볼 때 이건 엽기적인 사건이다. 내가 해결하기가 더 복잡해졌어”라고 말한다. 또 “재수 없어서 개한테 한 번 물린 거라든지, 이런 식으로 처리하고 ‘8개월 동안 남극에 있어서 좋았다. 가능한 한 빨리 떠나겠다’ 이러면 내가 (연구소 측과 협상할 수 있는) 카드가 되지”라고 말한다.
진 대장은 사직사유서도 허위로 쓸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A씨의 말이다.
“진 대장이 제게 사직사유서 샘플을 보여주더군요.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라고 쓰라는데, 실제로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도저히 그렇겐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미 돌아가신 할머님이 위독하시다고 쓰고 나왔어요.”
하루라도 빨리 세종기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A씨에게 진 대장은 “당신이 빨리 나가려면, 당신도 협조해야 돼”라고 말한다. A씨가 “나가서 입 다물고 있겠다는 각서를 쓰란 말이냐”고 묻자 진 대장은 “각서든 뭐든”이라고 말한다.
대원들 박 총무 선처 호소
이번 세종기지 22차 월동연구대는 대장을 포함해 모두 17명이다. 대장만 극지연구소 직원이고, A씨와 박 총무를 포함한 16명은 모두 1년 계약직이다. A씨는 본인이 원해서 계약이 해지됐고, 박씨는 극지연구소 인사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계약해지됐다. 또 진 대장은 처벌 수위 중 가장 낮은 ‘주의’ 조치를 받았다.
극지연구소 강천윤 팀장은 “고립된 지역에 있는 진 대장에게 중징계를 내릴 경우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몰라 일단 ‘주의’ 조치했다”며 “진 대장이 내년에 귀국하면 다시 중징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극지연구소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한 박씨는 아직까지 세종기지에 머물러 있다. 지난 9월 8일 A씨가 기지를 빠져나올 때 함께 나오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극지연구소는 다음 비행기 편이 확보되는 대로 바로 박씨를 귀국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박씨의 계약해지에 대해 지난 9월 7일 A씨와 박씨를 제외한 기지 대원 15명 전원이 박씨의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극지연구소에 제출했다. 대원들은 탄원서에서 박씨를 이렇게 옹호한다.
“이 사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평소 자상하고, 책임감이 투철했던 총무님이 이런 사건을 일으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이번 일이 총무님의 개인적인 감정 표출이라기보다는 오랜 기간 기지가 안고 있었던 문제에 대한 저희 월동대 전체의 감정 표출을 대신한 것이 아니었나 하고 반추해 본다. 평소 총무님은 강한 책임감과 넓은 이해심으로 대원들의 맏형 역할을 했다.”
반면 주방장인 A씨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가했다.
“월동 초기에 교체돼 들어온 새 주방장은 처음부터 대원들과 갈등이 많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식단뿐만 아니라 어울리기 힘든 행동과 성격은 저희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부분 적응하기 힘들었다. 저희는 주방장과의 잦은 갈등에 의해 쌓인 불만을 대부분 여과 없이 총무님께 말했다. 총무님도 계속 쌓이는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했나 보다.”
진 대장은 박씨를 이렇게 평가했다.
“20차 월동대의 총무를 역임한 바 있고, 선발과정에서 20차 월동대장을 역임했던 이상훈 박사를 위시한 여러분에게서 좋은 평가로 추천을 받았다. 기지의 어머니 역할을 잘해왔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은 조리대원과 대원들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중재자로 계속 이 문제의 가운데 서있던 총무가 음주로 인해서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한 번에 분출된 것으로 이해한다. 선처해 주기 바란다.”
주방장 A씨에 대한 불만 누적
반면 A씨에 대해 진 대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대부분 시간을 찡그린 얼굴로 상소리 비슷한 푸념과 한숨으로 옆에서 주방도우미를 하는 대원들을 무척 불편하게 했다. 성격은 원만하지 못하고, 본인의 스트레스를 잘 해결하지 못하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듯했다. 초기부터 대원들과의 잦은 마찰이 계속됐다.
대원들과의 마찰은 힘든 공동작업이 계속됐던 3월과 4월달에 들어서면서 더욱 우려할 만한 상황으로 진행됐다. 많은 대원이 주방장의 음식과 성격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 차례에 걸쳐 이를 대장에게 호소하거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4월 하순에는 결국 주방장에게 기지 차원에서 엄중한 경고를 주었다. 주방장은 갑작스런 남극행 결정에 따른 개인적인 여러 가지(사업상·인간관계상) 피해들과 월동대에 대한 준비 부족, 유대감 부족 등을 토로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대원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라고 했다. 음식 조리능력은 중간 수준이며, 대원 화합도는 매우 낮으며, 상황 개선을 위한 본인의 노력은 부족하지만 한 끼의 식사준비도 빼지 않을 정도로 업무 성실도는 높다고 평가한다.”
주방장 A씨와 세종기지 대원들은 올 초부터 갈등을 겪어왔다고 한다. 제22차 월동연구대 대원들이 지난해 6월 선발돼 8월 1주간 해양경찰청 등에서 극지적응훈련을 받는 등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데 비해 A씨는 올해 초 갑작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때문에 A씨는 다른 대원들과 종종 마찰을 빚었다.
A씨는 “前(전) 주방장이 절도 사건으로 귀국 조치를 당하는 바람에 올 1월 11일 세종기지에서 연락을 받고 1월 16일에 남극행 비행기를 탔다”며 “3년 연속 지원했다가 실패한 세종기지였기에 너무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선배와 동업으로 일본식 酒店(주점)사업을 하던 그는 1월 19일 세종기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전임 주방장으로부터 아무런 인수인계를 받지 못해 초기 적응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대원들은 2월 중순 그와 함께 월동을 할 수 있을지 각자 의견을 적어 기지대장에게 전달했다. 대부분 그가 만드는 음식과 그의 성격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음식에 대한 불만으로는 메뉴가 단조롭고, 음식 궁합이 맞지 않으며, 위생이 불결하다는 것이었다. 대원들은 그의 성격이 급해 화를 잘 내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남을 배려하는 생각이 부족해 함께 지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대원들, ‘A씨 교체’ 요구했으나 묵살돼
불과 한 달이 채 안되는 기간을 함께 지내면서 일부 대원들은 그와의 동거가 어렵다고 판단, 冬季(동계)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조리대원 교체 등 특단의 대책을 기지대장에게 요구했다.
급기야 4월에는 대원들이 투표를 벌여 투표 참가자 12명 전원이 주방장 교체에 동의해 진 대장에게 탄원서를 전달했다. A씨는 결국 남극 세종기지 내 인사소위원회에 회부됐지만 “대원들의 불만을 인정할 수 없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구하라”며 반발했다. 결국 그는 기지 차원의 경고 조치를 받았지만,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다.
극지연구소 강천윤 팀장은 “메신저 등을 통해 대원들이 주방장에 대한 불만이 많은 건 알았지만 세종기지 차원의 교체 요구는 없었다”며 “기지대장이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대원들을 잘 설득해서 끝까지 잘 이끌어 가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는 2013년까지 남극에 세종 제2기지를 건설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이번 폭행 사건 등과 관련해서는 방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홍금 한국해양연구소 극지연구소장은 “제17차대 때 CCTV를 설치했고, 다음 23차대부터 연구소 정직원을 총무로 파견하기로 했다. 월동대원 선발 시 인성검사를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이번 폭행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일본이나 외국 기지처럼 미리 월동대원을 선발해서 6개월 이상 같이 준비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죠. A씨 같은 경우 미리 생활하면서 인성 파악을 했다면 보내지 않았겠죠. 보내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보내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진 대장은 잘해 보자고 얘기했는데 A 대원이 동의하지 않은 거죠. 지금까지 정황으로 봐선 잘해 보고자 해서 봄부터 너무 끌었는데, 연구소에서 합당치 않은 A씨를 급히 선발해서 보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대장한테 다 지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죠.”
A씨는 끝으로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너무 분해서 인터넷에 동영상을 뿌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나라 망신이더라고요. 한편 이런 폭행 문제가 지금까지 반복돼 왔다는 사실을 대장을 통해 들었어요. 제가 침묵하면 이런 야만적인 폭행이 반복될 것 아닙니까. 침묵하는 게 정말 나라를 위하는 일은 아니지 않으냐,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차원에서 언론에 이렇게 나서게 된 겁니다. 아직 부모님께 남극에서 돌아왔다는 말도 못 드렸어요. 편찮으신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실 게 걱정이네요.”⊙
[인터뷰] 李洪錦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장
“월동대원 선발時 人性검사 강화”
―박 총무가 20차 월동대 시절에도 폭행한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폭행은 누가 맞아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가 됐을 때 폭행사건이 되는 거죠. 사무실에서 회식하다가도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야, 내가 때려서 미안하다’ 이렇게 서로 화해하고 넘어가기도 하는 걸 일일이 폭행사건이라고 하는 건 아니죠.”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폭행사건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서로 쌍방 과실이 되는 거죠.”
―세종기지처럼 고립된, 특수상황에서 일반적 합의가 가능할까요.
“합의가 가능하거나 그럴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던 거고요. 만약 누가 한 대 쥐어박았다, 이런 걸 다 폭행사건이라고 얘기하면 한국사회는 어떻게 됩니까.”
―20차대 때 폭행사건도 화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폭행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진 대장 편을 들었으면 20년 만에 처음으로 인사위 열어서 처리하라고 했겠습니까.”
―남극기지 내의 폭행사태 재발방지책은 무엇입니까.
“폭행사건 등 안전 문제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17차대 때 CCTV를 설치했습니다.”
―CCTV를 설치했어도 폭행사건의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화면을 확보하지 않으셨잖습니까. 진 대장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일부러 지운 것 아닙니까.
“지운 게 아니라 저희도 분명히 요구했어요. CCTV 건에 대해서는 경위를 조사해서, 진 대장이 복귀한 후에 처리할 겁니다.”
―CCTV 외에 다른 방지대책은 무엇입니까.
“지도력 강화를 위해 교육을 강화하고, 총무를 23차대 때부터 연구소 정직원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계약직의 경우 계약해지가 되면 총무 역할도 끝이지만, 정직원인 경우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에 연구소 인력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또 월동대원 교육 시 인간관계 교육과 규정교육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월동대원 선발 시에 人性(인성)검사를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이 삭제되는 등 세종기지 측이 사건을 은폐·조작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날 밤 벌어진 폭행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김모 대원은 진상 조사에서 “폭력행위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신체적 타격을 주는 폭행보다는 위협적인 행동 위주였다”고 증언했다.
A씨를 진료한 세종과학기지의 黃(황)모 공중보건의는 “A씨가 진찰 중 과장된 반응이나 가벼운 동작에도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였지만 신경학적 이상은 없었고, 외관상 및 신체검사상 부상이 심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 황씨는 또 “폭행 장면을 목격한 대원에게 들어보니 총무가 술이 많이 취해서 주방장에게 손찌검을 조금 했고, 서로 승강이를 벌이는 중 주방장이 몇 번 넘어졌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진모(47) 기지대장은 김씨와 황씨 등의 증언을 토대로 세종기지의 상급기관인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당시 본인은 골프장에서 운동 중이어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생활동에 돌아와 보니 상황이 이미 발생한 후였다. 다음날 대원 전원 면담을 통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확인했다. 박 총무가 21일 밤 11시경부터 2층 통신실에서 1차로 조리대원과 폭력행위를 했고(주방장을 폭행했다는 뜻-편집자 주), 이어서 2층 식당에서 폭력행위를 했다. 조리대원의 증언으로는 박 총무가 이유 없이 자신에게 과도한 폭력과 욕설행위를 했다고 한다. 기지 의사는 조리대원을 진찰한 결과 ‘폭력에 의한 신체적 충격 정도는 경미하다’고 한다. 식당에서 폭력행위 현장을 유일하게 직접 목격한 김○○은 ‘폭력행위가 있었고 자신이 제지하려고 했으며, 직접적인 신체적 타격을 주는 폭행보다는 위협적인 행동 위주였다’고 증언했다.”
진 대장의 보고만 봐서는 그저 두 사람 간의 가벼운 몸싸움 정도로 여겨질 법하다.
대원들의 진술과 판이하게 다른 폭행현장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사건 당일 식당 내 CCTV 화면에는 박 총무가 A씨를 적나라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CCTV 화면의 시각은 한국시각으로 남극과 12시간 차이가 난다. A씨는 자신의 디지털 카메라로 CCTV에 녹화된 화면을 촬영했다. CCTV에 나타난 폭행장면은 다음과 같다.
박씨는 A씨를 밀쳐 쓰러뜨린 뒤 의자를 집어던지고, 도망치는 A씨를 쫓아가 주먹으로 때려 쓰러뜨리고 밟는다. 박씨는 이어 A씨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나와 쓰러뜨리고, CCTV 카메라의 사각지대인 기둥 뒤로 끌고가 넘어뜨린 뒤 짓밟는다.
식당 한쪽 구석에 있던 김모 대원이 박씨를 말리지만 박씨는 식당 집기를 잡히는 대로 A씨를 향해 던지고,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김씨를 업어치기로 메다꽂는다. 박씨는 이어 김씨를 부축하려고 다가온 A씨의 목을 손으로 내리치고, 이를 말리던 김씨도 밀어내며 위협한다.
박씨는 양주를 담는 얼음통을 들고 와 말리던 김씨를 밀치고 A씨의 머리를 내리친다. A씨가 쓰러지자 박씨는 발로 걷어찬 뒤 다시 얼음통을 A씨의 머리를 향해 내던진다. A씨가 바닥에 주저앉자 박씨는 한 번 발을 구른 뒤 A씨의 얼굴을 걷어찬다.
김씨가 박씨를 말리려 하지만, 박씨에게 질질 끌려다닐 뿐 속수무책이다. 급기야 박씨는 식당 한쪽 구석에 있는 소화기를 집어든다. 김씨가 박씨를 말리는 사이 A씨는 식당 밖으로 도망치고, 박씨는 웃통을 벗어 던진 채 A씨를 찾아 식당을 뛰쳐나간다.
A씨는 지난 7월 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폭행 현장 동영상을 첨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아, 이 글과 파일 잘 보관해 줘.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박○○ 총무와 관련된 거니까 극지연구소 얘길 믿지 말고, 이 글과 동영상을 모든 언론매체와 포털사이트에 터뜨려라. 나한테 뭔 일이 생기면 말이다. 난 하루라도 여기(남극기지-편집자 주)에 더 있고 싶지 않다. 여기 현지 사정이 9월이나 돼야 첫 비행기가 온단다. 그때까지 여기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신상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세종기지가 은폐하려고 했던 폭행사건을 세상에 고발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A씨는 비행기 운항이 가능한 9월까지 두 달 가까이를 자신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박 총무와 함께 남극 세종기지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남극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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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 킹 조지섬에 위치한 세종과학기지. |
결국 인천에 있는 극지연구소를 통해 간접 취재에 돌입했다. 그런데 취재과정에서 언론이 남극기지 내의 폭행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A씨가 추가로 피해를 입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A씨의 친구도 A씨가 남극에 머물고 있는 동안엔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1년 계약직이었던 A씨는 그의 바람대로 8개월 만에 계약해지가 이뤄져 9월 8일 세종기지를 출발, 12일 귀국했다.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연방 담배를 피워 물며 憤(분)을 삭이지 못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7월 21일 밤 11시쯤 세종기지 생활동 2층 통신실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만취한 박 총무가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똑바로 해 이 개XX야’라고 욕을 퍼부으면서 통신장비 등을 제 머리를 향해 집어던지는 거예요. 제가 피하자 제 머리를 잡고 수차례 주먹으로 머리를 때렸어요. 그러고는 통신실 집기를 저한테 마구 던지고 집기를 부쉈어요. 제가 밖으로 도망가면서 문을 닫자 저를 죽여버린다고 했어요. 제가 1층 식당으로 내려가서 숨을 돌린 후 생각해 보니 이렇게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올라가서 총무한테 얘기 좀 하자고 했더니 욕을 하면서 제가 식당으로 도망가니까 식당까지 쫓아와서 마구 폭행한 거죠.”
통신실 상황에 대한 다른 기지 대원의 증언은 조금 다르다. 정모 대원은 극지연구소에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주방장이 통신실에 올라와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마침 총무님이 통신실에 올라와서 (술에 취하고, 약간 화가 나신 듯 보였음) ‘늦은 시간에 모여서 뭐하느냐. 당직자 방해하지 말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으나 주방장이 컴퓨터 검색에 집중하고 있어 총무님 얘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 주방장의 반응이 없자 총무님이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욕설을 하면서 주변에 사무용품들을 주방장에게 던지고 (주방장이 맞지는 않았음) 손을 들어 폭력을 하려는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새벽 3시경 주방장을 찾는 박 총무님의 방송을 들었다.”
술을 많이 먹어 이성 상실
박씨가 한 말을 A씨가 듣지 못했고, 위협적인 행동을 했지만 A씨가 맞지는 않았다는 정씨의 진술은 A씨의 주장과 배치된다. 이에 대해 A씨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죠. 거기(남극기지)서 누가 다른 말을 할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CCTV를 보니까 궁금한 게 있던데, 왜 도망가지 않고 그냥 맞고만 있었나요.
“박 총무란 사람은 사과를 한 손으로 부숴버리는 사람이에요. 완력으로 당할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못 말려요. 평소에도 서진룸살롱 애들(조직폭력배)과도 잘 알고, 부산 칠성파하고도 친하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막 때리면서 ‘한국 가서 고소해라’라고 욕하더라고요. 말리던 김○○ 형님을 유도로 메다꽂는 거 못 보셨어요?”
―화면에서 사라져서 어디로 간 겁니까.
“박 총무가 나중엔 소화기를 들어 찍으려 하는데 그걸로 맞으면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주방 쪽으로 도망가는데 주방까지 쫓아오면서 ‘칼로 찔러 죽여버린다’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몰래 창고에 숨어서 추위에 떨면서 새벽 4시까지 숨어 있었어요.”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요.
“아무도 없었어요. 창고에 숨어 있을 때 대장님이 와서 박 총무와 얘기하는 걸 봤어요. 그런데 대장님이 박 총무를 막지 못하더라고요. 나중에 대장님께 왜 막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박 총무가 술을 많이 먹고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대장한테까지 행패를 부리면 도저히 수습이 안되는 거다. 문제가 더 커지니까 막지 않았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는 박씨가 새벽 3시에 방송을 틀어놓고 스피커에 대고 “야, 주방장! 내가 30분 여유 준다. 빨리 내 앞으로 와라, 안 그러면 너 죽여버린다”고 했다고 전했다. 대원들 역시 진술서에 박씨가 스피커로 방송하는 것을 들었다고 적었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창고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숨어 있다가 새벽 4시가 넘어서 조용해져서 밖으로 나왔죠. 머리 가운데는 퉁퉁 부어 있고, 온몸이 쑤셨죠. 그 상태로는 아침밥을 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미리 아침밥을 하고는 회의시간에 못 나갈지도 몰라서 다른 대원한테 회의시간 전에 깨워달라고 부탁하고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려니까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대원에게 회의에 참석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조금 후에 박 총무가 제 방에 씩씩대며 들어오더니 ‘안 일어나!’라고 욕을 하더라고요. 제가 아파서 못 일어나겠으니 손을 잡아달라고 했더니 제 방에 있던 고무망치를 휘두르기 시작했어요. 머리를 안 맞으려고 왼손으로 막자 왼손을 찍더군요. 억지로 일어나 벽을 의지해서 내려오다가 대장님을 만났더니, ‘박 총무를 피해 있으라’고 하시더군요.”
20차 월동대 때도 폭행 사건 발생
공중보건의가 A씨에게 써준 소견서에는 정수리와 왼손 손등에 2×2㎝ 크기의 새로 생긴 멍이 관찰된다고 쓰여 있다. 공중보건의가 찍은 사진에는 그의 머리에 피가 맺힌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는 “세종기지에서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귀국 조치시킨다고 한 사람이 바로 박 총무인데 정작 본인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그는 해양연구원에서 20여 년 가까이 일해 와서 무서운 게 없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박씨는 해양연구원 초창기 시절부터 시설 부문 일을 해왔다고 한다.
A씨는 남극 세종기지 내에서의 또 다른 폭행 사례를 들려줬다.
“2년 전에 박 총무와 20차 월동대 생활을 같이 한 김○○ 대원 말로는 박 총무가 술에 취해 자기를 폭행했다는 거예요. 그 형님이 제게 ‘주방장이 맘만 먹으면 (한국에) 들어가서 형사 건으로 고소도 할 수 있어. 나도 그 생각까지 하고, 다 때려치우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세종기지에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었나 봅니다.”
박 총무는 2년 전 20차 월동연구대 때도 총무를 맡았다. 극지연구소 강천윤 기지지원팀장은 “지난해 세종기지에 갔을 때 대원들로부터 박 총무가 20차 월동대 때 폭행을 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며 “보고된 적은 없고, 기지 자체적으로 주의 조치했던 듯하다”고 말했다. 다시 A씨와의 대화.
―김○○ 대원 말고 또 다른 폭행 사례가 있나요.
“대장님이 이번 일을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갈 것을 종용하면서 ‘이것도 연구소에서는 매 차대마다 한 번씩 있었던 폭행사건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또 ‘20여 년 동안 대원들끼리 비일비재했던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는 세종기지나 극지연구소가 폭행사실을 인지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기보다 숨기기에 급급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사건 다음날 대장님께 CCTV를 보셨냐고 하니까 안 보셨대요. 그 다음날도 안 보셨다고 하고. CCTV 화면을 제게 달라고 해도 ‘뭐에 쓰려고 하느냐’며 연구소에 물어봐야 한다는 거예요. CCTV 화면을 줄 수 없다면 폭행 사건이 있었단 사실 확인서만이라도 써달라고 했더니 그마저 차일피일 미루는 거예요. 그러다 27일엔 CCTV가 지워져 보지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기지에서 CCTV 화면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은 대장님밖에 없습니다.”
그는 진 대장과의 대화 내용을 녹취했다. 그는 “세종기지와 극지연구소 사람들이 똘똘 뭉쳐 내 말이 거짓이라고 한다면 내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며 “동영상과 녹취록이 없었다면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진 대장은 7월 27일 “CCTV는 모니터링이 목적이기 때문에 3일이면 지워진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진 대장은 A씨의 동영상 요구에 “만약 주방장이 동영상을 외부로 공개하면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조직, 극지연구소, 대한민국 전체에 데미지(충격)가 있다”며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이런 사건이 재발하면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세종기지의 CCTV의 녹화 기록은 대략 4주 정도 보존되며, 녹화 기록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은 기지대장에게 있다. 따라서 녹화 기록 보존이 3일간에 불과하다는 진 대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A씨는 앞서 진 대장이 동영상 제공을 거절했을 때 그 대안으로 폭행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서로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진 대장은 그 역시 거절했다.
진 대장은 CCTV 동영상이 3일 만에 지워졌다고 한 뒤 폭행 사실 확인서를 써달라는 그의 요구에 대해 “목격한 사람들한테 (직접) 받아. 왜 대장이 해야 돼”라며 묵살한다. 그가 “폭행사건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정해 달라는데 그것도 어려우냐”고 묻자 진 대장은 “어려워”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어떻게 이용하려는데? 증거를 갖고 싶어하는 이유가 뭔데?”라며 되묻는다.
8월 중순쯤 진 대장은 A씨가 李洪錦(이홍금) 극지연구소장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에 대해 “소장이 볼 때 이건 엽기적인 사건이다. 내가 해결하기가 더 복잡해졌어”라고 말한다. 또 “재수 없어서 개한테 한 번 물린 거라든지, 이런 식으로 처리하고 ‘8개월 동안 남극에 있어서 좋았다. 가능한 한 빨리 떠나겠다’ 이러면 내가 (연구소 측과 협상할 수 있는) 카드가 되지”라고 말한다.
진 대장은 사직사유서도 허위로 쓸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A씨의 말이다.
“진 대장이 제게 사직사유서 샘플을 보여주더군요.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라고 쓰라는데, 실제로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도저히 그렇겐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미 돌아가신 할머님이 위독하시다고 쓰고 나왔어요.”
하루라도 빨리 세종기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A씨에게 진 대장은 “당신이 빨리 나가려면, 당신도 협조해야 돼”라고 말한다. A씨가 “나가서 입 다물고 있겠다는 각서를 쓰란 말이냐”고 묻자 진 대장은 “각서든 뭐든”이라고 말한다.
대원들 박 총무 선처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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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차 월동연구대원들이 지난해 8월 인천 영종도 해경특공대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극지연구소 강천윤 팀장은 “고립된 지역에 있는 진 대장에게 중징계를 내릴 경우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몰라 일단 ‘주의’ 조치했다”며 “진 대장이 내년에 귀국하면 다시 중징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극지연구소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한 박씨는 아직까지 세종기지에 머물러 있다. 지난 9월 8일 A씨가 기지를 빠져나올 때 함께 나오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극지연구소는 다음 비행기 편이 확보되는 대로 바로 박씨를 귀국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박씨의 계약해지에 대해 지난 9월 7일 A씨와 박씨를 제외한 기지 대원 15명 전원이 박씨의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극지연구소에 제출했다. 대원들은 탄원서에서 박씨를 이렇게 옹호한다.
“이 사건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평소 자상하고, 책임감이 투철했던 총무님이 이런 사건을 일으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다. 이번 일이 총무님의 개인적인 감정 표출이라기보다는 오랜 기간 기지가 안고 있었던 문제에 대한 저희 월동대 전체의 감정 표출을 대신한 것이 아니었나 하고 반추해 본다. 평소 총무님은 강한 책임감과 넓은 이해심으로 대원들의 맏형 역할을 했다.”
반면 주방장인 A씨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가했다.
“월동 초기에 교체돼 들어온 새 주방장은 처음부터 대원들과 갈등이 많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식단뿐만 아니라 어울리기 힘든 행동과 성격은 저희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부분 적응하기 힘들었다. 저희는 주방장과의 잦은 갈등에 의해 쌓인 불만을 대부분 여과 없이 총무님께 말했다. 총무님도 계속 쌓이는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했나 보다.”
진 대장은 박씨를 이렇게 평가했다.
“20차 월동대의 총무를 역임한 바 있고, 선발과정에서 20차 월동대장을 역임했던 이상훈 박사를 위시한 여러분에게서 좋은 평가로 추천을 받았다. 기지의 어머니 역할을 잘해왔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은 조리대원과 대원들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중재자로 계속 이 문제의 가운데 서있던 총무가 음주로 인해서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한 번에 분출된 것으로 이해한다. 선처해 주기 바란다.”
주방장 A씨에 대한 불만 누적
반면 A씨에 대해 진 대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대부분 시간을 찡그린 얼굴로 상소리 비슷한 푸념과 한숨으로 옆에서 주방도우미를 하는 대원들을 무척 불편하게 했다. 성격은 원만하지 못하고, 본인의 스트레스를 잘 해결하지 못하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듯했다. 초기부터 대원들과의 잦은 마찰이 계속됐다.
대원들과의 마찰은 힘든 공동작업이 계속됐던 3월과 4월달에 들어서면서 더욱 우려할 만한 상황으로 진행됐다. 많은 대원이 주방장의 음식과 성격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 차례에 걸쳐 이를 대장에게 호소하거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4월 하순에는 결국 주방장에게 기지 차원에서 엄중한 경고를 주었다. 주방장은 갑작스런 남극행 결정에 따른 개인적인 여러 가지(사업상·인간관계상) 피해들과 월동대에 대한 준비 부족, 유대감 부족 등을 토로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대원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라고 했다. 음식 조리능력은 중간 수준이며, 대원 화합도는 매우 낮으며, 상황 개선을 위한 본인의 노력은 부족하지만 한 끼의 식사준비도 빼지 않을 정도로 업무 성실도는 높다고 평가한다.”
주방장 A씨와 세종기지 대원들은 올 초부터 갈등을 겪어왔다고 한다. 제22차 월동연구대 대원들이 지난해 6월 선발돼 8월 1주간 해양경찰청 등에서 극지적응훈련을 받는 등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데 비해 A씨는 올해 초 갑작스럽게 합류하게 됐다. 때문에 A씨는 다른 대원들과 종종 마찰을 빚었다.
A씨는 “前(전) 주방장이 절도 사건으로 귀국 조치를 당하는 바람에 올 1월 11일 세종기지에서 연락을 받고 1월 16일에 남극행 비행기를 탔다”며 “3년 연속 지원했다가 실패한 세종기지였기에 너무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선배와 동업으로 일본식 酒店(주점)사업을 하던 그는 1월 19일 세종기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전임 주방장으로부터 아무런 인수인계를 받지 못해 초기 적응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대원들은 2월 중순 그와 함께 월동을 할 수 있을지 각자 의견을 적어 기지대장에게 전달했다. 대부분 그가 만드는 음식과 그의 성격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음식에 대한 불만으로는 메뉴가 단조롭고, 음식 궁합이 맞지 않으며, 위생이 불결하다는 것이었다. 대원들은 그의 성격이 급해 화를 잘 내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남을 배려하는 생각이 부족해 함께 지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대원들, ‘A씨 교체’ 요구했으나 묵살돼
불과 한 달이 채 안되는 기간을 함께 지내면서 일부 대원들은 그와의 동거가 어렵다고 판단, 冬季(동계)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조리대원 교체 등 특단의 대책을 기지대장에게 요구했다.
급기야 4월에는 대원들이 투표를 벌여 투표 참가자 12명 전원이 주방장 교체에 동의해 진 대장에게 탄원서를 전달했다. A씨는 결국 남극 세종기지 내 인사소위원회에 회부됐지만 “대원들의 불만을 인정할 수 없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구하라”며 반발했다. 결국 그는 기지 차원의 경고 조치를 받았지만, 교체는 이뤄지지 않았다.
극지연구소 강천윤 팀장은 “메신저 등을 통해 대원들이 주방장에 대한 불만이 많은 건 알았지만 세종기지 차원의 교체 요구는 없었다”며 “기지대장이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대원들을 잘 설득해서 끝까지 잘 이끌어 가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극지연구소는 2013년까지 남극에 세종 제2기지를 건설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이번 폭행 사건 등과 관련해서는 방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홍금 한국해양연구소 극지연구소장은 “제17차대 때 CCTV를 설치했고, 다음 23차대부터 연구소 정직원을 총무로 파견하기로 했다. 월동대원 선발 시 인성검사를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이번 폭행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일본이나 외국 기지처럼 미리 월동대원을 선발해서 6개월 이상 같이 준비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죠. A씨 같은 경우 미리 생활하면서 인성 파악을 했다면 보내지 않았겠죠. 보내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보내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진 대장은 잘해 보자고 얘기했는데 A 대원이 동의하지 않은 거죠. 지금까지 정황으로 봐선 잘해 보고자 해서 봄부터 너무 끌었는데, 연구소에서 합당치 않은 A씨를 급히 선발해서 보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대장한테 다 지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죠.”
A씨는 끝으로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너무 분해서 인터넷에 동영상을 뿌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나라 망신이더라고요. 한편 이런 폭행 문제가 지금까지 반복돼 왔다는 사실을 대장을 통해 들었어요. 제가 침묵하면 이런 야만적인 폭행이 반복될 것 아닙니까. 침묵하는 게 정말 나라를 위하는 일은 아니지 않으냐,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차원에서 언론에 이렇게 나서게 된 겁니다. 아직 부모님께 남극에서 돌아왔다는 말도 못 드렸어요. 편찮으신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실 게 걱정이네요.”⊙
[인터뷰] 李洪錦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장
“월동대원 선발時 人性검사 강화”
―박 총무가 20차 월동대 시절에도 폭행한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폭행은 누가 맞아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가 됐을 때 폭행사건이 되는 거죠. 사무실에서 회식하다가도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야, 내가 때려서 미안하다’ 이렇게 서로 화해하고 넘어가기도 하는 걸 일일이 폭행사건이라고 하는 건 아니죠.”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폭행사건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서로 쌍방 과실이 되는 거죠.”
―세종기지처럼 고립된, 특수상황에서 일반적 합의가 가능할까요.
“합의가 가능하거나 그럴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던 거고요. 만약 누가 한 대 쥐어박았다, 이런 걸 다 폭행사건이라고 얘기하면 한국사회는 어떻게 됩니까.”
―20차대 때 폭행사건도 화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폭행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진 대장 편을 들었으면 20년 만에 처음으로 인사위 열어서 처리하라고 했겠습니까.”
―남극기지 내의 폭행사태 재발방지책은 무엇입니까.
“폭행사건 등 안전 문제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17차대 때 CCTV를 설치했습니다.”
―CCTV를 설치했어도 폭행사건의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화면을 확보하지 않으셨잖습니까. 진 대장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일부러 지운 것 아닙니까.
“지운 게 아니라 저희도 분명히 요구했어요. CCTV 건에 대해서는 경위를 조사해서, 진 대장이 복귀한 후에 처리할 겁니다.”
―CCTV 외에 다른 방지대책은 무엇입니까.
“지도력 강화를 위해 교육을 강화하고, 총무를 23차대 때부터 연구소 정직원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계약직의 경우 계약해지가 되면 총무 역할도 끝이지만, 정직원인 경우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에 연구소 인력을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또 월동대원 교육 시 인간관계 교육과 규정교육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월동대원 선발 시에 人性(인성)검사를 추가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