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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교회 건축물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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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기 및 일제 시기-팔작 기와지붕 올린 한옥 교회당과 양식 교회당이 중심
● 일제후기 및 한국전쟁 시기-초기 교회 진취성 사라지고 건축적 가능성 시도 없어
● 1960년대 이후-교회 근대화·사회화 토대로 근대적 양식 수용
● 1980년대 이후-교회 대형화·세속화·물질주의화, 주변환경과의 문제
● 21세기 교회건축-환경 친화적 건축이 중심

金正新
단국大 건축대 교수
1952년 경남 남해 출생. 서울大 건축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공학박사). 영국 Bath 대학 건축대학 객원교수(1989~1990), 한국건축역사학회 상임이사(1998~2000), 단국大 건축대 교수, 주요 논문과 저서로는 「현대 교회건축 운동에 관한 연구」, 「초기 양식건축물의 보수·보존에 관한 연구」, 「유럽 현대 교회건축」 등이 있다.
초기 교회는 토착화 모습 뚜렷
성공회 서울 대성당 내부
  
  훼손된 삶의 풍경 속에 오롯이 서 있는 교회는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교회 건축물에서 우리는 공동체라는 삶의 근원적인 뿌리와 함께 神의 體現(체현)을 느낄 수 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온 지 200여 년이 지났다. 교회 건축물은 종파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한국의 초기 교회는 가혹한 박해 속에서 성장했다. 그런 만큼 토착화의 모습이 뚜렷하다. 단적인 예가 많은 교회들이 한옥으로 지어졌다는 점이다.
 
  유교의 관습에 따라 男女席을 구분하고 가운데 장막을 치거나 기역(ㄱ)자형 중앙에 제단을 두고 좌우 날개부에 男女席을 배치하기도 했다. 때로는 會衆席(회중석)의 한구석에 구획된 女子席을 두기도 했다.
 
  처음엔 기존 한옥을 개조해 쓰다가 차츰 많은 신자를 수용하고 그리스도교의 전례집행과 상징에 적합하게 내부공간을 바꿨다. 한옥의 정면과 측면의 방향을 바꾸고 間(칸)을 부가하여 내부공간을 확장했다.
 
  「身廊」(신랑·Nave: 교회당 본당 會衆席)과 좌우 기둥으로 분절된 양 「側廊」(측랑·Aisle: 교회당의 측면 복도)이 길게 확장되어 깊숙한 「구원의 통로」를 만듦으로써 서양의 바실리카식(三廊式·삼랑식) 교회당에 손색없는 건물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1900년에 지은 성공회 강화성당은 완전한 한옥 교회당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강릉 초당성당
 
  [불교 구릉지 사찰과 비슷한 강화성당]
 
  강화성당은 강화읍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견자산 언덕마루에 위치하고 있다. 경사지의 주변 대지를 배 모양으로 築城(축성)하고, 외삼문·내삼문·성당·사제관을 동남향 縱軸(종축)으로 배치했다.
 
  경사 진입로와 석축계단, 외삼문, 내삼문을 지나 성당에 이르는 위계적인 공간구성이 마치 불교의 구릉지 사찰 배치와 흡사하다.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팔작 기와지붕을 올린 정면 4칸, 측면 10칸의 중층 한옥이다. 외관은 지붕 용마루 양끝의 십자가 외에 교회당의 어떤 요소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天主聖殿(천주성전)」이라는 현판과 「三位一體 天主萬有之眞原(삼위일체 천주만유지진원)」 등의 柱聯(주련)이 기둥과 벽에 걸려 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서면 순수 한옥구조이면서 바실리카式 공간을 완벽하게 구현한 절묘함이 느껴진다. 앞쪽에 있는 공간은 「배랑」(Narthex: 교회당의 본당 입구 앞의 넓은 홀), 맨 뒤쪽의 공간은 제의실 역할을 한다. 중간 8칸이 예배실인데 7개씩의 高柱(고주)에 의해 身廊과 側廊의 구별이 뚜렷하고, 한지 바른 상부 광창으로부터 은은한 빛이 떨어진다.
 
  身廊 입구(2번째 칸)의 세례대와 끝부분(7, 8번째 칸)의 제단, 제단을 둘러싼 성찬란, 側廊 좌우면의 소제대, 그 위의 감실 등 전례 기물의 배열이 한옥의 구조와 잘 조화된다.
 
[1926] 성공회 서울 대성당 외관

[1981] 경동교회 참로 (출처 임정의 편저「종교건축」, 1994)
 
  [한국 성당건축의 표본, 서울 약현성당]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자 서구 양식의 교회건축이 활발히 전개됐다. 대도시와 개항지에는 일찍이 한국에서 선교하던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서양 중세양식의 벽돌조 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은 대부분 르네상스 양식이나 일본풍이 절충된 형식이었으나, 교회건축은 줄곧 고딕 양식을 추구했다. 중세 신학사상과 신념체계를 잘 반영한 고딕 양식이야말로 오랜 박해 끝에 자유를 맞이한 당시 한국 교회의 위상에 걸맞았고, 서양 성직자들의 선교이념과 일치했다.
 
  한국 최초의 洋式(양식) 교회는 1892년에 지어진 서울 중구 중림동의 약현성당이다. 뒤이어 명동성당이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에 의해 설계되고 지어졌다. 列柱(열주·줄기둥)에 의해 身廊과 側廊의 구별이 뚜렷한 三廊式(삼랑식)의 단층 건물로, 이후 한국 성당건축의 표본이 되었다.
 
  약현성당보다 6년 뒤 지어진 서울 명동성당은 고딕 양식에 훨씬 가까운 건물이다. 명동성당은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 양식 건축물(사적 제258호)이다.
 
  명동성당의 설계와 공사감독을 맡아 진행한 코스트 신부가 1896년 2월 선종함에 따라, 프와넬 신부가 뒤를 이어 마무리지었다.
 
  명동성당은 전형적인 라틴 십자가 형식의 평면으로 身廊과 側廊은 물론 건물 천장과 回廊(회랑)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다. 은은한 光窓(광창)이 비치고 비록 쓰이지는 않지만 空中回廊(공중회랑)도 있다.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색광과 무지개처럼 높고 길게 굽은 천장에 울려 퍼지는 음향효과는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1898] 서울 명동성당 내부

[2001] 강릉 초당성당 내부

[1900] 성공회 강화성당 내부

[1966] 경북 왜관성당 내부

[1898] 서울 명동성당
 
  [소박한 빅토리아 시대의 전원주택을 떠올리게 하는 정동제일교회]
 
  개신교의 첫 번째 양식 교회 건축은 서울 정동제일교회다. 1898년에 완공된 건물로 고딕 양식을 단순화시켜 간결하고 소박한 빅토리아 시대의 전원주택을 연상케 한다.
 
  美洲지역에서 들어온 개신교는 개인의 경건한 삶에 비중을 두었고, 청교도적인 삶의 태도와 실용성이 우선되어 건축 양식 자체의 표현에는 깊은 관심을 쏟지 않았다. 대신 교회의 상징으로 고딕 양식 표현을 취하고, 그것을 변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천주교의 분절화된 내부 공간에 비해 개신교는 강당에 가까운 모습을 띠게 된다.
 
 
  [한국 전통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가미된 성공회 서울 대성당]
 
  광복 이전까지 신·구교를 막론하고 고딕 양식을 추구했지만 대부분의 교회건축은 사실상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까웠다. 고딕 양식을 구현하기에는 기술과 경험이 미흡했고, 한국적 풍토와 전통에는 둥근 穹?(궁륭: 활처럼 한가운데가 높고 길게 굽은 형상)의 로마네스크 양식이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건물이 서울 중구 정동의 성공회 서울 대성당이다.
 
  1926년에 완성된 이 건물은 원래 계획의 반밖에 짓지 못했으나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창립 100주년을 즈음해 원래 계획대로 증축했다. 라틴 십자형의 평면인데, 경사진 대지를 잘 이용해 지하에 소성당을 두고 있다.
 
  화강석과 적벽돌로 외관을 구성하고 5개의 종탑이 좋은 위계를 이루었다. 내부공간은 석조 기둥에 의해 身廊과 側廊이 뚜렷이 구별되는 三廊式이며, 천장은 목조 구조로 되어 있다. 지붕 일부에 올린 한식 기와와 창살 문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00] 성공회 강화성당 전경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의 교회
 
  일제 강점기의 수난 속에서도 교세는 확장되고 많은 교회건축물이 계속 지어졌다. 그러나 초기 교회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었던 신도들의 자세는 충직한 교회의 협조자·추종자로 변화했다. 일제의 탄압은 현세도피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하여 초월주의적이고 내세주의적인 종교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한옥교회는 한식·양식 절충식으로 전개됐으며, 서양식 교회는 단순화·소규모화되면서 이른바 「분절화에 의한 내부 공간의 상징성」이 깨지고 오직 외관에만 치중하게 된다.
 
  광복과 국토의 분단, 6·25전쟁과 전쟁복구의 격동기에 교회건축은 정체돼 있었고, 그나마 새로 지어지는 교회건축도 새로운 건축적 가능성의 시도 없이 종래의 방법대로 고딕 양식의 임의변형, 또는 약식화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戰亂 후에는 교회에 대한 하느님의 보호와 견고함이 새삼 인식되어 종탑을 성곽 형태로 표현하기도 했다.
 
  1960년대에 들어 한국교회는 많은 自省과 함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내적 쇄신과 현대에의 적응을 목표로 소집된 가톨릭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와 종파를 초월해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추구한 개신교의 에큐메니컬 운동, 건축기술의 발전, 전문 건축가의 활동, 근대주의 건축의 수용과 변용이 큰 영향을 주었다.
 
[1898] 정동제일교회

[1966] 경북 왜관성당
 
  [근대 교회건축의 3인방, 이희태·알빈·울이 지은 혜화동성당· 왜관성당·내동당성당]
 
 
 80여 개 성당 설계한 알빈
 
  이 땅의 근대적인 교회건축은 한국 건축가 이희태와 독일인 수도神父(신부) 「알빈」, 그리고 오스트리아인 교회건축가 「오토카 울」에 의해 지어지기 시작했다.
 
  알빈은 경북 왜관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17년간 무려 80여 개의 성당을 설계, 한국 근대 교회건축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이희태는 명수대성당(1954), 혜화동성당(1960) 등을 통해 입방체형의 근대 교회건축을 시도했다. 이 건물들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으며, 교회건축의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부합한 것이다.
 
  서울 혜화동성당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장방형 평면을 가진 상자 형태의 건물로 근대주의 교회건축의 선구자적인 건물이다. 교회건축의 전통적인 양식 요소와 디테일을 모두 배제하고, 성당의 내·외부를 현대 미술가들의 조각·회화·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웠다.
 
  알빈이 설계한 왜관성당(1966)은 「평신도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구현하기 위해 전례 기능에 따른 공간 배열을 최우선시했다. 그 결과 會衆席의 깊이보다 가로 폭이 더 넓고, 감실이 제단에서 완전히 분리돼 있다.
 
  오토카 울이 설계한 대구 내당동성당(1966)은 정방형 격자상에 배치된 단순명료한 입방체의 건물로 제일 낮은 중심부의 한가운데에 제대가, 주변부 좌우에 감실과 세례대가 위치한다. 신자席은 체육관 좌석처럼 디귿(ㄷ)자 형태로 제대를 둘러싼다.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면, 사제가 중앙의 제단으로 나가고, 말씀의 전례 시에는 뒤로 물러나도록 했다. 제대를 중심으로 모든 신자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미사참여가 가능하게 만들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정신을 명확히 반영했다.
 
  아쉽게도 한국 신자들의 일반적인 전례습관에 맞지 않아 후에 종축 長方形(장방형·직사각형) 형태로 개조됐다.
 
  1960년대는 우리 건축분야에서 한국적 전통 논의가 활발했다. 교회건축에 있어서는 성지를 중심으로 시도되었는데, 그중 가장 완성도가 높고 성공적인 건축이 이희태가 설계한 서울 마포의 절두산 성당이다. 이 건물은 순교 성지인 절두산 언덕에 기념관과 함께 지었는데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서 한옥의 지붕 형태와 처마 곡선을 노출해 콘크리트로 표현하고, 여기에다 전통적 건축 의장 요소를 첨가해 토착적 분위기를 추구했다.
 
[1960] 서울 혜화동성당 내부

[1966] 대구 내당동성당 내부
 
  [종교건축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한 마산성당과 경동교회]
 
  1980년대 교회의 화려한 성장과 한국사회의 물질주의 경향은 도시교회의 새로운 경향을 가져왔다.
 
  김수근이 설계한 마산성당(1980)과 경동교회(1981)는 계단 형태로 길게 이어진 경사로(참로)를 통해 전례 공간에 접근했다. 도심 속 제한된 대지에서 적벽돌을 이용해 벽돌건축의 조형성과 표현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마산성당은 타원 형태의 6각형 主공간(會衆席)과 이를 중심으로 전개시킨 방사형 공간의 副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副공간은 제단과 4개의 會衆席과 기도실·전실·고백소와 사제관과 연결되는 回廊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도실은 외부에서 바로 출입할 수 있고, 會衆席과 연결됐다. 回廊은 신자들이 가득 찼을 때 전례에 참여할 수 있는 보조공간이 되기도 한다.
 
  지붕 사이의 틈으로 빛이 흘러 들어가게 함으로써 신비스러움을 연출했고, 제단 뒷벽과 외벽 사이에서 내려오는 빛은 공간의 연속성을 더하게 했다.
 
  마산성당은 기능성과 편의성, 설비 등에 다소 문제점을 안고 있으나, 전통적인 교회건축의 평면 형태에 그 뿌리를 두면서 양식적인 교회건축의 형태에서 벗어난 조형성이 돋보인다.
 
[1967] 절두산 성당

[1980] 마산성당
 
  [현대적 건축미, 광주 가톨릭大 성당과 초당성당]
 
  김원이 설계한 광주 가톨릭大 부속 성당(1997)은 대학 캠퍼스의 중심에 정육면체의 큐빅 형태가 땅에 박힌 형상을 하고 있다. 성당은 전면에 옥외집회와 전례행사를 할 수 있도록 광장을 배치하고 있다. 철골조에는 알루미늄 복합 패널로 마감했는데, 기하학적인 단순미와 차가운 현대적 이미지를 보여 준다.
 
  내부는 온화한 목재 루바(가로살이 여러 개 붙어 있는 형태의 디자인)와 부드러운 곡면으로 담백하고 중후한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순수미를 표현한 전례 기물과 聖미술이 건물과 잘 조화된다.
 
  김영섭이 설계한 강릉 초당성당(2001)은 주변 海松(해송) 군락의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현대 교회건축의 강한 상징성을 보여 주고 있다. 標高(표고)차가 큰 남북으로 긴 경사 대지에 계단과 경사로를 이용해 외부와 내부의 標高별 연계가 가능하게 계획되었다.
 
  원형평면의 성당은 「한 방울의 보혈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제단이 앞으로 나오고 제대를 중심으로 디귿(ㄷ)자 형태로 둘러싼 신자席을 배치했다. 제단 뒷벽을 타고 은은히 내려오는 천창의 빛은 신비롭고 온화한 내부공간을 만들어 준다.
 
[1997] 광주 가톨릭大 부속 성당

광주 가톨릭大 부속 성당 내부 모습
 
  [새로운 가능성, 송현성당]
 
  경기 평택시에 지어진 송현성당(2003)은 교회건축이 지닌 강한 상징성과 조형성을 드러내기보다 「전례를 담는 그릇」으로 한발 물러선 느낌을 준다. 대신 기능성과 경제성을 최대한 수용해 교회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도록 고안됐다.
 
  타원형의 평면은 제대를 향한 신자들의 시청각적인 집중도를 높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전례 공간을 만들도록 했다. 부채꼴의 중심축 선상에 제단과 중앙통로, 세례대를 배치했다. 성당의 한쪽 면에 성찬채플(성체 조배실)을 부가해 개인 또는 소규모의 기도와 주일미사時 會衆席의 확장이 가능하다. 지붕 골조가 바로 마감이 되는 집성목 글루렘(큰 하중을 버티기 위해 마련된 긴 보) 구조는 단순함을 극대화시키고, 미세한 소리의 공명을 배려했다.
 
 
 
 교회건축은 문화적 자산
 
  인류가 가진 문화유산의 대부분은 건축이다. 그중에서도 종교건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우리의 불교건축물에서 볼 수 있듯 종교건축이야말로, 전례공간이라는 실용성은 물론 천재들의 창작력과 예술성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한국 교회건축의 흐름을 볼 때 교세의 성장만큼이나 다양한 교회건축의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교회의 양적인 성장에 걸맞은 건축은 그다지 많지 않다. 크고 화려한 교회보다 작지만 문화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건축이 교회의 소임을 다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21세기 교회건축은 자연의 위대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를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한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되돌려 주는 자연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주위에는 온통 인위적인 것들뿐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환경보전의 메시지를 교회건축을 통해 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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