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중에선 李文烈(이문열) 작가의 조선일보 연재소설 <불멸>이 화제입니다. 義士(의사) 安重根(안중근)의 삶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은 대한제국이 일제에 패망하기까지의 과정을 힘찬 필체로 그리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 1909년 10월 26일이니 올해는 그 100주년 되는 해가 되는군요. 그 이듬해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되면서 35년 몇 개월간의, 나라를 잃은 고난의 시대가 전개됩니다.
1세기 전 벌어진 비극의 멍에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친일파 척결한다면서 일제시대에 군 장교를 지내거나 공무원 생활을 한 사람들을 기회가 날 때마다 망신 주고,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란 것을 만들어 후손들이 소유한 재산을 몰수하는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狂風(광풍)과도 같은 부관참시 행위에 대해 일부는 혀를 끌끌 차고, 일부에선 쌍수를 들어 가며 열광합니다.
그러나, 일제의 치 떨리는 만행에 분노하고 친일파에 대한 저주를 퍼붓기 전에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뭘 잘했고 잘못했기에 나라를 일본에 통째로 빼앗겼는가 하는 점입니다.
1905년 11월 17일 체결된 을사보호조약(을사늑약)에 의해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국방권을 잃었을 때 사실상 나라는 망한 것입니다.
李完用의 비극
그 시절엔 대한제국을 편드는 동맹국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와 혈맹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은 그 당시엔 철저히 일본 편에 서서 일본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으니까요.
약육강식의 살벌한 시대에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나라, 위기 때 원군을 파견해 줄 동맹국 하나 없는 민족이 감내해야 할 운명은 가혹했습니다.
친일파의 대명사로 회자되는 李完用(이완용)은 30세 때 초대 주미외교관으로 발탁되어 미국에서 대한제국을 대표하여 외교활동을 벌였던 인물입니다. 그는 미국에서의 외교관 생활을 통해 힘센 자의 목소리가 정의인 시대에 만국공법(국제법)이란 힘센 자들의 깡패짓을 정당화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런 인물이 하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외교권, 국방권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가문엔 비극이었습니다.
남들은 대외개방, 해양화, 근대화를 통해 기술을 연마하고 부국강병 노선을 걸을 때 나라 문 걸어 닫고 당파싸움에 몰두하는 지도층,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의 등용은 고사하고 매관매직으로 권력에 빌붙는 자들이 공직을 점령하고 있던 것이 당시의 우리네 시대풍경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가렴주구에 시달리다 못해 동학으로 들고 일어나고, 치안이 마비돼 도적떼가 횡행하는 나라에서 외세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부를 떠는 지도층들의 얼빠진 모습이 이문열씨의 소설 <불멸>에 적나라하게 표현돼 나옵니다.
국제법에 대해 문리가 트였던 이완용 입장에서 볼 때 “너희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으니 대일본제국이 대신 지켜 주고, 외교도 대신 해 주겠다”는 일본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 다음은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점령 수순이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백만대군을 상대해야 하는 대한제국 군대는 한 근대사 연구가의 설명에 의하면 궁궐수비대, 의장대 포함해 1만3000명 내외였다는군요. 이런 상황이니 제아무리 천하의 神童(신동) 이완용이라도 항복 외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습니까.
나라는 이완용과 을사5적이 팔아먹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유를 안고 있었기에 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匹夫匹婦(필부필부)들은 아직도 이완용을 저주하고, 일제의 만행을 소리 높여 성토합니다.
클린턴의 골프 매너
며칠 전 한 모임에서 羅鍾一(나종일) 우석대 총장(前 駐日·駐英 대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 총장은 “클린턴 대통령이 퇴임 후 그와 골프를 친 적이 있는데, 그의 골프 매너가 별로였다”고 했습니다. 샷이나 퍼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치곤 했다는 겁니다.
나 총장은 “골프의 원칙은 하나의 스윙, 하나의 퍼팅에 모든 것을 건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면서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첫 올림픽 2관왕(88서울올림픽 개인, 단체전 우승), 역대 하계올림픽 사상 아시아 여자 최다 금메달리스트(금메달 4개)가 된 김수녕 선수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김수녕 선수가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인터뷰에서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완전히 잊는다. 나는 지금 쏘는 화살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과거의 잘잘못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 이것이 바로 孔子(공자)가 군자의 수양법으로 詩書(시서)와 함께 활쏘기를 강조한 이유라고 나 총장은 설명합니다.
즉 활을 쏘았는데 잘 안 맞으면 ‘뭐가 좋지 않았기에 빗나갔을까’ 하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추스르는 것이야말로 군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라는 것이죠.
우리는 자신을 탓하지 않고 남의 탓을 하는 데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것, 38선으로 분단된 것, 동족상잔의 전쟁, 산업화 시기의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에 대해 처절한 자기반성은 외면한 채 모두 이완용 탓, 일제 탓, 미제 탓, 소련 탓으로 돌림으로써 정신적 면죄부를 받고는 희희낙락했습니다.
기실 골프정신, 활쏘기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간다면 대한제국의 패망, 식민지, 분단의 원인 제공자는 우리 스스로였습니다. 아무리 외세의 개입 혹은 유혹이 있었다 해도, 그 개입이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우리 잘못입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天使(천사)는 기억력이 없다고 합니다. 기억력이 없으므로 그에게 해악을 끼쳤거나, 손가락질을 했거나 하는 나쁜 과거지사는 알지 못하고, 오로지 내 앞의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푼다는 뜻이죠.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지나간 일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문제에 대해 내가 해야 할 일, 지도자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목숨을 걸고 행하면 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다 하여 덮어놓고 내 실력 이상으로 욕심을 내는 것은 금물입니다. 나 총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위기가 닥쳤을 때 큰 차이가 난다. 아마추어는 위기가 닥치면 그 위기를 더 큰 위기로 확대시키지만 프로는 위기를 잘 관리하여 기회로 전환시킨다.”
얼마 전 訪韓(방한)한 金昌準(김창준) 前(전) 美(미) 연방하원의원과 식사를 했습니다. 저의 고교 선배이기도 한 김 의원은 “국제사회에서 강적에 둘러싸여 있는 힘이 약한 존재가 생존하는 길은 강력한 파워를 가진 세력과 동맹을 맺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 인구대국에 자원대국, 군사대국, 기술강국입니다. 이 버거운 이웃들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먼 곳에 있는 수퍼 파워 미국과 동맹을 맺는 길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좌파가 민족과 자주라는 용어를 선점하는 통에, 동맹을 강조하는 보수 쪽은 親美(친미)와 事大(사대)로 낙인이 찍히는 시대가 됐습니다.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
咸在鳳(함재봉) 전 연세대 교수는 李承晩(이승만) 朴正熙(박정희) 前(전) 대통령의 혜안이 필요한 시대라고 지적합니다. 두 지도자는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있어 미국과의 동맹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전략적 혜안을 바탕으로 미국을 한반도에 주둔시키는 것을 대외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자주국방’과 ‘자주외교’였다는 겁니다.
박정희가 중화학공업을 일으키고, 핵개발을 시도한 것은 언젠가는 미국이 한반도를 떠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전제로 독자적인 국방력과 외교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지도자와 국민들은 독자적인 힘으로 북한의 위협에 맞서 승리하고 우리 주도하에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북한이 전쟁 공갈포를 날릴 때마다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 오로지 ‘평화 유지만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위안을 삼는 것이 우리의 참모습 아닐까요.
적들이 핵무기와 운반수단인 미사일을 개발하여 우리의 목을 죄려는 한편에서 “평화적 해결” 운운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룰로 보면 “우리는 힘이 없으니 잡아 먹어도 좋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습니다.
천사는 기억력이 없어도 무방하지만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지도자와 ‘깨어 있는 소수’는 결코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억지와 평화가 우선이지만,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결연한 의지야말로 깡패국가와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기본자세 아닐까요. 답답한 시기에 너무 살벌한 말만 늘어놓은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 1909년 10월 26일이니 올해는 그 100주년 되는 해가 되는군요. 그 이듬해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되면서 35년 몇 개월간의, 나라를 잃은 고난의 시대가 전개됩니다.
1세기 전 벌어진 비극의 멍에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친일파 척결한다면서 일제시대에 군 장교를 지내거나 공무원 생활을 한 사람들을 기회가 날 때마다 망신 주고,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란 것을 만들어 후손들이 소유한 재산을 몰수하는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狂風(광풍)과도 같은 부관참시 행위에 대해 일부는 혀를 끌끌 차고, 일부에선 쌍수를 들어 가며 열광합니다.
그러나, 일제의 치 떨리는 만행에 분노하고 친일파에 대한 저주를 퍼붓기 전에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뭘 잘했고 잘못했기에 나라를 일본에 통째로 빼앗겼는가 하는 점입니다.
1905년 11월 17일 체결된 을사보호조약(을사늑약)에 의해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국방권을 잃었을 때 사실상 나라는 망한 것입니다.
李完用의 비극
그 시절엔 대한제국을 편드는 동맹국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와 혈맹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은 그 당시엔 철저히 일본 편에 서서 일본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으니까요.
약육강식의 살벌한 시대에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나라, 위기 때 원군을 파견해 줄 동맹국 하나 없는 민족이 감내해야 할 운명은 가혹했습니다.
친일파의 대명사로 회자되는 李完用(이완용)은 30세 때 초대 주미외교관으로 발탁되어 미국에서 대한제국을 대표하여 외교활동을 벌였던 인물입니다. 그는 미국에서의 외교관 생활을 통해 힘센 자의 목소리가 정의인 시대에 만국공법(국제법)이란 힘센 자들의 깡패짓을 정당화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런 인물이 하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외교권, 국방권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가문엔 비극이었습니다.
남들은 대외개방, 해양화, 근대화를 통해 기술을 연마하고 부국강병 노선을 걸을 때 나라 문 걸어 닫고 당파싸움에 몰두하는 지도층,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의 등용은 고사하고 매관매직으로 권력에 빌붙는 자들이 공직을 점령하고 있던 것이 당시의 우리네 시대풍경이었습니다.
백성들은 가렴주구에 시달리다 못해 동학으로 들고 일어나고, 치안이 마비돼 도적떼가 횡행하는 나라에서 외세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부를 떠는 지도층들의 얼빠진 모습이 이문열씨의 소설 <불멸>에 적나라하게 표현돼 나옵니다.
국제법에 대해 문리가 트였던 이완용 입장에서 볼 때 “너희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으니 대일본제국이 대신 지켜 주고, 외교도 대신 해 주겠다”는 일본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 다음은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점령 수순이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백만대군을 상대해야 하는 대한제국 군대는 한 근대사 연구가의 설명에 의하면 궁궐수비대, 의장대 포함해 1만3000명 내외였다는군요. 이런 상황이니 제아무리 천하의 神童(신동) 이완용이라도 항복 외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습니까.
나라는 이완용과 을사5적이 팔아먹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유를 안고 있었기에 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匹夫匹婦(필부필부)들은 아직도 이완용을 저주하고, 일제의 만행을 소리 높여 성토합니다.
클린턴의 골프 매너
며칠 전 한 모임에서 羅鍾一(나종일) 우석대 총장(前 駐日·駐英 대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 총장은 “클린턴 대통령이 퇴임 후 그와 골프를 친 적이 있는데, 그의 골프 매너가 별로였다”고 했습니다. 샷이나 퍼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치곤 했다는 겁니다.
나 총장은 “골프의 원칙은 하나의 스윙, 하나의 퍼팅에 모든 것을 건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면서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첫 올림픽 2관왕(88서울올림픽 개인, 단체전 우승), 역대 하계올림픽 사상 아시아 여자 최다 금메달리스트(금메달 4개)가 된 김수녕 선수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김수녕 선수가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인터뷰에서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완전히 잊는다. 나는 지금 쏘는 화살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과거의 잘잘못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 이것이 바로 孔子(공자)가 군자의 수양법으로 詩書(시서)와 함께 활쏘기를 강조한 이유라고 나 총장은 설명합니다.
즉 활을 쏘았는데 잘 안 맞으면 ‘뭐가 좋지 않았기에 빗나갔을까’ 하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추스르는 것이야말로 군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라는 것이죠.
우리는 자신을 탓하지 않고 남의 탓을 하는 데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것, 38선으로 분단된 것, 동족상잔의 전쟁, 산업화 시기의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에 대해 처절한 자기반성은 외면한 채 모두 이완용 탓, 일제 탓, 미제 탓, 소련 탓으로 돌림으로써 정신적 면죄부를 받고는 희희낙락했습니다.
기실 골프정신, 활쏘기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간다면 대한제국의 패망, 식민지, 분단의 원인 제공자는 우리 스스로였습니다. 아무리 외세의 개입 혹은 유혹이 있었다 해도, 그 개입이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우리 잘못입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天使(천사)는 기억력이 없다고 합니다. 기억력이 없으므로 그에게 해악을 끼쳤거나, 손가락질을 했거나 하는 나쁜 과거지사는 알지 못하고, 오로지 내 앞의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푼다는 뜻이죠.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지나간 일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문제에 대해 내가 해야 할 일, 지도자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 목숨을 걸고 행하면 됩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다 하여 덮어놓고 내 실력 이상으로 욕심을 내는 것은 금물입니다. 나 총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위기가 닥쳤을 때 큰 차이가 난다. 아마추어는 위기가 닥치면 그 위기를 더 큰 위기로 확대시키지만 프로는 위기를 잘 관리하여 기회로 전환시킨다.”
얼마 전 訪韓(방한)한 金昌準(김창준) 前(전) 美(미) 연방하원의원과 식사를 했습니다. 저의 고교 선배이기도 한 김 의원은 “국제사회에서 강적에 둘러싸여 있는 힘이 약한 존재가 생존하는 길은 강력한 파워를 가진 세력과 동맹을 맺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 인구대국에 자원대국, 군사대국, 기술강국입니다. 이 버거운 이웃들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먼 곳에 있는 수퍼 파워 미국과 동맹을 맺는 길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좌파가 민족과 자주라는 용어를 선점하는 통에, 동맹을 강조하는 보수 쪽은 親美(친미)와 事大(사대)로 낙인이 찍히는 시대가 됐습니다.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
咸在鳳(함재봉) 전 연세대 교수는 李承晩(이승만) 朴正熙(박정희) 前(전) 대통령의 혜안이 필요한 시대라고 지적합니다. 두 지도자는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있어 미국과의 동맹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전략적 혜안을 바탕으로 미국을 한반도에 주둔시키는 것을 대외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자주국방’과 ‘자주외교’였다는 겁니다.
박정희가 중화학공업을 일으키고, 핵개발을 시도한 것은 언젠가는 미국이 한반도를 떠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전제로 독자적인 국방력과 외교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지도자와 국민들은 독자적인 힘으로 북한의 위협에 맞서 승리하고 우리 주도하에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북한이 전쟁 공갈포를 날릴 때마다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 오로지 ‘평화 유지만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위안을 삼는 것이 우리의 참모습 아닐까요.
적들이 핵무기와 운반수단인 미사일을 개발하여 우리의 목을 죄려는 한편에서 “평화적 해결” 운운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룰로 보면 “우리는 힘이 없으니 잡아 먹어도 좋다”는 고백이나 다름없습니다.
천사는 기억력이 없어도 무방하지만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지도자와 ‘깨어 있는 소수’는 결코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억지와 평화가 우선이지만,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결연한 의지야말로 깡패국가와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기본자세 아닐까요. 답답한 시기에 너무 살벌한 말만 늘어놓은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