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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의 ‘건강의 지평선’ ④ 트럼프의 국제개발처 해체

개도국 의료 붕괴 위기… 한국, ‘보건 외교’ 나서야

글 : 박한슬  의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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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민주주의 첨병이던 美 국제개발처, 트럼프에 의해 해체 위기
⊙ 해외로 수출되던 쿠바 의사들도 기술 부족 등으로 한계
⊙ 개도국의 의료 공백, 극단주의자들 대두 기회 될 수도
⊙ 해외 수출된 쿠바 의사들, 주 60시간 일하며 급여의 80% 이상을 정부에 뺏겨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학교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트럼프 대통령의 USAID 해체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2월 5일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해외 원조 방역체계 붕괴를 비난했다. 사진=AP/뉴시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 정책 변화가 심상치 않다. 보건 문제를 다자주의적(多者主義的)으로 해결하자는 국제적 중지(衆志)가 모여 결성된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를 천명하는 건 물론이고, 지난 수십 년간 미국 국제 원조의 핵심 기구였던 미국 국제개발처(USAID)도 부처 폐지 수순을 차근차근 밟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정부 효율화’라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대외영향력 투사(投射)를 거둬들이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국제개발처가 마비되자, 당장 미얀마 국경에 위치한 병원이 폐쇄되고, 캄보디아나 라오스 지역에서 예방접종을 하는 NGO 활동도 중단 위기를 맞았다. 미국의 해외 원조에 의존하던 개발도상국 보건 사업들부터 삐걱대기 시작하는 건데, 국제개발처가 이면(裏面)에서 수행하던 기능을 고려하면 이는 장기적으로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국제개발처는 자유민주주의의 첨병(尖兵)이어서다.
 
 
  쿠바 공산화 후 설립된 국제개발처
 
쿠바 혁명의 주역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쿠바 혁명은 미 국제개발처 설립의 자극제가 됐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국제개발처 설립으로부터 몇 년만 시간을 되돌려보자.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는 미국 금주법(禁酒法) 시대에 밀주(密酒)를 취급해 막대한 부(富)를 일군 암흑가의 실력자로 묘사된다. 그런데 개츠비가 팔아치운 막대한 양의 밀주가 유래한 곳이 주로 미국 남부 해안과 접해 있는 쿠바나 카리브해 지역이다.
 
  당시 쿠바는 미국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국외(國外)라는 장점을 살려 밀주로 떼돈을 번 지역이었고, 지금의 라스베이거스와 같이 호화 리조트가 자리 잡은 ‘퇴폐한 자본주의의 성지(聖地)’ 같은 지역으로 인식됐다. 이토록 화려한 자본주의의 음영(陰影) 지역에 이변(異變)이 생긴 건 1959년,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 형제가 주도한 쿠바 혁명이 성공하면서였다.
 
  쿠바 혁명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최초의 공산 혁명이라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미국의 턱밑에 붙은 친미(親美) 국가가 소련의 수중에 넘어갔다는 점에서 대단한 안보 위협이기도 했다.
 

  쿠바의 공산화 과정을 분석한 미국 정부는 개발도상국에 만연한 빈곤과 열악한 보건 여건이 공산화를 부추긴 주범(主犯)이라 판단했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외 원조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 이런 정책 의도에서 국제개발처가 1961년 설립됐다. 국제개발처 설립 바로 다음 해에 벌어진 게 냉전(冷戰) 시절 가장 큰 국제적 위기였던 쿠바 미사일 위기니, 이미 엎지른 물인 쿠바에 대한 아쉬움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쿠바는 놓쳤다고 하나, 다른 개발도상국까지 공산권으로 넘어가는 걸 좌시할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조야(朝野)에 자리를 잡은 만큼 케네디 정부는 전폭적으로 해외 원조를 확대하기로 결심한다. 경제력이 발전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자리 잡을 거라는 희망적 전망이 더 우세하던 시절이다.
 
 
  냉전의 첨병 USAID
 
미 국제개발처(USAID) 로고
  물론 표면적으로야 주로 보건과 교육, 농업, 인프라 구축 같은 인도주의적인 해외 원조를 목적으로 했지만, 해당 기관의 본질적 목적이 개발도상국의 공산화 방지다 보니, 실제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하부 조직 기능도 일정 부분 수행하며 개발도상국의 용공(容共) 단체 동향을 파악하거나 여론을 확인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았다.
 
  실제로 지원 대상 국가도 ‘인도적 도움’이 절실한 곳보다는 지정학적(地政學的) 가치가 큰 곳에 집중되었고, 그중 하나였던 우리나라도 국제개발처의 수혜를 크게 입었다. 전쟁 직후 주요 인프라 복구 비용은 물론이고 현재 우리나라를 만든 양대 축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국제개발처의 출자로 설립됐다. 만약 쿠바 혁명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위기감으로 미국이 국제개발처를 설립해 대규모 해외 원조를 감행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개발도상국 지원을 과연 미국만 했을까. 냉전 내내 이어진 보건 외교 전쟁을 살피려면, 다시 쿠바로 가야 한다.
 
 
  ‘쿠바식 의료’에 대한 환상
 
  좌우를 막론하고 국내에서 ‘쿠바식 의료’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품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넉넉하지 않은 경제력에도 전 국민 무상(無償) 의료를 제공하고, 인구 1000명당 9.3명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 대비 의사 수를 자랑한다. 단순히 인구수에 곱했을 때도 의사 수가 10만 명을 훌쩍 넘으니, 인구 대비로 하면 인구가 5배 많은 우리나라의 의사 수(16만 명)보다 많은 셈이다. 게다가 쿠바 사람들의 건강 수준도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최상위권에 속하니, 진보좌파 진영에서 쿠바를 사회주의 의료 낙원이라고 찬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안타까운 점은 일부 보수우파 진영에서도 이런 주장을 역사적 맥락 없이 맹종(盲從)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련 특유의 국제적 분업(分業) 경제의 결과로 나타났단 걸 모르기 때문이다.
 
  소련은 1949년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라는 기구를 설립했다. 미국이 유럽 재건을 위해 막대한 원조를 제공하는 마셜 플랜을 가동하자 공산권의 대응 차원에서 설립한 기구인데, 소련은 코메콘을 통해 공산권 내의 무역을 총괄하는 건 물론 각국의 경제 계획을 국제 분업 형태로 재편하는 시도를 감행했다. 이를 통해 획책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공산권 내의 물자 확충이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몽매함과 별개로 분업의 효용은 당시 공산권 국가들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고, 국가 간 분업을 통해 생산력을 대폭 향상해 그 산물을 각국 간에 상호무역의 형태로 나눠 가지면, 공산권 내의 물적 풍족함이 같이 늘어날 수 있단 논리는 힘이 강했다.
 
 
  쿠바 의료는 공산권 분업의 산물
 
코로나19 초기인 2020년 3월 쿠바 의사들이 선진국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파견됐다. 사진=AP/뉴시스
  두 번째는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권의 수직적 통합 강화다. 코메콘 구성국이 서로 간에 국제 분업을 수행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각국의 경제 개발 계획 역시 동조화(同調化)를 해야만 한다. 그 기준점이 되는 게 소련의 경제 개발 계획이었고, 각국은 할당된 분업 산업에 맞게 다시 세부 경제 개발 계획을 작성해야 하니, 외면적으로는 분업을 능률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동조화이나, 실제로는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수직적 통합 구조가 완성된다. 유심론적(唯心論的) 세계관을 배격하고, 심지어는 종교조차 말살할 정도의 엄격한 유물론적(唯物論的) 세계관에서 경제 계획의 지배권을 쥔다는 건 공산권의 전체 목줄을 쥐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있으니, 소련과 공산권 종주국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중국은 코메콘에 가입하지 않았다. 협력 체계는 유지했지만, 독자적인 경제 계획을 세워 자주권을 지키는 형태로 한 발 빠져나간 셈이다.
 
  어쨌거나 이런 국제적인 공산주의 분업 구조는 소련 해체 시기까지도 작동했고, 쿠바 역시도 코메콘 회원국으로서 그 체계 안에서 분업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때 쿠바가 맡은 역할이 고품질 시가를 만드는 담배 산업, 사탕수수 재배를 통한 제당(製糖)과 양조, 그리고 오늘 주제인 ‘의료’다. 쿠바는 카스트로가 공산 혁명을 통해 정권을 탈취한 직후 전국에 한 곳뿐이던 의과대학을 25곳으로 확대하는 대대적인 의료 개혁을 단행했고, 혁명 전 3000여 명에 불과하던 의사 수는 급격히 늘어 1980년대 초반에는 7만여 명에 이르게 됐다. 30년 만에 의사 수가 25배 정도 늘어난 셈이다.
 
  이렇게 늘어난 의사들은 쿠바의 설탕이 소련 가정집에 공급되듯, 의사가 부족한 공산권 국가 전역에 ‘배급’되기 시작했다. 자유 진영이 미국 국제개발처를 통해 보건 외교전을 폈다면, 공산 진영은 쿠바의 과잉 생산된 의사를 세계 각지로 파견해 적화(赤化)를 시도한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파견된 쿠바 의사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를 인도주의적으로 보기도 어렵다.
 
 
  ‘설탕 수출’보다 ‘의사 수출’
 
  올해 2월 말, 《조선일보》는 우크라이나에 억류 중인 북한군 장병 두 명에 대한 단독 인터뷰를 공개한 바 있다. 헌법상 우리 국민인 20대 북한 청년 두 명이 심각한 부상을 입고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억류되어 있는 걸 극적으로 인터뷰한 것이다.
 
  이들은 제대로 된 영문도 모른 채 북한에 의해 먼 타국으로 파병(派兵)되어 별도의 수당이나 처우 개선도 없이 노예 같은 군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1만2000여 명 규모의 파병 병력 중 3분의 1가량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참혹한 상황이나 그 대가는 모두 김정은이 갈취한 셈인데, 사실 과거 쿠바의 해외 의사 파견도 이와 유사한 구조였다. 표면적으로는 인도주의적 협력이라고 하나, 실제론 ‘외화벌이’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통계를 살펴보자. 2023년 기준 쿠바의 국내총생산(GDP)은 1400억 달러(약 204조원) 정도에 그친다. 세계 GDP 순위로 살피면 67위 정도이고, 우리나라에서 충청도 지역을 뚝 떼어낸 정도의 경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국가에서 의사 수출을 통해 한 해에 벌어들인 인건비 수익이 110억 달러(약 16조원) 수준이다. 국가 GDP의 7.86%가 자국 의사를 각국에 파견 보내 얻은 수익인 셈인데, 지금 수치는 과거에 비해선 비중이 낮아진 것이다. 2012년경에는 국가 GDP의 12% 남짓이 의사 파견을 통한 인건비 수익이었을 정도로, 나라 전체가 의료인 수출에 매여 있었다. 오죽하면 주력 수출 품목인 설탕 수출액보다 자국민을 파견 보내어 얻는 소득이 더 크다는 자조적(自嘲的)인 목소리까지 나올까. 그렇다고 파견 간 의료인의 처우가 좋은 것도 아니다.
 
  해외 파견 쿠바 의사는 기본적으로 현지 정부가 지급하는 급여의 80% 이상을 쿠바 정부에 빼앗기고, 나머지 급여의 일부도 쿠바 복귀 후에 찾을 수 있게 동결한다. 현지인과의 사적(私的)인 접촉이 금지되는 건 물론 주(週) 60시간 이상의 근무가 강제되며, 전화 통화까지도 삼엄히 감시한다. 이런 여러 겹의 탈주 방지 규제가 갖춰져 있음에도 탈출하는 의사가 끊이지 않자, 탈주 의사에 대해서는 8년간 쿠바 입국을 제한하는 건 물론 본국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까지 보복을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의료 지원이라는 아름다운 이상(理想) 뒤에 북한의 외화벌이 파견 노동자와 같은 현대적 노예제가 숨어 있는 셈이다. 자국민을 볼모로 삼아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하는 곳을 본받자는 이들이 정말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구조가 쿠바 내의 의료 여건마저도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올해 《월간조선》 1월호에서 필자가 짚었듯, 현대 의학은 이미 수치 진단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규모 장치 산업으로서의 성격이 무척 짙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가장 프로그래밍 역량이 뛰어난 축에 드는 사람이라고 한들, 인터넷은 물론 기초적인 전산 장비조차 존재하지 않는 극빈국(極貧國)에서는 제 역량을 펼칠 수 없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낯빛만 살피고도 환자가 앓고 있는 질병을 맞췄다는 고대 중국의 신의(神醫) 편작(扁鵲) 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환자의 병을 올바르게 진단하기 위해선 현대적인 의료 장비가 필수다. 청진기 하나 달랑 든 의사보단, 첨단 영상진단 장비인 MRI나 CT를 이용하는 의사가 더 좋은 의술을 펼 수 있는 건데, 쿠바는 이것과 거꾸로 갔다. 의사를 양산해 파견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보니, 장비에 대한 투자는 줄고 의사만 잔뜩 늘렸다. 기초적인 진료는 받을 수 있어도 고급 진료라는 게 불가능한 환경이다. 의료 천국이라던 쿠바의 잿빛 현실이다.
 
 
  美 보험사 CEO 피살 사건
 
  과거 공산권 세계 분업 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쿠바조차 ‘의료인 수출’로 생계를 유지 중인 상황을 보면, 지금 와서 공산주의의 부활이나 용공을 염려하는 건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어쩌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이런 판단 끝에 냉전 종식 후에도 정부 한쪽에 남아 있던 국제개발처를 폐지하는 수순을 밟으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라진 건 공산주의만이지, 공산주의가 발흥할 수 있는 열악한 삶의 토대는 여전한 상태다. 이에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이 찾아낸 돌파구가 있다. 차라리 ‘질서 있는 악(惡)’에 가까웠던 공산주의가 아닌 제대로 된 이념 지향이나 방법론도 존재하지 않는 ‘통제 불능’의 극단주의다. 방향을 잃은 분노 표출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당장 미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관찰됐다. 트럼프 당선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는 1992년 대선 이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중 조지 부시 대통령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선거인단과 전국 득표에서 모두 과반(過半)을 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선거인단 제도와 무관하게 미국인의 과반이 선택한 사람을 더는 주류 정서와 동떨어진 극우적 인물이라 보긴 어렵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작년 말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진 초대형 보험사 CEO의 피살 사건이다. 비교적 번듯한 집안의 청년이 미국식 의료 서비스 이용에 불만을 품고, 본인 가족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던 보험사 CEO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미국은 총기사고가 빈번하니 비교적 흔한 범죄라 여길 수 있지만, 이보다 놀라운 건 이를 대하는 미국 국민들의 태도였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의뢰로 진행한 여론조사를 살펴보자. 전체 미국인의 21%가 보험사 CEO를 살해한 범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30대 미만에서는 그 비율이 40%로 껑충 뛰었다. 미국 정도의 국가에서도 기본적 의료와 복지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누적되면 이런 분노로 발전하는 것을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몰가치 제국주의’의 귀환
 
  그런데 개발도상국에서 국제개발처가 제공하던 보건 지원이 사라지고, 이제는 그 자리를 채울 공산권의 ‘쿠바 의사 배급’도 기대할 수 없다면, 그 자리에는 분노에 기반한 극단주의가 싹틀 수밖에 없다. 국제 무역에 참여하지도 않고, 외부 세력에 극도로 적대적인 배타적 정권이 들어설 개연성이 크다. 주요 선진국을 제외한 다수(多數) 국가가 이런 상황으로 전락하면, 자유무역이 이끌어오던 세계적 발전도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적화보다도 나쁜 결과다.
 
  그렇다고 이런 책임을 미국에만 지우기도 어렵다. 그런 부담이 미국에 집중된다는 것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트럼프식의 고립주의를 응원하고 있지 않나. 냉전 중에야 자유세계의 리더로서 책임을 요구할 수야 있었지만, 지금은 싸워 이길 거악(巨惡)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자유세계의 다양한 국가들이 이 부담을 함께 짊어져야만 하는데, 이마저도 ‘이권(利權)’이 개입한다는 게 문제다. 개발도상국의 이념을 원하는 형태로 바꾸려는 개입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자원 이권을 두고 각국이 경쟁하는 구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시감(旣視感)이 든다면 정상이다. 세계 각국이 식민지를 두고 다투던 몰가치(沒價値) 제국주의 시대가 돌아왔다는 얘기라서다.
 
 
  중국의 자원 이권 외교
 
  개발도상국의 자원 이권에 가장 먼저 눈을 뜬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일찌감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통해 이권을 선점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식이 지극히 악랄하다. 막대한 투자금을 지원해 개발도상국이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긴 하나, 거기에 고리대금업 수준의 이율을 붙이면 실질적으로 그 인프라는 중국 소유가 되기 십상이다.
 
  머릿속 예단이 아니라 실제로 스리랑카 같은 국가에서 발생한 생생한 현실이다. 스리랑카는 2010년 중국의 자본으로 함반토타 항구를 건설했는데, 정작 항구에서 벌어들이는 이윤이 자본 이자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라 그간의 빚을 상계(相計)하는 대가로 해당 항구를 중국 국영기업에 99년간 ‘임대’ 형태로 빼앗겼다. 난징(南京)조약으로 홍콩을 99년간 대여했던 역사를 남의 나라에서 한풀이하듯 재현하는 꼴이다.
 
  이런 사례가 누적되자 개발도상국들도 중국 자본을 꺼리기 시작했으나, 정작 손을 벌릴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원조 제국주의 국가인 유럽에 손을 벌리기엔 독립한 식민지로서 자존심이 상하고, 미국은 발을 빼고 있으며, 상대적 신흥 강국들은 국제 원조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가치 외교’ 표방하는 보건 외교 가능
 
아프리카에 희망을 심은 유덕종 교수는 1992년 이래 코이카 정부 파견 의사로 우간다·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에서 33년간 의료 봉사를 해왔다. 사진=유덕종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나라는 보건 분야에 있어 분명한 강점을 가진 국가이면서, 옛 식민주의 유산과도 거리가 있는 모범적 선진국이란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중국과 같이 지나치게 노골적인 경제적 종속 시도 없이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수 있는 보건 물자, 의약품, 심지어는 백신까지도 이들 국가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으니 ‘가치 외교’를 표방하는 보건 외교가 가능하다. 그 대가로 자원에 대한 약간의 우선권이나 이제는 반쯤 잊힌 단어인 최혜국(最惠國) 대우를 요청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테다. 우리 입장에선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생색을 낼 수 있는 기회다.
 
  조금만 더 눈을 넓히자면, 비슷한 산업적 배경을 공유하는 일본이나 대만과 공동 국제 협력체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현재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권위주의 국가들이 따로 떨어져 나간다고 하더라도, 동북아 민주주의 3개국은 주력 산업의 특성상 상호 간의 연계가 반쯤 필수적이다. 기왕 유사한 자원 확보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면, 3국이 협력해서 좀 더 좋은 조건을 받아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중동의 산유국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그러하듯, 우리도 반도체 수출국 기구와 같은 걸 설립해 반도체 원료나 희토류(稀土類) 등의 공급망 확보에 같이 협력하는 게 각국의 이익에 부합할 수도 있다. 한반도라는 좁은 시야에만 갇힐 게 아니라 조금 넓힌 동아시아, 아예 세계를 무대로 하는 외교와 무역 정책을 짜는 게 요청되는 시대가 왔다.
 
  아쉬운 건 현재 우리의 정치 상황이다. 각국에 관세 압박을 일삼는 중인 트럼프 행정부도 묘하게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선호하는 그에게 우리나라는 지금 그 누구도 나라를 대표하지 못하는 불능(不能) 상태에 빠진 비정상 국가로 보일 테니, 외견상 협상의 형태라도 갖추기 위해서 현재 정국이 타파되길 기다리는 모양새다. 그런데 결국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이 비뚤어진 외교관(外交觀)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떨까. 격랑의 시대에 우리나라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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