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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대사 인터뷰 ④ 아리스 비간츠 라트비아 대사

“러시아, 자국 전사자 시신을 동물 火葬 트럭에서 소각”

글 : 류종수  연세대 보건대학원 겸임교수·서울의과학연구소(SCL Healthcare Group)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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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과 김정은은 지구에서 쫓아내야 할 악마”
⊙ “대한민국에 주둔하는 2만 명 이상의 미군이 대한민국 번영의 안전판”
⊙ 구한말 러시아 베베르 공사가 라트비아 출신… 이완용 앞세워 아관파천
⊙ “라트비아, EU와 NATO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지금 국가 생존 장담하지 못했을 것”
⊙ “라트비아는 EU 진출 위한 완벽한 테스트베드”

柳鐘守
1962년생. 연세대 보건학 박사 / 美뉴욕플러싱 YMCA 이사장, 뉴욕가톨릭재단 부총장, 유엔재단 새천년개발사업 고문, 現 바레인왕국 국가보건의료최고위원회 고문, 남미개발은행(IDB) 남미국가 진단검사역량 강화사업 수석책임역, 서울의과학연구소(SCL) 국제사업 고문, 연세대 보건대학원 초빙교수
  아리스 비간츠(50) 주한 라트비아 대사는 정갈한 구레나룻 수염을 갖고 있다. 키 187cm의 장신인 그는 대화 중 온화한 미소로 상대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학자적 이미지의 외교관이다. 주(駐) 이탈리아 차석(次席) 대사, 주미 차석 대사를 지냈다.
 
  라트비아 외교부의 러시아 담당 국장을 역임한 후 2021년 1월 서울에 왔다.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3국은 북구와 러시아 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다. 400년 이상 폴란드 및 강력한 러시아-소련 제국 치하에서 살았다.
 
  인구 185만 명의 라트비아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인구 가운데 러시아인이 26%에 이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벨라루스와도 국경을 맞대고 있다.
 
  비간츠 대사와 지난 2년간 자주 만났다. 필자는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의 보건 정책과 의료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현지 방문을 자주 했다. 발틱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의료정보 시스템 구축사업을 위해 에스토니아 국가의료보험청과 협력사업을 했다. 북구 지역 대사들과 어울리다 자연스럽게 비간츠 대사를 알게 됐고, 우리 둘은 친구가 됐다. 주로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프랑스 식당에서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눴다.
 
  《월간조선》과의 인터뷰를 위해 2022년 12월 2일 저녁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뒤편 골목에 있는 아담한 2층 양옥의 대사관저에서 비간츠 대사를 만났다. 관저는 주한 스페인 대사관에 인접해 있다.
 
  러시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라트비아 외교부의 직전 러시아 국장에게 왜 푸틴의 러시아군이 1년 가까이 죽을 쑤고 있는지 물었다.
 
 
  “푸틴의 러시아군은 ‘포촘킨 빌리지’”
 
  비간츠 대사는 “포촘킨 빌리지를 아느냐?”고 필자에게 되물었다.
 
  푸틴 대통령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부패하고 무능한 장군들, 러시아 군부에 만연한 총체적 부정 비리로 인해, 러시아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한 것이 실패의 첫 번째 원인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비간츠 대사는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女帝·재위 기간 1762~1796년)의 일화를 소개했다. 쿠데타를 일으켜 남편인 표트르 3세를 축출한 예카테리나 여제는 34년간 통치했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러시아 남부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1783년 현재의 우크라이나 크림 지역을 합병했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합병된 지역의 총독으로 자신의 정부(情夫)이자 외교관을 지낸 포촘킨 사령관을 보냈고, 그 지역을 방문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포촘킨 장군은 수만 명의 군인과 일꾼들을 동원해서 그녀가 지나가는 길에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을 만들었습니다. 우아한 가옥들과 상점들을 그려서 세워놓은 겁니다. 아주 풍요하고 매력적인 도시가 세워졌고, 세련된 의복을 입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그 세트장을 돌아다녔습니다.
 
  모든 게 예카테리나 여제를 기만하기 위해 만든 가짜 세트였고, 꾸며진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하는 군인들과 일꾼들이었습니다. 포촘킨이 세운 가짜 마을을 ‘포촘킨 빌리지’라고 부릅니다.”
 
  비간츠 대사는 푸틴 대통령을 ‘부패한 권력자’이며 ‘사악한 범죄자’라고 불렀다. 라트비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눈에 훤했다.
 
  “푸틴의 장군들은 자신의 별장을 짓는데, 군대에 사용될 돈과 장비, 인력을 동원했습니다.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들이 군대 돈으로 별장만 지었겠습니까? 이런 부패가 군 상층부부터 하부까지 만연해 있습니다. 회계 조작은 물론이고, 무기 재고를 허위로 기록하고, 군수 물품을 부정 조달합니다. 푸틴의 군대는 21세기에 벌어진 또 하나의 ‘포촘킨 빌리지’입니다.”
 
 
  “김정은은 악마 같은 지도자”
 
2022년 9월 15일 외교부가 주최한 제주포럼에 참석한 각국 대사들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반 전 총장 왼쪽이 비간츠 대사다.
  비간츠 대사의 날카로운 시선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으로 향했다. 소련 공산주의 치하에서 나고 자란 그는 김정은을 ‘악마 같은 지도자’라고 잘라 말했다.
 
  김일성-정일-정은을 한반도의 정통 세력으로 추앙하는 종북(從北) 주사파(主思派)들이 들었으면, 모골이 송연해질 직설적인 비판이다.
 
  EU(유럽연합)는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 관여하고 있다. 유엔의 북한 인권 규탄 결의안을 매년 주도적으로 발의하는 국가들이 유럽 나라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5년 내내 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니면서 “김정은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 사정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문재인의 면전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먼저다. 프랑스는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공박했다. 그렇게 애달프게 고생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평화경제’를 김정은에게 제안했다가,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에게서 “삶은 소 대가리 앙천대소할 일”이라고 욕을 먹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국제사회를 향해 “김정은을 도와달라”고 하소연해야 할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비간츠 대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대사는 김정은이 왜 핵개발에 집착하는지 핵심을 간파하고 있었다.
 
 
  “러시아, 동물 火葬 트럭 동원 군인 소각”
 
  “부패한 정치 지도자들은 인간 존엄에 아무런 경외심이 없습니다. 본인의 생존과 이익만 추구할 따름입니다. 부패한 독재자들은 국민들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세뇌시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참혹하게 학살했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도 이 전쟁을 지지하는 러시아 시민들이 80%나 됩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군대와 국가 감시기구를 모두 동원해서 주민의 인권을 말살시킵니다. 주민들은 기아에 허덕이면서 죽어가는데 핵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왜 핵무기를 개발하겠습니까?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로 자기 정권의 생존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70년 이상 3대에 걸쳐 국민들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했습니다. 북한은 세뇌 교육과 공포정치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푸틴이나 김정은이나 하는 짓이 비슷합니다.”
 
  비간츠 대사는 필자가 지금까지 어떤 외신을 통해서도 접해본 적이 없는 러시아 군대의 만행을 하나 전해주었다.
 
  “러시아 군인 중에 실종자들이 많습니다. 동물을 화장시키는 이동식 화장 트럭이,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군인이 사망할 경우, 수천 달러에 달하는 보상금과 연금을 매달 주어야 합니다. 실종자는 보상금과 연금을 주지 않아도 되니까, 군인들의 유해를 이동식 화장 트럭에서 화장해버린다고 합니다.”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독재자들과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 비간츠 대사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런 악마 같은 지도자들은 지구상에서 빨리 사라지게 만들어야죠.”
 
 
  “주한미군이 한국 번영의 안전판”
 
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비간츠 대사.
  미국, 영국, 러시아와 구(舊)소련 연방 3개국(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은 1994년 12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소련 연방 3개국은 자신들이 보유한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영토 보전과 주권 보장, 경제적 지원을 받기로 했다.
 
  그 당시 우크라이나는 세계 3대 핵무기 보유국이었다. 핵탄두 1700여 기(基),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170여 기 이상을 갖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핵무기 감축 협상에 순응했고, 안보 공백의 수렁에 빠지게 됐다.
 
  부다페스트 조약이 체결된 지 20년 후인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침공해 러시아 영토로 강제 합병했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력(武力) 개입에 나서지 않았다. 부다페스트에서 체결한 양해각서에 ‘무력 개입을 한다’는 약속이 없었고, 러시아가 거부권을 가진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이어서 유엔 차원의 제재 또한 불가능했다.
 
  비간츠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을 겁니다. 핵무기 실험과 개발에 수억 달러를 사용하고, 주민들이 굶어 죽더라도 핵탄두만큼은 지키겠다, 그래야 김씨 집안이 대를 이어 통치하는 독재정권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 한반도의 비핵화를 추구하는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부정적인 학습효과가 김정은에게 생긴 것이지요.”
 
  비간츠 대사는 우크라이나와 한국의 안보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부다페스트 조약은 구소련 연방 3국에 대해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방위조약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미국이 유사시 군사적 개입을 조약으로 보장한, 미국의 군사 동맹국입니다. 아무리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고 해도 한미방위조약은 북한의 침공에 충분한 억제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비간츠 대사는 “한미 군사동맹의 강화, 주한미군의 주둔이 북한 핵위협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대한민국은 라트비아와 비교해 아주 큰 나라입니다. 하지만 초대형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의 군사 도발이나 핵무기 위협을 관리하는 것은 어려운 숙제입니다. 대한민국에 주둔하는 2만 명 이상의 미군이 대한민국 번영의 안전판입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상황은 대한민국에 있어 최악의 위기가 될 것입니다.”
 
 
  “라트비아어와 러시아어 공용”
 
2022년 2월 대한민국소비자브랜드대상위원회가 비간츠 대사에게 주한 친선교류 대사상을 수여했다.
  라트비아는 1990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비간츠 대사는 소련군이 마지막으로 철수한 1994년 라트비아 외교부에 입부(入部)했다. 그가 외교관이 됐을 때 라트비아에는 북유럽·서유럽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열정이 넘치고 있었다.
 
  구소련은 1940년부터 1990년까지 50년간 라트비아를 점령, 통치했다. 라트비아와 발틱 3국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러시아 내전이 시작되고, 독일·스웨덴 등 주변 강대국들이 쇠락했을 때 독립을 얻었다. 하지만 소련은 1940년 발틱 3국을 재합병했다.
 
  소련은 러시아인들을 라트비아에 계획적으로 이주시켰다. 1990년 독립 무렵에는 라트비아 인구의 30%가 러시아인이었다. 러시아 이주민들이 주요직에 임용됐고, 라트비아인들과의 갈등이 심각했다. 라트비아는 현재 라트비아어와 러시아어를 공용하고 있다.
 
  “우리 발틱 3국(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은 지난 1990년 러시아와의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독립국가의 기반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3국이 전략적으로 협력하면서, 독립국가로서 지속 성장 가능한 방안이 무엇인가 모색했습니다. 전체 인구의 30%가 러시아인이었던 라트비아는 사회 통합이 중요했습니다.
 
  라트비아에는 지금 25만 명이 무시민권 여권(Non-Citizenship Passport)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라트비아에 살지만 국적을 라트비아에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러시아 국적입니다. 선거권이나 공무 담당권이 없지만, 사회 보장과 공공의료 혜택 등 시민의 권리와 생존권은 차별없이 보장받습니다. 러시아와 가능한 한 갈등 없이 지내고, 독일이나 폴란드 계통의 소수 민족 구성원들이 화합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구한말 베베르 공사가 라트비아 출생
 
베베르 공사 부부.
  비간츠 대사는 구한말이던 1885~ 1897년 서울 주재 러시아 공사로 일하면서 조선의 정국을 주물렀던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가 라트비아 출신이라고 알려줬다. 베베르 공사는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가 조선을 놓고 쟁패를 벌이던 시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로부터 대만과 요동을 할양받기로 했다. 베베르 공사는 프랑스와 독일을 움직여 일본이 요동을 토해내도록 압력을 가했고, 이를 성사시켰다. 3국 간섭이었다.
 
  베베르 공사는 을미사변(1895년)으로 아내를 잃은 고종에게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도록 제안했다. 고종은 아라사(러시아) 대사관으로 도피해서 1년간 머물렀다. 베베르는 이완용을 앞세워 친러 정부를 구성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일본이 조선의 종주국 청나라를 깨부수고, 궁궐을 뛰어넘어 들어와서 자신의 아내를 참혹하게 살해하자, 고종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고종은 베베르에게 절박하게 매달렸다. 베베르는 그걸 이용해서 아관파천 이후 광물 채굴권, 산림 채벌권 등 수많은 이권을 챙겼다.
 
  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라트비아에는 독일계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베베르는 그 후손이다. 비간츠 대사는 라트비아 지도를 꺼내 베베르가 태어난 항구 도시 리예파야(Liepaya)를 짚어주었다. 리예파야는 라트비아 서해안에 위치해 있었다. 한때 조선의 운명을 쥐락펴락했던 러시아인이 라트비아에서 태어났다니 놀라운 인연이다.
 
  베베르 공사는 루터교를 믿는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대학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했고, 주한 공사를 마친 뒤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았다고 한다.
 
 
  “작은 나라는 외교를 잘해야”
 
비간츠 라트비아 대사와 가족들. 비간츠 대사는 주(駐) 이탈리아 차석(次席) 대사, 주미 차석 대사를 지냈다.
  비간츠 대사는 19세기 러시아와 한국 관계에 대한 역사자료를 찾아보면서 공부하는 것이 취미다. 대학에서 엔지니어링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외교관이 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라트비아는 인구 200만의 작은 나라입니다. 작은 국가가 대국의 침략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지속 발전하려면 외교를 잘해야 합니다. 부국강병(富國强兵)해서 대국에 힘으로 당당히 맞서면 좋겠지만, 라트비아같이 작은 나라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저는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국제협력이나 국제경제,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강의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게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비간츠 대사가 외교부에 들어간 1994년 무렵 라트비아는 다시 독립한 신생 국가였다. 라트비아의 정치 지도자들은 라트비아가 주권국가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EU와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회원국이 되어야 한다고 결단을 내렸다.
 
  그는 라트비아가 1997년 EU와 NATO 가입을 신청할 때 실무팀의 일원으로 일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3개월 동안 긴 협상을 벌이면서, EU와 NATO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발틱 3국은 노르딕 국가(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EU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외교, 군사, 교육, 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EU의 기준에 맞게 라트비아 국내 법률 체계를 정비하고, 조례를 만들어야 했다. 수만 페이지의 문서를 EU에 제출했다. 주제마다 EU와 NATO 평가단의 심사를 받았다. 10년에 가까운 노력 끝에 발틱 3개국은 2004년 EU와 NATO의 정회원국이 됐다.
 
  “러시아는 발틱 3국이 서방의 멤버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절체절명의 선택이었습니다. 라트비아가 지역 공동경제연합체인 EU, 집단방위조약인 NATO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지금 국가 생존을 장담하지 못했을 겁니다. 국가의 생존과 자주권이 달린 선택이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당하는 불행을 보면서, 외교관으로서 라트비아의 미래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녹색 힐링의 나라
 
비간츠 대사가 라트비아 에길스 레비츠 대통령에게 가족들과 함께 신임장을 받고 있다.
  비간츠 대사는 라트비아를 이렇게 소개했다.
 
  “발틱해 동쪽에 위치한 라트비아는 500km에 달하는 새하얀 모래 해변, 훼손되지 않은 울창한 숲, 친절한 사람들을 품고 있습니다. 녹색 힐링의 나라입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비행기로 1시간10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2시간20분 거리입니다. 인구 밀집도가 한국의 20분의 1입니다. 라트비아는 국토의 80% 이상이 숲과 초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국 같은 산악 지역이 없고, 구릉과 초원들이 널려 있습니다. 푸른 초원과 숲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몇 시간씩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오솔길들이 어디에나 있습니다. 힐링을 원하는 한국분들에게 라트비아보다 더 나은 휴양지는 없을 겁니다.”
 
  비간츠 대사는 두통에 좋다는 라트비아의 생약을 집어 들고서 “한국의 민간 약재와 비슷한 라트비아 전통 약재”라고 소개했다. 라트비아 홍보에 접어들자, 대사는 세일즈맨 못지않은 입심을 드러냈다. 라트비아에 대한 ‘깨알 홍보’가 이어졌다.
 
  “라트비아의 숲은 대부분이 국유지입니다. 여러 가지 자연산 버섯들과 약초들을 자유롭게 캘 수 있습니다. 건강에 좋은 블루베리와 크랜베리, 라즈베리를 따서 그 자리에서 드셔도 됩니다. 숙소에 가져와서 샐러드 재료로 사용해도 되고, 잼으로 만들어 먹어도 좋습니다.”
 
  “라트비아의 숲 속에는 엄청난 보물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새로운 약들을 개발할 수 있는 천연 재료들이 산재해 있지요. 숲에서 나는 약초들과 허브들이 우리 라트비아인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라트비아는 사계절이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수도 리가의 공원에서는 겨울에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길 수 있습니다. 스키장이 어디에나 있고요.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만족하실 겁니다.”
 
 
  KTX에도 라트비아산 강화 유리 사용
 
비간츠 대사가 라트비아 특수 유리와 일반 유리가 장착된 비교 액자를 들고 있다. 라트비아산(産) 유리는 반사가 안 돼 유리가 없는 듯 보인다.
  비간츠 대사는 한국인과 라트비아인의 문화적 공통점으로,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점을 들었다.
 
  “라트비아인들은 한국인만큼 춤과 노래를 좋아합니다. 발틱 3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노래와 춤의 대향연(Song and Dance Celebration)’이 5년에 한 번 라트비아에서 열립니다. 수만 명이 민속 복장을 입고 합창하고, 춤을 추죠. 1873년에 시작된 이 축제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외국 관광객이 이 축제를 보려고 찾아옵니다.
 
  큰 행사는 5년에 한 번 있습니다. 라트비아에서는 매년 7월 첫째 주에 합창하고 춤추는 행사들이 곳곳에서 벌어집니다. 7월 초에 라트비아를 한 달쯤 방문해 환상적인 즐거움을 누려보십시오.”
 
  라트비아는 1917년 러시아 제국에서 독립한 이후 산업화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주요 품목은 특수 유리와 목재 가공품들이다.
 
  비간츠 대사는 나비가 한 마리씩 들어 있는 작은 액자 두 개를 들어서 보여주었다. 한쪽은 무반사 특수 유리를 사용했고, 한쪽은 일반 유리를 사용했다는데, 특수 유리를 사용한 액자는 반사되는 빛이 없어서, 유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비간츠 대사는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의 유리 액자에 라트비아에서 만든 무반사 특수 유리가 사용된다고 자랑했다. 한국 고속철의 차량 유리에도 라트비아산(産) 강화 유리가 쓰인다고 한다.
 
 
  “EU 진출을 위한 완벽한 테스트베드”
 
  라트비아는 숲이 많은 나라여서, 목재 가공 산업이 유명하다. 세계적인 가구기업인 스웨덴의 이케아(IKEA)에 많은 양이 수출된다.
 
  “유조선과 LPG 운반 선박들의 탱크 외부에 탱크를 외부 온도의 변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특수 목재로 제작된 절연제를 붙여줍니다. 이 특수 목재가 라트비아에서 많이 생산됩니다.”
 
  “라트비아에서 조립형 이동식 목재 가옥을 인터넷으로 구입한 한국 분이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린 것을 최근에 봤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우리 라트비아가 조립식 목조 가옥까지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라트비아를 포함한 발틱 3국은 최근 디지털 소프트웨어 개발과 디지털 신기술 개발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발틱 3국은 작은 나라들입니다. 공해와 산업 폐기물들을 만들어내지 않는 녹색산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 소프트웨어 개발 산업 분야입니다. 라트비아는 EU 회원 국가입니다. EU의 모든 노동·환경 지침, 사회복지 의료·보건 가이드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EU 진출을 위한 완벽한 테스트베드(Test Bed)가 될 것입니다.”
 
  비간츠 대사는 한국 기업이 라트비아에 진출, 이 분야에서 스타트업 기업을 만들 것을 권했다. 서유럽 국가에 진출할 때보다 비용이 3분의 1 정도이고, EU 시장에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점이 강점이라고 했다.
 
  “제가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지 않습니까. EU는 한국에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라트비아 정부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많은 세제 혜택을 드립니다. 라트비아에서 훨씬 저렴한 투자 비용으로 스타트업을 시작하면 EU 시장의 한복판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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