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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대중문화 속 저출산·고령화

아이 낳지 않고 노인들을 혐오하는 디스토피아 오나?

글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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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차기작은 〈노인 죽이기 클럽〉… 가키야 미우의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
⊙ SF 〈칠드런 오브 맨〉, 이민자 착취하고 애완동물에 빠지는 저출산 사회의 디스토피아 그려
⊙ 미국 영화 〈이디오크러시〉, 대중이 지닌 사회적 불안과 개인 가치의 추구가 저출산 현상 유발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영화 〈칠드런 오브 맨〉.
  12월 4일(현지시각) 결국 미국 CNN에서도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상황에 대해 대대적으로 다루는 특집기사를 냈다. 이로써 BBC, 블룸버그 등 웬만한 유수의 외신들은 한 번씩 ‘한국형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넘어간 셈이다. 그만큼 현재 한국 상황은 세계적으로 너무나도 독보적인 기현상(奇現象)이라는 방증이다. 또 많건 적건 비슷한 저출산 흐름을 겪는 여러 선진국에 경종을 울리는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CNN은 기사 ‘한국은 2000억 달러를 썼지만 사람들이 아이를 갖게 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를 통해 2022년 3분기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9명인 점을 들어 “한국은 최근 세계 최저 출산율 기록을 깼다”면서 “이는 안정적인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에 크게 못 미치고, 출산율이 떨어진 미국(1.6명), 일본(1.3명)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라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금 제도를 뒷받침해줄 노동 인력의 부족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사실 이번 CNN 기사는 지난 1~2년 동안 다른 외신들이 쏟아낸 한국의 상황 분석과 그 진단 측면에서 딱히 다를 것은 없다. 아무리 관련 예산을 쏟아부어도 오히려 출산율은 더욱 떨어지고 있으니 이제 사회·문화적인 요인들을 살펴봐야 할 때라는 지적도 매번 똑같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그 원인을 콕 집어 규명하고 해소하지 못하는 것처럼 외신들도 원인을 분명히 파악 못 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러니 사실상 과거 기사들에 ‘덮어쓰기’만 반복할 뿐 새로운 관점이 나오지도 않는 실정인데, 어찌 됐건 매 분기 기록(?)은 꾸준히 경신되고 있으니 계속 비슷비슷한 논리로 추가 기사들만 늘리고 있는 셈이다.
 
 
  ‘인공자궁 테러 사건’
 
  그런데 이번 CNN 보도와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풍경이 하나 더 덧붙었다. 보도 바로 직전, 저출산·고령화와 관련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국내에서 등장해 나름 화제를 모았다는 점이다. EBS의 SF 토크쇼 〈공상가들〉 4화로 방영된 ‘인공자궁 테러 사건’ 편이다. 〈공상가들〉은 극도로 발전된 미래세계의 범죄 사건을 설정한 뒤 이에 대해 토론하는 특이한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인공자궁 테러 사건’은 초저출산 흐름이 극단으로 치닫고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자연출산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기 어려워지자 임신과 출산을 통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인공자궁 기술이 대중화된 미래를 다뤘다.
 
  물론 지금의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콘텐츠는 아니었지만, 어찌 됐건 이 같은 광경은 현존하는 사회적 딜레마와 당대 대중문화 간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볼 계기를 마련해준다. 하나는 어찌 됐건 대중문화는 꾸준히 당대의 현실적 문제들을 발 빠르게 소화해 반영함으로써 상업성을 추출(抽出)해내는 분야이기에, 돌이켜보면 저출산·고령화와 관련해서도 꽤나 다양한 콘텐츠를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위 〈공상가들〉 에피소드도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소설, 영화, TV 드라마, 만화 등에 걸친 SF(Science Fiction) 장르의 역할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SF 장르는 사회적 차원에서 흔히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각종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흐름들을 바탕으로 만약 이런 흐름 중 일부가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어떤 상황들이 벌어질지 상상해 우화(寓話)적으로 들려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SF 콘텐츠를 현실에 대한 비평이자 세태에의 경고를 기반으로 삼는 엔터테인먼트라고들 한다. 잠깐만 돌이켜봐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나 앤서니 버지스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 등 떠오르는 예들이 많다. “세상이 20~30년 전 봤던 SF영화처럼 돼간다”는 건 어느 때나 흔하게 쏟아지는 소회(所懷)다.
 
 
  이미 현실이 된 〈칠드런 오브 맨〉의 세계
 
  그런데 그런 SF 콘텐츠조차 지금 한국의 극단적이고 기괴하기까지 한 저출산·고령화 흐름을 정확히 예측해 보여준 예는 사실상 없다. 비단 국내뿐 아니라 세계 어디 콘텐츠를 살펴봐도 그렇다. 이럼에도 굳이 비슷한 상황을 담은 SF 콘텐츠를 몇 꼽아보자면, 먼저 영국 소설가 P.D. 제임스의 원작을 토대로 한 2006년 미국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을 들 수 있다. 근(近) 미래인 2027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전 인류가 불임(不姙)을 겪게 된 상황을 다룬다.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인간은 현재 18세 4개월이고 이후로는 아무도 태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는 그 아이가 살해당해 인류 전체가 그를 애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애초에 전제 자체가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저출산 상황과는 크게 다르다. 언급했듯,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아 생기는 위기는 SF 작가들조차 생각해본 적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칠드런 오브 맨〉이 상상해낸 저출산[영화 설정상으로는 무출산(無出産)]·고령화 시대 풍경들은 분명 되짚어볼 만하다. 먼저 종족 번식의 희망을 잃은 인류는 자포자기(自暴自棄) 심정으로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 폭동과 테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그나마 정부가 기능하기라도 하는 나라는 영국밖에 남지 않았다는 설정이다.
 
  무출산에 따른 고령화의 디스토피아적 상황도 차곡차곡 묘사된다. 고령화로 더 이상 복지 체계가 기능할 수 없게 되자 정부 차원에서 죽음에 이르는 극약을 노인들에게 배포한 뒤 복용을 권유하는 끔찍한 설정이 펼쳐진다. 원작 소설은 이 디스토피아를 묘사하는 데 영화보다 더 구체적이다. 선진국에서는 후진국들로부터 이민을 대거 받은 뒤 이들을 노동계급이자 이등국민(二等國民)으로 만들어 착취함으로써 기존의 체계를 지키려 하지만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오히려 대규모 이민자들이 거대한 사회 위협으로 돌변한다는 설정, 아기가 태어나지 않자 애완동물이 인간 아기와 비슷한 취급을 받아 교회에서 세례(洗禮)도 받고 새끼를 낳으면 기념행사도 성대하게 치르는 등의 세태가 상세히 묘사된다.
 
  그 모습 중 몇몇은 이미 유럽 선진국들에서, 그리고 일부는 지금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기에 웃고 넘어가기 힘들다. 예컨대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애완동물(반려동물) 연관 산업 규모는 사상 처음 4조원을 넘어설 것이라 한다. 2016년 2조1455억원에서 불과 6년 만에 배로 규모가 커졌고, 5년 뒤인 2027년에는 6조원대에 이를 것이라 한다. 국내 출산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사회적 불안이 저출산으로 이어져
 
  한편, 또 다른 대중문화 콘텐츠 사례로는 2006년 작 미국 영화 〈이디오크러시〉를 들 수 있다. 엄밀히 전제 자체는 저출산·고령화 미래를 다룬 것이 아니지만, 어찌 됐건 흥미로운 설정이 등장한다.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각자 삶의 질을 고려해 철저한 자녀계획을 세우고 가정이 재정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임신을 미루다 결국 가임기(可姙期)를 놓쳐 자식을 못 갖게 되는 반면, 교육받지 못한 노동계급 가정에선 그 책임을 생각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보니 지능 높은 이들 유전자는 대(代)가 끊겨 지구상 인류 대부분이 지능이 떨어지는 이들로 구성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다는 황당한 설정이다.
 
  비록 영화 자체는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를 풍자하는 내용이고, 저출산 문제를 짚는 것조차 아니지만, 대중이 지닌 사회적 불안과 개인 가치의 추구가 저출산 현상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실마리 정도는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도 한국 사정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은 지금 개개인의 지능이 높건 낮건, 중산층이건 빈곤층이건 ‘모두가’ 아이를 갖지 않는 분위기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다.
 
 
  〈오징어 게임〉 후속작 〈노인 죽이기 클럽〉
 
영화 〈노인 죽이기 클럽〉을 만들 예정인 황동혁 감독. 사진=뉴시스
  이처럼 한국의 특이한 저출산 상황에 대해선 대중문화가 도무지 현실의 광포(狂暴)한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이로 인한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과 딜레마, 공포에 대해선 대중문화도 꽤나 일찍부터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해왔다. 한국처럼 격렬한 저출산 곡선을 그리는 나라가 딱히 없을 뿐 만성적 문제로서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은 이런저런 선진국들에서 공통적으로 겪어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 세계적 명사가 된 한국의 황동혁 감독은 2022년 4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국제 영상콘텐츠 박람회 밉TV(MipTV) 행사에서 차기작 소식을 알렸다. 〈노인 죽이기 클럽(Killing Old Men Club)〉이라는 제목의 영화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한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글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논란의 여지가 있을 법한 영화로 〈오징어 게임〉보다 더 폭력적일 것”이라 예고했다. 또 “영화가 나온 다음 노인들은 숨어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고까지 했다.
 
  〈노인 죽이기 클럽〉이 영감(靈感)을 받았다는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글은 그의 유작 에세이집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 실린 한 칼럼인 것으로 보인다. 해당 칼럼은 만연한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저임금·저숙련의 불안정 노동 무산계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자식 없는 노인들부터 제거하자’는 끔찍한 논리를 들려준다.
 
  “예전에는 평균 예순이면 죽었다. 오늘날엔 아흔까지 산다. 연금과 사회 보조금을 30년이나 더 받아먹는다는 말이다. 알다시피 연금과 사회 보조금은 젊은이들이 지불한다.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해서 수많은 노인을 먹여 살린다는 뜻이다.”
 
  〈노인 죽이기 클럽〉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과연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짐작이 가게 한다. 위와 같은 문제들로 노인 혐오가 심각해진 분위기에서 ‘노인 죽이기 클럽’이라는 조직이 등장, 황동혁 감독 말마따나 “노인들은 숨어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황으로 치닫는 설정 말이다. 그리고 그 설정이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는 한국의 고령화 문제와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점도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70세 사망법안, 가결》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
  사실 이 같은 설정의 근(近) 미래 SF 콘텐츠는 역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화(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 20% 이상)에 이른 나라,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먼저 2012년 출간된 가키야 미우의 소설 《70세 사망법안, 가결》을 들 수 있다. 이미 과거가 돼버린 2020년을 배경으로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부작용이 한계까지 치달아 이제 70세가 된 노인은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는 상황을 다룬다. 상당 부분 앞선 《칠드런 오브 맨》에서 정부 차원의 ‘자살 권유’ 설정과 일치한다.
 
  비슷한 설정으로 일본에서는 영화도 나왔다. 2022년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신인상에 해당하는 ‘카메라 도르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영화 〈플랜75〉다. 마찬가지로 생산 인구 감소와 막대한 의료 및 복지비용 탓에 국가 재정이 파탄 날 위기에 처한 미래 일본 사회를 다룬다. 상황이 이러자 ‘플랜75’ 제도를 제정, 75세가 넘은 노인들에게 담당 공무원들이 찾아가 죽음을 권유하고 TV 광고로도 노인들의 자살을 권하며 그렇게 유도돼 자살을 신청하면 국가에서 위로금으로 10만 엔을 입금해준 뒤 자살 실행을 도와준다. 물론 개인의 자유로 75세 이상 살 수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사회 전체가 노인들에게 소위 ‘죽음 분위기’를 조성해버린다. 더 끔찍한 것은,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속 TV 뉴스에서는 “정부에서 ‘플랜75’가 호조를 보임에 따라 ‘플랜65’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번엔 65세로 더 내려가는 것이다.
 
 
  日 일러스트, ‘코로나19로 부양 부담 줄어든다’
 
  문제는 이 같은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의 예견이 벌써부터 어느 정도 현실화돼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70세 사망법안, 가결》, 〈플랜75〉가 보여주는 미래보다는 황동혁 감독의 〈노인 죽이기 클럽〉에 가까운 노인 혐오 만연 분위기가 일본 사회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상황을 담은 《한국일보》 2020년 3월 23일 자 기사 “‘코로나19로 부양 부담 준다?’ 日 노인 혐오 일러스트 논란”을 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취약연령인 고령층의 감염 및 사망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로 인해 노인에 대한 부양 부담이 줄어드는 것을 환영한다는 맥락의 혐오 일러스트가 확산되면서 23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의 한 트위터리안은 지난 21일 두 장의 일러스트와 함께 “빨리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라는 멘션을 단 게시물을 올렸다. 이 그림들은 청년 몇 명이 수십 명의 어르신을 떠받치며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이다 이들이 사라지자 밝은 표정으로 함께 기뻐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사실 이 그림은 2016년 ‘현대의 일러스트’라며 일본 트위터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에서는 자동차를 모는 노인 앞에서 두려워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 또한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노인들의 조작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가 많아지자 이를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번엔 원본의 일러스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붉은 구체들이 추가됐다. (중략)
 
  일본의 이 일러스트들 역시 코로나19 국면에서 수만 명이 리트윗하는 등 같은 맥락으로 다시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이 게시물을 접한 일부 트위터리안은 “코로나19에도 의미가 있다?”(C****),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되면 나라가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다”(F****) 등 동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현실은 이미 여기까지 와 있다. 결국 ‘잠수함의 토끼’라는 대중문화계 SF 콘텐츠는, 비록 근(近) 미래 저출산 현상의 원인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알 수 없는 질병이나 핵전쟁 등의 간편한 원인만을 취하고 있지만, 어찌 됐건 이로 인해 벌어진 초고령화 사회의 지옥도(地獄圖)만큼은 현실과 어느 정도 맞물리게 제시해오고 있던 셈이다. 특히나 한국 입장에서라면 이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미래에 벌어질지 모를,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씨앗이 심어지고 있을지 모를 미래 세태를 미리 파악해 갈등을 미연(未然)에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 모른다.
 
 
  “‘고딩엄빠’는 저출산 극복에 도움”(나경원)
 
  끝으로, 근래 저출산·고령화 이슈가 대중문화와 만나 소란(?)을 일으킨 경우를 하나 더 짚어보겠다. 어쩌면 각종 언론미디어 보도를 통해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소식이 아닐까도 싶다. 아래는 《조선비즈》 2022년 11월 24일 자 기사 “‘나혼산’ 비판한 나경원… ‘고딩엄빠’는 저출산 극복에 도움 돼” 일부다.
 
  〈나경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24일 MBN 예능 프로그램 ‘고딩엄빠’를 언급하며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고딩엄빠’ 같은 프로그램은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앞서 나 부위원장은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예시로 들며 “이러한 프로그램으로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인식되는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략) 그러면서 “‘나 혼자 산다’는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안 된다 했더니 그게 또 MBC 프로그램이더라”라며 “사실은 MBC인지는 몰랐다”고 언급했다. 나 부위원장의 말에 의원들 사이에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나 부위원장은 이어 “‘고딩엄빠’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런 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위에서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들에 대한 평가는 둘째치고라도, 일단 이런 식으로 특정 사회현상에 대중문화 콘텐츠가 영향을 주고 있거나 줄 수 있다는 주장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등장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을 관찰해온 연구들은 이와는 조금 다른 입장을 취한다. 일단 기반이 되는 사회 현실 없이 대중문화 콘텐츠가 단독으로 대중에 영향을 끼쳐 소위 ‘의식혁명(意識革命)’을 만들어내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철학자 에릭 호퍼의 아포리즘, “혁명이 변화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변화가 혁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통찰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은 그렇게 현실을 반영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등장한 뒤 현실과 콘텐츠 간 상호작용(相互作用)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견해다. 현실적 문제를 다룬 것이긴 하나 대중문화가 상업성을 위해 그에 좀 더 자극적으로 양념을 치고 한껏 과장시켜 풀어낸 뒤 대중에 전달하니 해당 문제가 오히려 더욱 부각돼버리는 일이 종종 목격된다는 것이다.
 
 
  산아제한 강조했던 〈골목 안 풍경〉
 
산아제한을 강조했던 1962년 작 영화 〈골목 안 풍경〉. 사진=유튜브 캡처
  물론 그런 영향도 무시할 것은 못 된다. 애초에 문제의 원인은 아닐지언정 어찌 됐건 상황을 지속시키는 데 일조(一助)를 하고 있는 것은 맞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전체 국내 대중문화 콘텐츠를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와 ‘도움이 되지 않는 콘텐츠’로 나눠놓고 생각해보면 또 다른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과연 한국 대중문화산업에서 그간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가 나온 적이 있기는 한가라는 점이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MBC 〈전원일기〉 유의 몇몇 농촌드라마나 주말 가족드라마 정도 외에는 떠오르질 않는다.
 
  반면 그 반대 경우는 지난 60여 년간 수두룩했다. 이게 1962년 박종호 감독의 영화 〈골목 안 풍경〉까지 간다. 산아제한(産兒制限) 정책이 포함된 가족계획이 정부 차원에서 발표된 바로 그해에 나온 영화로, 당시 서울 인구가 이제 240만 명을 넘어선 점을 언급하며 “이젠 사람이 사람 등쌀에 밟혀 죽을 지경이다”라는 대사로 시작된다. 그러고는 9남매를 키우느라 고통받는 주인공 부부의 사연을 중심으로 이들 가정이 절대 화목하거나 평화롭지 않고 자식을 많이 갖는 것이 좋은 삶으로 이끄는 게 아님을 영화 내내 역설(力說)한다. 심지어 피임(避妊)의 중요성에 대한 진지한 대화까지 수차례 등장한다.
 
  당연히 이런 콘텐츠는 〈골목 안 풍경〉 이후로도 지금껏 수없이 나왔다. 일단 대가족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가 이렇듯 지난(至難)한 삶을 다루고 있고, 특히 많은 자녀를 둔 가정의 부모가 자식들에게 헌신하며 자기 인생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늙어만 가는 모습에 역점을 뒀다. 대부분은 그러면서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식이었는데, 과연 이런 콘텐츠를 본 자녀들 입장에선 ‘부모가 된다는 것’에 어떤 생각을 품게 됐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부모 노릇’
 
  사실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부모 입장에서의 자기연민(自己憐愍)은 한국 문화 콘텐츠에서 빠지지 않는 스테디셀러 코드 중 하나다. 영화나 TV 드라마만의 얘기도 아니다. 예컨대 나태주 시인의 ‘부모노릇’ 같은 시는 또 어떤가 말이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주고
 
  그리고도 남는 일은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져주기”

 

  그럼 그렇게나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왜 자녀를 가져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이들 콘텐츠에서 이렇다하게 내놓지 못한다. 그저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가 끝이다. 그러다 보니 각종 TV 드라마에 나오는 딸이 엄마에게 하는 클리셰 대사는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가 된 지 오래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대중문화 콘텐츠 분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언 60여 년 지속돼온 오랜 흐름이다.
 
  물론 이런 콘텐츠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감정과 감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접근에도 분명 예술적 가치가 있고, 공감(共感)이라는 메커니즘하에서 그 나름의 긍정적 역할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한국인들은 본래 문화 콘텐츠를 통해서건 아니건 자기연민을 무척이나 즐긴다. 때로는 자학(自虐)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측면 또한 존재한다. 소재에 상관없이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더더욱 대중문화 콘텐츠를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와 ‘도움이 되지 않는 콘텐츠’로 나누는 식의 접근과 이해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최소한도 60여 년 지속돼온 콘텐츠 흐름이기에 이제 와서 무엇이 문제가 되고 아니고를 따질 단계가 아니다. 또 그 흐름을 이제 와서 뒤집기도 힘들고 실질적으로 뒤집을 수도 없다. 더 중요한 건, 애초에 ‘그게’ 문제가 아니다.
 
 
  대중문화를 통한 미래 예측
 
  결국 얘기는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저출산·고령화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에 있어 대중문화에 기대할 수 있는 건 그 원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거나 문제의 확산을 막도록 대중을 계몽하고 계도하는 역할이 아니라, 인간 감정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예술가들의 왕성한 상상력을 통해 미래에 벌어질지 모를 더욱 해결 곤란한 상황들을 미리 예측해보는 정도라는 것이다.
 
  일단 이것만으로도 가정(假定)하고 대비해볼 만한 과제들은 많다.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고딩엄빠〉나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보다 앞으로 나올 〈노인 죽이기 클럽〉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아닌 게 아니라, 근래 한국에서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는 노인 혐오 분위기부터 이 같은 관점에서 다시 진단해봐야 할 때다. 적어도 저 수많은 대중문화계 SF 콘텐츠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놓고 정확히 그 지점을 공통적으로 짚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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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움    (2023-01-15) 찬성 : 4   반대 : 1
사회초년생들이 세금은 5년내 채 내지 않는 젊은이들이 노인을 핍박한 권리가 있는가? 이 나라가 이세상이 이만큼 발전해 온 것은, 젊은이들이 지금 호의호식하는 것은 65세이상의 부모들이 피땀흘려 만든 세상이잖아.. 노인들의 연금도 그들이 힘써 모든 돈이고, 젊은이들이 그냥 제공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사회보조금은 일부 세금으로 제공되는 것이지만 이또한 부모세대가 피땀흘려 만든 나라를 만든 대가이니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돈.. 부모세대를 홀대 무시하지 마라. 젊은이 또한 늙어간다. 언제까지나 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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