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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취재

‘나랏빚’에 허덕이던 나라들의 오늘과 우리의 내일 ③ 스페인

노동·연금 개혁으로 위기 극복 성공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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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병자’ PIGS 4개국 중 스페인 경제위기 단기간에 회복
⊙ 1년 반 만에 EU 413억 유로 구제금융 조기 상환
⊙ 2012년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하는 노동개혁 단행
⊙ 노령화 대비해 年金개혁 했지만, 노인들 반발로 정권 교체
사람들이 스페인 왕궁 주변을 돌면서 관광을 하고 있는 모습.
  대한민국의 국가 부채(負債)가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섰다. 2021년 4%대 경제성장률과 60조원에 달하는 초과 세수(稅收)에도 부채가 200조원 넘게 늘었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재정지출을 확대시켰고, 공무원 수를 늘리면서 연금(年金) 관련 부채까지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가 부채 2000조원을 떠안은 윤석열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도 높은 공공개혁과 노동개혁의 시동을 걸었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다. 해외 사례를 찾아봐도 강도 높은 공공개혁과 노동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별로 없다. 그런데 파격적인 공공개혁과 노동개혁을 통해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를 잘 넘긴 나라가 있다. 바로 스페인이다. 기자는 스페인이 어떻게 공공개혁과 노동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는지 듣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려면 두바이나 혹은 유럽 어딘가를 한 번 경유해 가야 한다. 과거에는 인천-마드리드 직항노선이 운항했지만, 코로나19로 노선이 중단된 상태다. 기자는 튀르키예(터키)를 경유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공항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허브답게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곳에서 3시간 정도 체류했다. 오전 10시30분, 비몽사몽 상태에서 바라하스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니 코로나19 증명서를 검사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일렬로 앉아 관련 증명서를 살펴보고 있었다. 한 여성 검사원이 기자를 불렀다. 기자는 출발 전 미리 준비해두었던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서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 검사원은 기자의 증명서를 상세히 보지도 않고 “Oh~ Korea” 하면서 통과하라고 손짓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에 올랐다. 한참을 달려 택시가 시내에 들어서자 창밖으로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스크를 쓴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페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만 마스크를 착용하면 된다고 했다.
 
 
  스페인의 굴욕 EU 구제금융
 
  2008년 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는 유럽 경제 4위였던 스페인에 씻지 못할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스페인에서는 2000년대 들어 경기 확장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7~2008년 사이 평균 집값은 3배가량 상승했다. 금융권의 느슨한 대출 규제는 거품 형성을 부추겼다. 한때 부동산 개발업에 대한 스페인 금융권의 대출 규모는 GDP의 50% 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부동산 거품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붕괴했다. 스페인은 2009년부터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졌다.
 
  대출상환 실패 사례가 늘어나면서 스페인 은행권의 부실채권율은 2006년 0.6%에서 2013년 13.8%로 급증했다. 악성자산이 증가하면서 스페인 은행권 전체의 수익도 2007년 250억 유로에서 2012년 -740억 유로로 급감했다. 특히 7개 저축은행을 통합하여 생긴 방키아(Bankia)의 상황이 심각했다.
 

  스페인 금융권은 사실상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스페인 정부는 금융기관 자본 확충과 구조조정을 위해 2012년 6월 유럽안정화기구(ESM)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2012년 7월 20일 유로그룹(유로 사용 회원국 재무장관 회의)은 스페인 정부의 요청을 수용해 스페인 정부기구인 은행구조조정기구(FROB)에 1000억 유로를 지원하도록 승인했다. 정부 지분 100%로 구성된 FROB는 2009년 6월 저축은행 등 금융 부문의 구조조정을 위해 설립됐다. 최종적으로 ESM은 2012년 12월, 2013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413억 유로를 대출 형태로 스페인에 지원했는데, 스페인 금융 부문의 자본 확충과 구조조정에 한정하는 조건으로만 제공됐다.
 
  구제금융을 기반으로 스페인 정부는 대대적인 은행권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은행별 자산실사 및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총 559억 유로의 자본 확충이 시행됐다. 부실자산은 부실자산전문기관(SAREB)으로 전부 이전시키며 전반적인 유동성과 수익성을 개선했다. 또한 금융기관에 대한 감시체계 및 금융상품 판매 시 소비자에 대한 공지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금융시스템 개혁을 단행했다. 스페인은 금융권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진행, 1년 반 만인 2013년 12월에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스페인 경제는 2014년부터 플러스 성장세로 전환한 이후 수년간 EU 평균 2배에 달하는 견고한 회복세로 EU 전체 경제성장을 주도했다.
 
 
  구조조정
 
스페인 마드리드카를로스3세대학교 경제학 교수이자 노동사회보장법 학자인 다니엘 페레즈 델 프라도 교수.
  스페인 경제가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위기에서 탈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써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후유증 또한 떠안게 됐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 적자와 공공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카를로스3세대학교(Universidad Carlos III de Madrid) 경제학 교수이자 노동사회보장법 학자인 다니엘 페레즈 델 프라도(Daniel Prez del Prado) 교수는 “당시 EU의 요구는 너무 비인간적이고 강압적이었다”면서 “스페인 국민에게 치욕적이고,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 EU에서 구제금융을 받고 1년 반 만에 조기 상환을 했는데요, 이게 어떻게 가능했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구제금융 받기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경제는 유럽에서 4위를 할 만큼 탄탄했습니다. 국제 금융위기로 한순간에 구제금융까지 신청하게 됐지만 당시 구제금융을 받은 5개 나라와 비교해 경제가 좋았죠. 그리고 얼마를 받았느냐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스페인 정부가 상처받은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려고 노력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스페인 정부가 건설과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들어가던 투자금부터 줄인 것도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 스페인은 금융위기 이후 3년 만에 3%대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재정건전성과 기업 활력이 가장 빠르게 회복됐습니다. 그 배경에는 긴축재정 등 재정건전성 회복과 함께 공공부문 개혁, 노동개혁 등 효과적인 구조개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당시 노동개혁 이후 청년 실업률이 50%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U의 요구에 따라 노동개혁을 하긴 했지만 당시 노동개혁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닌 기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업에 자율권을 준 것이죠. 기업들이 노동자를 쉽게 고용하고 아무런 제한 없이 해고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노동개혁
 
스페인 최대 노동조합인 UGT 건물. 사진=UGT 홈페이지
  스페인은 최근 10년간 두 번의 노동개혁을 했다. 2012년 금융위기 당시 EU의 권고로 노동개혁을 했고, 2021년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동개혁을 했다.
 
  2012년 노동개혁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가 촉발한 경제위기에 따른 심각한 고용위기라는 계기적 요인과 경직되고 비효율적인 노동시장 제도, 심각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등과 같은 구조적인 요인이 결합하여 나타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됐다.
 
  스페인 노동개혁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 스페인 최대 노동조합인 UGT(Unin General de Trabajadores)를 찾았다. UGT는 마드리드 시내 8층짜리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미리 약속을 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공항 검색대 못지않게 소지품 검사를 진행했다. UGT는 1888년 마타로(바르셀로나)에서 설립된 노동조합으로 회원이 100만여 명이라고 한다.
 
스페인 노동조합인 UGT 사무총장 호세 마리아 알바레즈.
  호세 마리아 알바레즈(Jose Maria lvarez Surez) UGT 사무총장은 1987년부터 UGT에서 일해온 인물. 과거 한국의 노동시장을 살펴보기 위해 방한(訪韓)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호세 마리아 사무총장은 2012년 노동개혁에 대해 “당시 노동개혁에는 우리 조합이나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가 없었다”며 “스페인 정부는 노동자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노동개혁을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 노동자들의 반발은 없었나요.
 
  “사회적인 불만은 굉장히 높았습니다. 저희도 당시 노동개혁에 반대해 하루 일을 하지 않는 파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나라가 어려움에 부닥쳤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 더는 반발을 하지 않았습니다.”
 
  ― 2012년 노동개혁은 성공 또는 실패, 어떻게 보나요.
 
  “사실 2012년 노동개혁은 기업인도, 노동자도, 나라도 얻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점에서 노동자들의 월급이 내려갔기 때문에 아무리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개혁했다고 해도 승자는 없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2012년 노동개혁보다는 정부와 기업, 노동자가 함께 만든 2021년 노동개혁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

 
  2012년 노동개혁 이전의 스페인 노동시장은 높은 경직성을 보였고, 개별 기업의 생산성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중성이 높고 계약직과 정규직 간의 근로조건 차이가 커 정규직의 경우 해고가 훨씬 어렵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고용모델과 단체 교섭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2012년 노동개혁은 이렇게 경직되었던 노동시장을 기업의 유연성을 증대하는 쪽으로 바꾸었다. 즉 과거에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을 해고시키지 못했다면 노동개혁 이후 경영자가 보다 쉽게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근로조건을 수정 가능하게 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자 예상대로 실업률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2013년 스페인 실업률(26.1%)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여기에 청년 실업률은 55.5%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후 경제가 조금씩 호황으로 돌아오면서 실업률도 점차 줄어들었다. 2016년에는 스페인 실업률이 19.7%까지 떨어졌다.
 
  이후 2018년 사회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노동자를 위한 노동개혁을 다시 추진했다. 2021년에 추진된 새로운 노동개혁에 의하면, 고용기간을 한정 짓는 형태의 노동계약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발생하거나, 인력 충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임시 고용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다만 건설 현장에서의 일용직 고용은 불가능하며, 건설 작업이 끝나면 다른 건설 현장에 배치하거나, 퇴직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동시에 업무량 폭증에 따른 사측의 대응(연말연시 혹은 농번기 등)을 원활히 하기 위해 연중 90일 동안 임시직 고용을 할 수 있으며, 이 또한 노사의 연초 협의에 따라 연간 짜인 일정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새로운 노동개혁 법안은 2021년 12월 28일 통과됐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스페인 여당과 야당의 팽팽한 기 싸움이 있었다. 하지만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새로운 노동개혁 법안은 통과됐다. 법안을 반대하던 야당 중도우파 성향의 국민당(PP·Partido Popular)의 국회의원 한 명이 전자 투표에서 실수로 ‘찬성’하며 1표 차이로 노동 개혁법이 통과됐다.
 
  호세 마리아 사무총장은 과격한 한국의 노조 문화에 대해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원이든 아니든 누구나 생명은 소중하다. 생명까지 버리면서 하는 그런 행위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동”이라면서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지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퇴 전 소득의 83.4% 주는 국민연금
 
스페인 유니카 로펌에서 일하는 앙헬 디에즈 바조 변호사.
  스페인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거리의 노인들이 젊은이들 못지않게 활기차고 행복해 보인다는 거였다.
 
  스페인 유니카(Yunika) 로펌에서 일하는 앙헬 디에즈 바조(ngel Dez Bajo) 변호사는 “연말이 되면 젊은이들 못지않게 한껏 차려입은 노부부들이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만끽하고 쇼핑도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면서 “많은 스페인 국민은 은퇴 이후에 국가 노인복지서비스청(IMSERSO)이 제공하는 초저가 패키지 상품을 통해 곳곳을 여행하며 노후를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앙헬 변호사는 한국과 스페인 기업이 협업하는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고 스페인 내에서는 국민연금 관련 소송도 많이 진행하고 있다.
 
  스페인 국민이 아무런 걱정 없이 안락한 노후(老後) 생활을 누리는 근원은 국민연금이다. 이들은 높은 수준의 자국 국민연금을 자랑거리 중 하나로 여긴다. OECD가 발표한 〈2019 한눈에 알아보는 연금 보고서(Pension at a Glance 2019, OECD)〉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 국민연금의 평균 순소득대체율(Net Pension Replacement Rate, 평균소득 근로자, 남성 기준)은 83.4%로 OECD 평균(58.6%), EU 28개국 평균(63.5%)을 크게 웃돌고 있다. 은퇴 전 100만원을 벌었던 사람이라면 은퇴 이후 대략 83만원 정도를 연금으로 받는다는 말이다. 은퇴 후 지출수요가 감소하고, 의료도 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노후 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부족함이 없는 금액이라고 스페인 국민은 느끼고 있다. 같은 보고서에 보면 대한민국 국민연금의 순소득대체율은 43.4%에 그쳤다.
 
  이렇게 스페인 국민의 노후를 책임졌던 국민연금 제도도 갈수록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수년 전부터 현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연금제도 개혁 논의가 나오고 있다.
 
  앙헬 변호사는 “스페인 연금제도는 외부에서 볼 때에는 잘 되어 있다”면서 “오래전부터 연금제도를 만들었으니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서 보면 완벽한 수준이지만, 내부에서 연금제도를 바라봤을 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인구 구조적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지출수요가 대폭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스페인도 전 세계에서 인구노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2019년 워싱턴대학 보건계측평가연구소(IHME)는 2040년에 이르면 스페인이 일본, 싱가포르, 스위스 등을 제치고 평균수명이 가장 긴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했고, OECD는 2050년 스페인의 생산연령인구(20~64세) 대비 노령인구(65세 이상) 비율은 78.8%로 일본(80.7%), 한국(78.8%)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페인 독립회계위원회(AIREF)와 스페인통계청(INE)은 2050년 전체 인구 중 30%가 65세 이상의 노령인구들로 채워질 것이라 전망했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스페인저축은행연구소(FUNCAS)는 2019년 1월 ‘노령화와 삶의 질’이란 자체 보고서를 통해 현재 11%인 GDP 대비 국민연금 지출 비중은 2050년까지 4~5%가량 추가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2019년 유럽통계청(Eurostat) 기준 인구 1000명당 출산 인원은 7.6명으로 스페인은 EU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낮은 출산율을 기록했다.
 
 
 
‘과연 20년 후에 나의 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잘나가던 스페인도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게 된다. 스페인 경제는 1986년 EU 체제에 편입한 이후 200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맞이할 때까지 고도의 성장기를 누렸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느슨해진 이민법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중남미로부터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며 인구도 크게 늘었다.
 
  당시 이들을 위한 주택수요 증가와 함께 건설붐이 일면서 부동산, 건설업이 2000년대 경제성장을 주도했다. 이후 부동산 거품은 붕괴했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청년실업률은 한때 50%에 육박했다. 한창 일하면서 부지런히 세금도 내야 하는 청년들이 일하지 않으면 국가 세수 기반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스페인 사회보장제도 재정도 2011년도부터 적자를 내기 시작했고, 적자 폭은 계속해서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2019년 사회보장 부문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1.4%로 전체 국가 재정적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2019년 스페인 전체 GDP 대비 재정적자는 2.7%). 2022~2023년을 기점으로 이른바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들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국민연금에 대한 지출 수요 증가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전망이다.
 
  앙헬 변호사는 “스페인 정부는 연금 관련 세금을 받아 펀드로 많이 운영했고, 해당 펀드는 나름 잘 운영됐다”면서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가 오면서 사회보장예비기금을 절반 정도 사용했다. 이때부터 재정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뉴스에서도 과연 20년 후에 나의 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면서 “이제 스페인도 정부 연금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립연금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금개혁 후 정권 교체
 
  스페인 정부는 악화하는 재정난을 막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2011년 집권한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 국민당(PP) 정권은 각종 구조개혁을 단행하면서 국민연금 개혁안도 발표했다. 당시 마리아노 정권이 단행했던 국민연금 개혁안은 이랬다.
 
  ▲은퇴연령을 기존 65세에서 2027년까지 67세로 차례로 연장한다. ▲연금수령액 산정을 기존 은퇴 전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린다. 즉 2년 더 일을 해야 하고,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스페인 정부는 2013년 연금재평가지수(ndice de Revalorizacin)와 연금지속가능성계수(Facot de Sostenibilidad)를 도입했다. 연금재평가지수를 통해 매년 11월 기준 물가상승률(IPC) 대신 사회보장재정 세출입 상황, 연금수령인원 변동 상황을 고려하여 2014년부터 연금 인상률을 4년간 0.25%로 억제했다. 첫 연금지급액 산정 시 기존 요인(납입기간 및 금액 등)에 신규 연금수급자들의 기대수명을 추가로 반영하기 위해 고안된 연금지속가능성계수는 2019년부터 적용키로 했다.
 
  연금개혁 이후 수년간 인상률이 억제되자 2018년 전국 각지에서 노인들이 들고일어났고, 정권이 바뀌었다. 2018년 이후 집권한 페드로 산체스(Pedro Snchez) 총리의 사회당(PSOE) 정부는 은퇴 인구가 구매력을 잃지 않도록 국민연금을 물가상승률에 연동하여 인상했으며, 국민연금 개혁 당시 인상률 억제를 위해 도입하였던 연금재평가지수 대신 물가상승률(IPC)을 연동하기로 결정했다.
 
  연금지속가능성계수의 도입도 연기됐다.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0.9%의 인상률이 적용됐다.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추진력이 약해지면서, 지출통제는 느슨해지고 재정은 악화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문제, 저출산 문제, 연금재정 문제를 이민자와 해외투자로 해결할 전망이다.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스페인의 경제는 3%대의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던 중 2020년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해 스페인의 경제는 전년 대비 10.8%로 대폭 감소했다. 당시는 전 세계가 대부분 적자를 기록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스페인은 다음 해인 2021년 다시 빠른 회복을 실현하며 전년 대비 5.0% 성장했다. 스페인 경제가 성장으로 전환된 시점은 2021년 2분기부터이다. 2021년 5월 9일 스페인 정부의 국가경계령이 해제되며 이동 제한 등 방역 정책이 완화됐으며, 본격적인 백신 접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21년 2분기 스페인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7%로 많이 늘어났으며 3분기와 4분기에도 각각 3.4%와 5.2%를 기록했다.
 
  2021년 가장 눈에 띄게 회복된 분야는 무역이다. 재화 및 서비스의 수출과 수입은 2020년 각각 20.1%, 15.2% 급감했으나 2021년에는 13.4%와 12.8%로 반등했다. 또한 방역 정책 완화로 스페인 국민의 소비심리도 일부 개선되며 민간소비도 2020년 -12.2%에서 2021년 4.7%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투자 활동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으며 고정투자가 2021년 4.1%의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한편, 공공소비는 2020년과 2021년 각각 3.3%, 3.0%로 비슷한 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갔다.
 
  산업별로는 성장과 둔화가 뚜렷하게 나누어졌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은 2021년 전년 대비 각각 5.9%, 5.3% 증가했지만 농수산업과 건설업은 5.5%, 4.1% 감소했다. 서비스업 중 가장 크게 성장한 분야는 유통, 교통, 요식업으로 전년 대비 13.8% 증가했으며, 금융업과 ICT도 같은 기간 7.1%, 4.7% 회복됐다.
 
  2021년 스페인 경제는 5.0%의 성장률을 거두어 2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애초 스페인 정부의 예상 성장률은 6.5%였으며 유로존 경제성장률(잠정)이 5.2%임을 감안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국내외 경제기관에서는 올해 스페인의 경제성장률을 더 높게 바라보고 있다. EU집행위원회나 IMF 등은 2022년 스페인 경제성장률을 각각 5.5%, 5.8%로 전망하고 있으며 스페인 중앙은행의 예상치도 5.4%로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최소 올해 상반기 중에는 고물가와 글로벌 공급난, 미국과 러시아 갈등 이슈가 스페인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경제 전문가들의 전망에 따르면,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2022년 2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며, 이로 인해 현지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약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심화할 시 스페인의 경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경제적 타격이 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여행지 스페인
 
관광객들이 스페인 왕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서 있는 모습.
  스페인 재무부 예산 담당 고위 관계자는 “2021년 스페인이 5.0%의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은 수출이다”면서 “물론 다른 부문에서도 소폭 성장세를 보였지만 무역 부문이 대폭 성장하면서 스페인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의 전망에 대해선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2021년 대비 조금 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는 수출에 이어 관광산업까지 되살아나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부터는 위드 코로나 상황이어서 한국 관광객도 많이 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도만 해도 한국 관광객이 70만여 명이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2021년 11월 한국인 여행객이 가장 많이 예약한 해외 여행지로는 미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상위를 차지했다.
 
  8박 11일간 스페인에 머물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한국과 스페인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억지로 신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낫다. 스페인과 한국은 문화와 사람들의 생각도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단편적인 예로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 있고, 스페인은 반대로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해결해나간다.
 
  스페인이 과감히 진행했던 노동개혁과 공공개혁 등은 대한민국에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페인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대한민국의 방법을 새로 찾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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