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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대중문화 속으로

정권이 바뀌니 김제동이 돌아왔다!

글 : 이문원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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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동, 토크콘서트 〈동심〉으로 활동 재개… 대선 결과에 불만 느끼는 ‘어느 한쪽’ 대중을 위해 폴리테이너들 즉각 가동 시작
⊙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 주장하던 명계남·문성근, 노무현 정권이 스크린쿼터 폐지 주장하자 입 다물어
⊙ 안치환, “죽 쒀서 개 줬네/ 다 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라며 좌파도 비판
⊙ 美 감독 마이클 무어, 부시 정권 시절 전성기 누리다가 오바마 정권 이후 몰락

이문원
《뉴시스이코노미》 편집장, 《미디어워치》 편집장, 국회 한류연구회 자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KBS2 TV 〈연예가중계〉 자문위원,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 저서 《언론의 저주를 깨다》(공저), 《기업가정신》(공저), 《억지와 위선》(공저) 등
사진=뉴시스
  3월 9일 대선(大選)을 즈음해서, 정확히는 사전투표가 시작되던 3월 4일, 대중문화계에서는 이목을 끄는 일이 일어났다. 방송인 김제동이 돌아온 것이다.
 
  김제동은 4일 페이스북을 통해 “함께 사는 탄이(반려견)와 함께 사전투표를 했다. 밥을 먹고 밥을 먹이고 함께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면서 “5000년 우리 역사에서 투표를 할 수 있는 시대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이 투표로 국민의 힘과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헌법 1조와 24조가 밝힌 등불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켠 등불이다”라고 했다. 또 “투표하면서, 투표권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하고 고마운 마음이었다”며 “지금의 청년세대를 포함해, 시대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와 협력하고 투쟁하면서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준 덕분이다. 투표할 수 있어서 그들에게 고마웠다”고도 했다.
 

  사실 별것 아닌 문장이다. 선거법을 넘나드는 위태로운 얘기들도 아니고, 정치 색채가 드러나는 글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도한 언론미디어들은 생각보다 상당히 많았다. 보수 정권 당시만 해도 며칠이 멀다 하고 정권 비판 발언들을 이어온 그였지만, 문재인 정권 들어서부터는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질 정도로 이렇다 할 발언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갑자기 선거 관련 얘기를 꺼내니 생각보다 큰 화제가 됐다. 이에 박민영 국민의힘 청년보좌역도 즉각 반응해 “대표 1번남 헌법 전문가 호소인께서 사전투표에 참여하셨답니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전투표일에 발맞춰 김제동이 돌아온 건 아니다. 진행하던 KBS1 심야토크쇼 〈오늘밤 김제동〉이 2019년 8월 종영된 이래 별다른 정치적 언동을 보여주지 않다가, 지난해 11월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을 대타로 진행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누가 봐도 대선 정국을 끼고 복귀한 인상은 다르지 않다.
 
 
  ‘선택적 분노’
 
김제동은 2017년 4월 30일 경북 성주에서 열린 사드(THAAD) 배치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그렇게 보수 정권 당시에는 ‘살아 있는 권력’인 당대 정권 비판에 앞장서다 막상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살아 있는 권력’이 되니 갑자기 조용해진 김제동의 태도를 놓고 비판하는 분위기는 이전부터도 많았다. 《한국경제신문》에서 이례적으로 ‘이미 삭제된’ 온라인서점 리뷰 글을 기사화한 2022년 1월 5일 자 〈김제동 신간 리뷰 대참사? “내 집 마련할 수 있는 사회 만들든가”〉의 한 대목을 보자.
 
  〈해당 글은 김제동이 토크콘서트에서 구직으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향해 ‘취직 잘 되는 사회를 만들든가’라고 분노했던 것을 겨냥해 ‘내 집 마련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든가’라는 제목으로 작성됐다.
 
  게시자는 “속이 울컥울컥”이라며 “‘선택적 분노’ 우리 김제동 선생님이 돌아오셨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정권이 바뀌고 온갖 사회의 부조리 가운데서도 침묵을 지키는 그. 이러한 모순을 견디는 그는 진정한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이다”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그가 대중에게 얼굴을 보였다. 집값 폭등을 비판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원전 의혹을 까발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백신 문제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도 아니다”라며 “‘목수의 망치질’보다 훨씬 가치 있는 그의 타자기 두드림을 만나보자”고 적었다.〉
 
  그러고 보면 김제동뿐만이 아니다. 주로 좌파 진영 입장에서 정치적 발언을 이어온 방송인 김미화, 배우 김여진 등 다른 연예인들도 문재인 정권 동안만큼은 상당히 존재감이 희미했다. 애초에 이렇다 할 정권 비판, 아니 정권과 연결될 수 있는 종류라면 그 어떤 비판조차 딱히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그런 문제들은 문재인 정권에선 일어나지 않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인 양 말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직후 문재인 정권 지지자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유명한 인터넷 포스팅이 퍼뜩 떠오르는 대목이다.
 
  “갑자기 강대국이 돼버렸다. 미국이 눈치 보고, 중국은 구애하고, 일본은 전전긍긍.”
 
  이 낯 붉어지는 포스팅은 이후 5년간 소위 ‘문빠’들을 조롱하는 목적으로 애용되기도 했다.
 
 
  폴리테이너
 
  많이들 알다시피, 근래 김제동처럼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며 현실 정치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예인들을 ‘폴리테이너’라는 용어로 묶어 부르곤 한다. 폴리테이너는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다. 연예인 출신 정치인 또는 어떤 식으로건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연예인 전반을 가리킨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슐츠가 1999년 발표한 논문 〈제시 벤투라와 폴리테이너 정치학의 멋진 신세계(Jesse Ventura and the Brave New World of Politainer Politics)〉에서 처음 쓰인 용어이며, 논문 제목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폴리테이너 등장에 긍정적인 시선을 담았다.
 
  물론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건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상업미디어 생리상 연예인 등 유명인들 발언이나 행적 등에 비중을 두고 보도하는 태도 역시 그 자체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폴리테이너들을 단순히 자신의 이념적 노선에 충실한 이들 정도로 여겨선 곤란한 부분이 많다. 폴리테이너 상당수는 상당히 정파적(政派的)인 태도로 처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제동 등처럼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막상 정권을 잡으면 갑자기 권력 비판에 입을 다물어버리는 정도가 아니다. 정파적 득실에 따라 아예 정치적 견해 자체를 180도 바꿔버리는 경우들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폴리테이너라 불릴 만한 이들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노무현 정권부터도 그랬다. 대표적으로 배우 명계남과 문성근의 예를 들 수 있다. 이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영화 스크린쿼터 사수(死守)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특히 명계남은 1999년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 연대투쟁 당시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문화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민족의 영혼을 팔지 않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한겨레신문》에서는 이를 두고 〈1899년의 채구석, 1999년의 명계남〉이라는 칼럼을 내기도 했다. 명계남은 일종의 민족운동가에 가깝다는 해석을 내린 것이다.
 
  이후 명계남은 스크린쿼터 감시단장 등의 역할을 맡고,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해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운동본부 부본부장이자 100만 서포터스 사업단장으로서 ‘희망돼지’ 사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문성근 역시 개혁당 창당준비위원회 시절부터 실행위원장을 맡았다.
 
 
  스크린쿼터 폐지에 대해 입 다문 명계남·문성근
 
2012년 12월 2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대선 유세에 참석한 배우 명계남과 문성근. 두 사람은 대표적인 親盧-親文 폴리테이너다. 사진=조선DB
  그런데 노무현 정권이 탄생된 뒤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대중문화계 차원에서 ‘반전(反轉)’은 2004년 6월 3일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서울총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노무현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만찬을 가지며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당시 막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고 돌아온 박찬욱 감독에게 “스크린쿼터가 줄어도 한국영화가 잘할 수 있지 않겠어요?”라며 동의를 구한 것이다. 그러자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원회 측에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6월 11일 이뤄진 면담에서 이 장관은 “스크린쿼터 축소 조정을 검토할 때”라는 폭탄 발언을 던지기에 이른다. 이 장관은 명계남·문성근과 함께 스크린쿼터 지키기 대책위 위원으로 참여해온 인물이었다.
 
  그러자 6월 16일 영화계에서는 정지영 영화감독을 중심으로 한 대책회의를 열었고, 22일에는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궐기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문성근과 명계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아가 그 어떤 관련 행사들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고, 관련해 발언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도망 다니기에 급급하다”는 표현까지 언론미디어를 통해 등장했다.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2006년에 이르면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최영제 사무국장이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에 출연, “(명계남·문성근씨가) 정치 활동에는 노란 목도리를 매고 뛰어다니더니 정작 자신들의 직업과 관련한, 사활이 걸린 문제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국민들도 의아하게 생각한다”는 질문에 “조만간 그 부분에 대해 (영화계 내부에서) 얘기가 돼야 할 것 같다”고 답하기에 이른다. 같은 해 명계남 본인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99년 당시에는 BIT(한미투자협정)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FTA(한미자유무역협정)가 걸려 있다. 현재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공부가 부족해 언급하기가 곤란하다”며 “솔직히 스크린쿼터보다는 우리 영화사 직원들 봉급 밀리는 게 더 걱정”이라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가수 안치환. 사진=조선DB
  이런 게 바로 폴리테이너를 자처하는 이들이 잘 언급하려 하지 않는 부분이다. 애초 폴리테이너들의 발언이 언론미디어에서 자주 다뤄지는 것도, 단순히 유명인들이기에 주목도가 높고 그만큼 상업적 가치가 높은 탓도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의 독립적 의사 표명으로서 그 위치를 인정해주는 점도 크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들 역시 웬만한 정치인들 뺨칠 정도로 정파적이고 정파의 득실에 함몰된 모습을 보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저 이름과 얼굴이 널리 알려져 홍보효과가 좋은 선동요원 정도가 된다.
 
  한편, 이처럼 막상 정권을 잡고 나면 권력 비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정권 프로파간다만 반복하는 이들, 또는 아예 기존 입장을 180도 바꿔버리는 이들이 속속 늘어나다 보니, 이제는 좌파(左派)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마저 ‘진정한 폴리테이너는 민중가수 안치환뿐’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번 대선 직전인 2월 1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배우자 김건희씨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노래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을 발표해 ‘선거 막판 선동’에 동참했던 그 안치환 말이다. 당연히 이 같은 선동에 앞장섰기에 그런 평가가 나오는 건 아니다. 그간 좌파 정치 진영에 대해 자기비판적인 모습들도 충분히 보여왔기 때문이다. 안치환이 2020년 7월 7일 발표한 노래 ‘아이러니’가 대표적이다.
 
  “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진보의 힘 자신을 키웠다네
  아이러니 왜 이러니 죽 쒀서 개 줬네/ 아이러니 다 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안치환은 이 노래에 대해 “진보를 가장한 기회주의자들에 대해서, 진보의 탈을 쓴 기회주의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과실을 잘 따먹는 왕서방들에 대해서 어리숙한 곰, 재주 부리는 곰의 입장에서 한 노래”라고 밝혔다. ‘아이러니’는 당시 좌파 진영에서 복잡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선 직전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이 등장했을 때 ‘오마이뉴스’ 등 각종 표현의 자유를 주장해온 좌파 성향 언론들에서도 이례적으로 안치환에 대해 비판 칼럼을 게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폴리테이너의 아이러니
 
  이제 한국의 폴리테이너 상황을 간추려보자. 일단 정치적 발언이나 각종 정치행적 등에 무게를 둬온 연예인들일수록, 실제적으로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오히려 본인의 존재감이 휘발(揮發)되는 특이한 결론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듯, 그때부터는 권력 비판은 사라져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실질적으로 권력이라 볼 수 없는 상대편 정치 진영을 향해 허수아비 때리기만 반복하는 행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 진영 입장에서도 그렇다. 막상 국론(國論)을 통합해야 할 수권(受權) 세력이 되고 나면 연예인들 같은 비전문적 공격수의 필요성은 크게 떨어지고 만다. 나아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 그들 유명세 탓에 정제(整齊)되지 않은 그들 발언 하나하나가 마치 정권 또는 정권 지지자들의 대표 의견처럼 부상(浮上)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정치 진영 차원에서는 이들과 되도록 거리를 두려 하는 분위기까지 형성된다. 대신 각 분야 전문가들을 포섭해 대응해나가는 분위기로 옮아간다. 이런 식이면 언론미디어 입장에서도 폴리테이너들의 발언은 보도 가치가 떨어지고, 폴리테이너들 스스로부터가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해 두문불출(杜門不出)하게 되는 상황이 빚어진다.
 

  동시에, 이들 폴리테이너들의 진짜 전성기는 오히려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권력에서 내려온 시점, 쉽게 말해 ‘정권을 빼앗긴’ 시점부터가 된다. 그런 때일수록 지명도는 높지만 공직(公職)에 몸담지 않아 원색적이고 편파적인 발언들에 특별히 책임질 필요가 없는 폴리테이너들 발언이 날개를 달아 뻗어나가곤 한다. 즉 ‘99% 대 1%’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좌파 성향으로 편중돼 있는 폴리테이너들에게는 지금이 움츠렸던 날개를 다시 펴고 날아다닐 시점이라는 얘기다. 이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는 1992년 작 미국영화 제목 〈죽어야 사는 여자〉를 언급하며 조롱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죽어야 내가 사는 아이러니를 담은 우스개다.
 
 
  ‘폴리테이너의 천국’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의 대표작인 〈볼링 포 콜럼바인〉 〈화씨 9/11〉 〈식코〉.
  물론 이 같은 아이러니는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이미 연예인 출신 대통령과 주지사, 시장 등까지 다수 등장했을 정도로 ‘폴리테이너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아이러니들은 수없이 펼쳐진다. 대표적으로, 아카데미상과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저명한 미국 좌파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마이클 무어는 극장용 다큐멘터리 사상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2004년 작 〈화씨 9/11〉의 감독이다. 해당 영화로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그 전작인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아카데미상 장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사실 문제가 많았다. 노골적으로 민주당 편향(偏向)인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진중함보다는 가지각색 조롱과 비아냥으로만 일관하는 데다 때로는 사실관계 왜곡조차 서슴지 않는 대범함(?)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무어의 전성기는 2002년 작 〈볼링 포 콜럼바인〉부터 대표작 〈화씨 9/11〉을 거쳐 2007년 작 〈식코〉까지로 볼 수 있다. 이후 발표한 〈자본주의: 러브스토리〉(2009)나 〈다음 침공은 어디?〉(2015) 등은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무어의 전성기는 정확히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권 시기와 겹친다는 것이다. 비록 다큐멘터리로서 가치를 의심받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작품들이었지만, 어찌 됐건 ‘패배한 민주당 지지자들’ 울분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그런 무차별 공격수가 필요했기에 그의 다큐멘터리나 공개적 발언 하나하나가 화제에 올랐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문화비평계로부터도 강한 지지를 받아낼 수 있었고, 민주당 정치 진영으로부터 늘 중요시 취급됐다.
 
 
  마이클 무어, 오바마 정권 이후 몰락
 
  그러다 2009년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정권이 출범하고 나니 상황이 정반대로 달라졌다. 급작스럽게 무어의 침체기(沈滯期)가 시작됐다. 일단 비평적으로 딱히 주목받지 못해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일도 없어졌고, 무엇보다 흥행 성적이 뚝 떨어졌다. 전성기 때는 북미 흥행 기준으로 〈볼링 포 콜럼바인〉 2157만6018달러, 〈화씨 9/11〉 1억1919만4771달러, 〈식코〉 2454만70달러 등 다큐멘터리 대박 기준인 1500만 달러 선을 훌쩍 넘겼던 반면, 이후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1436만3397달러로 확 가라앉았고 뒤이은 〈다음 침공은 어디?〉는 382만7261달러로 사실상 흥행에서 참패했다.
 
  갑자기 ‘마이클 무어가 필요 없어진 세상’으로 돌변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점점 더 부담스러운 존재가 돼갔다. 민주당이 정권을 얻어 방어하는 입장이 되자 무어 역시 과거 전력들, 특히 잦은 사실왜곡 문제와 자칭 사회주의자로서 표리부동(表裏不同) 행태들이 공격당하기 시작했고, 민주당 정치 진영에서도 그런 그를 점차 꺼리기 시작했다. 무어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권력 비판은 사라지고 〈자본주의: 러브스토리〉까지 가서는 버락 오바마 예찬까지 가면서 이게 같은 사람이 만든 다큐멘터리가 맞는지조차 의아해지는 지점까지 갔다. 당연히 그만큼 대중으로부터도, 미디어로부터도 외면받았다. 이런 게 바로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같은 모양새로 진행되는 폴리테이너들의 아이러니다.
 
 
  ‘페이지는 넘어간다’
 
  그럼 이제 정권도 바뀌고 했으니 다시 그 많던 좌파 성향 폴리테이너들도 고스란히 재등장하게 될까. 물론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나라 사례들로 봤을 때는 ‘절반’만 맞을 듯한 예상이다. 좌파 성향 폴리테이너들의 전성기가 오는 것은 맞지만, 소위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앞선 마이클 무어 사례만 해도 그랬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정권이 끝나고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시작됐을 때 위와 같은 생리를 파악한 미디어들에서는 일제히 무어의 행보에 주목했다. 그리고 2017년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할 목적으로 만들겠다는 〈화씨 9/11〉의 속편, 〈화씨 11/9〉 기획을 발표하자 그 관심은 폭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무어는 신작에 대해 “여러분이 어떤 공격을 가하든 지금까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떤 사실이 폭로되든 그(도널드 트럼프)는 여전히 태연했다. 팩트, 증거, 두뇌로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 실수로 자해 행위를 해도 그는 다음 날이면 멀쩡하게 일어나 계속 트위터를 하며 버틴다”면서 “하지만 이번 영화로 그 모든 것은 끝장날 것”이라 장담했다.
 
  그러나 막상 이듬해 〈화씨 11/9〉가 공개되자 반응은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심심했다. 언론미디어에서도 딱히 주목하지 않았고, 흥행 성적 역시 호전(好轉)되지 않았다. 이 같은 예상 밖 실패 탓에 무어는 아직까지도 장편 다큐멘터리를 더 이상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어의 ‘화려한 컴백’이 좌절된 이유는 다소 간명했다. 그의 전성기 때와는 시대가 바뀌었고, 그만큼 같은 좌파 정치 진영일지라도 중점적으로 다루는 어젠다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무어가 전성기 시절 다루던 그의 특기, 명확하고 노골적인 사회주의 예찬이나 반전(反戰)주의 메시지 등은 이제 더 이상 좌파 정치 진영이 내세우는 트럼프 정권 공격 포인트가 아니었다.
 
  이제 미국 좌파는 PC(Political Correctness), 즉 ‘정치적 올바름’을 중심으로 전선(戰線)을 펼쳐나갔다. PC는 인종, 성(性), 장애, 종교, 직업 등에서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킨다. 트럼프 재임 당시 민주당 측에서 그를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차별자 등으로 초점을 맞춰 공격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무어도 이렇게 하려면 할 수 있었고, 실제로 〈화씨 11/9〉에는 그런 부분들도 다루고 있었지만, 무어는 PC 중심 공격수가 되기에 이렇다 할 대표성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미국을 휩쓴 PC적 시각에서 무어는 ‘백인’이자 ‘남성’이라는 우월적 입장에 서 있는 기득권층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또 인신공격에 가까울 정도로 아슬아슬한 조롱과 비아냥이 난무하는 그의 공격적 스타일 역시 보다 조심스럽고 점잖빼야 하는 PC 분위기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경향으로 치부된 측면도 존재한다. 그렇게 무어는 달라진 좌파 진영 분위기에서 확연히 도태돼가는 상황이다. 소위 ‘페이지가 넘어간’ 셈이다. 그리고 그의 자리는 PC적 대표성을 지닌 또 다른 얼굴들로 대체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상황이 펼쳐지리라 예상해볼 수 있다. 한국 역시 미국 분위기를 상당 부분 따라가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7년 미국의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 파문으로 불붙은 미국의 ‘미투’ 운동은 그 자체로 PC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미투’는 이듬해 곧바로 한국으로도 넘어와 수많은 폭로 사례들을 낳았고, 한국 사회에서도 엄청난 화두로 떠올랐다. PC가 한국에서도 정치·사회·문화 중심부로 파고들어 가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번 제20대 대선 역시 결국 PC 영역에서의 갈등에 해당하는 ‘젠더 갈등’으로 진영이 나뉘어 치러진 측면도 강하다. 지난 1월 7일 윤석열 당시 후보가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한 줄, 일곱 글자를 적어 공개하면서 ‘이대남’들 지지세가 급증, 선거의 판도를 바꿔버렸던 일이 아직 생생할 듯싶다. 이 밖에 인종이나 장애, 종교 등에 대한 차별 철폐 어젠다들도 현재 한국에서 격렬하게 떠오르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폴리테이너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각자 대표성을 가지고 각 지점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새 얼굴들로 말이다.
 
 
  폴리테이너의 세대교체
 
김제동은 5월 19일~6월 26일 토크 콘서트 〈동심〉을 통해 대중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만 존재하는 신조어, 소위 ‘소셜테이너(Socialtainer)’라는 용어를 너도나도 가져다 쓰는 분위기 역시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소셜테이너는 사회적(Social)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로, 나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어느 한편에 서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심이 많아 그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을 뿐이라 주장할 때 주로 쓰였다. 정당이나 정치권과 연계되지 않고 사회적 공익을 위한 활동이나 발언만 할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적 사안들은 그 의견의 방향에 따라 어느 한 정치 세력의 노선과 맞닿을 수밖에 없으니, 그게 계속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사실상 용례(用例) 자체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지는 말장난에 가깝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 말장난 같은 본질만큼이나 일종의 ‘방패’로서 애용될 것 같다는 예상이다.
 
  끝으로, 다시 서두의 김제동으로 돌아가 보자. 김제동은 얼마 전 토크콘서트 〈동심〉 기획을 발표했다. 대학로에서 5월 19일부터 6월 26일까지 총 24회 공연 예정이며, 티켓 가격이 전석(全席) 6만6000원이라는 고가(高價)로 벌써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결과에 불만과 분노를 느끼는 ‘어느 한쪽’ 대중을 위해 폴리테이너들이 즉각 가동(可動)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겠다. 그 향방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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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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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jlee020    (2022-05-01) 찬성 : 8   반대 : 1
이런 좌파 인간들은 정권이 바뀌면, 바뀐 자유우파 정권 공격수로 나서서 활동해서 돈벌이를 하죠. 친북 종북 주사파 좌파 정권때는 비난 활동을 할 수가 없으니 강연이다, 책 쓴다며 돈벌이하고. 시즌에 영향을 받지 않아요. 윤석열 정부때는 이들을 제대로 나대지 못하게 단단히 단속해야 합니다.
  jsoo0111    (2022-04-24) 찬성 : 11   반대 : 1
이 놈은 돌아 오는것 보다는 돌아 가는 것이 낫다
  이의웅    (2022-04-24) 찬성 : 8   반대 : 0
잡쓰리기들이 문가정권하에서는 제넘들 세상이니 조용히 있다가 정권이 바뀌니 꿈틀 거리며 기지개를 켜고 있음은 개주둥이 노리고 싶어서 안달하는 꼬라지다. 저 주둥이를 공업용 미싱으로 꿰매 버려라.
  국익파    (2022-04-24) 찬성 : 10   반대 : 0
이재동 너무 속보인다. 다시 박근혜 대통령때와같이 기만 선동질하려고 기어나온거다. 참 꼴보기 싫은 인간이다.
  시민    (2022-04-23) 찬성 : 44   반대 : 0
기회주의자들 보기 싫다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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