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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여인들 〈17〉

김유신을 사랑한 천관녀와 호국여신들

글 : 엄광용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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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관녀 설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에는 없고, 고려시대 이인로의 《파한집》에 나와
⊙ ‘天官’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妓女가 아니라 첨성대의 女司祭였을 가능성
⊙ 고구려 첩자가 김유신을 유인하려 했을 때에는 3명의 女神이 나타나 도와줘

엄광용
1954년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단국대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한국사 전공) 수료 / 1990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당선 문단 데뷔. 창작집 《전우치는 살아 있다》 외 다수 / 2015년 장편역사소설 《사라진 금오신화》로 제11회 류주현문학상 수상
김유신.
  경주 천관사지(天官寺址·사적 제340호)에서 남천을 건너 500m쯤 가면 김유신(金庾信)이 살던 옛날 집터와 우물이 있다. 당시 김유신의 가족이 즐겨 마시던 우물을 재매정(財買井·사적 제246호)이라고 한다. 2014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이 우물에 대한 유적 발굴을 실시한 결과 ‘말의 머리뼈’가 출토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경주시 교동에 있는 김유신의 집터 주변은 1991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다. 재매정을 본격적으로 발굴한 것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12월까지였다. 이 우물의 이름은 ‘재매’라는 김유신의 부인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김유신의 부인이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셋째 딸 지소부인(智炤夫人)으로 나온다. 다시 말하면 김유신이 막내 여동생 문희의 셋째 딸과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외삼촌이 조카딸을 아내로 삼은 것이 된다. 당시 신라 사회에서는 왕실에서도 근친혼(近親婚)을 상례로 여겼으므로 크게 흠 될 것은 없으나, 김유신과 지소부인의 나이 차가 상당히 난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재매부인은 김유신 전처(前妻)의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문헌 기록에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으므로, 혹시 딸의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재매부인’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재매정에서 나온 말 머리뼈
 
경주시 교동 김유신 집터에서 발굴된 우물터 ‘재매정’. ‘재매’는 김유신 前妻의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사진=문화재청
  〈김씨 집안의 재매부인(財買夫人)이 죽어 청연(靑淵) 상곡(上谷)에 장사지내고 이를 재매곡(財買谷)이라 불렀다.〉
 
  ‘김씨 집안’은 김유신의 집안을 일컫는데, ‘재매곡’이나 ‘재매정’이나 모두 ‘재매부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명확하게 ‘재매부인’이 김유신의 아내인지 딸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아무튼 재매정에서 말의 머리뼈가 나왔다. 그것도 4구나 한꺼번에 출토되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발굴 당시 ‘왜 우물에 말의 머리뼈를 던져 넣은 것일까?’로 추측이 난무했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유적 발굴 멤버 중 한 사람은, 평소 식수(食水)로 쓰던 우물이 경우에 따라서는 제의(祭儀) 공간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보기도 했다.
 
  재매정에서 천관사지까지는 불과 5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설화로 전해지는 김유신과 천관녀의 사랑에 얽힌 사연이 있는 우물일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즉 젊었을 때 김유신은 천관녀의 집 앞에서 자신이 타고 온 말의 목을 한칼에 자르며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바 있다. 그 설화 내용에 빗대어, 김유신이 죄 없이 죽은 애마(愛馬)와 천관녀를 신원(伸寃)하기 위해 다른 말의 목을 베어 제사를 지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리였다.
 
 
  역사 기록에서 사라져버린 천관
 
  김유신과 천관녀, 재매정과 천관사에 얽힌 이야기의 사슬을 풀어보는 것도 역사의 퍼즐 맞추기로 상당한 묘미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설화 속에 숨겨진 팩트를 찾아내거나 역사 속에 가려진 미궁 뒤지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를 유발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사랑 이야기는 정작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기록된 바가 없다. 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인구에 회자되던 이야기를 설화 형식으로 엮어낸 사람은 고려 중기의 문인 이인로(李仁老·1152~1220)였다. 역사 기록에서 철저히 배제된 김유신과 천관녀에 대한 사랑 이야기가 그의 《파한집(破閑集)》에 나오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김유신은 계림인이다. 업적이 눈부시었음은 국사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젊었을 때 어머니는 교유함에 잊지 말도록 날마다 엄한 가르침을 더하여 하였다. 하루는 천관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어머니는 얼굴을 마주하며 말하기를 “나는 이미 늙었다. 주야로 너의 성장을 바라보고 있다. 공명을 세워 임금과 어버이의 영광이 되어야 하거늘 지금 너는 술을 파는 아이와 함께 유희를 즐기며 술자리를 벌이고 있구나” 하면서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였다. 즉시 어머니 앞에서 다시는 그 집 문 앞을 지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하였다.
 
  하루는 피로에 지쳐 술을 마신 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말은 옛길을 따라서 잘못하여 천관의 집에 이르고 말았다. (천관은) 한편으로는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다. 눈물을 흘리며 나와 맞이하였다. 그러나 공은 이미 깨우친 바가 있어 타고 온 말을 베고 안장은 버리고 되돌아왔다. 그녀가 원망하는 노래를 한 곡 지었는데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경주에 천관사가 있는데, 즉 그 집이다.〉
 
  간혹 ‘김유신’이나 ‘천관’이라는 주어가 생략된 채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는 글이지만,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자못 애절한 데가 있다. 이 설화는 조선 성종 때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문장만 조금 달리했을 뿐 거의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런데 ‘천관사’란 절의 내력이 전해지는 이 설화가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삼국시대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두 책에 김유신은 자주 등장하되 천관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이 없는 것이다.
 
 
  천관녀는 妓女일까, 女司祭일까?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金富軾)은 공자의 《논어》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子不語怪力亂神)’는 원칙을 지켜, 역사적 사실이 아닌 괴이한 일이나 귀신 이야기는 싣지 않았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열전편에서 ‘김유신’을 3권 분량으로 다루면서 각 권을 상·중·하로 나누어 그의 일생을 전기(傳記) 형식으로 특화해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관의 이야기는 쏙 빠져 있다. 김부식이 열전편의 다른 인물들을 한 권에 10명 안팎으로 묶어 소략하게 기록한 것에 비하면, 김유신의 기록은 너무 방대하여 한 인물에 치우침이 심하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인데도 천관은 애써 등장인물에서 제외시켜 놓은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일연의 《삼국유사》는 스님이나 절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도, 김유신과 천관의 사랑 이야기는 빠져 있다. 일연도 《삼국유사》 곳곳에서 김유신을 자주 등장시키고 있으나 ‘천관’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어찌하여 이처럼 천관은 김부식이나 일연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끌어낸 ‘김유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우월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고 애써 ‘술을 파는 아이’로 표현되는 ‘천관’의 존재를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글쓰기 재료 중 취사선택(取捨選擇)을 할 때 ‘김유신’이 취(取)라면, ‘천관’은 사(捨)가 되어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천관은 김유신의 어머니가 말한 대로 ‘술을 파는 아이’이기보다는 ‘천관(天官)’이란 지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사제(女司祭)’였을 가능성이 크다. 즉 ‘천관’은 이름이 아니라 직업을 이르는 것으로, 그녀는 오늘날 ‘무당’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어느 날 우연히 김춘추와 천관녀는 만나 연인 사이가 되었고, 그녀가 머물고 있는 사당(?)에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면 술도 마시고 사랑도 나누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문을 들은 김유신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술 파는 아이와 함께 유희를 즐기며 술자리를 벌인다”는 말을 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늘날까지 천관사지가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신라시대에 ‘천관사’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설화의 내용처럼 천관녀가 살던 집터에 ‘천관사’란 절이 세워진 것도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김유신이 살던 집에서 천관녀의 집까지는 불과 50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두 사람이 만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도 충분히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삼국사기》에 ‘천관녀’는 나오지 않지만 ‘천관신(天官神)’이란 말은 등장한다. 김부식은 열전 김유신조 상권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건복 29년(서기 612)에 이웃 적병(敵兵)이 점점 박도(迫到)하니, 공은 더욱 비장한 마음을 격동하여, 혼자서 보검을 들고 인박산(咽薄山) 깊은 골짜기 속에 들어가서, 향을 피우며 하늘에 고하고 기원하기를 마치 중악(中嶽)에서 맹세하듯이 빌었더니, 천관신(天官神)이 빛을 내려 보검(寶劍)에 영기(靈氣)를 주었다.〉
 
  김유신이 태어난 해가 진평왕 건복 12년(서기 595)이므로, 건복 29년이면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인박산은 젊은 시절 김유신이 무술을 닦던 곳으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경주 부근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천관신이 빛을 내려 보검에 영기를 주었다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일 터이고, 이는 곧 김유신이 산에서 무술을 닦던 중 천관녀를 만난 것으로 유추해볼 수도 있다.
 
 
  원성왕과 천관사
 
  《삼국유사》 권2 기이2 원성대왕조에도 ‘천관사’가 등장한다.
 
  〈이찬 김주원(金周元)이 처음 상재(上宰)가 되었고, 원성왕(元聖王)은 각간으로 상재 다음의 자리에 있었는데, 꿈에 복두(幞頭)를 벗고 흰 삿갓을 쓰고는 12현의 가야금을 들고 천관사(天官寺)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꿈에서 깨어나 사람을 시켜 풀이하게 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복두를 벗은 것은 직책을 잃을 조짐이고, 가야금을 든 것은 칼집을 쓸 조짐이며,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조짐입니다.”〉
 
  여기에 천관사 우물이 등장한다. 나쁜 징조의 꿈 풀이는 반대로 되었다. 나중에 아찬이 다시 풀이하기를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좋은 징조”라고 했는데, 실제로 원성왕이 되어 궁궐의 주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천관사는 꿈 풀이에서도 길조(吉兆)로 나타날 정도로 원성왕 당시 신라 궁궐에서 인정해주는 사찰이었다. 이 사찰은 김유신이 사랑하던 여인 천관의 집을 절로 바꾸어 건축했다고 전해진다.
 
  천관사란 절의 내력을 보면 분명히 김유신은 천관녀와 사랑을 나누었다. 당시 이별을 슬퍼하던 천관녀가 먼저 죽자 김유신은 그녀의 집에 절을 세워 영혼을 위로해주었던 것이다.
 
  2016년에 서울대 여성연구소의 김명숙 객원연구원은 〈첨성대, 여신의 신전〉이란 논문에서 천관녀를 첨성대의 여사제로 보는 견해를 밝혀 관심을 끈 바 있다. ‘첨성대의 형태에 대해 현재 학계에서 가장 공감을 얻고 있는 견해는 우물설’이라는 데 근거를 두고, 우물인 첨성대와 원성왕의 꿈에 나타난 천관사의 우물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물설과 관련된 학자들의 주장은 천관녀를 기녀가 아닌 신녀(神女)로 격상시켜 주는 논리적 근거가 되고 있다. 천관녀가 ‘첨성대의 여사제’라는 인식은 앞으로 좀 더 연구가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호국여신이 지켜준 김유신
 
  김유신을 주인공으로 한 설화에는 여신(女神)이 자주 등장한다. ‘천관신’으로 상징되는 천관녀도 있지만, 그에게는 위험에 처할 때 나타나 도와주는 호국(護國)여신들도 있었다.
 
  《삼국유사》 기이 제1 김유신조의 내용을 보면 국선(國仙) 김유신이 위기를 맞을 때 호국여신들이 나타나 구해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요점만 재구성하면 이렇다.
 
  〈김유신은 18세의 나이에 국선이 되었는데, 그 수하에 백석(白石)이란 자가 낭도로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김유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할 계획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백석은 은근히 고구려로 정탐을 하러 가자고 김유신을 설득했다.
 
  그리하여 김유신과 백석이 밤에 출발하여 고개를 넘는데 두 여인이 따라왔다. 골화천에 머물 때도 또 한 여인이 갑자기 나타났다.
 
  세 여인이 백석 모르게 김유신을 숲속으로 데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내림(奈林)·혈례(穴禮)·골화(骨火) 등 세 곳의 호국신입니다. 지금 적국 사람이 당신을 유인해 가고 있는데도 모르고 길을 계속 가고 있으므로 우리가 당신을 가지 못하게 하려고 이곳에 온 것입니다.”
 
  여인들은 말을 마치자 곧 모습을 감추었다.
 
  김유신은 그날 밤 골화관에 머물며 백석에게 말했다.
 
  “지금 중요한 문서를 집에 두고 왔소. 당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가져왔으면 하오.”
 
  마침내 김유신은 집으로 돌아와 백석을 포박하고 추궁을 했다.
 
  알고 보니 백석은 고구려의 첩자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김유신이 태어나기 전에 고구려에 추남(楸南)이라는 용한 점쟁이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국경의 물이 역류하기에 고구려왕이 그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대왕의 부인이 음양(陰陽)의 도(道)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여 그 징조가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고구려왕은 즉시 왕비를 불러 사실 확인을 하고자 했다. 이때 왕비는 요사스런 여우의 말이라고 하며, 추남이 과연 용한 점쟁이인지 시험을 해본 연후 그에게 죄를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왕은 쥐 한 마리를 상자 속에 넣고 “이것이 어떤 물건이냐?” 하고 추남에게 물었다. 그때 “이것은 틀림없이 쥐인데, 모두 여덟 마리입니다” 하고 추남이 대답했는데, 왕은 틀렸다 하여 즉시 참형(斬刑)에 처하도록 명령했다.
 
  이때 추남은 졸지에 참형을 당하게 되어 분한 마음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죽은 후에 장군이 되어 반드시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다.”
 
  추남을 베고 나서도 그 말이 참으로 맹랑하여 고구려왕이 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일곱 마리 들어 있었다. 어미와 새끼 모두 합해 여덟 마리니, 추남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그날 밤 고구려왕의 꿈에 추남이 신하 서현공(舒玄公) 부인의 품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말하자, “추남이 맹세하고 죽더니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고구려왕은 백석을 보내 김유신을 설득해 고구려로 끌고 가려는 모의를 꾸미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신은 백석을 죽이고, 온갖 음식을 준비하여 세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삼국사기》 열전 제1 김유신 상편에는 〈서현이 경진일(庚辰日) 밤에, 형혹(熒惑・화성)과 진성(鎭星・토성)의 두 별이 자기에게로 내려오는 꿈을 꾸었다. 만명(萬明)도 신축일(辛丑日) 밤에 동자가 금갑(金甲)을 입고 구름을 타고 당중(堂中)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얼마 후 임신을 하여 20개월 만에 유신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김유신의 탄생 설화가 기이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임신 20개월 만에 태어났다는 것은 좀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을 신격화하는 설화의 형식
 
  삼국 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은 태어날 때부터 뭔가 특별했고, 국선이 되었을 때 곳곳에서 호국여신들이 나타나 도움을 주기도 한 ‘귀하신 몸’이었다.
 
  《삼국사기》 기록에 〈천관신이 빛을 내려 보검에 영기를 주었다. 3일 되는 밤에 허숙(虛宿)·각숙(角宿) 두 별의 뻗친 빛이 환하게 내려 비추니 검이 요동하는 것 같았다〉고 나와 있다. 이때의 천관신은 천관녀일 가능성이 크다. 설화 속에서 김유신이 천관녀를 만날 때와 나이가 거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김부식은 인구에 회자되는 ‘천관녀 설화’를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녀를 ‘천관신’으로 격상시켜 김유신의 보검에 영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맡겼음을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삼국유사》에 보이는 내림·혈례·골화의 세 호국여신도 역시 실제 당대의 지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림은 지금의 경주 남산이며, 혈례는 청도의 오산, 골화는 영천의 금강산이다. 당시 신라시대에는 국가 제사를 지내는 ‘신라삼산(新羅三山)’이 있었는데, 바로 그 세 산을 지칭한다.
 
  김유신은 화랑도로서 국선이 된 ‘잘난 사내’였고, 그래서 당대 신라 여성들에게는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가 가는 곳곳에선 여성들이 애써 그를 도와주었다. 일연(一然)에 의해 내림·혈례·골화의 호국여신으로 표현된 세 여성도 평소 김유신을 흠모하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흔히 설화의 형식은 주인공들의 신격화(神格化)를 통해 재미를 더해주고, 사실을 불가사의하게 신성화(神聖化)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천관녀나 내림·혈례·골화의 세 여인도 김유신을 만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설화를 통해 신격화됨으로써 더욱 격이 높아졌고, 그녀들을 통해 이야기되는 주인공 김유신은 더욱 위대한 인물로 격상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바로 설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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