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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의 후유증 - 선진국에서 배워 예방한다 〈6·끝〉

일본 나가노

빚더미에서 겨우 빠져나왔다지만…

글·사진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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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쿠바, 온천·스키·트레킹 등 결합한 가능성은 있어 보이지만 스키점프장은 국제규격 안 맞아 국제대회 못 열어
⊙ 스피드스케이팅 열렸던 M-웨이브, 올림픽뮤지엄·경기장은 물론 매점에도 사람 없어
⊙ 나가노시의 올림픽 관련 6개 시설, 유지관리비가 수입의 10배에 달해
나가노현 하쿠바에 있는 나가노올림픽 스키점프 스타디움. 지금은 규격이 바뀌어 국제대회를 열 수 없다.
  일본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혼슈(本州)의 정중앙에 위치한 현(縣)이 있다. 나가노(長野)현이다. 고대에는 시나노국(信濃國) 혹은 신슈(信州)로 불렸다. 서남쪽으로 향하면 교토(京都)와 오사카(大阪)로 나갈 수 있고, 동남쪽으로 향하면 도쿄(東京)로 뻗을 수 있는 요충(要衝)이다. 그래서 전국(戰國)시대에는 오다 노부나가,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같은 영웅들이 이 지역에서 여러 번 충돌했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요충이지만, 지리적으로는 한계도 있다. 산악지역이라는 한계다. 북알프스·중앙알프스 같은 산악지대가 이곳 나가노에서 이웃 도야마(富山)현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높은 산 20개 가운데 9개가 나가노현에 있다. 오늘날에는 사과와 메밀의 산지로 유명하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 걸맞게 일찍부터 나가노는 동계스포츠로 유명했다. 나가노 하쿠바(白馬)에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스키장들이 많이 있다.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 당시 스키점프 경기가 열렸던 곳이 바로 하쿠바다. 하쿠바역 앞에는 이곳에서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신체장애인 올림픽), 2005년 동계스페셜올림픽(지적발달장애인 올림픽)이 열렸음을 알리는 간판이 서 있다. 역에서 보면 멀리 해발 2932m의 시라우마다케(白馬岳)를 비롯해 웅장한 산들이 연이어 보인다.
 
 
  핫포로 가는 길
 
하쿠바 핫포로 가는 길에 있는 1998 나가노올림픽 간판. 녹슨 간판이 퇴색한 올림픽의 영광을 말해 주는 듯하다.
  스키점프장이 있는 핫포(八方)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핫포 안쪽 지역인 핫포오네(八方尾根)를 가리키는 안내판에는 ‘Happoone’라는 영어 표기가 병기(倂記)되어 있다. 이곳 사람들은 ‘Happoone’를 ’Happo-one’, 즉 ‘스키장은 핫포가 으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길 양쪽으로는 철제 간판들이 늘어서 있다. 나가노올림픽 당시 세워진 간판들이다. 나가노올림픽 로고와 올림픽 로고는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지워져 있고 ‘NAGANO 1988’이라는 글자만 눈에 들어온다. 멀리 녹색 스키점프대가 보인다. 뒤로는 웅장한 산들이, 앞으로는 글자 그대로 황금빛 벼들이 물결치는 논이 있다.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녹슨 올림픽 간판,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스키점프대 …. ‘어쩌면 저것이 내년 2월 두 주일간의 축제가 끝나고 난 후 평창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내려앉는다.
 
  역에서 2km쯤 들어가니 핫포다. 버스터미널과 인포메이션센터, 그리고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기 위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스포츠용품점들은 대개 문을 닫았지만, 인포메이션센터는 열려 있다. 버스표와 간단한 스포츠용품들도 판매한다. 이따금 등산객들이 들어와 이것저것 물어본다.
 
  ‘지금은 9월 말의 평일, 비수기(非需期)라서 이렇게 쓸쓸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스키와 온천, 트레킹을 접목시킨 관광지로 활기에 넘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키 스타트타워는 올핌픽전시장으로 활용
 
  스키점프스타디움은 인포메이션센터에서 다시 1km를 들어가야 했다. 썰렁했다. 스키점프대 앞 시상대 옆에는 번호가 적힌 조끼와 스키 몇 개가 놓여 있다. 관광객용이다. 기자가 둘러보는 동안 몇 명의 관광객들이 그 조끼를 걸치고 스키를 들고 시상대 위에 올라서서 포즈를 취했다.
 
  460엔을 내고 리프트를 타고 스타트타워에 올랐다. 스타트타워에는 ‘하쿠바올림픽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간단한 전시장이 꾸며져 있다. 이곳에서 밖으로 나가면 노천전망대가 있다. 하쿠바 마을과 멀리 보이는 산들이 시원하다.
 
  나름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애쓴 티가 난다. 하지만 이곳은 아래보다 더 썰렁하다. 기자가 스타트타워를 돌아보는 동안 다녀간 사람은 6~7명 정도였다. 입구 매표소에서는 기념 티셔츠 등을 팔고 있었지만, 꼭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핫포의 스키점프대는 국제경기용으로는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한다. 국제스키연맹이 정한 스키점프대 규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가노시 스포츠과에 의하면, 알펜코스 공사시에는 원래 설치하려던 스타트 지점에 큰말똥가리 둥지가 있어서 코스 설계까지 바꿨다고 한다. 나가노올림픽이 친(親)환경적이었다고 내세우는 이야기 중 하나다.
 
 
  올림픽이 나가노에 준 선물, 신칸센
 
나가노역에 나붙은 신칸센 20주년 기념 배너. 신칸센은 동계올림픽이 나가노에 남겨 준 선물이다.
  나가노현의 현청 소재지 나가노시는 인구 38만명의 도시다. 원래는 1400년 전에 건립된 젠코지(善光寺)의 사하촌(寺下村)으로 형성됐다. 젠코지는 일본의 국보(國寶)로 석양이 아름다운 명승지이기도 하다.
 
  나가노역에는 나가노~도쿄간 신칸센(新幹線) 개통 20주년을 기념하는 배너들이 걸려 있다. 신칸센이 놓이면서 나가노와 도쿄를 오가는 시간은 1시간30분으로 줄어들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강원도에 서울~강릉간 철도 복선화(複線化)라는 선물을 주었다면, 나가노올림픽은 나가노현에 신칸센을 선물한 셈이다.
 
  나가노시 스포츠과 관계자(실명을 밝히지 말고 ‘나가노시 스포츠과’ 이름으로 해 달라고 했음)가 올림픽이 나가노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묻는 질문에 “교통인프라가 좋아졌다”는 것을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나가노올림픽을 계기로 4461억 엔이 투입된 신칸센을 비롯, 나가노현 지역 고속교통망 정비사업에 모두 1조930억 엔이 투입됐다고 한다. 나가노현 정보통계과에 의하면 이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3조1698억 엔에 달한다고 한다. 나가노현에 한정해도 1조6904억 엔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나가노현 스포츠과 관계자는 “시설 유지관리비가 소요되지만 공공시설이므로 적자 흑자를 따지며 판단할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신칸센 개통이 나가노에 플러스만 된 것은 아니다. 도쿄 등 다른 지역과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나가노를 찾아와 묵고 가는 숙박객의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조짐은 당장 신칸센이 개통한 1997년부터 나타났다. 숙박객 비율이 전년도보다 3.1%포인트 감소, 39.2%로 줄어든 것이다. 대신 당일 여행객 비율은 57.7%에서 60.8%로 증가했다. 숙박업 수입은 관광수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숙박업 수입이 감소하면서 전체 관광수입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텅 빈 올림픽 뮤지엄

 
나가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트 경기가 열렸던 M-웨이브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 중 하나로 꼽힌다.
  나가노올림픽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렸던 M-웨이브(M-Wave)는 나가노역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다. 완만하고 구부러진 ‘M’자 모양의 지붕이 물결치는 듯한 모습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 중 하나로 꼽힌다. M-웨이브는 이 건물과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렸던 빅해트(Big Hat·건물 모양이 모자를 닮았음)를 관리하는 주식회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주식회사 M-웨이브는 나가노시, 나가노현, 인프라 관련 민간기업이 공동 출자해서 설립한 회사다. 행정학에서 말하는 제3섹터인 것이다.
 
  M-웨이브를 찾아간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잔디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언론보도 등에 의하면 M-웨이브는 각종 이벤트·공연·모터쇼·기업설명회·박람회 등이 열리는 컨벤션센터로 잘 활용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가 방문하던 날 M-웨이브의 모습은 그런 활기찬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올림픽 뮤지엄은 잘 꾸며져 있었다. 소홀히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자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매점에도 점원이 없었다. 매점 앞에 있는 사무실에서 직원 하나가 누가 왔나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다시 들어갔다. 상품을 보니 매점은 ‘1998 나가노동계올림픽’보다는 ‘2020 도쿄올림픽’을 더 열심히 팔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M-웨이브 안에 있는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 텅 비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한기(寒氣)가 확 느껴졌다. 스피드스케이팅장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스케이팅장에서는 직원들이 빙판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들 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관람객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가 실망한 표정으로 내려갔다. 2층 한쪽에는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6곳을 표시한 안내판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해당 장소에 불이 들어오는 설비였다. 버튼을 눌러 보았지만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2층에서 나와 남문 쪽으로 나가 보았다. 그래도 중소도시의 외곽지역이라는 느낌을 주는 북문쪽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농부들이 볏단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나가노올림픽은 이런 시골에서 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노시 스포츠과 관계자는 “M-웨이브의 경우 최근 10년간 중학생 전국대회 경기장으로 쓰고 있고, 한번 대회 열 때마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2억5233만 엔에 달한다”고 했지만,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야구장이 된 메인스타디움
 
  나가노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렸던 메인스타디움은 겉으로는 상황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야구장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노현 주민들은 전부터 야구장을 하나 갖고 싶어했다. 때문에 메인스타디움은 설계시부터 나중에 야구장으로 전용할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복병을 만났다. 이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활용한 프로야구팀을 유치하지 못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철저하게 관철되는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인구 38만명의 지방도시는 경쟁력이 없었다. 나가노역에서 25분이라는 거리도 걸림돌이 됐다.
 
  세미프로팀을 끌어오고, 각종 아마추어 대회를 유치하고, 각종 대관(貸館)사업을 벌였지만, 연간 이용자는 8만여 명 수준이다. 이로 인한 연간 수입은 1300만 엔 안팎에 불과하다. 자립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다.
 
  그래도 M-웨이브나 메인스타디움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봅슬레이 경기 등이 열렸던 ‘스파이럴’은 경기는 열리지 않고, 문 닫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럴’은 나가노올림픽이 얼마나 환경에 신경을 썼는지를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였다. 나가노시 스포츠과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봅슬레이 경기장 스파이럴은 자연 그대로를 살리기 위하여 야생동물 대피도로를 만들었다. 코스 주변에 나무를 심어 녹화를 늘렸다. 물을 얼리는 방법도 일반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했다. 보통 코스 아래에 암모니아수를 배관하여 코스를 냉각시키는 방식을 택하지만, 스파이럴에서는 암모니아수를 1개 장소로 모아 미리 물을 얼기 직전까지 냉각시킨 후 코스를 휘감게 만들었다.”
 
  ‘스파이럴’은 나가노시가 소유권을 가지고 운영해 왔다. 그동안 ‘스파이럴’은 M-웨이브와 함께 일본 정부가 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로 지정한 덕분에 연명해 왔다. 나가노시 스포츠과에 의하면, ‘위탁료’로 연간 1억 엔을 나가노시에 지불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스파이럴’ 연간 운영비는 그 두 배에 달한다. 나가노시는 그 운영을 중앙정부에서 맡아 달라고 교섭하고 있다고 한다.
 
 
 
‘부(負)의 올림픽’

 
  재일동포들의 일본어 신문 《통일일보》의 미조구치 기자는 “나가노올림픽은 부(負)의 유산을 남긴 올림픽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수치(數値)가 보여준다.
 
  나가노시는 올림픽 관련 6개 시설을 신설하면서 1180억 엔을 지출했다. 이들 시설이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1억 엔이 채 되지 않는 반면에, 시가 매년 시설 유지관리비로 쓰는 금액은 약 10억 엔에 달한다고 한다. 나가노올림픽 이후 나가노현이 진 빚은 1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가노시 스포츠과 관계자에 의하면, 금년이면 건설비 변제는 끝나지만 유지관리비 부담은 계속되고 있다.
 
  나가노는 그래도 38만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다. 핫포 스키장은 일본에서 선호도가 두 번째로 높다는 곳이다. 나가노시는 연간 600만명을 불러모으는 1400년 역사를 가진 고찰(古刹) 젠코지를 갖고 있다.
 
  강원도 평창의 인구는 4만3000여 명에 불과하다. 스케이팅 경기 등이 열리는 강릉시의 인구도 25만명에 불과하다. 인적·물적 인프라에서 나가노시보다 훨씬 조건이 열악하다. 그런 평창이 나가노시가 올림픽 이후에 겪었던 시행착오와 어려움들을 피해 갈 수 있을까?⊙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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