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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사이다

마쓰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

“시간은 네 꿈을 배반하지 않아”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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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은하철도 999〉 발표 40주년 …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기념전 열려
⊙ 메텔은 마쓰모토가 어린 시절 좋아했던 여우(女優) ‘마리안 홀드’ 이미지
마쓰모토 레이지의 애니메이션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들.
철이와 메텔, 사나이 오이동, 천년여왕, 에메랄다스, 하록 선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은하철도 999〉가 발표 40주년을 맞았다. 40대 이상이라면 매주 일요일 오전 브라운관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던 간절한 시간을 기억한다. 주인공 ‘철이’의 일본 이름이 ‘호시노 데쓰로’, ‘메텔’의 일본식 이름이 ‘메테루’란 사실을 아는 데 비교적 오랜 세월이 흘렀다. 또 메텔의 이름이 라틴어의 어머니를 뜻하는 ‘마테르(Mater)’를 변형시킨 말이라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마쓰모토 레이지.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로 시작하는 주제곡은 모든 어린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노래였고 각종 체육대회의 단골 응원곡이었다. ‘엄마 잃은 소년의 가슴엔 그리움이 솟아오르네~’라는 대목에 이르러선 목에 핏대가 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 곡의 음반 판매량이 24만 장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본에도 같은 주제곡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성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일본 주제곡은 여러 버전이 있는데 그중 한 곡의 가사다.
 
  〈내일의 기적소리가 너에게도 들릴 거야. 땀에 밴 승차권, 움켜쥐어 봐. 노쇠한 대지를 힘껏 박차고 별들 저편으로 여행을 떠나자. 떠나고 있어. 날아가고 있어. 미지의 세계로 이륙하고 있어. 새로운 별을 찾고야 말 거야. 떠나자. 아무도 가지 않은 미래를 향해〉
 
  한·일 두 주제곡의 우열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일본 주제곡 역시 신나고 가사에 생동감이 살아 있는 명곡이다.
 
  〈은하철도 999〉의 시대배경은 서기 2221년. 하늘로 나는 열차 치고 외형은 구닥다리, ‘칙칙폭폭’ 증기기관차다. 왜 그럴까. 기자는 그 수수께끼를 10여 년 전 〈은하철도 999〉의 DVD를 구입하면서 알게 됐다. 출발 직후 메텔은 철이에게 그 까닭을 설명한다.
 
  “겉모습이 증기기관차지만 최첨단이야. 두 번 다시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인간들에게 구식 향수를 불어넣기 위해 외형을 구식으로 한 거야.”
 
 
  묘한 조화, 철이와 메텔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와 메텔.
  기자는 지난 4월 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은하철도 999전(展)’을 찾아갔다. 발표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품 초판 원고와 원작 그림 100여 점을 공개했다. 전시회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갖지 않은 행사라 일본인까지 한국을 찾아 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3월 26일에는 마쓰모토 레이지가 직접 내한, ‘라이브페인팅’, 팬 사인회 행사를 가졌다.
 
  〈은하철도 999〉의 스토리 구조를 떠올리면 대강 이렇다.
 
  서기 2221년 지구를 기계 인간이 지배한다. 인간은 영생을 얻기 위해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기계를 택한다. 그러나 비싼 돈이 필요하다. 가난한 이들은 기계 몸을 가질 수 없다. 어느 날, 기계 백작이 철이의 엄마를 죽였다. 철이는 엄마의 복수를 위해 강한 존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계 인간이 되고자 한다.
 
  메텔이 탑승을 제안하자 철이는 속으로 다짐한다.
 
  “메텔이 마녀든 죽음의 신이든 상관이 없다. 기계 몸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또 이렇게 덧붙인다.
 
  “내 미래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타인에게 지시받고 싶지 않아. 그래서 죽어도 후회는 없어.”
 
  철이는 은하철도 999호를 타고 안드로메다의 별로 갈 수 있다는 꿈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곳에선 그렇게나 원하던 기계 몸을 그저 주기 때문이다.
 
  안드로메다로 달려가는 은하철도 999호의 강렬한 이미지 중 하나는 철이와 메텔의 묘한 조화다. 철이는 누가 봐도 못생겼다. 다부진 키, 성격도 다혈질이다. 반면 사랑스런 음성의 메텔은 말썽쟁이 철이를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온갖 모험을 거치며 철이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고 메텔은 어느 날 사라진다.
 
  〈은하철도 999〉 DVD를 다시 보니, 메텔이 우주여행을 떠날 때 철이에게 한 말과, 안드로메다에 도착한 뒤 철이와 헤어지며 한 말이 서로 대조를 이루며 울림을 주었다.
 
  “젊은이가 일생에서 한 번 맞이하는 여행을 시작하는 거야. 실패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돼. 이제 잊을 수 없는 여행을 할 거야. 너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 거야.” (기차가 출발할 때 한 말)
 
  “안녕, 철아. 내가 네 청춘의 여행길에 함께 있었다는 걸 영원히 잊지 않을게. 난 청춘의 유령, 철이의 추억에 메텔의 이름으로 남았다는 것으로 충분해.” (은하여행이 끝났을 때 한 말)
 
  마쓰모토 레이지는 〈은하철도 999〉 제작 동기에 대해 “나약한 인간을 버리고 강인한 기계 인간이 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가진 나약함의 위대함과 성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쓰모토의 명언 중에 이런 말도 있다.
 
  “인간은 꿈을 배신하지 않는다. 꿈도 인간을 배신해선 안 된다.”
 
  어쩌면 이 말 속에 ‘마쓰모토 애니메이션’의 비밀이 담겼는지 모른다. 그가 만든 작품은 〈은하철도 999〉 외에도 〈우주해적 캡틴 하록〉 〈천년여왕〉 〈에메랄다스〉 등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철이에게 한 메텔의 대사 중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는 점이다.
 
  “시간은 네 꿈을 배반하지 않아. 네가 … 네 꿈이 이 시간을 배반하지 않는 한 ….”
 
 
  메텔 얼굴의 비밀
 
구스모토 다카코, 마리안 홀드(오른쪽).
  검은 벨벳 모자와 망토를 한 독특하고도 신비스런 메텔의 모습은 아직도 매력적이다. 작가 마쓰모토 레이지는 두 명의 여성을 떠올리며 메텔을 그렸다고 한다. ‘구스모토 다카코’라는 여성과 여우(女優) 마리안 홀드(Marianne Hold·1933~1994).
 
  구스모토 다카코는 마쓰모토의 먼 친척으로 그가 태어나던 해(1938년) 사망했다고 한다. 일본 개화기 때 유명한 여의(女醫)라고 전해진다. 만난 적이 없고 사진을 통해 접한 이 여성의 얼굴이 그에게 어떤 인상을 갖게 만든 걸까. 마쓰모토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카코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나의 조상의 유전자가 나에게 전해져 이 아름다운 여성을 그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마리안 홀드는 1955년에 상영된 쥘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영화 〈나의 청춘 마리안느(원제 Marianne de ma jeunesse)〉에 출연했다. 마쓰모토 레이지가 어린 시절 스크린을 통해 만났던 이상형의 여성으로 전해진다. 동독 출신의 마리안은 가수이자 여배우로 35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나의 청춘 마리안느〉는 그녀가 전성기 시절 출연한 영화다.
 
  메텔의 얼굴도 얼굴이지만, 메텔의 음성을 우리말로 더빙한 성우 송도영씨의 목소리는 얼마나 감미로웠던가.
 

  송씨는 오드리 헵번, 공리, 데미 무어, 니콜 키드먼, 소피 마르소, 장만옥, 조디 포스터, 쥘리에트 비노슈, 킴 베이싱어, 헬렌 헌트 등을 전담한 베테랑 성우. 그런 그녀가 몇 해 전 성우협회 교류차 일본에 들렀다고 한다. ‘은하철도 999전’에서 당시 일화를 공개했다.
 
  “내가 비비안 리, 오드리 헵번, 맥 라이언 등을 했다고 말하니 일본 성우들이 단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그러나 〈은하철도 999〉의 메텔 역을 맡았다고 덧붙이니 일본 성우들의 반응이 대단했다. 그때 나는 일본 사람들이 메텔에 대한 애정이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에서도, 한국처럼, 철이(호시노 데쓰로)와 메텔은 국민영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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