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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연의 프로이트 다시읽기 - 기억의 비밀

치매 - 인생 황혼에 찾아오는 질풍노도와 방황

글 : 김보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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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태적인 성행동도 치매의 영향
⊙ 피니어스 게이지 사고로 전전두엽 손상의 영향 드러나
⊙ 치매 근본 치료할 수 있는 새 약물 속속 임상 중

김보연
1962년생. 가톨릭대학 의대 졸업 / 현 성가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마음의 신경과학연구회장, 대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법제이사, 가톨릭의과대학 외래교수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한 후 성격이 달라진 피니어스 게이지.
  치매는 기억-생각-감정-행동을 조절하는 뇌신경에 직접 발생하는 질병이다. 치매에 걸리면 심각한 정신 건강의 문제를 갖게 된다. 종종 병이 걸리기 전의 성격과 다르게 욕설을 하거나 화를 못 참고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을 모르는 변태적인 성(性)행동도 종종 나타난다.
 
  이것은 남다른 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경계를 침범한 치매가 일으킨 병리현상이다.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거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치매는 인간 영혼을 오염시키는 질환이다. 노년에는 스트레스-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을 견디고, 치매를 피해야 행복하게 장수할 수 있다.
 
  치매는 65세 이상에서 6.2%, 80세 이상에서는 20%, 95세 이상에서는 45%로 유병률이 높다. 평균수명이 길어져 알츠하이머 치매가 증가하고 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나 40세 이상에서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와 뇌혈관에서 증가하고 이게 뇌 신경세포를 죽이는 독성 물질로 작용한다고 한다.
 
  치매는 크게 알츠하이머 치매, 전두엽을 주로 침범하는 전두엽성 치매, 뇌손상·알코올·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비퇴행성 치매 등으로 구분된다. 신경정신의학자들은 오랫동안 뇌의 여러 부위의 손상과 수술적 제거 후에 나타난 증례, 증상을 바탕으로 뇌의 기능에 대해 알게 됐다. 독자들에게 유명한 사례를 소개해 본다.
 
 
  자위하는 치매노인
 
  “원장님. 간호사, 요양사들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환자를 제대로 관찰하지도 않고 80 중반이 넘은 노인이 왜 잠을 자지 않고 자위(自慰)행위를 한다고 그럽니까?”
 
  A 노인의 50대 아들은 흥분해 요양병원의 간호직원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잠 안 자고 돌아다니기는 하시는데 목욕실에서 샤워기를 밤새 틀어놓고 성행위를 한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자신들이 잠을 못 잔다고 불평하는 거 아닙니까. 저와는 대화가 잘 돼서 물어봐도 아니라고 하시는데….”
 
  아들은 요양병원에서 간호사, 요양사들이 아버지 때문에 잠을 못 자니 생트집을 잡는다고 말했다. 필자가 치매 환자의 경우 간혹 그런 증상을 보인다고 설명했으나 그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A 노인은 84세로 건축업을 해 돈을 벌었다. 평소 적극적이고 남들에게 큰소리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고혈압 환자였던 그는 15년 전 사업이 부도나고 차압이 들어와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고 3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았으며 요양병원에 온 지 2개월 정도 됐다.
 
  간호사들이 보고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아랑곳하지 않고 자위행위를 하거나 다른 노인과 구강 성행위를 하고 제지하는 간호사에게 심한 욕을 한다는 것이었다. 할머니 환자의 방에 침입하기도 해 문제가 심각해지자 병원 측에서 보호자인 아들을 불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료를 받아보자 한 것이다.
 
  요양원에 있던 B 노인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 B 노인은 “난 정신적으로 불편한 것이 없다. 내가 몇 살인데 거기서 성기를 꺼내놓고 만지냐?”며 오히려 필자에게 역정을 냈다. 이 노인도 주변을 살피지 않고 성기를 꺼내 만지고 할머니를 무릎에 앉히고 가슴을 만지려는 것이 적발돼 보호자들에게 전문의의 진료를 받도록 연락했다.
 
  두 노인은 전두엽성 치매 증상으로 진단 후 약간의 약물치료로 호전이 됐고 이후 잘 지낼 수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A 노인의 아들은 여전히 요양병원의 간호직원들이 잘못 본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사고 후 사람이 달라진 피니어스 게이지
 
  1848년 미국 버몬트에 있는 철도회사의 현장 감독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1823~1860)는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큰 사고를 당했다. 쇠막대가 게이지의 왼쪽 볼을 치고 그의 머리를 관통한 것이다. 그의 머리뼈에 10센티미터나 되는 구멍이 생겼고 쇠막대는 왼쪽 눈 뒤의 뇌를 꿰뚫어 왼쪽 전전두엽이 대부분 파괴됐다.
 
  쇠막대 제거 수술 후 빨리 회복해 신체적으로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신중했던 성격이 사고 후 전혀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자주 버럭 화를 내고 이유도 없이 욕을 해댔다. 그는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지 못했으며 일을 알아서 적절히 하지도 못했고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전전두엽 손상 환자들은 주의·집중력이 없어지고 무엇을 생각함에 두서가 없어지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를 쉽게 하게 된다는 것이 알려져서 주의력 결핍 장애나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연구에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또 감정적으로 실망하는 기색이 없어지며 세상만사를 초월한 듯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본 지능이나 생각하는 능력은 크게 손상받지 않아 짧은 물음에 답하거나 쉬운 셈은 할 수 있다.
 
  전두엽성 치매를 앓는 노인들의 변태적 성행위와 흥분과 욕설은 종종 보고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전두엽이 손상되면 판단력 장애와 흥분을 참지 못하는 행동이 나타나고, 측두엽의 앞 부분이 손상되면 과도한 각성, 성욕, 변태, 감각장애, 순종 행동 등의 증상들도 나타날 수 있다(Klüver-Bucy 증후군).
 
  전전두엽은 뇌 겉질 아래의 본능과 감정-행동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역동적 성격이론이 잘 들어맞는다. 뇌 겉질 아래에 위치한 감정 학습 중추인 편도와 중뇌의 본능적인 감정-행동 체계를 이드라고 할 수 있고 전전두엽의 배 쪽 안쪽 영역은 편도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므로 초자아에 해당되며 자의식 사고를 통제하는 전전두엽의 등, 바깥쪽 영역과 자기 몸과 바깥세계의 표상이 저장되는 뇌의 뒷면 감각 겉질은 자아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는 70세의 K 여사는 보름에 한 번, 항상 남편의 손을 잡고 진료실을 방문한다. 그녀는 품위 있고 다정한 분이며 주치의의 말을 잘 들어 고마운 분이다. 좋은 집안에 대학도 졸업하고 남편과 결혼 후 자식들도 잘 키워놓았고 그야말로 행복한 가정주부였으나 8년 전부터 기억 장애로 필자에게 치료받고 있다. 약물치료로 빠른 진행을 막을 수 있었고 상담을 통하여 질병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으나 아쉽게 병은 점차 악화되었다. 처음에는 얼굴에 생기도 있고 사회적 모임도 유지하였으나, 점차 새로운 학습이 어렵고 일상의 단순한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 여사는 물건을 여기저기 두고 찾고 잊어버리고 또 찾기를 반복하였다.
 
  3~4년이 지나자 K 여사는 한 말을 반복하고 약속을 잊어버리기 일쑤여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이 점점 곤란해졌다. 남편은 아직은 아니지만 아내가 계속 과거 기억을 잃고 있어 자신의 즐거웠던 기억조차 잃고 자신도 못 알아볼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해마(hippocampus)는 일상의 경험에서 이루어지는 수 초-수 분간의 작업기억(working memory)을 뇌 겉질에 연결하고 저장하여 장기기억으로 만드는 기능을 한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처음에 해마 입구와 주변에서 신경세포의 사멸(死滅)이 일어나 새로운 학습과 장기기억에 장애가 나타난다.
 
 
  해마가 손상되면…
 
기억상실증 환자를 소재로 한 영화 〈메멘토〉와 〈첫키스만 50번째〉.
  수술로 해마가 손상된 환자 H.M의 증례는 매우 유명하다. 1957년 신경외과 의사 스코빌(William Scoville)과 신경과학자 밀너(Brenda Milner) 박사가 최초로 보고했고 영화 〈메멘토〉와 〈첫키스만 50번째〉 등의 소재가 됐다. 미국 태생인 H.M은 사고로 인한 심한 측두엽 간질(경련성 질환) 환자로 1953년 스코빌 박사에게 수술을 받았다.
 
  수술엔 양쪽의 내측 측두엽과 해마의 2/3과 편도가 포함됐다. 수술 후 H.M에게는 모든 기억이 없어지는 심각한 전향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이 나타났다. 그의 수술 전 기억은 정상이었고 지능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약간의 후향성 기억상실증(retrograde amnesia)도 있었는데 수술 전에 잘 알고 있던 병원 직원, 병동의 공간적 위치에 대한 기억상실, 더구나 친했던 3년 전에 사망한 삼촌의 사망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의 사춘기, 유명인들의 얼굴은 잘 기억했다고 한다.
 
  그는 새로운 학습, 경험에 대한 기억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점심식사 후 30분이 지나면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심지어 점심식사를 했는지조차도 몰랐다. 그러나 작업기억으로 알려진 수 분간 지속되는 기억력은 정상이었다. 그의 수술 후 지능은 정상이었으며 평소처럼 친절하고 재미있는 성격을 유지했다.
 
  밀너 박사와 동료가 수십 년간 한 달에 한 번 H.M을 방문하였지만 그는 그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고 자신의 최근 사진, 거울에 비친 모습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기억 속에는 사고 전의 모습만이 각인돼 있을 뿐이었다.
 
  그를 통해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은 뇌의 다른 곳에 저장되며 ▲사실에 대한 기억, 사건의 기억 등 의식과 회상이 가능한 의식적 기억(서술적 기억)은 안쪽 측두엽과 해마를 통해 장기기억으로 뇌 겉질과 연결되고 ▲이후 뇌 겉질의 여러 부위에 분산 저장되므로 뇌의 다른 부위의 손상은 기억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다른 중요한 발견은 H.M이 자신도 모르게 거울을 통하여 별을 그리는 기술을 배우고 발전시킬 수 있었고 이는 우리가 운전을 배우는 과정과 동일한 기억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밀너 박사가 발견한 그림 그리기 기억은 비록 의식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운동기억(비서술적 기억)이지만 무의식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다. 후에 ‘의식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운동기억은 습관, 솜씨기억 등과 함께 뇌 겉질 아래 운동 중추인 선조체에 저장되고 감정 중추인 편도와 소뇌에는 감정, 연상학습을 저장하고 반사경로를 통해 비연상 학습을 저장함을 알게 됐다.
 
  난폭하거나 무분별한 성행동 등 치매의 정신・행동 장애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면 잘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이다. 그러나 기억력 자체의 치료는 한계가 있다. 현재 치매 치료제는 신경세포의 사멸을 막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세포의 기능을 항진시키기 때문에 효과가 제한적이다.
 
  최근에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근본 원인으로 보이는 아밀로이드의 축적 자체를 예방해 주는 베타 아밀로이드 길항제가 개발되어 임상시험 중이어서 새 약물들이 치매는 물론 노화에 의한 건망증에도 효과가 있으리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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