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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분석

통일부의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통해 본 요동치는 北 내부

탈북민 절반 이상 “김정은 싫고, 권력 승계 정당성 없어”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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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2022년 탈북민 6351명 1대 1로 심층 면접·분석… ‘3급 비밀’로 비공개하다 이번에 공개
⊙ 금융, 부동산, 보육, 에너지, 식량·의료품 조달 등에서 국가 의존 줄고 개인·가정·시장 부문 확대
⊙ 탈북민 91%, “빈부 격차 심하다”… 식량 배급 경험, 지방은 평양(60.9%)의 절반 불과
⊙ 무상치료제도 붕괴… 10명 중 4명 병원 못 가봐
⊙ “돈보다 권력이 좋아”… 뇌물 액수 점점 커져
⊙ 탈북민 10명 중 8명 “北에서 외국 영상물 시청”
  김씨 일가 3대 세습 통치에 반감을 갖는 북한 주민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북한 주민의 부정 평가 역시 증가하고 있다고 조사됐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 10명 중 4명은 병원 진료 경험조차 없었고, 70% 이상은 식량 배급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지난 2월 6일 발간했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만 18세 이상 탈북민 6351명을 1대 1로 심층 면접해 분석한 결과물이다. 그간 정부는 매년 탈북민을 대상으로 실태 보고서를 작성해왔지만, ‘3급 비밀’로 부쳐왔다. 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 통일부는 비밀을 해제하고 일반에 공개했다.
 
  보다 정확한 해석을 위해 탈북 시기를 2000년 이전부터 2020년까지 5년 단위로 나눠 분석했다. 또 김정은이 집권한 2011년 전후 결과를 따로 배치했다. 조사 주제에 따라 북한 거주 당시 출신 지역(접경, 비접경, 평양)을 표기하기도 했다. 연령별 혹은 소득 수준별로 나눠 조사한 항목도 있다.
 
  이번 보고서는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북한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북한 실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북한을 올바른 변화로 유도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준비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 강조했다. 《월간조선》은 이번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탈북민의 인식, 북한 경제 현황과 생활상을 들여다본다.
 
 
  탈북민 54.9% “‘백두혈통’ 부정적”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의 평가는 어떨까?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5.5%가 북한에 있을 때 정치지도자로서 김정은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응답자에서 그 비율은 59.6%로 증가했다. 김정은에 대한 부정 평가는 평양 출신이 59.2%로 가장 높았다. 20~50대 이상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김정은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는 비율이 50% 이상이었다.
 
  2016~2020년 사이 탈북민 가운데 북한 거주 당시 ‘백두혈통 영도체계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비율은 29.4%에 그쳤다. 2000년 이전 탈북한 이들의 답변이 57.3%였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반대로 백두혈통 영도체계가 부정적이라고 평가한 비율은 같은 기간 22.7%에서 54.9%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김정은의 권력 승계의 정당성을 묻는 말에도 부정적이라는 평가가 점점 높아졌다. 2000년 이전 탈북한 응답자 중 33.6%가 김정은의 권력 승계를 부정적이라고 봤지만, 2016~2020년 사이 탈북민 중 부정 평가 비율은 56.3%로 집계됐다.
 
  세습에 대한 탈북민의 불만 정도가 북한 주민 전체 여론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탈북민 인식 변화 양상을 볼 때 세습 정당성에 불만을 가진 북한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백두혈통 영도체계에 대한 인식 균열이 강화되고 있다고 통일부는 진단했다. 김정은의 딸 주애가 후계자로 올라선다면 4대 세습에 대한 내부 인식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사경제, 국영경제 앞서
 
중국 지린성 훈춘의 한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2017년 9월 촬영됐다. 사진=AP/뉴시스
  이어 북한 경제 실태와 변화 양상을 살펴보자.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북한 경제는 국영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김정은 집권 이전 탈북한 응답자는 국영경제 전업 종사자(33.4%)가 사경제 전업 종사자(24.9%)보다 많았다. 하지만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1~2015년을 기점으로 사경제 전업 종사자 비중(33.5%)은 국영경제 전업 종사자 비중(25.5%)을 역전했다. 특히 북중 접경 지역 출신일수록 사경제 전업 종사자 비중이 더 큰 폭으로 높아졌다. 북한 당국은 사경제 활동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2000년대 이후 시장화가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사경제 활동으로 얻는 비공식 소득이 공식 소득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타인에게 고용돼 일하고 돈을 받는 이른바 삯벌이(사적 고용)도 나타나고 있다. 삯벌이 역시 김정은 집권기 들어 가속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응답자 중 13.6%가 삯벌이로 일해봤다고 답했다. 삯벌이를 시켜본 경험 역시 김정은 집권 이전 2.8%에서 집권 이후 14.5%로 대폭 증가했다.
 
  북한 전역에서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금융 분야는 아직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공금융이 거의 모든 금융을 책임지는 금융 일원화 체계를 따른다. 이는 이번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전체 응답자의 97.5%가 여유자금을 집에 보관했다고 답했다. 은행이나 저금소에 보관했다는 응답은 평균 1.6%에 불과했다. 이는 은행이나 저금소에 돈을 맡길 경우 돌려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낮다는 뜻이다.
 
  반면 개인 간 돈을 주고받는 사금융은 확대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개인이나 기업이 개인에게 대가를 제공하고 돈을 빌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린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32.0%가 ‘그렇다’고 답했다. 돈을 빌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장사밑천’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53.4%로 가장 많았다. 2000년대 이전 탈북자 중 장사밑천으로 돈을 빌렸다는 비중은 41.9%에 그쳤지만,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1~2015년 그 비중은 60.0%로 증가했다. 돈을 빌릴 때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응답(44.0%)이 이자를 지급했다는 응답(37.0%)보다 높다는 점으로 미뤄봤을 때, 이 같은 사금융 행위가 금융시장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정은 집권 이후 이자를 지급했다는 비율이 오르고 있어 앞으로 사금융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통일부는 최근 북한 사금융 이자율을월 7%대로 추정한다.
 
 
  위안화, 1순위 거래 화폐
 
2017년 촬영된 압록강 근처 북중 국경 마을 모습. 사진=AP/뉴시스
  북한의 사경제 규모가 확대되는 만큼 그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중 ‘종합시장(장마당) 소매장사’가 2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물건을 사서 즉시 넘겨 파는 ‘되넘기 장사’ 19.0%, ‘밀수(밀무역)’ 14.3%, ‘음식 장사’ 8.7%, ‘텃밭·뙈기밭’ 5.3% 순이었다. 김정은 집권 이전 7.4%였던 밀수가 김정은 집권 이후 19.5%로 증가한 점 또한 눈에 띈다. 밀수 비중이 큰 폭으로 증가한 이유에 대해 보고서는 “응답자 다수가 접경 지역 출신이라는 점과 같은 시기 응답자 중 여성 비중이 감소하고 남성 비중이 증가한 추세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종합시장 소매장사 응답 비율은 36.6%에서 19.9%로 감소했다. 북한의 사경제 하면 장마당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이는 초기 시장화 단계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사경제 유형이 다양해지면서 장마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09년 11월 북한 당국이 단행한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뒤 북한 내에서 위안화와 달러 등 외화 통용이 많이 늘어난 것도 확인됐다. 보고서는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김정은 집권 이전 탈북한 응답자 가운데 북한 원화를 1순위 거래 화폐라고 답한 비중은 80.7%였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응답자의 경우 36.4%에 불과했다. 그 대신 12.2%였던 중국 위안화 사용 비중이 57.9%로 증가했다. 같은 시기 달러 사용 비중도 0.9%에서 3.4%로 늘었다. 접경 지역과 비접경 지역 내 달러화 거래 비율은 각각 0.5%, 5.1%에 그쳤으나, 평양은 32.7%를 기록해 큰 차이를 보인 것도 특이점이다.
 
  보유 화폐의 종류를 묻는 말에 대해 ‘외화만 보유했다’는 응답도 꾸준히 증가했다. 2011년 이전 탈북한 응답자의 32.5%는 북한 원화만 보유했다고 응답했다. 이들 가운데 외화만 보유했다는 비율은 6.9%였다. 하지만 외화만 보유했다는 비율은 2011~2015년 33.3%, 2016~2020년 41.4%로 급증했다. 보고서는 “원화 보유 비중의 급감은 2009년 화폐개혁에서 기존 화폐 100원을 신권 1원으로 맞교환하는 조치의 영향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평양은 강북 발달… 집값은 10만 달러 정도”
 
평양 소재 옥류 전시관에서 열린 2023 의류 전시회 모습.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내 빈부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사진=AP/뉴시스
  개인 간 주택을 사고파는 행위도 현재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국가가 부담해 주택을 짓는다. 이에 따라 주택 소유권은 국가가 갖는다. 개인 간 주택 매매는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그러나 2017년 탈북한 한 응답자는 “주택 매매가 되니 큰 재산이 된다”면서 “평양은 강북이 발달해 있고, 그곳 집들은 10만 달러 정도 한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증언은 이번 조사로도 확인된다. 김정은 집권 이전 탈북한 응답자 가운데 주택 매매를 해봤다는 비중은 10.6%였지만,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응답자 27.8%가 주택 매매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 내 주택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시장화를 통해 자산을 모은 사람들이 주택 수요자로 나섰고, 자신이 거주하는 주택을 매각해 현금을 획득하려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보고서는 “북한에서 주택 매매는 해당 주택의 소유권을 사고파는 것이 아닌, 이용권을 사고파는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응답자 일부는 북한에 부동산 매매 중개인이 있다고 증언했다. 2019년 탈북한 한 응답자는 “전문적으로 집을 사고파는 데 개입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집을 팔겠다고 하면 그 사람(중개인)이 살 사람을 데리고 온다”고 말했다. 실제 전체 응답자 중 23.3%가 주택을 판매할 때, 18.9%가 구매할 때 중개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주택 매매가 빈번히 이뤄지는 데 반해 북한 당국의 통제는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 시기와 관계없이 응답자 60% 이상이 ‘통제가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내 빈부 격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기존 핵심 계층인 당·정·군 간부들의 치부 행위에 더해 사경제 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돈주 등 일부 상위 계층이 등장하며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2016~2020년 사이 탈북한 이들 중 93.1%가 빈부 격차가 심하다고 응답했다.
 
  평양과 지방 간 생활수준 격차도 이런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방은 평양보다 공공 서비스 및 인프라 공급에서 훨씬 더 열악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지방(접경 33.9%, 비접경 30.1%)은 식량 배급 경험도 평양(60.9%)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병원 진료 경험 역시 평양이 76.9%로 지방(접경 63.6%, 비접경 60.6%)보다 높았다.
 
 
  김정은 집권 후 전력난 심해져
 
  북한 산업 분야는 만성적인 전력 부족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소(당국의 계획을 수행하며 동시에 독자적인 경영 활동을 하는 경제 단위)의 하루 평균 가동시간을 묻는 말에 전체 응답자의 34.9%가 1~6시간이라고 답했다. 전력 부족은 원자재 확보 어려움과 함께 기업소 생산의 최대 장애요인으로 지목됐다.
 
  가정용 전력 공급 역시 열악한 수준이다. 전체 응답자에 따르면, 가정용 전력 공급이 이뤄지는 시간은 하루 평균 4.1시간이다. 경제 여건과 상관없이 모든 계층이 겪는 문제다. 이에 따라 응답자 중 30.9%는 가정에서 자체적으로 전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전력난은 극심해져 전체의 절반가량인 47.3%가 전력을 자체 생산했다고 답했다. 그 방법으로는 ‘축전지(충전용)’ 49.0%, ‘태양전지’ 32.3%, ‘자체발전기(기름)’ 11.5% 등이 있었다.
 
  난방 연료의 경우 평양은 석탄(59.2%)·전기(9.5%) 사용 비율이 높았지만, 접경 지역에서는 나무 연료로 난방하는 비율이 72.7%였다. 최근 김정은이 지방경제 활성화에 사활을 걸며 당·정·군 주요 간부들을 투입하는 것도 도시 간 벌어진 인프라 격차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10명 중 2명 한국 영화·드라마 봤다
 
  다음으로 북한의 생활상을 살펴보자. 전체 응답자의 반수가 넘는 57.2%가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혀 외국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들어보고 싶지 않았다는 비율은 21.9%였다. 외국 문화에 관한 이 같은 관심은 김정은 체제 들어 더 증가했다. 김정은 집권 이전 51.1%였던 ‘들어보고 싶다’의 비중이 김정은 집권 이후 63.3%로 늘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북한 거주 당시 외국 영상물 시청 여부다. 2000년 이전 탈북한 응답자는 8.4%만이 외국 영상물을 시청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2016~2020년 탈북민은 83.3%가 외국 영상물을 시청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은 외국 영상물과 노래 등을 엄격히 단속해왔다. 그러나 외국 문화에 대한 북한 주민의 접근을 막긴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이들이 주로 시청한 영상물은 ‘중국 영화·드라마’가 71.8%로 가장 많았고, ‘한국 영화·드라마’가 23.1%로 뒤를 이었다. 외국 영상물이 탈북의식을 고취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파악됐다. 외국 영상물을 보며 북한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됐다는 응답 비율이 60.7%에 달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보급률 또한 김정은 집권 이후 증가했다. 2016~2022년 사이 탈북한 응답자의 58.8%가 휴대전화를, 33.3%가 컴퓨터를 보유했었다고 밝혔다. 2019년 탈북한 한 응답자는 “이제 거의 50%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며 “그걸로 장사 연계도 하고 전화도 하고 가족들 보고 싶을 때 영상통화도 한다”고 말했다.
 
  외부 정보 유입에 맞서 김정은 정권은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탈북 전 3~4년간 사회 감시·통제 정도’를 묻는 말에 김정은 집권 이전 탈북민은 50.7%가 강화됐다고 응답했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응답자는 71.5%가 강화됐다고 밝혔다. 거주지에서 감시·가택 수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비율도 2000년 이전 탈북민은 16.4%였지만, 2016~2020년 탈북민은 51.3%로 급증했다.
 
 
  북한 학생도 과외받아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3 북한이탈주민 일자리 박람회에 참여한 탈북민들의 모습. 탈북민 일자리 박람회는 2014년 이후 9년 만에 열렸다. 사진=뉴시스
  북한 내 시장화, 정보화가 확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김일성·김정일 혁명 역사는 북한 공교육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과목이다. 흔히 우상화 교육으로 불린다. 압도적 다수인 91.9%가 재학 시절 김일성·김정일 혁명 역사를 가장 중요하게 배운 과목으로 꼽았다.
 
  흥미로운 건 북한 사회에서도 사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응답자의 10.1%가 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느냐는 물음에 ‘학교 선생님’이 55.8%, ‘전문 개인지도 교사’가 37.9%, ‘대학교원’이 7.9%라고 답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 전문 개인지도 교사의 비중이 높아졌다. 2019년 탈북한 한 응답자는 “피아노도 배우고, 영어 과외, 컴퓨터 과외도 시킨다”면서 “돈 많은 집에서 사교육에 투자하는데 안 될 수가 있겠느냐”고 답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수준별로 사교육을 받는 비중은 차이가 있지만, 모든 계층에서 두루 이뤄지고 있었다.
 
  북한이 3대 무상복지 중 하나로 선전해온 무상보육은 그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장이나 동네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대신 자신의 집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김정은 체제 들어 그 비율은 이전 27.7%에서 40.7%로 증가했다. 이는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탁아소의 양과 질이 저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식상의 무상치료제도 역시 보건의료 전문인력, 의약품 생산과 공급, 의료 재원과 기술, 의료 에너지 관련 인프라 등에서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전체 응답자 10명 중 4명이 병원 진료를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주요 의료시설이 평양에 집중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의료 접근성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실제 평양 출신 탈북민은 10명 중 8명이 병원 진료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19년 탈북한 한 응답자는 “병원 생활을 하면 모든 게 다 열악하고 시설이 좋지 못하다”면서 “가스버너부터 쌀까지 다 가져가서 밥을 직접 해 먹는다. 수술할 때마다 집도한 의사들 식사까지 챙겨줘야 한다”고 밝혔다.
 
  의약품을 어디서 구매하느냐는 질문에는 병원(21%)보다 장마당(45%) 비율이 높았다. 의사·간호사와 같은 의료 인력과 의약품 부족 현상이 지속하면서 의약품 자가 공급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북한이 1961년부터 시작한 무상치료제도인 ‘의사담당구역제’도 사실상 작동되지 않았다. 거주 구역별로 의사를 배치해 기초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지만, 응답자 중 70.6%가 의사담당구역제를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정은 집권 이후 무상공급이 많이 줄어든 점을 보면 사실상 북한 무상치료제의 마비와 붕괴를 뜻한다”며 “보건의료 상품화·시장화·개인화가 촉발됐다”고 분석했다.
 
 
  10명 중 6명 “뇌물 불가피”
 
  월수입의 30% 이상을 뇌물 등으로 수탈당했다는 응답도 41.4%에 달했다. 그러면서 응답자 62.9%가 ‘뇌물은 불가피하다고 인식했었다’고 말했다. 탈북 시기에 관계없이 뇌물이 필요하다는 비중은 60%를 넘었다. 뇌물 공여 경험이 있었다는 응답도 김정은 집권 들어 이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북한 사회에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뇌물 액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1만원 미만 소액 뇌물은 2000년 이전 39.2%로 가장 많았지만, 2016~2020년 17.2%로 크게 줄었다. 대신 10만~50만원 미만 뇌물은 2000년 이전 0%에서 2016~2020년 23.0%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또 50만원 이상 고액 뇌물은 2011~2015년 9.4%로 증가했다. 이는 북한 엘리트층은 계속해서 부를 쌓아가지만,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20년간 뇌물을 제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00년 이전 14.1%, 2001~2005년 19.6%, 2006~2010년 30.3%, 2011~2015년 44.0%로 늘어 2016~2020년에는 54.4%에 달했다.
 
  한편 북한 주민은 자본보다 권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57.9%가 북한 거주 당시 돈보다 권력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지배계층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뇌물로 부를 축적한 것을 보며, 권력만 있다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배급제 사실상 붕괴
 
  김일성은 1985년 “먹는 문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기존의 ‘의식주(衣食住)’ 표현을 ‘식의주(食衣住)’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쌀밥에 고깃국을 먹도록 해주겠다”는 김일성의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북한의 배급제는 사실상 붕괴했다. 2006~2010년 탈북한 응답자 중 당국으로부터 “식량 배급을 받아본 적 없다”는 답변은 63.0%였는데, 2016~2020년 사이 탈북한 응답자는 72.2%가 식량 배급을 받아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직장에서 임금과 식량 배급 모두를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2000년 이전 탈북민도 33.5%로 꽤 높았지만, 이후 계속 상승해 2016~2020년 탈북민은 50.3%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제대로 된 임금 지급 없이 열정과 충성심만 강조하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생필품 배급 역시 10명 중 7명이 “전혀 공급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장마당에서의 경제활동을 통해 생활을 꾸려나가는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응답자의 90% 이상이 “시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2000년 이전 탈북한 응답자 중 88.9%가, 2012년 이후 탈북한 응답자 중 90.7%가 시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세대와 출신 지역을 막론하고 그 비율은 비슷했다. “장사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 역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 가운데 93.6%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시장에서 장사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북한 주민의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배급제 붕괴에도 북한에서 하루 세끼를 먹었다는 답변은 탈북 시기에 따라 ‘2000년 이전’ 32.5%에서 ‘2016~2020년’ 91.9%로 많이 늘었다. 이는 식량을 시장에서 조달하는 주민이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쌀·강냉이 조달 방법은 장마당에서 구매했다는 답변이 67.7%로 가장 높았다. 2016~2020년 탈북민의 경우 이 답변이 71.2%로 더욱 높았다.
 
 
  北, 가용 재원 핵·미사일 개발에 소진
 
  김정은 집권 이후 거의 모든 조사 항목에서 북한 주민 인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데 대해 보고서는 “북한 정권은 그나마 가용한 재원(財源)을 핵·미사일 개발에 소진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민생난과 식량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여기에 사용된 자금을 식량 구매에 사용했다면 100만 톤가량을 조달할 수 있었다”며 “이는 북한의 연간 식량 부족분인 80여만 톤을 모두 충당하고도 남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인권 관련 비정부기구 및 연구 단체들은 이번 보고서에 대해 “의미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선임연구위원은 “민간단체들도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정부가 직접 조사해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덕수 북한인권시민연합 부설 윤현연구소 부소장은 “과거엔 주로 ‘먹고사는 문제’가 탈북 이유였다면, 지금은 자유를 찾아 탈북한 주민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보고서 발간이 탈북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영수 북한연구소 소장도 추천사를 통해 “현지 조사가 불가능한 분단 상태에서 북한 내부 사정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집”이라며 “후속 연구를 촉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시계열별, 연령별, 출신 지역별 분석이 모두 담겨 있는 입체적인 보고서”라면서 “오는 11월 열릴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에 앞서 이 보고서를 적극 홍보한다면, 국제사회가 북한 당국에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빠른 시일 내 번역 작업을 끝내 국제사회에 배포할 것”이라며 조만간 “주한 외국 대사를 초청해 북한 인권을 주제로 토의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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