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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요지경

‘돈표’ 부활로 드러난 北의 망가진 경제

코로나19로 부족한 외화 흡수하려 돈표 발행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jgws8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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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 사용 금지된 北… 외화 부족하자 ‘돈표’ 만들어 합법화
⊙ 北 일반까지 확대된 돈표… 개인이 숨겨둔 외화 빼내려는 것
⊙ 주민들은 돈표 신뢰하지 않아… 2009년 화폐개혁 트라우마 떠올라
⊙ 가짜 돈표, 조선노동당 중앙당사 주차장에서 발견… 당 고위간부 연루
2022년 북한에서 발행한 5만원권 ‘돈표’다. 사진=J·M선교회
  최근 북한에서 ‘돈표’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공식 화폐는 아니지만, 화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돈표는 최근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1979년 조선중앙은행을 통해 ‘외화와 바꾼 돈표’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행됐다. 북한에선 외화를 직접 사용할 수 없다. 즉 외화 대용 화폐가 돈표였다는 말이다.
 
  북한에서 외화를 사용하는 이들은 대개 북한 방문 외국인이나 재미·재일·재중 동포들이 대부분이었다. 북한 방문 시 외화를 직접 사용할 수 없으니 모두 조선중앙은행을 방문해 돈표로 바꿨다. 사용하다 남은 ‘외화와 바꾼 돈표’는 물론 다시 환전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방문객은 자신의 가족이나 만났던 사람들에게 주고 돌아갔다.
 
  1988년부터 돈표 발행처가 조선중앙은행에서 조선무역은행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경제난으로 ‘장마당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달러와 위안화가 널리 쓰이게 되었고 민간에 환전상들까지 등장하면서 돈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후 2002년 7월 ‘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발표되면서 돈표는 폐지됐다. 그러다 2020년부터 북한의 기업들을 시작으로 서서히 다시 유통되기 시작했다.
 
 
  北, 무역회사 앞세워 외화 모으기 나서
 
  북한은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자 국경을 폐쇄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수출과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북한에 큰 위기가 닥쳤다. 제일 문제가 됐던 것은 외화였다. 공산품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였는데 코로나19로 그 길이 막힌 것이다. 북한에서의 외화는 김정은과 로열패밀리의 생활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급해진 북한 당국은 여러 방법을 고심하던 중 내부에 퍼져 있는 외화를 그러모으기로 계획을 세웠다.
 
  사회주의를 주창(主唱)하고 미국과 적대적인 북한은 공식적으로 달러는 물론 외화 사용을 금지한다.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1990년대 말 경제난 이후 비공식적으로 달러와 위안을 사용해왔다. 그러다 외화 수요가 급증한 것은 2009년부터다. 이유는 김정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화폐개혁 때문이다.
 

  북한은 당시 화폐개혁을 하면서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교환해주었다. 또 교환 가능한 금액을 가구당 구권 10만원으로 제한했다. 이러한 불합리한 규칙이 북한 사회에 상당한 충격과 공황을 발생시켰다. 북한 당국은 이를 잠재우기 위해 당시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인 박남기를 처형하는 것으로 내부 논란을 일단락시켰다.
 
  이후 북한 화폐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주민들은 시장에서 원화가 아니라 달러와 위안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북한 내부에서도 외화가 비공식적으로나마 유통됐고, 이 밖에 기업 간의 거래에서도 최종적으로는 북한 원화가 아니라 달러, 엔, 유로, 위안 등을 사용했다. 북한 당국은 이같이 은밀히 거래되는 내부 외화를 ‘돈표’라는 수단을 이용해 거둬들이기로 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돈표를 다시 살려 기업들이 사용하도록 했다. 북한은 먼저 과거 조선무역은행에서 발행하던 돈표를 다시 조선중앙은행에서 발행하도록 했다. 이유는 해당 돈표를 전국 어느 은행 지점에서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돈표’ 사용은 자본주의로 가는 길”
 
북한 여성이 달러와 위안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 당국은 2020년을 시작으로 먼저 기업들에 외화가 아닌 돈표를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최종 거래 전 조선중앙은행에서 외화와 돈표를 바꿔 거래하도록 했다.
 
  예를 들면 담배를 만들어 수출하는 회사의 경우 1만 갑의 담배를 만들어 수출해 2만 달러의 수익을 내면 해당 달러를 가지고 은행으로 가 그곳에서 2만 달러를 ‘돈표’로 바꿔 자재나 원료를 사는 데 사용하고, 과거에는 담배에 필요한 자재와 원료를 생산하는 기업들도 외화로 물건값을 받았지만 2020년부터는 ‘돈표’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에 내야 하는 ‘충성’자금도 ‘돈표’로 바치면 인정이 된다.
 
  이를 두고 놀라운 조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상 법으로까지 금지된 외화 사용의 허가이기 때문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북한은 과거 외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지만 아마도 현실을 직시한 것 같다”면서 “현실적으로 외화 사용을 막지 못하니 돈표라는 명분을 만들어 외화 유통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이러면서 “이렇게 되면 자연히 외화는 국가로 들어오게 되고 시중에는 외화를 대신할 돈표가 돌게 된다”며 “북한의 돈표 사용은 공식적으로 외화 사용을 승인한 것과 같다. 자본주의로 가는 길목에 들어섰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최근 발행된 돈표는 과거 북한이 찍어낸 ‘외화와 바꾼 돈표’와 차이가 있다. 그것은 환율이다. 1980~9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북한 사회주의 금융관리 체계는 어느 정도 유지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북한 당국이 환율을 지정해 외화를 교환해줬다. 당시 1달러당 1.7~2.1원 정도였다. 또한 외화를 보유한 외국인들이나 주민들로 하여금 외화상점이라는 곳을 따로 만들어 그곳에서만 외화와 바꾼 돈표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외화와 관련해 모든 것을 철저히 북한 당국이 관리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북한에서 유통되는 외화는 완벽하게 국가 수중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시장에서 몰래 외화가 유통되고 개인 환전소에서 현지 환율에 맞게 거래됐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 당국이 외화를 걷어들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되자 북한 당국이 내놓은 해결 방안이 ‘돈표’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심지어 기업들에 ‘돈표’를 사용하라고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北, ‘돈표’ 5만원권 발행… 대대적인 외화 收金
 
2002년 8월 평양 만수대창작사 판매원이 달러를 받고 있다. 옆에 사용 가능한 신용카드의 종류가 제시돼 있다. 사진=인터넷화면 캡처
  북한은 작년 돈표 5만원권을 새로 발행했다. 기존 돈표의 최고 단위는 5000원권이었다. 북한이 5만원권을 새로 발행한 이유는 환율이 영향을 미쳤다.
 
  대북 소식통은 “지금 북한 환율이 1대 8000 정도다. 100달러를 바꾸려면 80만원”이라며 “5000원권으로 80만원을 바꿔주려면 너무 많은 돈표가 필요하다. 그래서 5만원권을 새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만원권의 발행은 북한 당국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환율이 아니라 시장의 환율을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다”면서 “북한은 돈표를 이용해 기업과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외화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대신 외화를 거두어들이겠다는 속셈”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한때는 기업과 개인들이 돈표에 대한 불신으로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북한 간부들까지 돈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다. 그러자 당국은 돈표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 간부들을 대상으로 강연회까지 열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돈표는 곧 수표”라는 설명에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과거 북한은 ‘수표’에 비견하는 유가증권을 한 번도 발행한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간부들도 ‘돈표=수표’라는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고 혼란만 가중되었다. 참고로 북한에서 ‘수표’는 ‘서명’을 뜻한다.
 
 
  北, 개인 거래도 ‘돈표’ 사용하라 지시… 주민들 불신
 
북한 여성으로 보이는 이가 달러를 세고 있다. 사진=인터넷 화면 캡처
  북한 당국은 돈표를 기업 간의 거래를 넘어 개인 간의 금전거래 때도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개인들에게 있는 외화를 국가로 귀속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당국에 대한 불신 때문에 돈표 사용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북한 당국은 돈표의 원활한 유통을 위해 ‘구루빠(그룹)’까지 만들어 단속에 나섰다고 한다.
 
  탈북민 이정혁(가명)씨에 따르면 2021년 말부터 평양에 ‘돈표 류통 정상화 련합지위부’가 조직됐다고 한다. 해당 구루빠는 도당 조직지도부, 도 인민위원회 통화과, 도 안전부·보위부·검찰 등에 속한 간부들로 구성됐다. 이들 ‘구루빠’의 주된 임무는 주민들이 돈표를 화폐처럼 원활하게 유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이 구루빠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주민들의 돈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상당한 것”이라면서 “기업들과 장마당에서 돈표가 언제 종잇장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액면가격 그대로 유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돈표 구루빠는 현장에 나가 돈표 유통을 조사하고 결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는지, 액면가보다 낮게 거래되지는 않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고 한다.
 
  실제 북한 어느 한 지역에서 돈표를 거부하고 액면가격보다 낮게 교환해준 화폐상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보위원(국가안전보위성 소속)에 의해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한 대북 소식통은 “현재 돈표와 관련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북한 당국이 기업에 현금 대신 돈표를 지급하고 이를 화폐상을 통해 외화 또는 현금으로 환전하는 방식으로 국가재정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러자 북한 주민 사이에서 돈표에 대한 불신이 날로 더해지고 있다. 2009년 화폐개혁 당시 북한 정권의 민낯을 본 경험 때문이다. 주민들은 보유 중인 돈표를 하루빨리 처분하려는 한편 거래를 잘 안 하려고 한다.
 
 
  가짜 돈표 100억원대 유통… 北 당국 단속에 나서
 
  이런 가운데 2021년 10월경 평양에서 가짜 돈표를 찍어 유통한 일당이 체포됐다. 북한 당국은 당시 돈표 인쇄를 중단하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과거 북한에서 개인이 달러와 위안 등 외화를 위조해 유통한 사건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북한 지폐나 돈표를 위조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이 몰래 찍은 돈표는 100억원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지폐에는 위조방지를 위해 돋을새김과 은(銀)선, 자외선에 비치면 그림이 나타나는 등 여러 장치가 있다. 하지만 북한 돈표는 비용 문제로 인해 이러한 위조방지 장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조 돈표를 찍어낸 이들은 평양인쇄공업대학 졸업생들로 알려졌다. 평양인쇄공업대학은 북한의 유일한 인쇄 기술 전문대학이다. 졸업생 대부분이 평양인쇄공장이나 평성 화폐공장에서 근무하거나 북한의 주요 인쇄공장과 관련 정부 기관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배운 기술을 이용해 치밀하고 은밀하게 가짜 돈표를 찍어냈다고 알려져 북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가짜 돈표는 눈으로 봐서는 전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치밀했고, 오직 기계로만 가려낼 수 있을 정도”라면서 “적발된 것만 100억원이지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유통수법도 지능적이었다. 범죄조직은 가짜 돈표를 평양에서 환전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감시가 허술한 지방에서 환전을 진행했다. 여러 지방에 유통망을 구축해놓고 조금씩 환전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특히 이들은 북한 당국의 돈표 발행과 동시에 시작해 한 달 동안 지속적으로 가짜 돈표를 찍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던 중 조직 내부에서 배당을 놓고 갈등이 생겼고, 불만을 품은 내부자가 안전부에 자백하며 범죄는 적발됐다.
 
  북한 사회안전성(경찰청)은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고, 의외의 장소에서 가짜 돈표를 발견했다고 전한다. 그곳은 조선노동당 중앙당사 주차장이었다. 노동당 중앙당사는 김정은 집무실뿐만 아니라 핵심 기관들이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까지 가짜 돈표가 발견됐다는 것은 고위 간부도 연루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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