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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고모 김경희 6년간 행적 추적

김경희 그동안 스위스에 머물며 요양 치료 받아

글 : 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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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김경희 6년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
⊙ 남편 장성택 숙청 이후 묘향산 별장서 치료받아
⊙ 김정은, 김경희를 스위스로 휴양 보내
⊙ 김경희 스위스로 가는 과정 김정철이 주관해
⊙ 김경희, 국제사회 눈을 피해 열차로 스위스까지 이동
북한 김정은이 설날인 지난 1월 25일 삼지연극장에서 부인 리설주와 함께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월 26일 보도했다. 김정일의 여동생이자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원 안)가 2013년 9월 9일 이후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등장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가 지난 2013년 이후 6년 만인 2020년 1월 26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김경희는 2013년 장성택 처형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3년 9월 9일 김정은과 함께 정권 수립 65주년 경축 노농적위군 열병식에 참석한 후 조선인민군내무군협주단 공연을 관람한 게 마지막 공개 활동이었다.
 
  이후 김경희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이 떠돌았다. 일각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김경희가 독살됐다는 얘기와 함께 건강악화로 사망설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난 1월 26일 김경희가 공식 석상에 등장하면서 ‘독살’ 등 사망설은 불식됐다. 그럼 그동안 김경희는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월간조선》은 김경희에 대한 지난 6년간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 그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스위스에서 치료를 받으며 칩거(蟄居)해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해당 정보는 북한 고위층과 실제 접촉하며 북한 관련 정보를 입수해 국내외 정보기관에 제공하는 정통한 북한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
 
 
  북한 최고 권력자의 딸 김경희
 
김일성(가운데)이 아들 김정일(왼쪽), 딸 김경희(오른쪽)와 함께 1966년 촬영했다는 사진. 앳돼 보이는 김정일과 김경희 남매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사진=프리미엄 조선
  김경희는 1946년 5월 30일 북한 최고 권력자 김일성과 김정숙(김일성 첫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경희는 김정일이 가장 아끼는 동생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에서 김정일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김경희다.
 
  김경희와 장성택의 사랑 이야기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유명하다. 많은 고위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공개된 북한 최고 권력자의 딸과 함경도 시골 청년의 사랑 이야기는 가슴 절절했다. 여러 고위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김경희는 장성택을 김일성종합대학 시절 처음 만났다. 김경희는 장성택과 결혼을 시켜달라고 김일성에게 요청했고, 김일성은 장성택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이들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김일성은 장성택을 강원도 원산에 있는 원산경제대학으로 내려보냈다. 하지만 김경희는 자신의 아버지인 김일성의 차를 훔쳐 타고 원산까지 장성택을 만나러 다니면서 연애를 이어 나갔다. 결국 오빠인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을 설득해 이들은 1972년에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이후 두 사람은 그 어떤 부부보다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은 얼마 가지 못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자 장성택은 밖으로 떠돌기 시작했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기쁨조 파티를 흉내 내며 자신도 여성들을 불러 파티를 벌이며 부화방탕(浮華放蕩)한 생활을 했다.
 
  장성택의 여성 편력에 대한 소식은 김경희에게까지 알려졌다. 이후 김경희는 알코올과 마약에 기대 살아갔고, 결국엔 알코올·마약 중독에까지 이르게 된다.
 
  한 고위 탈북자는 “장성택의 이런 행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이에 열 받은 김경희는 자신의 개인 음악교사였던 김성호와 맞바람을 피우게 된다”며 “이에 열 받은 장성택은 심화조(深化組) 사건 당시 김성호를 반동으로 몰아 처형을 해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김경희는 오빠인 김정일을 찾아가 난리를 치지만 이미 김성호는 죽은 뒤였고, 이로 인해 김경희와 장성택은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북한 심화조 사건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북한에서 발생한 대규모 숙청 사건이다.
 
  김경희와 별거하게 되면서 장성택의 여성 편력은 더욱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2006년에는 고명딸인 장금송이 사랑하는 남자와의 사이를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유학 중이던 프랑스 파리에서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부부를 엮던 최후의 끈도 사라져버렸다.
 
 
  김경희는 장성택 처형에 찬성했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외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 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되었다.
 
  (중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 것을 확증하였으며 흉악한 정치적 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열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북한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3년 12월 13일 발표한 보도문 맨 앞부분과 말미 부분이다.
 
  이렇게 북한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은 처형됐다. 조선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가 장성택의 숙청 사실을 확인한 지 나흘 만이다. 북한은 장성택 사형 집행 소식과 함께 그가 재판을 받는 장면의 사진도 공개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례적인 사진 공개는 장성택의 숙청 사실을 보도할 때도 있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013년 12월 9일 오전 6시 ‘조선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를 통해 장성택이 숙청됐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하루 전인 12월 8일 김정은 주재로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모든 직무에서 해임시키고 출당, 제명시키는 결정서가 채택됐다는 것이다.
 
  결정서 채택이 보도된 같은 날 오후에는 ‘조선중앙TV’를 통해 정치국 확대회의장에서 인민보안성 요원들에 의해 장성택이 끌려나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우리 정보 당국이 장성택 측근 처형과 장성택의 실각 가능성을 발표한 지 6일 만에 숙청 사실이 확인됐고, 10일 만에는 사형 집행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다양한 소문이 돌았다. 먼저 장성택 처형은 김경희가 주도했다는 설이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노골적인 장성택의 행태에 김경희가 ‘백두혈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남편을 버렸다는 얘기다. 또 장성택 숙청에 대해 김경희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설, 반대로 장성택의 숙청을 모르고 있던 김경희가 남편이 숙청되자 대로했다는 설, 장성택 숙청에 충격을 받고 기절했다는 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돌았다.
 
  김경희가 남편 장성택 처형에 찬성을 했든 반대를 했든 장성택 처형으로 인해 그 전에도 좋지 않았던 김경희의 건강이 더 악화됐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 고모 김경희를 스위스로 빼돌려
 
김경희와 장성택 모습이다. 사진=조선DB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 내부에선 김경희도 함께 숙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에서 ‘백두혈통’의 숙청을 언급하는 것은 곧 반역이다. 지금의 김정은이었다면 해당 얘기를 언급한 이들을 먼저 처형했을 것이다. 그러나 2013년 당시엔 김정은도 완전한 권력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김경희는 남편 장성택이 처형되자 평안남도 묘향산 인근에 있는 향산 별장으로 옮겨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김경희는 과거 건강이 좋지 않아 여러 차례 해외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통한 북한소식통은 “장성택을 숙청한 김원홍 무리가 이 얘기를 들고나왔지만, 김정은과 최룡해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며 “김경희 숙청 얘기가 나오자 김정은은 고모를 해외로 보낼 계획을 세우게 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2014년부터 고모인 김경희를 해외로 보내 조용히 치료를 받게 할 계획을 세웠다. 이후 스위스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김경희가 머물 별장을 구입하고 주치의와 요리사 등을 극비리에 물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희의 안전과 관련해 북한은 스위스 정보 당국의 특별한 관심을 요구했으며, 스위스 정보 당국 역시 김경희의 안전과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극비리에 진행할 것을 북한 정부와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서는 김경희의 안전을 위하여 러시아에서 용병 출신의 안전요원까지 물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철, 고모 김경희 이동 문제로 스위스 정부와 협상
 
  김정은은 2015년 5월 극비리에 고모인 김경희를 스위스로 보낸다. 김경희는 5월 중순 평양에서 출발해 중국 베이징(北京)을 통과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게 된다. 평양에서 출발한 김경희 일행은 외부인의 눈에 띄지 않게 극비리에 움직인다. 모스크바에서부터 열차를 이용해 스위스까지 가게 된다. 이동 중 오스트리아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정철도 김경희 일행과 합류해 스위스까지 이동하게 된다.
 
  애초 고모의 스위스 휴양을 위해 스위스 정부와 협상을 벌여온 것은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철은 2014년부터 스위스 정보 당국과 협상을 벌여오면서 준비를 철저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희 일행은 평양을 떠나 스위스에 도착할 때까지 6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스위스에 도착한 김경희 일행은 본격 요양에 들어갔고, 김정철은 곧바로 평양으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경희는 스위스의 알프스산맥에 있는 비밀장소에서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김정은은 북한 내부에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한 많은 숙청과 권력 공고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자신의 권력 공고화 작업을 통하여 권력 안정의 틀을 마련한 김정은은 곧 스위스에서 장기 요양을 하던 김경희를 북한으로 귀국시키는 비밀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 김경희의 북한으로의 비밀귀국은 스위스 정보 당국과 러시아 정보 당국, 북한 호위총국과의 협력하에 극비리에 육로와 항공으로 진행된다.
 
  김경희가 스위스에서 언제 돌아온지에 대해선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2017년 8월 29일 국가정보원 확인 결과 김경희는 평양 근교에 머물며 신병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경희는 권력에서 멀어져서 평양 근교에서 조용히 산다고 한다”며 “은둔하면서 신병치료 중”이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김경희 ‘독살설’ ‘숙청설’ 등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그러던 중 북한은 2020년 1월 25일 6년 만에 김경희 모습을 공개했다.
 
  한 국가전략안보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김씨 일가가 과거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해외로 나가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김경희도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안다”며 “스위스도 치료 차원에서 충분히 나갈 수 있지만 오랫동안은 어렵다. 서양 언론에 노출 안 되고 오랫동안 머물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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