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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부

개성공단 사태, 누구에게 책임 있나

처음부터 北의 위협으로 시작됐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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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 빌미로 협박 반복해 온 北의 행태
⊙ ‌랄프 코사 美전략국제연구소 태평양포럼 대표, “개성공단은 대화통로가 아닌 원조통로”
⊙ ‌안찬일(安燦一) 박사, “개성공단 대응, 박근혜 정부가 김정은 정권 이겼다”
2013년 4월 26일 도라산 전망대에서 본 개성공단. 고요 속에 잠겨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 화합의 끈을 쥔 옥동자(玉童子)인가, 북한이 남한사회에 내려보낸 트로이의 목마인가. 개성공단 조업 중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개성공단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보수 진영 안에서도 온도차가 감지된다.
 
  박근혜(朴槿惠) 정부는 지난 5월 3일 개성공단 잔류 인원 전원 철수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좌파 진영은 물론 보수 진영 일각에서도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4월 30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기싸움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이 대표적인 예다. 비판의 논의를 살펴보자.
 
  배명복(裵明福)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개성공단은 포기할 수 없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라며 잔류 인원 철수 결정을 “기싸움에서 밀릴 수 없다는 오기의 산물”이라 표현했다. 정부의 대응을 순진한 발상으로 폄훼하기도 했다. 해당 부분이다.
 
  “박 대통령의 속내를 잘 모르겠다. 이 기회에 북한의 기를 꺾어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것인지, 일단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인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몰아붙여서 북한을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중략)…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속에서도 개성공단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공사를 중단하진 않는다. 개성공단의 문을 닫는 것은 사고 좀 났다고 고속도로 공사를 중단하는 꼴이다. 우리가 먼저 기싸움을 그만둬야 한다. 손은 강자가 먼저 내미는 법이다.”
 
 
  兩非論 펼치는 일부 보수 인사들
 
유호열 한국정치학회 회장은 “개성공단을 이런 식으로 끌고 가느니, 이쯤에서 털고 가는 게 맞다”고 했다.
  정리하자면 개성공단은 남북 교류의 중요한 통로이니 포기하면 안 되고, 이번 사태에서 북한도 잘못했지만 남한도 잘못했으니 남한이 먼저 북한에 손을 내밀자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양비론(兩非論)적 접근이 개성공단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유호열(柳浩烈)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봐야 한다. 개성공단 사태의 책임은 100퍼센트 북한에 있다”고 했다. 과연 개성공단 사태를 촉발한 쪽은 남한일까, 북한일까. 개성공단 사태의 일지를 살펴보자.
 
  지난해 12월 12일 북한은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했다. 북한은 은하 3호가 인공위성 운반용이라고 주장했지만, 북한 외부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체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제사회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올해 1월 23일 대북제재 2078호를 결의했다. 그 직후 북한은 외무성 명의로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성명의 일부다.
 
  “우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진 조건에서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선반도 비핵화도 불가능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었다.…(중략)…미국의 가증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으로 말미암아 자주권 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기초한 6자회담 9·19공동성명은 사멸되고 조선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하였다. 앞으로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 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조선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다.”
 
  말만 앞세우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북한은 성명 발표 20일 후인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했다. 3월 5일에는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다. 판문점대표부 활동도 전면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사회를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국제사회는 더 강력한 조치로 대응했다. 3월 8일 UN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대북제재 2094호가 그것이다. 2094호는 북한의 자금줄을 차단하고, 북한에 의심스러운 화물이 오가는 걸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행 강도도 높였다. 이전까지는 회원들에게 ‘권고’하는 수준이었지만, ‘의무사항’으로 바꿨다.
 
  같은 날,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남북 불가침 합의 전면 폐기’를 선언했다.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이미 북한 리스크에 익숙한 한국사회는 북한이 기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후 한미 키리졸브 연합 훈련을 빌미로 연일 비난 성명을 내던 북한은 며칠 간격으로 일련의 조치들을 단행했다. 개성공단 입출경(入出境) 채널로 쓰던 군 통신선을 단절하더니, 통행을 제한하고, 급기야는 북한 근로자들을 전원 철수시켰다. 키리졸브 훈련은 갑자기 올해 처음 한 훈련이 아니다. 5년 전부터 매년 봄이면 해오던 정기 훈련이다. 결국 5월 3일 남한 측 인원이 전원 개성공단에서 귀환했다.
 
  로켓 발사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살펴보면, 개성공단 사태의 책임은 처음부터 북한에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한국 정부는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를 선언한 북한에 대화 제의를 하기도 하는 등 사태를 풀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개성공단 대응, 南이 北 이겼다”
 
2000년 6월 15일 북한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 대표단 오찬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고 있다. 당시 발표된 6·15선언의 결과로 개성공단은 탄생했다.
  그렇다면 배명복 위원이 지적한 대로,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 결정은 느닷없고 황당한 것일까? 유 교수는 “우리 국민의 신변 보장 문제를 두고 북한의 선의를 기대하면 안 된다”고 했다. 유 교수의 설명이다.
 
  “개성공단은 북쪽 지역에 있습니다. 개성공단 남측 근로자의 신변 안전 문제, 재산상의 문제를 우리 정부가 보장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남북 간의 합의에 의해 가능한 것이죠. 군 당국에서는 인질 문제를 얘기했습니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인질 구출 작전까지 언급했고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기물을 몰수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고요. 개성공단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높은 사업입니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우리 측 근로자들이 거기 남아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했다. 조 교수의 말이다.
 
  “북한이 개성공단 사태 직전에 내놓은 일련의 조치들을 보세요. 적대적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데 우리 국민을 개성에 내어놓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입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이 남한의 새 정부를 길들이려다 실패했다”고 했다.
  근로자를 전원 철수시킴으로써, 북한 정권에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새 정부의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했다는 시각도 있다. 안찬일(安燦一)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의 말이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정부가 북한 정권에 이겼다고 봐야 합니다. 신뢰 프로세스의 핵심이 ‘기본을 지키는 문제’라는 걸 전달한 것이죠. 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만만하지 않구나, 생각했을 겁니다. 이번에 우리 정부가 기선제압을 했다고 봐야지요.”
 
  사실 이번과 똑같은 상황은 과거에도 있었다. 2009년 3월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빌미 삼아 3차례 개성공단 통행을 제한했다. 심지어 남한 측 직원을 억류하기도 했다. 북한체제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무려 136일 동안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북한은 유씨의 생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김 장관의 ‘인질’ 언급이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심지어 중국 정부도 ‘북한에 투자할 때는 조심하라’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중국 상무부가 지난 2011년 5월 6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국가별 투자협력 지침서-북한 편’에서 “북한은 특수한 나라로 투자환경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투자에 일정한 위험이 따른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일부 기업들은 북한의 사정을 잘 모를 뿐 아니라 위험에 대비하려는 의식도 부족해 맹목적으로 대북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 “특히 북한 측 파트너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국유기업을 포함한 여러 개의 중국기업이 북한에서 계약 위반을 당하는 등 피해를 입자 투자지침서에 이러한 경고를 담았다고 한다.
 
 
  “개성공단은 대화통로 아닌 현금 원조통로”
 
조영기 교수는 “신뢰 프로세스의 조건은 객관성, 합리성,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근본으로 돌아가 보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과연 개성공단은 남북 대화의 채널로 적절한가. 랄프 코사(Ralph Cossa) 미국 전략국제연구소(CSIS, Center for Strategic & International Studies) 태평양포럼 대표는 “개성공단은 대화 창구라기보다는 북한에 현금을 원조하는 통로”라고 했다. 지난 4월 2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그의 인터뷰 중 일부다.
 
  “내가 개성에 체류하는 남한 측 근로자라면 당장 남쪽으로 내려올 것이다. 이제 비용대비 편익을 분석해야 한다. 개성에 있는 남한 사람이 인질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계속 지원할 가치가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
 
  조영기 교수도 “개성공단은 태생적 한계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남북 대화 채널이 되기엔 부적절한 공간”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의 말이다.
 
  “우리가 처음에 개성공단에 들어갈 때 정경분리 원칙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우리만 정경분리 원칙을 지켰다는 것이죠. 북한은 정경분리 안 했습니다. 북한은 초지일관 비합리적이었는데 우리만 합리적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을 남북 대화 채널로 활용한다?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요.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이 사업하려고 들어간 거지 남북 대화를 위해 들어간 겁니까? 경제는 경제의 관점에서 봐야지요.”
 
  입주 기업들은 어떤 생각일까. 입주 기업과 교감하며 그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IBK경제연구소의 조봉현(曺奉鉉) 팀장은 “개성공단 정상화만 추진할 게 아니라 개성공단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면 하는 게 입주 기업의 생각”이라고 했다. 조 팀장의 설명이다.
 
  “북한은 남북 간 합의사항, 개성공업지구법 등 자기들이 만든 법 자체도 어기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법 자체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개성공업지구법을 보면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라는 조항은 있지만 어겼을 경우 어떤 페널티를 물게 되는지 처벌 조항이 없어요. 이참에 법을 바꿔야 합니다. 어겼을 때 어떻게 할 건지를 재정비해야 해요. 장기적으로 보면 개성공단 관련 분쟁이 생기면 국제기구를 통해 중재할 수 있는 장치는 어떨까 싶습니다.”
 
  입주 기업의 피해가 많이 거론되는데, 예상 피해도 입주 기업마다 다르다. 신원 같은 경우는 개성공단 생산량이 총 생산량의 10% 미만이다. 개성공단 사태가 장기화되더라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반면, 개성공단 내 공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기업들의 경우는,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조 팀장에 따르면, 123개 기업 중 약 30개 기업은 상대적으로 ‘버틸 힘이 있다’고 한다.
 
 
 
北 군부, ‘미사일 1기 팔면 개성공단 1년치 번다’

 
  북한 고위 사정에 정통한 탈북자 A씨는 ‘남한이 북한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A씨의 말이다.
 
  “개성공단이 북한의 ‘달러박스’라는 보도가 남한 언론에서 나왔습니다. 북한으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1년에 9천만 달러 버는 격이니 맞는 측면도 있지요. 그렇지만 북한 내부에도 여러 성격의 집단이 존재합니다. 군부 내부에는 ‘9천만 달러? 그까짓 거 미사일 1기만 팔면 한방에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당이나 다른 집단 중에는 9천만 달러가 꽤 긴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유 교수도 같은 맥락의 지적을 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6·15선언의 옥동자’라고 표현했지요. 이를 예로 들면서 김정일의 약속이니 북한은 개성공단을 지켜나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섣부른 생각이지요. 북한 내부에서도 군이나 당은 각자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개성공단을 통해 누가 어떤 이익을 보고 있느냐가 변수겠지요. 북한 군부가 아무 수혜도 없는데 개성공단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겠습니까? 우리가 북한을 단순히 한 개의 집단으로 보는 것은 안이한 태도입니다.”
 
 
  “이쯤에서 損切賣하는 게 낫다”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했다. 이 때 136일 동안 억류되어 있던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가 석방됐다.
  개성공단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안 소장은 “김정은 정권을 바꾸거나 붕괴시킬 생각이라면 개성공단에서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고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면서, 북한이 중국에 경도되는 것을 막을 생각이라면 개성공단 하나 정도는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정부의 전반적인 통일 정책에 따라 개성공단의 앞날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유 교수는 “이런 식으로 끌고 가느니, 이쯤에서 손절매하는 게 낫다”고 했다.
 
  “한 달 내지 두 달 정도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기업 입장에서 다시 거기에 들어가 사업을 재개할 인센티브가 있을까요? 그 리스크를 다시 짊어지고 가느니 이번에 보상받고 나오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조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신뢰의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객관성, 합리성, 일관성이 그것입니다. 북한은 늘 일관되게 객관성, 합리성이 없었어요. 개성공단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과연 그 존재 자체가 합리적인가, 따져봐야 한다는 거죠. 현재의 상황은 비합리적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진통일지 모릅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버틸 수 있는 물리적 마지노선은 7월 말이라고 한다. 개성공단 공장 내 설비 중에는 온도·습기조절이 필요한 기계들이 꽤 있다. 8월에는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철이 남북 관계의 분수령인 셈이다. 비 온 뒤의 한반도 지형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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