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른 시일 재개는 전문가들 예상 갈려, 한 달 내 재가동 가능성도
⊙ 남북 관계자와 국제기구가 함께하는 협의체 구성하는 등의 안정화 장치 필요
⊙ 남북 관계자와 국제기구가 함께하는 협의체 구성하는 등의 안정화 장치 필요
- 2013년 4월 11일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한 개성공단 관계자들이 공장에서 싣고 온 짐을 승용차로 옮기고 있다.
개성공단이 2004년 입주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김양건(金養建) 북한 노동당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지난 4월 8일 “개성공단사업을 잠정 중단하며 그 존폐를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양건 부장의 발표에 이어 4월 9일,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5만3000여 명의 북측 근로자가 출근하지 않음에 따라 개성공단 조업은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이로써 ‘관광’과 ‘경제협력’이라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양대 사업이 모두 멈췄다.
북한은 2004년 개성공단 첫 입주를 시작한 이래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대남 위협카드로 활용해 왔다. 지난 2008년 3월 김하중(金夏中) 당시 통일부 장관의 “북핵 진전없이 개성공단 확대는 어렵다”는 발언을 빌미로 우리 당국자들을 추방했고, 2009년에도 ‘키리졸브훈련’을 문제 삼아 군 통신선을 끊고 육로 통행을 차단했다. 같은 해, ‘현대아산 직원이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탈북 책동을 한다’는 이유로 직원 한 명을 억류했다가 풀어준 일도 있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 전체가 출근을 하지 않는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양건 비서가 8일 근로자 출근을 금지시키며 ‘잠정 중단’이라는 용어를 쓰기는 했지만, 지난달 이미 개성공단 폐쇄라는 말이 북한 측으로부터 흘러나왔다. 3월 30일 북한의 개성공단 관리국 대변인이 담화를 통해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대북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금강산처럼 완전 중단할 가능성도
북한의 이 같은 강경 노선에 대해, 박근혜(朴槿惠) 정부는 공식적으로 ‘개성공단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나타내며 ‘북한과 대화를 시도할 것’임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북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개성공단 문제는 결국은 풀리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기도 한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잠재적으로 폐쇄한 표면적 이유가 ‘박근혜 정부와 한국 언론들이 개성공단을 이용하여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북측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상징적인 조치를 취하면 지난 2009년 때처럼 개성공단 운영이 쉽게 재개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처럼 개성공단 조업 중단이 장기화되거나 끝내 폐쇄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11일 남한 관광객인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잠정 중단됐다. 이후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언제든지 관광이 재개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5년째로 접어들었지만 관광이 재개될 조짐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은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을 제정, 독자적으로 관광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남한의 재산을 몰수했다. 개성공단 또한 이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위기의 개성공단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해법이 있는지 북한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기자가 만난 전문가들은 “정치·군사적 문제와 경제문제를 따로 떼놓고 해결한다는 정경분리 원칙을 확고히 하고 정치적인 바람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안정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 내에 재개될 수도
북한 김양건 비서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개성공단이 가동을 중단했지만 북한은 “개성공단 가동을 일시 중단하며 재개 여부는 남쪽에 달려 있다”고 타협의 여지를 열어놨다.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재개 여부에 “완전 폐쇄는 남북한 모두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완전 폐쇄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봉현(曺奉鉉) IBK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얘기다.
“남북한 모두 완전 폐쇄하는 건, 정치·경제적으로 부담이 큽니다. 일방적으로 가동중단을 선언한 북한도 이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근로자 출근만 막은 겁니다. 만약 개성공단을 폐쇄해야 한다고 결심했으면,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우리 측 업체 관계자들도 모두 내보냈겠죠. 아직 우리 쪽 관리자들이 남아 있는 건 북한 측이 재가동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김정은이 개성공단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군부의 손을 완전히 들어준 건 아니지만, 가동중단이라는 강수(强手)를 썼을 때는 강·온건파 중에서 강건파를 지지했다고 봐야겠죠. 그러니 몇 주 내에 가동중단을 풀지는 않겠지만 금강산처럼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조 연구원은 “북미관계 대화나 미사일 발사, 핵개발 같은 외생적 변수가 사태를 크게 악화시키는 쪽으로 가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서, 우리 측 노력에 따라 한 달 내에 재가동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과 나눈 대화다.
—우리 측 노력이란 무얼 말하는 겁니까. 대북특사를 보내는 걸 말하는 겁니까.
“일부에서는 우리 정부가 대북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실행하기 어려운 얘기입니다. 게다가 이번 가동중단 사태가 단지 남측이 북한을 자극해서 발생한 것만도 아닙니다. ‘한반도 긴장 고조’라는 북한의 전략전술 아래서 나온 사태예요. 따라서 특사를 보내거나 우리 측이 사과를 한다고 해서 바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기업인들로 구성해서 물밑 접촉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우리 기업인들을 통해 북측에 재개 여부를 타진하고 감정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2009년 육로통행 차단했을 때도 우리 기업들이 북측 인사들과 만나서 물밑에서 해결했습니다.”
홍순직(洪淳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북측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가동중단의 이유는 ‘한국 정부와 언론이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것”이라며 “우리 정부와 군 등 안보관계자들이 북한을 감정적으로 건드리지 말고 개성공단 외에 다른 지원책 등을 유연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순직 수석연구원의 얘기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감정적으로 북한을 건드린 부분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물론 남북 관계의 전체적인 틀에서 놓고 봐야 하겠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한국이 북측의 자존심을 건드린 부분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런 감정적인 부분이 해결되고, 키리졸브 훈련 등 한미 합동 훈련이 모두 끝나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어렵지 않게 운영이 재개될 것이라고 봅니다.”
김양건을 내세운 이유 분석 필요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와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양건 비서가 개성공단 가동중단 선언을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며 “김정은이 개성공단 문제에 있어 군부가 직접 개입하는 걸 허락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유환 교수와 나눈 얘기다.
“북한이 이전과 달리, 김양건 당 중앙위 비서 개인 명의로 개성공단 가동중단을 발표했습니다. 북한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 중대사를 이처럼 개인 명의로 발표한 적이 드물지요. 게다가 김양건이라는 인물은 그동안 남북대화 창구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이런 사람을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 등장시킨 건 남측에 뭔가 입장 표시를 하라는 압박이자 메시지일 수 있어요.”
—어떤 입장 표시를 말합니까.
“북한 측에서는 최대한 강수를 뒀지만, 남북 대화창구였던 김양건 비서 개인 명의로 담화를 발표했으니, ‘남한이 우리 측을 건드렸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사과하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겠죠. 북한은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나섰고, 현재도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만 그대로 둔다면 군부나 주민들 보기에도 모양새가 좋지 않죠. 이런 점이 고려돼서, 가동은 중단하되 최대한 대화할 수 있는 창구는 열어놨다고 봅니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양건의 등장에 대해서는 고유환 교수와 비슷한 분석이었으나, 개성공단 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김정은이 군부의 입장처럼 개성공단을 유지하는 게 부작용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이번 기회에 완전히 차단하고 오랫동안 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분리 원칙 지킬 안정화 장치 필요
개성공단이 남북 정치·군사적 문제에 따라 ‘통행금지-가동중단-공단폐쇄 위협’을 되풀이하는 악순환 구조가 해결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쉽지는 않겠지만, 정경분리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개성공단 가동중단 문제가 단기적으로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한다면 몰라도, 어차피 공단을 운영해야 한다면 중장기적인 안정화 플랜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개성공단이 운영된다면 남북문제가 생길 때마다 북한이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바꿉니까.
“최근 박근혜 정부가 국제화 얘기를 하는데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겁니다. 현재 개성은 북한이라는 배타적인 행정력과 군사력에 둘러싸인 섬입니다. 잘못하면 고립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인질화됩니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중장기적으로는 ‘국제공단화’시킬 필요가 있어요. 일단 개성에서 한국을 통하는 육로 주위, 특히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남북이 걸치는 공간에 공단을 신설하는 겁니다. 여기는 한국 영토도 걸치기 때문에 외국 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넓어요. 이런 식으로 투자가 이뤄지면, 남북을 가로지르는 신설 공단에서는 함부로 북한이 일방적인 철수 운운을 하지 못할 겁니다.”
—한국 영토에 걸친다고 해도 확장된 개성공단은 북측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경우에 외국 기업이 안정성 측면에서 입주를 꺼릴 것 같은데요.
“현재 개성공단 사업은 한국 중소기업이 직접투자 하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하지만 경영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투자는 간접투자, 합작투자 등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외국 기업들이 직접 들어오기는 어렵지만 한국 기업에 투자를 하거나 합작으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고, 북한의 태도 변화로 입은 손해는 한국 정부나 은행, 보험회사와 계약을 통해 손실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주면 투자할 기업은 많다고 봅니다. 이렇게 외국 기업의 간접, 합작 투자가 늘어나면 개성공단 자체가 ‘레버리지 효과’(지렛대 효과)로 작용해, 북한도 지금처럼 개성공단 운영을 함부로 중단하거나 방해할 수 없게 됩니다.”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조영기 교수와 비슷한 안을 내놓았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안정화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번 조업중단 사태가 잘 봉합되면, 개성공단 문제는 탄력을 받아 더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요. 왜냐하면, ‘이런 사태까지 경험했는데 폐쇄 외에는 더 나쁠 게 뭐겠냐’는 인식이 생기겠지요. 앞으로 서로 감정을 안 건드리면서 개성공단을 끌고 가다 보면, 외국 기업들의 직간접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어요. 다시 말해 국제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북한과 친한 유럽 몇 개 나라의 기업이나, 중국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다양한 방안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정도로 국제화된다면, 앞으로 남북한 양측과 국제기구 인사들이 함께 모여 일종의 ‘개성공단 분쟁협의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협의체에서 양측의 감정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문제를 조율하고 조정해서, 양쪽 정부가 물밑 접촉이나 정식 회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죠.”
안보문제 터져도 인도적 지원 등은 지속해야
고유환 동국대 교수와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연구위원은 “경제 논리에 따른 정경분리가 대안”이라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가 터져도, 정치와 경제 특히 인도적 지원 등을 분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개성공단의 궁극적 해법은 북한이 함부로 문닫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정치·군사적인 도발에 대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과는 철저히 분리하면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정경분리 원칙을 가지고 개성공단을 운영, 확장하면서 외국 기업들을 하나 둘 끌어들이면 개성공단 자체가 남북문제의 레버리지로 작용할 겁니다. 북한도 어느 선에서는 개성공단을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만은 없어요. 결국 북한도 개성공단 문제에 있어 정경분리 원칙을 엄격하게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홍순직 연구위원)
“이명박 정부 들어서, 개성공단 문제에 있어 ‘정경연계’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개성공단은 사실, 정경분리 정책을 추진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북한의 입장을 봐주자는 게 아닙니다. 개성공단은 지난 9년간 남측과 북측이 각각 다른 주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지속한 사업입니다. 한국은 한계에 도달한 중소기업의 활로와 고용창출,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는 목적이 있고, 북측은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남측 기업에 내주고 연간 90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경제적 이득과 함께 전쟁억지 효과를 기대했습니다.
이렇게 남과 북의 개성공단에 대한 주관적 생각은 다를지라도 사업을 지속하면서 나타난 객관적 현실은 남과 북 어느 측도 먼저 전면 폐쇄를 주장하기 어려운 남북공유의 평화협력 완충지역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런 효과를 살리고 개성공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북한이 모두 정경분리 원칙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봅니다.”(고유환 교수)⊙
[인터뷰] 개성공단에서 처음 철수했던 金龍九 스킨넷 대표
“임금 싸지만 불안정한 곳에서 사업할 수 없었다”
“개성공단은 기업인 입장에서는 참 매력적인 곳입니다. 한국과 비교해 임금이 거의 30%에 불과하니까요. 게다가 북한 직원들의 열정도 높아요.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한번 문제가 터지면 모든 매력이 사라집니다.”
지난 4월 11일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사무실에서 만난 김용구(金龍九) 스킨넷 대표는 지난 2007년 개성공단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했다가 1년7개월 만인 2008년 6월 자진 철수했다. 모피 의류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스킨넷은 개성공단 철수 1호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그가 개성공단에서 서둘러 철수한 이유는 ‘직원들의 안전문제’ 때문이었다. 2009년 3월 북측의 개성공단 통행차단 조치로 그의 회사 직원들이 이틀간 억류된 적이 있었다. 당시 억류 직원들의 가족들이 이틀 밤을 꼬박 새워가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여기다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에 대한 억류사건까지 터지자 서둘러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기업은 이윤 창출이 목적인데 경영 외적인 변수로 흔들려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철수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대표와 나눈 얘기다.
저임금에도 열정적인 북한 근로자들
—개성공단에 입주할 때, 남북문제 같은 정치적, 군사안보적 문제가 회사 경영에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왜 안 했겠습니까. 기업 하는 사람들에게 안정성이 최우선인데요. 하지만 당시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죠. 문제가 생겨서 철수하면, 남북경협기금과 입주 기업들이 가입한 보험에서 손해를 보상해 준다고 했어요. 당시에는 통일부가 입주할 기업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구두 약속을 많이 했지요. 그래서 기업인 입장에서도 ‘설마, 우리 정부가 사지(死地)로 우리를 내몰겠느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다 개성공단 입지 조건, 근로자 임금 수준이 한국과는 말도 못하게 좋았어요.”
—한국보다 임금이 얼마나 낮았습니까.
“이것저것 합쳐도, 한국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개성에 입주하기 전에 한국 파주 외에 중국 톈진에도 합작공장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임금 등을 계산해 보니까, 중국과 비교해도 60~70% 수준이었어요. 임금과 공장비용이 확 줄면 저처럼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웬만한 리스크는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 수준은 어땠습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뭐든지 배우려고 하고, 영리한데다 열정이 대단해요. 우리 근로자들은 웬만하면 놀려고 하지만, 북한 근로자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사장인 제가 근로자 대표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상의하면, 대번 ‘뭔 그리 말이 많습네까? 당장 하자우요’ 하면서 자기들이 먼저 ‘으쌰으쌰’해요. 비교하면, 우리 아버지 세대가 일하듯이 그렇게 열심히 일합니다. 한국에 비해 확 저렴한 임금에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니까,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매력적인 곳입니다.”
자신들이 형님이라고 생각하는 북한 근로자들
—북한 근로자들과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자존심을 맞춰주는 게 가장 어려웠죠.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형님이고 우리가 동생이라고 생각하더군요.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우리가 북한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고, 북한이 우리에게 뭔가를 베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을 건드리면,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문제가 생기곤 했습니다.”
—기업 하기에 상당히 좋았는데도 왜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나요.
“매년 비용 절감이 되니까, 어느 정도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너무 불안정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통행이 금지되고, 직원이 억류되는 데 ‘이러다가는 잔돈 벌다가 사업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도 좋지만, 안정되게 일하고 직원들 신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바로 철수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한 결정이죠.”
—중간에 철수했는데, 손해가 크지 않았나요.
“공단에 입주한 게 2007년 9월이었으니 거의 2년 만에 철수한 거죠. 총 5억원을 투자해 1억8000만원 정도 손실을 봤습니다.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들도 많지만 저희는 825m2(약 250평) 아파트형 공장 임차 형태로 입주했기 때문에 철수에 따른 손해도 적었습니다. 산업단지공단으로부터 보증금을 반환받고 설비도 다시 옮겨올 수 있어 손실을 많이 줄였지요. 북한 근로자에 대한 기술지도 비용과 급여, 월세 등이 손실액의 대부분입니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지돼서 언제 다시 재가동될지 모릅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개별적으로 결정할 사안이지만, 빨리 철수하는 게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주 입장에서는 임금이 싸니까, 매년 이득을 보는 것 같지만 이런 일이 몇 년에 한 번씩 반복되면 실질적으로 얻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혹시나 문제가 생겨서 직원들이 인질화된다거나, 억류되면 그걸 해결하느라 들이는 비용, 노력 등이 다른 나라에서 공장하는 것보다 더 들지 않을까요.”
사람을 안전하게 빼오는 게 철수의 핵심
—철수를 하는 것도 용이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기계도 버리고 와야 하고 공장 부지를 산 기업들도 많을 텐데.
“제가 알기로 입주 기업의 약 40%가 임차입니다. 나머지 기업들이 공장 부지를 산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 부지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포기하는 게 엄청난 손실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계는 적게는 3년, 길게는 9년 동안 사용한 것이라 이미 감가상각이 거의 다 됐어요. 만약 기계를 뽑아 오더라도 공단 가동이 1년 이상 중지되면 한국에서 보관하는 창고 비용이 엄청납니다. 차라리 중국이나 동남아에 공장을 시작할 때, 중고 기계를 사는 게 더 저렴할 수 있어요.
철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일단,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사람만 다 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보상문제 등은 정부와 상의하거나 소송 등을 통해 최대한 만회하는 겁니다. 철수가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게 아닙니다. 사람 빼오는 게 철수예요.”
—우리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너무 북한을 감정적으로 긁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단지 우리 정부뿐만이 아니라, 국회, 언론 등이 모두 그래요. 북한은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나라예요. 이런 나라 앞에다 대고 개성공단 인질 구출 작전, 철수 이후 보상문제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더 발끈할 겁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입주 기업 보상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지만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는 비공개적으로 조용히 알리는 게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언론에 대놓고 철수 이후 문제를 고민하는 걸 드러내면 북한은 더 난리를 칠 겁니다. 보상문제도 일단 사람을 모두 빼오고 나서, 혹시라도 생길 인질문제 가능성을 없애 놓고, 우리끼리 조용히 처리하면 됩니다.”⊙
김양건(金養建) 북한 노동당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지난 4월 8일 “개성공단사업을 잠정 중단하며 그 존폐를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양건 부장의 발표에 이어 4월 9일,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5만3000여 명의 북측 근로자가 출근하지 않음에 따라 개성공단 조업은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이로써 ‘관광’과 ‘경제협력’이라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양대 사업이 모두 멈췄다.
북한은 2004년 개성공단 첫 입주를 시작한 이래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대남 위협카드로 활용해 왔다. 지난 2008년 3월 김하중(金夏中) 당시 통일부 장관의 “북핵 진전없이 개성공단 확대는 어렵다”는 발언을 빌미로 우리 당국자들을 추방했고, 2009년에도 ‘키리졸브훈련’을 문제 삼아 군 통신선을 끊고 육로 통행을 차단했다. 같은 해, ‘현대아산 직원이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탈북 책동을 한다’는 이유로 직원 한 명을 억류했다가 풀어준 일도 있었다.
하지만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 전체가 출근을 하지 않는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양건 비서가 8일 근로자 출근을 금지시키며 ‘잠정 중단’이라는 용어를 쓰기는 했지만, 지난달 이미 개성공단 폐쇄라는 말이 북한 측으로부터 흘러나왔다. 3월 30일 북한의 개성공단 관리국 대변인이 담화를 통해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대북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개성공단 폐쇄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쓴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금강산처럼 완전 중단할 가능성도
북한의 이 같은 강경 노선에 대해, 박근혜(朴槿惠) 정부는 공식적으로 ‘개성공단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나타내며 ‘북한과 대화를 시도할 것’임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북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개성공단 문제는 결국은 풀리지 않겠느냐’고 기대하기도 한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잠재적으로 폐쇄한 표면적 이유가 ‘박근혜 정부와 한국 언론들이 개성공단을 이용하여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북측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상징적인 조치를 취하면 지난 2009년 때처럼 개성공단 운영이 쉽게 재개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금강산 관광 중단 사태처럼 개성공단 조업 중단이 장기화되거나 끝내 폐쇄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11일 남한 관광객인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잠정 중단됐다. 이후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경우 언제든지 관광이 재개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5년째로 접어들었지만 관광이 재개될 조짐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은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을 제정, 독자적으로 관광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남한의 재산을 몰수했다. 개성공단 또한 이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위기의 개성공단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해법이 있는지 북한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기자가 만난 전문가들은 “정치·군사적 문제와 경제문제를 따로 떼놓고 해결한다는 정경분리 원칙을 확고히 하고 정치적인 바람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안정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달 내에 재개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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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봉현 IBK연구소 연구위원. |
“남북한 모두 완전 폐쇄하는 건, 정치·경제적으로 부담이 큽니다. 일방적으로 가동중단을 선언한 북한도 이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근로자 출근만 막은 겁니다. 만약 개성공단을 폐쇄해야 한다고 결심했으면,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우리 측 업체 관계자들도 모두 내보냈겠죠. 아직 우리 쪽 관리자들이 남아 있는 건 북한 측이 재가동의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김정은이 개성공단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군부의 손을 완전히 들어준 건 아니지만, 가동중단이라는 강수(强手)를 썼을 때는 강·온건파 중에서 강건파를 지지했다고 봐야겠죠. 그러니 몇 주 내에 가동중단을 풀지는 않겠지만 금강산처럼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조 연구원은 “북미관계 대화나 미사일 발사, 핵개발 같은 외생적 변수가 사태를 크게 악화시키는 쪽으로 가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서, 우리 측 노력에 따라 한 달 내에 재가동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연구원과 나눈 대화다.
—우리 측 노력이란 무얼 말하는 겁니까. 대북특사를 보내는 걸 말하는 겁니까.
“일부에서는 우리 정부가 대북특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실행하기 어려운 얘기입니다. 게다가 이번 가동중단 사태가 단지 남측이 북한을 자극해서 발생한 것만도 아닙니다. ‘한반도 긴장 고조’라는 북한의 전략전술 아래서 나온 사태예요. 따라서 특사를 보내거나 우리 측이 사과를 한다고 해서 바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기업인들로 구성해서 물밑 접촉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우리 기업인들을 통해 북측에 재개 여부를 타진하고 감정적인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2009년 육로통행 차단했을 때도 우리 기업들이 북측 인사들과 만나서 물밑에서 해결했습니다.”
홍순직(洪淳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북측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가동중단의 이유는 ‘한국 정부와 언론이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것”이라며 “우리 정부와 군 등 안보관계자들이 북한을 감정적으로 건드리지 말고 개성공단 외에 다른 지원책 등을 유연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순직 수석연구원의 얘기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감정적으로 북한을 건드린 부분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물론 남북 관계의 전체적인 틀에서 놓고 봐야 하겠지만,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한국이 북측의 자존심을 건드린 부분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런 감정적인 부분이 해결되고, 키리졸브 훈련 등 한미 합동 훈련이 모두 끝나면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어렵지 않게 운영이 재개될 것이라고 봅니다.”
김양건을 내세운 이유 분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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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유환 동국대 교수. |
“북한이 이전과 달리, 김양건 당 중앙위 비서 개인 명의로 개성공단 가동중단을 발표했습니다. 북한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국가 중대사를 이처럼 개인 명의로 발표한 적이 드물지요. 게다가 김양건이라는 인물은 그동안 남북대화 창구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이런 사람을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 등장시킨 건 남측에 뭔가 입장 표시를 하라는 압박이자 메시지일 수 있어요.”
—어떤 입장 표시를 말합니까.
“북한 측에서는 최대한 강수를 뒀지만, 남북 대화창구였던 김양건 비서 개인 명의로 담화를 발표했으니, ‘남한이 우리 측을 건드렸던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사과하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겠죠. 북한은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나섰고, 현재도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만 그대로 둔다면 군부나 주민들 보기에도 모양새가 좋지 않죠. 이런 점이 고려돼서, 가동은 중단하되 최대한 대화할 수 있는 창구는 열어놨다고 봅니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양건의 등장에 대해서는 고유환 교수와 비슷한 분석이었으나, 개성공단 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김정은이 군부의 입장처럼 개성공단을 유지하는 게 부작용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이번 기회에 완전히 차단하고 오랫동안 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분리 원칙 지킬 안정화 장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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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기 고려대 교수. |
“개성공단 가동중단 문제가 단기적으로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공단을 일방적으로 폐쇄한다면 몰라도, 어차피 공단을 운영해야 한다면 중장기적인 안정화 플랜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개성공단이 운영된다면 남북문제가 생길 때마다 북한이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바꿉니까.
“최근 박근혜 정부가 국제화 얘기를 하는데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겁니다. 현재 개성은 북한이라는 배타적인 행정력과 군사력에 둘러싸인 섬입니다. 잘못하면 고립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인질화됩니다. 따라서 개성공단을 중장기적으로는 ‘국제공단화’시킬 필요가 있어요. 일단 개성에서 한국을 통하는 육로 주위, 특히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남북이 걸치는 공간에 공단을 신설하는 겁니다. 여기는 한국 영토도 걸치기 때문에 외국 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넓어요. 이런 식으로 투자가 이뤄지면, 남북을 가로지르는 신설 공단에서는 함부로 북한이 일방적인 철수 운운을 하지 못할 겁니다.”
—한국 영토에 걸친다고 해도 확장된 개성공단은 북측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경우에 외국 기업이 안정성 측면에서 입주를 꺼릴 것 같은데요.
“현재 개성공단 사업은 한국 중소기업이 직접투자 하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하지만 경영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투자는 간접투자, 합작투자 등 다양한 방법이 있어요. 외국 기업들이 직접 들어오기는 어렵지만 한국 기업에 투자를 하거나 합작으로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고, 북한의 태도 변화로 입은 손해는 한국 정부나 은행, 보험회사와 계약을 통해 손실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주면 투자할 기업은 많다고 봅니다. 이렇게 외국 기업의 간접, 합작 투자가 늘어나면 개성공단 자체가 ‘레버리지 효과’(지렛대 효과)로 작용해, 북한도 지금처럼 개성공단 운영을 함부로 중단하거나 방해할 수 없게 됩니다.”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조영기 교수와 비슷한 안을 내놓았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안정화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번 조업중단 사태가 잘 봉합되면, 개성공단 문제는 탄력을 받아 더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요. 왜냐하면, ‘이런 사태까지 경험했는데 폐쇄 외에는 더 나쁠 게 뭐겠냐’는 인식이 생기겠지요. 앞으로 서로 감정을 안 건드리면서 개성공단을 끌고 가다 보면, 외국 기업들의 직간접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어요. 다시 말해 국제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북한과 친한 유럽 몇 개 나라의 기업이나, 중국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다양한 방안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정도로 국제화된다면, 앞으로 남북한 양측과 국제기구 인사들이 함께 모여 일종의 ‘개성공단 분쟁협의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협의체에서 양측의 감정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문제를 조율하고 조정해서, 양쪽 정부가 물밑 접촉이나 정식 회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죠.”
안보문제 터져도 인도적 지원 등은 지속해야
고유환 동국대 교수와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연구위원은 “경제 논리에 따른 정경분리가 대안”이라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가 터져도, 정치와 경제 특히 인도적 지원 등을 분리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개성공단의 궁극적 해법은 북한이 함부로 문닫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정치·군사적인 도발에 대해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과는 철저히 분리하면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정경분리 원칙을 가지고 개성공단을 운영, 확장하면서 외국 기업들을 하나 둘 끌어들이면 개성공단 자체가 남북문제의 레버리지로 작용할 겁니다. 북한도 어느 선에서는 개성공단을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만은 없어요. 결국 북한도 개성공단 문제에 있어 정경분리 원칙을 엄격하게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홍순직 연구위원)
“이명박 정부 들어서, 개성공단 문제에 있어 ‘정경연계’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개성공단은 사실, 정경분리 정책을 추진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북한의 입장을 봐주자는 게 아닙니다. 개성공단은 지난 9년간 남측과 북측이 각각 다른 주관적인 입장을 가지고 지속한 사업입니다. 한국은 한계에 도달한 중소기업의 활로와 고용창출,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는 목적이 있고, 북측은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남측 기업에 내주고 연간 90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경제적 이득과 함께 전쟁억지 효과를 기대했습니다.
이렇게 남과 북의 개성공단에 대한 주관적 생각은 다를지라도 사업을 지속하면서 나타난 객관적 현실은 남과 북 어느 측도 먼저 전면 폐쇄를 주장하기 어려운 남북공유의 평화협력 완충지역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이런 효과를 살리고 개성공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북한이 모두 정경분리 원칙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봅니다.”(고유환 교수)⊙
[인터뷰] 개성공단에서 처음 철수했던 金龍九 스킨넷 대표
“임금 싸지만 불안정한 곳에서 사업할 수 없었다”
| ⊙ 공장기계 아깝지만 일단 인력부터 빼고 보상은 나중에 언급하는 것이 최선 ⊙ 정부와 언론이 북한의 자존심 너무 긁는 것도 문제 해결에 도움 안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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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구 대표가 운영하는 스킨넷은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이후, 중국 베이징으로 공장을 옮겼다. 사진은 자신이 생산한 모피코트 제품 앞에 서 있는 김용구 대표. |
지난 4월 11일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사무실에서 만난 김용구(金龍九) 스킨넷 대표는 지난 2007년 개성공단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했다가 1년7개월 만인 2008년 6월 자진 철수했다. 모피 의류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스킨넷은 개성공단 철수 1호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그가 개성공단에서 서둘러 철수한 이유는 ‘직원들의 안전문제’ 때문이었다. 2009년 3월 북측의 개성공단 통행차단 조치로 그의 회사 직원들이 이틀간 억류된 적이 있었다. 당시 억류 직원들의 가족들이 이틀 밤을 꼬박 새워가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여기다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에 대한 억류사건까지 터지자 서둘러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기업은 이윤 창출이 목적인데 경영 외적인 변수로 흔들려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철수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대표와 나눈 얘기다.
저임금에도 열정적인 북한 근로자들
—개성공단에 입주할 때, 남북문제 같은 정치적, 군사안보적 문제가 회사 경영에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왜 안 했겠습니까. 기업 하는 사람들에게 안정성이 최우선인데요. 하지만 당시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죠. 문제가 생겨서 철수하면, 남북경협기금과 입주 기업들이 가입한 보험에서 손해를 보상해 준다고 했어요. 당시에는 통일부가 입주할 기업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구두 약속을 많이 했지요. 그래서 기업인 입장에서도 ‘설마, 우리 정부가 사지(死地)로 우리를 내몰겠느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다 개성공단 입지 조건, 근로자 임금 수준이 한국과는 말도 못하게 좋았어요.”
—한국보다 임금이 얼마나 낮았습니까.
“이것저것 합쳐도, 한국의 30%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개성에 입주하기 전에 한국 파주 외에 중국 톈진에도 합작공장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임금 등을 계산해 보니까, 중국과 비교해도 60~70% 수준이었어요. 임금과 공장비용이 확 줄면 저처럼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웬만한 리스크는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 수준은 어땠습니까.
“정말 좋았습니다. 뭐든지 배우려고 하고, 영리한데다 열정이 대단해요. 우리 근로자들은 웬만하면 놀려고 하지만, 북한 근로자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사장인 제가 근로자 대표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상의하면, 대번 ‘뭔 그리 말이 많습네까? 당장 하자우요’ 하면서 자기들이 먼저 ‘으쌰으쌰’해요. 비교하면, 우리 아버지 세대가 일하듯이 그렇게 열심히 일합니다. 한국에 비해 확 저렴한 임금에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니까,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매력적인 곳입니다.”
자신들이 형님이라고 생각하는 북한 근로자들
—북한 근로자들과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자존심을 맞춰주는 게 가장 어려웠죠.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형님이고 우리가 동생이라고 생각하더군요. 개성공단에 대해서도, ‘우리가 북한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고, 북한이 우리에게 뭔가를 베푼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어요. 그래서 이런 부분을 건드리면,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문제가 생기곤 했습니다.”
—기업 하기에 상당히 좋았는데도 왜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나요.
“매년 비용 절감이 되니까, 어느 정도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너무 불안정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통행이 금지되고, 직원이 억류되는 데 ‘이러다가는 잔돈 벌다가 사업 망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도 좋지만, 안정되게 일하고 직원들 신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바로 철수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한 결정이죠.”
—중간에 철수했는데, 손해가 크지 않았나요.
“공단에 입주한 게 2007년 9월이었으니 거의 2년 만에 철수한 거죠. 총 5억원을 투자해 1억8000만원 정도 손실을 봤습니다.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들도 많지만 저희는 825m2(약 250평) 아파트형 공장 임차 형태로 입주했기 때문에 철수에 따른 손해도 적었습니다. 산업단지공단으로부터 보증금을 반환받고 설비도 다시 옮겨올 수 있어 손실을 많이 줄였지요. 북한 근로자에 대한 기술지도 비용과 급여, 월세 등이 손실액의 대부분입니다.”
—개성공단 가동이 중지돼서 언제 다시 재가동될지 모릅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개별적으로 결정할 사안이지만, 빨리 철수하는 게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주 입장에서는 임금이 싸니까, 매년 이득을 보는 것 같지만 이런 일이 몇 년에 한 번씩 반복되면 실질적으로 얻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혹시나 문제가 생겨서 직원들이 인질화된다거나, 억류되면 그걸 해결하느라 들이는 비용, 노력 등이 다른 나라에서 공장하는 것보다 더 들지 않을까요.”
사람을 안전하게 빼오는 게 철수의 핵심
—철수를 하는 것도 용이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기계도 버리고 와야 하고 공장 부지를 산 기업들도 많을 텐데.
“제가 알기로 입주 기업의 약 40%가 임차입니다. 나머지 기업들이 공장 부지를 산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 부지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포기하는 게 엄청난 손실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기계는 적게는 3년, 길게는 9년 동안 사용한 것이라 이미 감가상각이 거의 다 됐어요. 만약 기계를 뽑아 오더라도 공단 가동이 1년 이상 중지되면 한국에서 보관하는 창고 비용이 엄청납니다. 차라리 중국이나 동남아에 공장을 시작할 때, 중고 기계를 사는 게 더 저렴할 수 있어요.
철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일단,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사람만 다 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보상문제 등은 정부와 상의하거나 소송 등을 통해 최대한 만회하는 겁니다. 철수가 언뜻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게 아닙니다. 사람 빼오는 게 철수예요.”
—우리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너무 북한을 감정적으로 긁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단지 우리 정부뿐만이 아니라, 국회, 언론 등이 모두 그래요. 북한은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나라예요. 이런 나라 앞에다 대고 개성공단 인질 구출 작전, 철수 이후 보상문제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더 발끈할 겁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입주 기업 보상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지만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는 비공개적으로 조용히 알리는 게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언론에 대놓고 철수 이후 문제를 고민하는 걸 드러내면 북한은 더 난리를 칠 겁니다. 보상문제도 일단 사람을 모두 빼오고 나서, 혹시라도 생길 인질문제 가능성을 없애 놓고, 우리끼리 조용히 처리하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