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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水爆 실험 그 이후

유 제독의 Periscope(잠망경) 〈9〉 국방개혁의 성공을 위한 조건

대한민국 국군, 갈라파고스 군대가 되지 않으려면…

글 : 유영식  예비역 해군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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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군대’ 만들려면 군사혁신과 국방개혁 필요
⊙ 박정희 정권 이후 정권마다 국방개혁 추진했지만, 군내(軍內) 기득권에 막혀 성과 못 거둬
⊙ 국방개혁 성공 위해서는 인력운영의 개방성, 절차적 정의 확보, 소통과 신뢰 중요

유영식
1962년생으로 해군사관학교를 39기로 졸업했다. 35년9개월간의 군 생활 가운데 17년간을 해군본부와 국방부 대변인실 등에서 정훈장교로 일했다. 2009년부터 5년 동안 해군 공보과장으로 재직하며, 최장수 해군공보과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4년 해군 준장으로 해군본부 정훈공보실장(해군 대변인)을 지냈다.
  #1. 우리에게 갈라파고스 군대는 필요 없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1000km 떨어진 태평양의 작은 섬,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당연히 군대는 없다. 그러나 이 섬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된 진화론은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대한민국 국군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진화론은 1835년 9월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험하던 도중 같은 종(種)임에도 불구하고 격리된 환경에서 다른 모습으로 서식하는 핀치 새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이론은 1864년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스펜서(H. Spencer)가 《생물학의 원리(Principles of Biology)》라는 저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이 살아남는다”는 이른바 적자생존(適者生存)으로 요약된다. 진화론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
 
  급변하는 안보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방 분야에 있어 화두는 단연코 국방개혁이다. 문 대통령은 합참의장 이·취임식에서 “강한 군대를 만들라는 국방개혁은 더 지체할 수 없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왜 ‘국방개혁’을 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 답은 간단하다. 북한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억제·압도하는 강군으로 체질을 갖추고, 안정적 평화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선진화된 군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을 성공적으로 억제해 왔고 미래의 위협에 대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더욱 고도화되고 급기야 미국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호언하는 수준에 이르렀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미군의 전략자산에 기대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연간 40조원에 이르는 국방예산을 사용하면서도 언제까지 미군 전력에 의존을 해야 하는지?” “그동안 우리 군은 싸우면 이기는 전투형 군대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병력자원은 감소하고 있고 경제성장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 스스로는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매는 혁신을 어떻게 해왔는지?”라고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국방개혁은 국방안보 종사자들이 함께 모여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안보위협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대한민국 군대는 갈라파고스 군대가 될지도 모른다.
 
 
  #2. 강한 군대의 조건은 군사혁신에 있다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이 프랑스군을 격파한 크레시 전투. 유급병 제도를 도입한 군사혁신의 승리였다.
  ‘강한 군대’는 적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군대이다. 동시에 그 존재만으로도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군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강한 군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우수한 무기, 전략전술에 뛰어난 지휘관과 참모진, 잘 훈련되고 수적으로도 우세한 병사, 병참 능력 등 요소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정답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특정 군대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군사 지도자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다른 나라나 군대와 차별되는 혁신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그 혁신은 전투를 수행함에 있어 자신의 군대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극대화해서 전장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춘추(春秋)시대로 가보자. 춘추시대 초기의 군사력은 병력과 전차(戰車)의 수(數)라고 할 수 있었다. 천승(千乘)이라는 말은 ‘1000대의 병거(兵車)를 갖출 힘이 있는 나라’라는 말이다.
 
  당시에는 마치 약속대련(對鍊) 하듯이 넓은 평원에서 만나 전차를 이용하여 전투를 벌였다. 때문에 구사할 수 있는 전술이 제한되었다. 그 시대에 전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게 바로 당시 변방 국가였던 오(吳)나라의 손무(孫武)였다. 그는 습지와 호수가 많아 전차 운용이 제한되는 약점을 다양한 보병전술을 창안하여 극복했다. 그것이 바로 군사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적용된 손무의 다양한 전술은 나중에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정리됐다.
 
  우리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군사적 혁신의 사례는 바로 이순신 제독이다. 이순신의 함대는 일본 수군이 함선의 수에서 우위에 있고, 위력적인 조총으로 무장했으며, 백병전에 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근접전을 피하는 대신 판옥선과 함포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해상전술을 개발했다. 이와 함께 근접전이 불가피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하여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창안했다. 군사혁신은 단순히 무기의 개발이나 특정 지휘관의 전략전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는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당시 유럽의 3류 군대였던 잉글랜드군을 단번에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로 성장시켰다. 일반적으로 그가 전투에서 승리한 원인을 장궁(長弓)이나 화포의 도입 등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클리퍼드 로저스(Clifford. J. Rogers) 미국 육군사관학교 교수는 에드워드 3세가 유급(有給)병사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에 주목한다.
 
  18세기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 군대의 승리의 원인을 흔히 군사적 천재인 나폴레옹의 전략전술에서 찾는다. 하지만 나폴레옹군이 이기는 군대가 된 것은 신분에 관계없이 프랑스라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국민들(국민병)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1792년 국민총동원령 덕분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에드워드 3세의 유급병 제도, 프랑스의 국민병 제도 등도 군사혁신의 좋은 사례이다.
 
 
  #3. 군사혁신에서 국방개혁으로
 
  그렇다면 ‘국방개혁’은 무엇인가? ‘군사혁신’이 전투수행 방식의 개선에 중점을 두는 반면 ‘국방개혁’은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시스템 자체를 개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국방개혁은 정부가 주도하게 되며 입법과도 연계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국민, 군대, 정부의 삼위일체(三位一體)가 중요하다 강조했다. 전쟁의 양상이 국가의 모든 자원을 투사(投射)하는 총력전으로 변한 현대전에 있어 전쟁은 훨씬 복잡 다양해졌다. 따라서 군사혁신도 필요하지만 보다 포괄적인 영역에서 가령 무기체계 획득 방식, 인사 및 조직 관리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직접 주도해야 하는 국방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된 것이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국가의 경제력이다. 첨단무기를 구비하고 양질의 상비군을 유지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든다. 미국은 약 683조원, 중국은 약 164조원, 우리나라는 약 40조원의 예산을 국방비로 지출한다.
 
  이 정도의 예산을 쓰려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당연히 국민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국가자원의 효율적이고 투명한 사용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의회의 개입도 당연한 것이다. 국방개혁이 정부가 주체가 되고 입법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골드워터-니콜스 법의 탄생
 
미국의 국방개혁법안인 골드워터-니콜스 법안을 상정한 배리 골드워터(왼쪽)와 윌리엄 니콜스 상원의원.
  국방개혁을 논함에 있어 미국의 골드워터-니콜스 법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개혁은 원래 실패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1960~1980년대에 베트남전쟁, 이란 인질 구출작전, 그레나다 점령 작전 등을 겪으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경험했다. 이에 따라 국방개혁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다.
 
  1982년 3월 미국 합참의장 데이비드 존스(David C. Johns) 장군은 논문을 통해 각 군의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합동성(合同性)을 강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후 미국 의회는 강력한 국방개혁법안인 골드워터-니콜스 법안을 상정했다. 이 법안으로 기득권을 침해당하게 된 각 군 본부 등에서는 강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1986년 1월 상하원을 통과한 후, 같은 해 10월에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빛을 보게 되었다. 이 법은 국방부 구조 개편과 문민화, 합참의 책임과 권한 강화, 국방자산의 효율적 운영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던 ‘국방개혁 2020’도 여기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5. 대한민국 국방개혁에 대한 평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5년 9월 12일 윤광웅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국방개혁 2020’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골드워터-니콜스 법의 근간인 합동성 강조는 결국 군대에 대한 중복 투자 방지, 조직과 병력 감축을 통한 슬림화로 귀결된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나라에서도 196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시도되어 왔다. 하지만 슬림화의 측면에서는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는 조직이나 병력 감축의 경우는 이해관계에 따라 내·외부의 강력한 저항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국방개혁 노력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박정희 정권 - 특명검열단을 통한 개혁
 
  우리나라의 국방개혁도 위기에서 촉발되었다. 1969년 닉슨독트린 이후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자주국방’이라는 기치하에 국산무기 개발을 독려하는 한편 국방부 특명검열단을 만들어 군 개혁을 시도했다. 특명검열단은 군(軍) 지휘통솔의 용이성, 경제적 군 운용 등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유명무실해졌다.
 
  ▲ 노태우 정권 - 818 개혁
 
  진정한 의미에서 국방개혁은 노태우 정권이 추진한 ‘818 개혁’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개혁의 핵심은 ‘통합군제(統合軍制)’였다. 각 군 참모총장 직위를 없애고 국방참모총장(현재의 합참의장)을 신설하는 상부구조 개편, 3군 사관학교 통합 등을 통해 비대화된 국방부 본부와 직할기관의 조직을 개편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지금의 관점으로 봐서도 상당히 획기적인 개혁안이었다.
 
  하지만 이 개혁은 군권(軍權)의 집중을 우려한 야당의 강력한 반발과 각 군의 저항으로 무산됐다. 결국 당초 지향했던 통합군제 대신 현재의 합동군제로 변경되었으며, 인력과 조직의 감축 등 슬림화는 실패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818 개혁의 실패로 오늘날 우리 군이 전투형 군대가 아닌 관리형 군대, 행정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 노무현 정권 - 국방개혁 2020
 
  노무현 정권 시절 ‘국방개혁 2020’이 등장했다. 병력자원의 감소와 국가재정 능력 등을 고려, 지상군은 병력을 감축하되 현대화하고, 미군에 의존하던 해군과 공군력을 확장하며, 3군 균형발전과 합동성을 강화하며, 이를 토대로 전시(戰時)작전권을 가져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국방개혁은 국방개혁을 최초로 법제화시켰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후 정권에서 병력감축 계획은 후퇴하고 전시작전권 반환이 연기되면서 미완의 개혁으로 남게 됐다.
 
  ▲ 이명박 정권 - 국방개혁 307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도발을 거친 후,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을 수정하여 2011년 3월 8일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 개혁안이 ‘국방개혁 307’이다. ‘국방개혁 2020’이 잠재 위협 대비에 중점을 뒀다면 이 개혁안은 현존 위협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현존 위협을 중시한다는 이유에서 병력감축의 시기나 규모 등이 후퇴했다.
 
  ▲ 박근혜 정권 - 국방개혁 2030
 
  박근혜 정부의 개혁안은 군단 중심의 작전수행체계 구축을 포함하여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 국방개혁에 비교하여 차별화된 내용이 많지 않았으며, 병력과 조직 감축의 시기나 규모 등은 이전의 개혁안과 비교하여 상당히 역행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6. 국방개혁의 성공의 조건은?
 
지난 8월 1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육군참모총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군 수뇌부. 군의 인력운용에는 능력제일주의의 개방성이 중요하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청와대 직속으로 국방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국방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일부 언론은 정부 출범이 100일이나 지났는데 국방개혁의 청사진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앞으로 많은 논의가 있겠지만 거시적인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조직의 슬림화와 병력의 감축이다.
 
  심도 깊은 토론의 결과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반드시 병력감축이 보류되어야 한다면 보류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주변을 둘러보자. 세계 최강인 미군은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까지 만들어 국방개혁을 추진하여 조직을 슬림화하고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병력을 감축하고 있다. 중국 또한 육군의 경우 7개 군구(軍區)를 5개 전구(戰區)로 통폐합하는 등 병력감축에 나서고 있다. 정보화 시대에 있어 군을 슬림화하는 대신 정예화시키는 국방개혁은 대다수 국가의 공통과제인 것이다. 우리나라만 예외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국방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고려해 볼 수 있는 선행과제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인력운용에는 ‘개방성’이 중요하다
 
  어느 역사에서건, 혁신적인 마인드를 가진 신진 세력에 의해 새로운 나라 혹은 정권이 등장하면서 국력이 강성해진다. 이후 신진 세력이 부나 권력을 세습하면서 기득권층이 되면서 혁신 대상이 되곤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바로 기득권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특정 출신들이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독식하고 직책을 대물림하게 되면 조직의 사기는 물론 경쟁력이 극도로 떨어지게 된다. 반면 누구나 노력하면 등용되는 시스템을 갖춘 조직은 경쟁력을 갖게 된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는 그의 저서 《제국의 미래》를 통해 관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개방적인 인재등용이 국가를 얼마나 강력하게 만드는지 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국방부 내부를 들여다보면 공무원과 군인들이 있다. 그들의 출신 또한 다양하다. 개방성의 측면에서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러한 개방성은 특정 집단을 배제해서도 안 될 것이며, 또한 ‘보여주기식’으로 한시적으로 운용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인력·조직 관련 국방개혁을 추진하면서 개방성의 원칙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능력과 의지가 있는 부사관들이 고급 장교로 진출할 수 있고, 사관학교를 나오지 않은 장교들이 각 군의 총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환관 출신으로 장군이자 재상이 되어 동로마를 구했던 영웅 나르세스도 인재 등용의 개방성이 작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2. ‘기득권 타파’에는 절차적 정의의 원칙을 적용해 보자
 
  그 누구도 상황에 있어 국방개혁을 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영향이 바로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자신에게 직접 미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당연히 갈 수 있는 보직의 길이 막히거나 진급에 영향을 준다면 극렬히 반대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장성 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박근혜 정부는 장성 수 감축 목표를 60명에서 40명으로 축소했다. 이 때문에 언론의 비판을 받았지만, 장성 진급을 꿈꾸는 상당수 장교는 안도했을지 모른다.
 
  군은 그동안 북한의 도발이나 위기상황을 이유로 몸집을 불려온 측면이 없지 않다. 군은 매년 조직 진단을 하는데 스스로 조직을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대나 부서는 결코 없을 것이다. 물론 예산도 마찬가지다. 각 군이 군 내에서의 지분과 몸집을 키우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이 모든 현상은 한마디로 ‘기득권 지키기’라 할 수 있다. 국방개혁의 성패는 이 기득권 지키기를 타파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골드워터-니콜스 법으로 되돌아가 보자. 시아파 테러분자들은 레바논의 미국 해병대 병영을 공격해 200명 이상의 해병 요원과 해군 수병을 살상했다. 각 군은 부상 요원들을 어디로 옮겨 치료해야 할지를 놓고도 갈등을 빚었다. 미군의 그레나다 점령 작전 당시 해군은 육군 헬리콥터의 해군 함정 승선도 인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각 군의 기득권 관련 논의가 전개될 경우 갈등이 수면으로 부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며 개혁안을 추진해 나갈 것인가?
 
  이 대목에서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존 롤스 교수가 정의의 원칙을 도출해 내는 과정에서 사용한 가설적 상황을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가설적 상황은 다음과 같다. 조직 구성원에 통용될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을 만드는 데 있어 이해 당사자인 개인이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으로 돌아가고 어떤 계층인지 모르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라는 조건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가 강조한 것이 ‘공정으로서의 정의’ 즉 절차적 정의이다. 굳이 롤스의 정의론이 아니라도 갈등이 예상되는 정책의 수립과 추진 과정에서는 사전에 합리성과 설득 효과를 제고할 수 있는 절차적 원칙을 만들어 적용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고민에 앞서 군대가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것에 기초해 볼 때 군 스스로 자기 희생적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가령 지금 정부는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하겠다고 한다. 해군은 이를 확보만 할 수 있다면 작전운용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하다고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데는 1척당 1조5000억원, 실제는 그 이상의 예산이 든다. 그래도 핵추진잠수함이 필요하다면 해군은 그에 상응하는 다른 전력(戰力)사업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보유 자산을 국고에 환수시키는 등의 자기 희생을 보여줄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18일 청와대에서 전·현직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3군 총장 등 주요 군 지휘부를 초청, 오찬을 함께했다.
  3. ‘소통’과 ‘신뢰’의 로드맵을 만들어야
 
  지금까지 우리의 국방개혁이 미완이었던 것은 결국 내부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원인을 내부의 저항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소통과 설득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도 함께 되돌아봐야 한다.
 
  지금 정부가 아무리 좋은 국방개혁안을 만들어 내더라도 군 스스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야(與野)는 물론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국가안보는 특정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무리 중요하고 옳다고 판단되더라도 독단으로 결정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홍보하면서 강행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 국방개혁안을 만들 때 소통과 신뢰의 로드맵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가령 주한미군의 사드가 아무리 유용하다고 설명해도 지금도 배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님비(NIMBY)현상이나 반대를 위한 반대 때문일까? 정책을 결정해 놓고 3년이 넘도록 언론의 문의에 “요청받은 바도 없고, 협의한 바도 없고, 결정된 것도 없다”는 3 노(NO) 정책이 과연 옳았던 것일까?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 혹은 국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여론수렴 과정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향후 정권이 다시 바뀌어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 정책은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소통’과 함께 강조되어야 할 것은 ‘신뢰’이다. 국가정책의 추진동력은 평상시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과거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설익는 정책이나 전략무기를 갑자기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맞대응의 차원도 있겠지만 “그동안 뭐했느냐”는 비판을 무마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런 일시적인 처방책은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루머나 음모론은 대개 정보의 결핍에서 오고 신뢰는 투명성에서 온다.
 
  김재창 예비역 육군대장은 한 세미나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며 개혁에 대한 저항을 설명한다.
 
  “1861년, 미국 버지니아 사람 개틀링이 최초로 기관총을 발명하였습니다. 남북전쟁이 시작될 무렵입니다. 당시 분당 최대 400발을 사격할 수 있었던 이 기관총 한 정은, 몇 개 대대가 소총으로 사격하는 화력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군은 이 무기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새로운 무기를 선택하지 않은, 그런 이유가 많이 있었습니다. 총이 너무 무겁다, 고장이 잘 난다, 또는 실탄 소모가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다 등이었지만, 사실은 군이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정확합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우리 군을 “공룡이 아닌 표범”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공룡이 표범이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극심한 반발이 있을 수 있고 언론의 강한 질타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가야 하는 길은 가야 한다. 우리 군이 변화를 기피하여 결국에 갈라파고스 군대로 전락하게 되면 우리 모두는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지금 정부가 미완의 국방개혁을 완성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사활적인 문제이다. 모두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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