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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세의 溫故知新 | 혹한을 겪지 않고 매화 향을 맡으랴

글 : 김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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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侖世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현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現 인산가 회장, 《인산의학》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 저서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塵勞逈脫事非常 緊把繩頭做一場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진로형탈사비상 긴파승두주일장 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

 
  티끌세상에서 벗어난다는 것, 보통 일 아니어니
  고삐를 단단히 부여잡고 한바탕 내달려 벗어나리라
  한번 뼈에 사무치는 혹독한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어찌 코끝을 스치는 짙은 매화 향을 맡을 수 있으랴.

 
  갑진(甲辰)년 겨울에는 별다른 큰 추위 없이 소한(小寒)·대한(大寒)절 다 지나더니, 을사(乙巳)년 입춘(立春)절을 맞아 북서쪽에서 밀려오는 찬 공기의 영향으로 강추위가 파도처럼 밀려와 10여 일간 맹위를 떨치다가 서서히 물러갔다. 삼한사온(三寒四溫) 법칙은 벌써 사라졌고 한번 강추위가 밀어닥치면 보통 7일 또는 10일씩 지속되곤 한다.
 
  그럼에도 우주 자연의 법칙은 철두철미하여 입춘 추위가 사그라지면서 어느덧 따뜻한 훈풍을 머금고 온 산야에 매화꽃이 피어나며 을사년 봄이 시작되었다. 겨우내 세사(世事)를 잊고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갔던 ‘매화 납자(衲子)’는 그야말로 뼈에 사무치는 혹독한 추위를 겪던 어느 날, 번뇌의 구름을 활짝 젖혀 마침내 깨달음의 꽃을 피우고 잔잔한 향내를 흩뿌려 삭막한 황야를 아름답고 향기로운 세상으로 바꾼다.
 

  매화는 봄이 온 뒤 서서히 피어나는 다른 꽃들과 달리 겨우내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용맹정진을 거듭해 혹한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장 먼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세상에 등장한다. 하얀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중매(雪中梅)는 전국 각지의 사찰 선원(禪院)에서 동안거 석 달 동안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즉 석가세존의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성취하겠다는 일념으로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하며 용맹정진하는 선사(禪師)들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인간 매화’
 
  당나라 고승 황벽 희운(黃檗希運·?~850년) 선사의 게송(偈頌)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적지 않은 수행자들에게 구도(求道) 여정(旅程)의 특별한 이정표(里程標)를 제시해 주고 있다. 어떤 이는 “말은 말일 뿐이고 시는 시일 뿐이지, 무슨 이정표니 뭐니 하면서 크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회의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뭐라고 이야기하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고, 다만 읽는 이들이 황벽 선사의 게송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았느냐가 중요하다.
 
  맹추위 속에 한껏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추슬러, 황벽 선사가 세상 사람들에게 외친 것처럼 티끌세상의 번뇌로부터, 또한 끝없이 윤회하는 생사(生死)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삐를 단단히 부여잡고 한바탕 힘차게 달리노라면 그의 앞에 어떤 장애가 있겠는가? 다만 이러한 도리(道理)를 깨닫지 못하고 제풀에 주저앉아 세상을 원망하고 주위 사람들을 탓하며 제 구도의 의지가 부족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어떤 노력도 제대로 기울이지 않던 사람이 이 게송을 통해 어리석음으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혹독한 추위, 얼어붙은 대지, 앞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의 찬바람을 견뎌낸 끝에,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이른 봄의 훈풍에 아름답고 고결한 꽃을 피워 세상을 환히 빛나게 하고 바람결에 짙은 향내를 실어 보내 온 천지에 진동하게 하는 설중매 같은 존재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적지 않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눈 속에 핀 매화를 보면 문득 떠오르는 존재들은, 정계나 재계·문화예술계 등 각 분야에 적잖이 포진해 각자 저마다의 역할과 기능을 다함으로써 그나마 한겨울의 거친 들판 같은 삭막한 세상에 따듯한 위로와 희망을 주고 어둠을 밝히며 향기로운 이야기꽃을 곳곳에서 피우는 ‘인간 매화’라 하겠다.
 
 
  오는 봄을 누가 막으랴
 
사진=게티이미지
  갑진년 겨울을 요동치게 만든 계엄령 포고, 탄핵 가결 등 정치적 태풍의 영향으로, 을사년 봄이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냉랭한 기류 속에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한파는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좌충우돌식 고율 관세 부과 조치와 우리나라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방침에 세계는 또다시 총성 없는 경제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큰 시련에 직면해 있다. 내우외환이 겹친 엄중한 국가 현실을 외면하고 권력 쟁탈과 당리당략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의 ‘정책 실종’에 따른 민생 경제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건설 경기의 극심한 불황 여파로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간 업체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자영업자들의 줄도산과 폐업이 잇따르고 있는 심각한 경제 난국의 긴 터널을 우리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무슨 일이든,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치밀하게 돌아가는 우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순리적으로 처리하고 집행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부르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거늘 그 누가 봄을 막으랴? 삼동설한(三冬雪寒)의 동장군이 아무리 혹독하게 기승을 부린다 해도 마침내 훈풍을 앞세워 눈과 얼음을 녹이며 봄은 오고야 만다.
 

  한번 뼈에 사무치는 혹독한 추위를 겪은 뒤에야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낸 매화가 아름답고 고결한 꽃을 피우듯이, 나라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제 앞에 닥친 시련과 고난을 비상한 인내심으로 잘 견뎌내고 해결 극복해야 봄의 훈풍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번영과 성장의 진정한 영화를 제대로 누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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