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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에 물들다 〈18〉 “절망이 운명을 파괴하지 않도록, 인간이 비극을 완성하지 않도록”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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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도 산불이 났다. 정수리를 때리는 햇빛에 이명(耳鳴)이 일어나는, 적막하고 따가운 날이었다.(이정호)
⊙ ‘산(山)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정지용)
⊙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김소월)
함경도 출신 여류작가 이정호가 쓴 소설 〈감비 천불붙이〉의 첫 장.
  소설은 운명을 읽는 눈이다. 이 운명은 곧잘 삶을 망치고 스스로 발화(發火)한다. 불길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제멋대로 번질 때 인간은 운명과 맞서야 한다. 때로는 불길 속에 뛰어들어 울며 애원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할 때도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은 질긴 운명 때문이다. 그 숨 막히는 과정을 눈 부릅뜨며 지켜보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문학이 그래서 누구에게는 구원이 된다.
 
 
  감비 천불붙이의 뜻은…
 
소설 〈감비 천불붙이〉가 실린 1974년 《한국문학》 7월호.
  50년 전 문학잡지 《한국문학》(1974년 7월호)에 실린 소설가 이정호(李貞浩·1930~2016년)의 단편소설 〈감비 천불붙이〉를 읽었다.
 
  소설의 무대는 함경도 신흥군 동상면의 부전고원. 무진 대홍수(1928년)로 가족을 잃고 산속에 들어와 살아가는 화전민 두 남자의 운명을 담고 있다.
 
  덕구와 종섭은 세상을 등지고 화전을 일구며 살아간다. 원시림과 극심한 추위, 그리고 감자를 주식과 부식으로 먹으며 살아간다. 홍수로 아내를 잃은 종섭은 이웃집 덕구와 형제 같은 사이다. 우정과 공감,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욕구에 있어서는 둘 사이에 간극이 없었다.
 
  〈‘천불’이란 ‘천화(天火)’를 말하고 ‘감비’는 ‘가문비나무’의 약칭이 아닐까. 이 골짜기에는 가문비나무가 많다.
 
  고원지대의 원시림엔 원인불명의 자연화가 종종 일어났다. 그것이 천화요 천불이다. 그래서 선 채로 숯이 된 숲도 있다. 그것이 다시 풍화되어 나무는 일종의 석회질로 한 괴기한 골상을 하고 있다.
 
  상록의 활엽수와 침엽수의 밀림을 배경으로 한 괴기한 골상의 사림(死林)은 풍치가 수려 웅장하여 장관일 뿐 아니라 화전을 일구기가 수월했다. ‘감비 천불붙이’는 이런 사림에 이어 관목대(灌木帶)와 초목대(草木帶)가 연결된 습지가 분지를 이루고 있었다.
 
  마주 앉은 비탈을 까서 엎고 반 마장 길이의 분지에다 불을 질렀다. 불은 삽시간에 들을 덮었다. 나무가 선 채로 타올랐다. 졸지에 거대한 산호의 밀림이 전개되는 것이었다.
 
  선 채로 나무가 타오르는 요원(遼原)의 열기는 대지가 뿜어내는 원시의 정기(精氣)였다. 나무는 타오르면서 원시의 정기를 두 사나이, 덕구와 종섭의 혈관에 쏟아부었다. 힘이 용솟음쳤다.
 
  삽을 집고 서서 불바다를 응시하던 둘은 와락 부둥켜안았다.〉

 
  고원지대 화전민의 주식은 감자다. 대개가 어른 주먹만 하고 큰 것은 어린아이 머리만 하다. 숭덩숭덩 썰어 된장을 넣고 끓이면 국이나 찌개가 되고, 데쳐 양념을 하면 채나물이 된다. 강판에 갈아 떡도 하고 부침개도 한다. 언 감자는 말려서 빻아서 떡을 만들고 썩은 감자는 녹말로 만든다. 다목적 감자가 지천으로 흔하다.
 
  종섭은 아내를 잃고 어린 옥선이, 어머니 원천댁과 처제인 정분이와 살아간다. 이웃에 사는 덕구도 아내 만길댁, 아들 만길이와 원시림에 터를 잡았다. 거대한 고원에 단 두 식구만 자연과 의지해 살아간다.
 
  대홍수가 있던 그해, 물과 산과 죽음이 좁은 공간에서 범벅이 되었던 그날을 종섭은 잊을 수가 없다. 처제인 정분은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손 세 개가 한 데 얽힌 것을 말이다.
 

  〈두 여자의 손이 종섭이를 향해 뻗었다. 종섭의 손 하나는 소나무를 거머쥐었고 다른 손 하나가 두 여자의 손을 향해 뻗었다. 종섭이의 손에 손 하나가 닿는 순간, 종섭이가 잡고 있던 소나무가 물 쪽으로 기울어졌다. 한 발자국 위에 종섭이가 쓰러진 것과 동시에 그 옆에 엎어진 것은 만길네였다. 언니가 저만치 흘러가고 있었다.
 
  “옥선 아버지이!”
 
  “옥선아아!”
 
  단 한마디 단말마의 절규를 남기고 언니는 사라졌다. 종섭은 손의 임자를 의식하고 잡았을까. 죽음의 단애에선 찰나적인 순간에도 남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겸손이 작용하는 것일까.〉

 
 
  단 한마디 단말마의 절규를 남기고…
 
  단애(斷崖)는 절벽, 낭떠러지를 뜻한다. 소설 속 화자는 종섭이 자신의 아내보다 덕구의 아내(만길네)에게 손을 먼저 내민 이유를 뚜렷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남의 아내를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겸손이 작용한 것인지를 말이다.
 
  더러 그곳에 산불이 인다. 덕구와 종섭은 산불이 나면 숟갈을 내동댕이치고 산으로 달렸다. 타 죽은 산짐승을 들고 왔다. 산불은 사내들을 미치게 하는 것일까?
 
  그날도 산불이 났다. 정수리를 때리는 햇빛에 이명(耳鳴)이 일어나는, 적막하고 따가운 날이었다. 덕구는 사고로 몸져누워 있는 상태여서 종섭 혼자서 산에 올랐다. 종섭은 산짐승을 탐하여 산으로 간 것일까?
 
  그날 종섭이가 만길네를 업고 돌아왔을 때는 어스름하게 어둠이 깔려 있었다. 축 처진 만길네를 업고 있는 종섭의 손에 타 죽은 너구리가 한 마리 들려 있었다.
 
  종섭은 저 무시무시한 불길 속에서 만길네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약초를 캐러 간 만길네는 왜 의식을 잃었을까. 종섭에게 업혀 올 만큼 의식을 잃은 이유가 뭘까. 종섭은 어떻게 만길네를 구했을까. 소설은 그날 두 사람의 운명에 대해 별다른 단서를 주지 않는다. 다만 만길네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만 보여준다. 배 속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를 두고 덕구와 종섭은 긴장감이 감도는 침묵으로 대결하며 심리전을 펼친다.
 
  덕구는 아내를 의심하고, 종섭은 악몽을 꾼다.
 
  〈“부! 불… 불이야….”
 
  (원천댁이-편집자 註) 종섭의 잠꼬대를 듣고 정분을 깨운 것은 꿈지럭거리기가 싫어서만은 아니었다.
 
  “정분아!”
 
  원천댁의 다급한 부름에 팔딱 일어나 앉아, 불룩한 가슴을 여미면서 그저 계속되는 종섭의 잠꼬대를 듣고 정분이 윗방으로 뛰어들어가기까지 불과 눈을 다섯 번 깜박거린 사이였다.
 
  “정신 챙기오! 어째 이러오.”
 
  “으응… 마, 만….”
 
  “정신으 챙기오!”
 
  “으응….”
 
  “에구마나! 이거 놓소. 이거.”
 
  “응?… 정부이구나. 무, 물으, 물으.”
 
  목을 빼고 윗방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원천댁은 씩 웃었다. (중략) 정분이 숨을 할딱거렸다.
 
  “꿈으 꾼기지?”
 
  “불에 놀란 모양이오. 해뜰 때마다 불을 하입데다?”
 
  “몸이 약해져서….”
 
  “아깨는 또 만길이르 부르는 거 같습데.”〉

 
  종섭은 산불이 나는 악몽을 꾸고, 무의식 중에 만길네를 찾는다. 그 모습을 처제인 정분이 안타깝게 응시한다. 홍수가 나던 날, 형부인 종섭이 만길네에게 손을 먼저 내밀던 장면도 정분은 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종섭에 대한 연민의 감정도 억제하기 어렵다.
 
  덕구는 아내의 부정(不貞)을 의심한다. 아내의 자의인지 종섭에 의한 것인지 미지수지만 그러면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싶어 한다.
 
  덕구가 읍내로 잠시 떠나기 전 종섭과 술상을 마주한 채 이런 대화를 나눈다.
 
  〈“만길에미, 버릇이 있읍메.”
 
  “몸으 풀 때 내가, 아아애비가 없으믄 아아르 못 낳는다이. 아아 애비가 잡아줘야 아아르 낳는다 이 말씀이야. 또 놀랐음?”
 
  종섭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마지막 잔을 들고 덕구는 오래 중얼거렸다.
 
  “설마, 설마, 내가 올 때까지 낳이겠지. 설마….”〉

 
 
  “아무리 다르기루 산실에 남자르 들이다이”
 
  만길네는 버릇이 있다. 출산을 할 때 반드시 아이의 아버지가 손을 잡아야 아이를 낳는다. 덕구는 며칠이 걸려 읍내에서 돌아올 때까지 아내인 만길네가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이 대목에서 소설은 ‘종섭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고 묘사하고 있다. 종섭이 만길네 배 속의 아이 아버지임을 드러내는 복선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그리고 출산날이 되었다. 덕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소설은 정분의 시선으로 출산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다.
 
  〈여물가마에 귀리 기울을 젓고 있던 원천댁이 받았다.
 
  “몸이 푸는데(순산하는데) 남자르 붙잡이야 하다이, 우뻐(우스워) 죽겠다.”
 
  하고 입을 삐쭉거렸다. 언니가 옥선이를 낳을 때 원천댁 외에는 근접을 못 하게 하였다. 정분이도 얼씬 못 하였다.
 
  “사람마다 다르니라.”
 
  “아무리 다르기루 산실에 남자르 들이다이.”
 
  (중략) 진통으로 고함을 지르는 만길네의 정지로 벌벌 떨면서 들어가던 종섭의 질린 얼굴을 생각하면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원천댁을 잡고서는 헛심만 주면서 쩔쩔매던 만길네가 종섭의 억센 팔을 잡자 침착하게 모든 힘을 주어 단숨에 쑥 뽑아 놓았다. 으앙 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정분은 바당문 밖에서 발발 떨었다.〉

 
  바당문은 부엌을 뜻하는 함경도 방언이다. 소설은 만길네 시선에서 종섭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만길네가 종섭의 억센 팔을 잡고 단숨에 아이를 낳았다는 점에서 만길네도 배 속 아이의 아버지가 종섭이란 사실을 알고 있음을 암시하는 억센 제스처로 보인다.
 
  아이를 낳은 뒤 스무 날이 지나서야 덕구가 돌아왔다. 덕구는 운명과 대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아내의 부정, 친구와의 믿음이 무너진 데 대한 분노와 싸워야 했다. 만약 1920년대 카프 계열의 이념 소설이나 빈궁(貧窮) 소설, 자연주의 소설이라면 어떤 결말을 맺을까. 덕구는 아내를 죽이고 친구마저 죽여버렸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살던 집과 들판마저도 불을 질러 단숨에 없애버렸으리라.
 
  그러나 소설은 다른 선택을 한다. 덕구는 아내도 버리지 않고 우정도 깨뜨리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그것은 고원을, 원시림을 떠나는 일이었다. 살생(殺生)적 국면이 아닌 상생(相生)의 이별을 덕구는 택한다. 절망이 운명을 파괴하도록, 인간이 인간을 증오해 비극이 운명을 완성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덕구는 운명과 대결하되 상생을 택한다.
 
  〈덕구의 명령은 단호했다. 숨을 한번 크게 쉴 여유도 집안에는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뿜어내는 숨결이 그대로 투명한 고체가 되어 집안을 응결시키고 있었다.
 
  만길네는 울면서 갓난아기를 업었다. 순간, 으름장을 가르는 냉혹한 고함소리가 찌릉하게 집을 울렸다.
 
  “아이르 네놔라!”
 
  “예?”
 
  “아아는 데리고 가지 못한다.”
 
  “예?”
 
  “아아르 못 떼겠으믄 너두 여기 있어라.”
 
  “어쩐 말씀이오? 만길 아버지.”
 
  만길이네가 덕구의 다리를 잡았다.
 
  “소리르 내면” 덕구의 눈이 벽의 낫으로 갔다.
 
  덕구는 부러 늑장을 부린 이십 일의 시간에 운명을 건 것이었다. ‘감비 천불붙이’를 떠나야 한다는 결심은 집에 도착한 순간에 이를 악문 의지였다.〉

 
 
  殺生의 거부와 相生의 이별
 
(사진 왼쪽)1982년 10월 30일 방영된 KBS TV문학관 〈감비 천불붙이〉의 한 장면. 함경도 신흥의 부전고원에서 화전민으로 살아가는 덕구(왼쪽, 안대용 扮)와 종섭(김성환). KBS TV문학관 〈감비 천불붙이〉의 마지막 장면. 만길네가 아이를 두고 떠나자 원천댁(여운계)이 아이를 안고 있다. 정분(정인숙)이 “내가 자리우겠다(키우겠다)”고 말하고 있다.
  덕구는 상생의 이별을 택했다. 원시림을 떠나며 만길네가 낳은 아이를 두고 대처로 떠난 것이다. “아아르 못 떼겠으믄 너두 여기 있어라”는 말에서 보듯 덕구는 아내에게도 선택의 길을 열어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만길네는 덕구와 종섭 사이에서 덕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던 것이다.
 
  이튿날 종섭과 원천댁, 정분이 찾아왔을 땐 덕구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종섭은 절망하게 되지만, 바로 그때 텅 빈 방에 홀로 남아 있던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원천댁은 아이가 자신의 피붙이임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정분은 아이를 안고 “내가 자리우겠다”고 말한다. 두 번씩이나. 그 아이를 자신이 기르겠다는 것이다.
 
  덕구가 상생의 이별을 택했듯 정분도 상생의 운명을 선택한다. 혼자 남은 종섭과 조카 옥선이, 그리고 만길네가 낳은 아이까지 돌보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운명을 감내한 것이다. 이렇게 정분은 운명과 대결하기보다 운명을 받아들이듯 자연에 순응하며 살 것을 결심한다.
 
  정분은 원천댁을 그동안 ‘할마이’라고만 부르더니 처음으로 “어마에”라고 부른다. 며느리이자 딸로서의 역할까지 다짐하며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아기의 눈에 처음으로 우주가 비친 것이었다’고 그리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감비 천불붙이’ 골짜기에서부터 어떤 희망이 우주로 뻗어가는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어마에!” 옥선이를 따라 할머니라고 호칭하던 정분이가 처음으로 어머니라고 부른 것이다.
 
  “내가 자리우겠소. 내가, 내가 자리우겠소.”
 
  엷은 미소 위에 떨어진 두 줄기의 은구슬, 아기의 얼굴에 진주알 하나가 뚝 떨어졌다.
 
  아기가 파득 눈을 떴다. 눈동자가 움직였다.
 
  아기의 눈에 처음으로 우주가 비친 것이었다.〉

 
  소설을 쓴 여류작가 이정호는 함경도 신흥이 고향이다. 6·25 당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인민’이었다. 북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흥남 철수 때 남하해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1961년 소설 〈인연〉과 〈잔양(殘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그는 함경도 지역, 특히 작가의 고향이거나 거주지였던 서호진, 신흥, 흥남 등을 공간적 배경으로 한 분단 문학을 아름답게 그린 작가다.
 
 
  ‘화문(花紋)처럼 판(版)박힌다’
 

  소설 〈감비 천불붙이〉를 읽다 보니 정지용(鄭芝溶·1903~1950년) 시인의 시 ‘백록담(白鹿潭)’이 떠올랐다. 두 번째 시집 《백록담》(1941)에 실렸다. 해발 1850m 백록담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린 산문시다. 시인과 한라산을 함께 오르는 느낌이 들 만큼 감각적 희열이 가득한 시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 존재의 어울림을 나타내는데 이건 각자의 운명에 대한 경이(驚異)처럼 보인다.
 
  1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咸鏡道)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팔월(八月) 한철엔 흩어진 성진(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기서 기진했다.
 
  2
  엄고란(巖古蘭), 환약(丸藥)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백화(白樺) 옆에서 白樺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白樺처럼 흴 것이 숭없지 않다.
 
  4
  귀신(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해발(海拔) 육천척(六千呎) 우에서 마소가 사람을 대수롭게 아니여기고 산다. 말이 말끼리 소가 소끼리, 망아지가 어미 소를 송아지가 어미 말을 따르다가 이내 헤여진다.
 
  -정지용의 시 ‘백록담’ 부분

 

  뻐꾹채(뻑국채)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산천초목 어디서나 잘 자란다. 돌무지 척박한 땅에서도 자란다. 키는 30~70cm이고 흰색 털로 덮여 있다. 꽃은 5~7월에 핀다. 시인은 백록담에 다가갈수록 뻐꾹채 키가 작아지는 것을 ‘한마루 위로 오르면 모가지가 없어지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고 썼다. 심지어 ‘화문처럼 판박힌다’고 표현했는데 꽃무늬가 땅에 새겨진 듯하다는 의미다. 제주 바람이 얼마나 매웠으면 ‘함경도 끝과 맞서는’이라 했을까.
 
  어둠이 지면 뻐꾹채 꽃밭에 하늘의 별이 내려와 등을 밝힌다고 썼다. 별이 꽃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하고서야 시인은 맥이 풀리듯 기진하고 만다.
 
  시집 《백록담》에는 제주 외에도 금강산의 구성동(九城洞) 계곡에 대한 시도 있다.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시다.
 
  골작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黃昏)에
  누가 소란히 싸히기도 하고,
 
  꽃도
  귀향 사는곳,
  절터ㅅ드랬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고
 
  산(山)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정지용의 시 ‘구성동’ 전문

 
  이 시는 《조선일보》 1937년 6월 9일 자 신문에 처음 실렸고 나중에 《청색지(靑色紙)》 2호(1938년 8월)에 실린 후 시집에 실렸다. 골짜기에 별들이 떨어질 만큼 내금강 계곡이 깊다. 해가 질 무렵 우레(누)가 소란하게 떨어진다. 작은 소리조차 메아리로 울릴 만큼 산속이 적막하다. 그런 적막함을 시인은 ‘꽃도 귀향 사는곳’이라고 시각화했다. 지금은 사라진 절터에 바람이 부는데 ‘바람도 모이지 않는다’고 했다. 바람마저 가버리니 쓸쓸하기 그지없다. 해가 져 산 그림자가 내려오면 어둑한 그림자에 사슴도 놀라 제 집을 찾아 산등성이를 넘는다.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정지용 시를 읽고 김소월(金素月·1902~1934년) 시인 탄생 120주년 기념 시집인 《진달래꽃》(박물관사랑)을 다시 손에 쥐고 넘기다 보니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는 시가 눈에 띄었다.
 
  이 시는 소월(素月)의 1925년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되었다. 1978년 제1회 해변 가요제에서 항공대 그룹사운드 ‘활주로’가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동상을 탔다. 밴드의 보컬이 배철수였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다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은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에 풀이라도 태웠으면!
 
  -김소월의 시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전문

 
  만수산(萬壽山)은 만년이나 살 수 있는 영원의 공간이다. 제석산(啼昔山)은 옛일을 슬퍼하는 한(恨) 맺힌 공간이다. 만수산과 제석산 중간에서 나는 ‘가고 오지 못한’ 채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철없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때 님에게 같은 말이라도 조금 더 영리하게 했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지금은 비정한 세상에 순응하며 타협하는 법도 배웠지만 그 시절, 열병을 앓는 것처럼 싸우던 시절이었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도 이별할지 몰랐을 만큼 어리석었다.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하고 탄식한다. 탄식이 깊어져 ‘내님의 무덤가 풀이라도 태웠으면’ 하고 외친다.
 
  살다 보면 늘 후회가 된다. 돌아갈 수 없음에도 철없던 시절, 세상 모르던 시절이 서럽게 그립다. 제석산이 아닌 만수산에서 사랑하는 이와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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