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의 名峰들과 만나는 몽탕베르~몽블랑뒤타퀼~몽모디~몽블랑~돔뒤구테 2박3일 山行
⊙ 급경사 얼음 사면에서 미끄러져 죽다 살아날 때는 기운이 싹 빠져나가면서 ‘이 짓을 왜 하나’ 싶어
⊙ 알프스가 아름다운 것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하얀 산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푸르름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
⊙ 급경사 얼음 사면에서 미끄러져 죽다 살아날 때는 기운이 싹 빠져나가면서 ‘이 짓을 왜 하나’ 싶어
⊙ 알프스가 아름다운 것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하얀 산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푸르름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
- 몽모디 설벽을 올라선 석상명씨가 아침 햇살과 함께 불어댄 강풍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오른쪽에 에귀디미디 침봉이 날카롭게 솟아 있다.
“휴가를 보름씩이나 신청하다니, 당신 정신 있는 거야?”
1995년 6월, 당시 필자는 그야말로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 4810m)에 꽂혀 있었다. 알피니즘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고산(高山) 등반 능력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1993년 러시아 엘브루즈(5642m)에 이어 1994년 북미(北美) 데날리(6194m)도 정상(頂上)을 밟지 못해 마음 한구석 한(恨)이 맺혀 있었다. 너무 센 선후배들과 다닌 탓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혼자만의 산행(山行)으로 나 자신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휴일 포함 닷새가 여름휴가의 관례이던 시절 보름 휴가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표를 쓰고서라도 가겠다는 각오로 보름 휴가를 신청했다. 결국 어이없어하던 부서장의 허락을 받아내 몽블랑 산행에 나설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 느꼈던 첫 몽블랑 山行
미련한 등반이었다. 등반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구테산장 코스는 거들떠보지 않고 몽블랑뒤타퀼(Mont Blanc du Tacul·4248m)~몽모디(Mont Modi·4465m)~몽블랑~돔뒤구테(Dome du Gouter·4304m) 설릉(雪稜) 종주(縱走)를 목표 삼았다.
출발 전에 욕심이 더 커졌다. 샤모니에서 케이블카로 접근하는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3842m)에서 두어 시간 거리인 코스믹산장(Cosmiques Hut·3613m)에서 시작하는 산행이 아닌, 등산열차로 접근하는 몽탕베르(le Montenvers·1900m)에서 출발해 메르데글라스(Mer De Glace)~발레블랑쉐 빙하를 거쳐 코스믹산장에 올라선 다음 설릉 종주에 나서는 일정이었다.
게다가 프랑스 샤모니의 샬레(숙소)에서 인연을 맺은, 등산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영국 유학생을 동행 삼았고, 첫날 스케줄을 하루 더 늘렸다. 몽탕베르역에서 절벽을 타고 메르데글라스로 내려선 다음, 이날 묵을 르켕산장(Refuge du Requin·2516m)을 향해 빙하를 거슬러 오르던 중 “쿠베르클산장 트레일을 따르면 알프스의 멋진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는 현지 트레커 말에 일정을 바꾼 것이다. 일정이 하루 더 늘어나지만 더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했던 것이다. 로컬 트레커 말대로 가슴이 쿵쾅거리도록 아름답고 웅장했다.
하지만 이튿날 빙하를 가로지르던 중 숨은 크레바스 지대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고, 나흘 뒤에는 4000m 높이의 설릉에서 화이트아웃을 만나 추락의 불안함에 긴장해야 했다. 결국 몽블랑 설릉 대종주에 성공했으나 니데글역(Le Nid d'Aigle·2372m)에서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눈 녹은 물에 푹 젖은 플라스틱 이중화를 신고 쫄쫄 굶은 채 무려 6시간 넘게 샤모니를 향해 걸어 내려가야 했다.
名峰들과 만난 오트루트 트레킹
2005년 여름 샤모니 방문은 1997년 샤모니, 체르마트, 그린델발트 3대 미봉(美峰) 트레킹에 이어 세 번째였다. 이번 목표는 몽블랑 설릉 대종주와 함께 오트루트 트레킹이었다. 20세기 말 알프스의 산악인들이 개척한 오트루트(Haute Route : High Level Route)는 몽블랑이 위치한 프랑스 샤모니(Chamonix-Mont Blanc)에서 시작, 콜드발머(Col de Balmer·2191m)~투르패스(Col du Tour·3289m)~트리앙(Trient·3170m)산장~삼페(Lac de Champex·1482m)~아롤라(Arolla·2006m)~브그네(Vignettes·3160m)산장~베르톨(Bertol·3268m)산장~테트블랑시(Tete Blanche·3710m)~쇤비엘(Schonbiel· 2694m)산장~즈무트(Zmutt)를 거쳐 알프스 최고 미봉 마터호른(Matterhorn・4478m)이 솟아 있는 스위스 체르맛(Zermatt)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일컫는다.
2박 3일간 몽블랑 산행을 끝낸 뒤 6일간에 걸쳐 오트루트를 따르는 사이 평균 해발 3000m가 넘는 대피소들과 3000~3700m 사이의 높은 패스를 오르고, 거의 매일 1000m 가까이 오르내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기에 체력소모가 컸다. 크레바스가 도사리는 빙하를 여러 차례 거쳐야 했기에 위험부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체험했던 알프스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해 준 기간이었다. 빙하를 가로지르고, 패스를 오르면서 고산의 험난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패스에 올라서는 순간마다 흥분될 만큼 웅장하게 빛나는 명봉(名峰)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전망대나 다름없는 산장에 머물면서 알프스의 적요함에 젖어 설산의 아름다움을 엿보고 알피니즘의 본질을 생각할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친구 석상명(5대륙 최고봉 완등자), 후배 김창호(8000m 14좌 무산소 완등자), 필자 세 명은 두 차례의 항공과 버스로 이어진 17시간의 이동 끝에 샤모니에 도착, 시차적응조차 안돼 있는 상태였지만 이튿날부터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에 하루 쉬려던 계획을 버리고 지체 없이 르켕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몽탕베르역에서 메르데글라스로 내려선 오후 4시경부터 흩날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빙하를 거슬러 오를수록 더욱 굵어졌고, 르켕산장에 도착하기 전에는 폭우로 변하였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마친 뒤 장비를 챙기는데 기분이 썰렁했다. 빗속에 빙하 산행이라니-. 그래도 날씨는 우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빙하에 들어서기 전 아이젠을 차는 사이 비가 멎더니 구름이 벗겨지고 명봉들이 솟구쳤다.
“와~, 저게 드류(les Drus·3730m)예요, 그러면 그 뒤쪽 봉은 에귀베르트(Aiguille Verte・4122m)….”
당시 두어 달 전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밧(8125m) 횡단 등반에 성공한 히말라야 등반가 김창호건만 알프스 명봉들과의 첫 대면에 감격스러워했고, 그 감탄사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곧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서 우리를 더욱 흥분시켰다.
주변의 산봉은 날카롭고도 웅장하기가 1995년 여름이나 1997년 여름이나 다를 바 없지만, 빙하는 달랐다. 깨지고 갈라지고 위태롭고 한발 한발 뗄 때마다 긴장감은 점점 가중되었다.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스노브리지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건너고, 발아래 시커먼 크레바스를 내려다볼 때마다 섬뜩섬뜩했다.
정오경, 해발 3000m대 높이 빙하에 형성된 거대한 세락(serac·빙하의 갈라진 틈에 의하여 생긴 탑 모양의 얼음덩이)이 앞을 가로막았다. 피할 길이 없다. 크레바스를 피해 좌우로 틀며 오르다 끊어질 듯하면 스노브리지가 외가닥길을 이어 주곤 한다. 그러다 급경사 얼음 사면에서 아이젠이 밀리면서 두 차례나 미끄러지다 휘두른 피켈에 겨우 제동되고 나자 기운이 싹 빠져나가면서 ‘이 짓을 왜 하나’ 싶어진다. 에귀디미디에서 헬브로너(Pointe Helbronner·3462m)를 운행하는 빨간 케이블카가 머리 위로 오가는 게 보인다. 우리도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알프스를 탐닉할 수 있을 것을 왜 이리 미련을 떠는지 모르겠다 싶어진다.
곧 이유가 밝혀졌다. 급경사 설사면(雪斜面)에 한발 한발 오르는 사이 내일 오를 몽블랑이 정수리를 슬쩍 드러내고, 당뒤장(Dent du Geant·4013m)에 가려 있던 그랑드조라스(Grandes Jorasses·4208m)가 고개를 삐죽 내민다. 이렇게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산세(山勢)는 케이블카에 편안히 앉아서는 감상할 수 없을 게다.
산장에서의 식사
이제 몽블랑뒤타퀼 북면(北面)이 눈에 들어오고, 에귀디미디 침봉(針峰)과 코스믹산장도 바라보인다. 저 멀리 헬브로너 쪽에서 설원(雪原)을 가로지르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점들도 보인다. 세 사람이 몽블랑뒤타퀼을 내려선 뒤 콜뒤미디(Col du Midi) 설원을 가로지르며 내려서고 있다. 가운데 사람은 수시로 허리를 굽히는 것이 꽤 지친 모습이다. 내일 내 모습이 그려진다.
급경사의 설사면을 올려쳐 코스믹산장에 들어서자 뜻밖에 자리가 많다. 엊저녁 전화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숙박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르켕산장 관리인 말에 걱정스러웠는데 180명 수용 능력의 산장에는 10여 명의 등반객만이 머물고 있었다. 산장에 들어서자마자 우선 시원한 맥주부터 시킨다. 산장은 최신 주방 시설에 생맥주도 팔고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마터호른이에요.”
저녁 식사에 앞서 헬리포트에서 조망을 즐기던 김창호가 일행을 불러댄다. 그렇지, 10년 전에도 같은 자리에서 본 봉우리건만 그제야 떠오른다. 알프스 미봉 마터호른(Matterhorn・4478m)은 드류와 에귀베르트 사이에 삐죽 솟아 있었다. 어서 오라는 뜻인가. 적어도 열흘 후면 우리 모두 저 침봉 위에 서 있으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저녁식사-. 예상대로 푸짐한 식사가 나왔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 꺼낸 다음 기름에 볶아 낸 밥이 목에 잘 넘어갈 리 만무하다. 수프며 양고기 스튜는 왜 이리 짠지-. 그런데도 외국 트레커들은 양푼을 가득 채운 수프와 커다란 스튜는 물론 야채와 밥까지도 남김없이 먹어치운다. 반면 우리는 야채 약간, 양고기 몇 점, 그리고 파이 한 조각으로 저녁식사를 끝내야 했다. 어쨌든 오늘 하루에 1100m 고도를 올렸는데 모두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다.
하늘의 별을 따러 오르는 기분
새벽 1시 눈을 떴을 때는 몽블랑 산행객이 모인 방은 반쯤 빠져나간 뒤다. 샤모니에 도착하자마자 산행을 시작한 탓에 엊저녁 8시에 잠이 들었는데도 몸이 무겁다. 우유에 콘플레이크를 말아 먹고, 빵 몇 조각에 주스와 커피를 마시고 나니 벌써 2시가 다가오고, 서둘러 장비를 차고 산장 문을 나섰을 때는 앞서 출발한 등반객들의 랜턴 불빛이 이미 수직고 600m 타퀼 설벽(雪壁)에 접어들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반달도 떠 있다. 그 빛에 어제 일행이 오른 발레브랑쉐(la Vallee Blanche) 설원은 처녀의 속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은밀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반짝인다. 콜디미디 설원을 가로질러 타퀼 설벽으로 다가서는 사이 샤모니의 가로등들이 별빛처럼 반짝인다. 하늘의 별을 따러 오르는 기분이다.
가파른 설사면을 치고 오르는 사이 거대한 세락이 우리를 덮칠 듯한 기세로 고개를 바짝 치켜세운다. 김창호는 “얼마 전 등반한 낭가파르밧 디아미르 설벽보다도 더욱 가파르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리 돌고 저리 돌며 타퀼 설벽 상단 설릉에 올라서자 새벽 4시40분, 산장 문을 나선 지 벌써 2시간30분이 지났다. 서둘러 출발한 등반객들은 몽모디 설벽을 오르고 있다. 타퀼 설벽보다 한 단계 위인 설벽이다. 이제 폴 한 자루를 줄여 배낭에 꽂고 대신 피켈을 꺼내 든다. 눈길이 나 있지만, 눈 밑이 얼어 있어 밟는 순간 쭉 미끄러지고, 그때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급경사 설벽을 오르다 자칫 실수하는 순간이면 입을 쩍 벌린 크레바스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아니면 샤모니 마을까지 수천 m 추락할 판이다. 10년 전 이 설벽을 오를 때는 이렇게 경사가 가파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한발 한발 긴장의 연속이다.
등 뒤로는 날카로운 침봉들이 아침 햇살에 벌겋게 물들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반짝이는 별들이 사라져 버렸다. 곧 날이 밝았다. 고정로프가 보인다. 급경사에 얼음이 얼어붙어 있어 발을 디뎌도 밑으로 죽죽 밀리는 구간이다.
어렵사리 설릉에 올라서자 멀리 몽블랑이 달덩이처럼 솟아 있고, 그 설릉에 등반객들이 올라서고 있다. 오른쪽 설릉을 타고 정상으로 향하는 등반객들이 줄을 잇는 모습은 휴일 오후 백운대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대부분 우리와 비슷한 시각에 구테산장을 출발한 사람들이다.
갑자기 모두 말이 없어진다. 브렌바콜(Col de la Blenva·4303m)로 이어지는 설사면 트래버스 구간이 얼음과 눈이 뒤섞여 피켈도, 아이젠도 잘 박히질 않는다. 서로 줄로 연결하긴 했지만, 한 사람이라도 휘청하는 순간 세 사람 모두 수백 m 설벽 아래로 추락이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추락사고가 일어난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싶어진다.
“저 구름 좀 보세요. 이거, 심상찮은데요….”
외국인 등반객, 트래버스 도중 추락
어렵사리 트래버스를 끝내고 흉악스럽게 입을 벌린 크레바스 안에 들어서 바람을 피해 쉬는 사이 날씨가 급변한다. 엄청난 속도로 불어대는 바람에 구름이 옅게 흩어지면서 몽블랑 정상을 싸늘하게 만든다. 정상에 섰던 이들도 급히 내려서는 모습이 보인다. 우모복에 고어텍스 재킷까지 덧입는다.
김창호는 “서둘러야겠다”며 재촉하지만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나마 새벽에 먹은 콘플레이크가 얹혔는지 출발 직후부터 속이 아파 고생하던 석상명은 결국 토하고 말았다. 그래도 토하고 나서 오히려 제 컨디션을 되찾은 게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뒤처져 오르던 외국인 산악인 5명 중 1명이 우리를 긴장케 했던 트래버스 구간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자일에 걸려 그 아래 크레바스로 빠져드는 위험 상황은 피했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브렌바콜 위에 올라서자 설릉 너머 이탈리아 쪽이 내려다보인다. 시커먼 절벽 아래는 유토피아였다. 이탈리아 쪽 샤모니와도 같은 마을인 쿠르마예(Courmayeur) 일원은 따뜻하게 느껴졌고, 마을 옆의 체티프(Mont Chetif・2343m)산 일원은 푸른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알프스가 아름다운 것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하얀 산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푸르름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리라.
“애고 애고…, 애고 애고….”
급경사 설사면을 한 번 더 올려치자 이제 정상 설사면만 남아 있다. 서른 발짝 떼고, 호흡 가다듬기 연속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설사면 중간쯤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브렌바콜에 있던 사람이 어느 샌가 우리를 앞지르더니 평지 걷듯 걸어 정상에 올라섰다가 다시 쏜살같이 내려서는 게 아닌가! 마치 북한산 오르듯-. 키 165cm도 채 안 되겠다 싶은 그는 분명 속도등반을 위해 훈련 삼아 몽블랑을 오르는 대단한 클라이머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누구 야코 죽일 일 있나, 아직 중턱도 못 올라섰는데. 1995년엔 키 190cm에 가까운 여성 클라이머가 용량 100리터쯤 돼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멘 채 저벅저벅 걸어내려와 나를 질리게 했는데 이번에는 단신의 클라이머가 나를 위축시킨다.
안개 속에서 알프스 최고봉 올라
오전 11시45분, 운동장만큼 널찍한 정상은 구름안개에 휩싸여 보이는 게 아무 것도 없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를 이룬 몽블랑 정상에 오르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마터호른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건만. ‘멋진 등정 기념 촬영’ 예상도 빗나가자, 부연 안개 속에 뻣뻣하게 서서 사진 촬영을 끝내고 곧바로 하산길에 들어선다.
우리가 내려서는 설릉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 오른쪽은 어마어마한 세락이 형성된 보송빙하(Glacier des Bossons)이고, 왼쪽은 수천m 벼랑이다. 어느 쪽이든 추락하는 순간 그야말로 어디 갔는지 찾을 길도 없는 위험 지대다. 안개가 감각을 무디게 하다 잠시 벗겨지면서 발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순간 등줄기가 써늘해진다. 앞장서 내려가던 김창호는 곧바로 안자일렌(등반객을 로프로 연결하는 등반법) 등반을 결정한다.
널찍한 설릉에 내려서자 무인기상관측소와 발로대피소(Refuge-Bivouac Vallot·4382m)가 보인다. 잠시지만 우리가 내려선 급사면이 험상궂은 모습으로 바라보이고, 또 앞으로 가야 할 콜뒤구테(Col du Gouter) 설원과 돔뒤구테가 내려다보인다.
허기진 배를 비스킷 몇 조각과 사탕으로 달랜 뒤 곧바로 설원으로 내려선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설원은 끝나고, 돔뒤구테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급사면을 내려서는 사이 에귀디구테가 눈에 들어온다. 에귀디구테에 도착하면 안전지대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구테 정상과 산장과는 표고차 50m도 채 안 나기 때문이다.
오후 3시경 도착한 구테산장은 내일 몽블랑 등정을 위해 올라온 등반객들로 어수선했다. 오늘 아침 코스믹산장출발 이후 내내 우리의 부러움을 샀던 외국인 부부는 매우 지친 표정으로 산장 앞에서 아이젠을 벗고 있었다. 우리도 체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지만, 오늘 샤모니로 돌아갈 계획이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철길 따르다 어둠에 길 헤매
낙석의 위험이 높은 암릉인 파요 아레트(Arete Payot)를 타고 테트로제(Tete Rousse·3167m)산장에 내려서자 오후 5시50분. 니데글역까지는 아직도 표고차 800m의 먼 거리가 남아 있다. 마지막 열차시각은 6시40분, 50분 안에 내려서야 한다. 구테산장에서 미루었던 차 한 잔을 또다시 미루고 니데글역으로 급히 하산한다. 지루한 급경사 능선과 사면을 허겁지겁 내려서자 역이 내려다보이고, 역에 다가서자 우리를 앞질렀던 현지인 2명이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이들 역시 열차를 놓친 상황이었다.
“어쩜 10년 전과 이렇게 똑같냐!”
1995년 여름에도 그랬다. 샤모니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서기까지 철길을 따르고 산길을 따르는 등, 4시간 동안의 긴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2시간쯤 철길을 따르다 환하게 불을 밝혀 놓은 호텔에서 안내해 준 대로 콜데보자(Col de Voza·1653m)에서 도로로 접어들었으나 칠흑같은 어둠이 덮친다. 또다시 2시간 가까이 도로를 따른 다음 내려선 곳은 엉뚱하게도 산줄기를 경계로 북쪽이 아닌 남쪽, 샤모니에서도 50km 가까이 떨어진 비오나세(Bionnassay·1314m)였다(제길을 찾았다면 도로에서 샤모니까지는 10km 거리에 불과했다). 산장비를 아끼기 위해 테트로제산장을 지나친 것인데, 택시비는 그 두 배가 들어가게 생겼다. 모두 허기와 피로에 지쳐 말을 잊고 말았다. 이틀 뒤에 나설 오트루트 트레킹에서 또 이렇게 길을 잃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엄습해 왔다.⊙
(다음 달에 계속)
1995년 6월, 당시 필자는 그야말로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 4810m)에 꽂혀 있었다. 알피니즘이 태동한 곳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고산(高山) 등반 능력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1993년 러시아 엘브루즈(5642m)에 이어 1994년 북미(北美) 데날리(6194m)도 정상(頂上)을 밟지 못해 마음 한구석 한(恨)이 맺혀 있었다. 너무 센 선후배들과 다닌 탓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혼자만의 산행(山行)으로 나 자신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휴일 포함 닷새가 여름휴가의 관례이던 시절 보름 휴가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표를 쓰고서라도 가겠다는 각오로 보름 휴가를 신청했다. 결국 어이없어하던 부서장의 허락을 받아내 몽블랑 산행에 나설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 느꼈던 첫 몽블랑 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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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탕베르역 방향에서 메르데글라스로 내려서는 일행. ‘빙하의 바다’라는 메르데글라스는 매년 급속도로 녹아내려 퇴석빙하가 더 많아지고 있다. |
출발 전에 욕심이 더 커졌다. 샤모니에서 케이블카로 접근하는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3842m)에서 두어 시간 거리인 코스믹산장(Cosmiques Hut·3613m)에서 시작하는 산행이 아닌, 등산열차로 접근하는 몽탕베르(le Montenvers·1900m)에서 출발해 메르데글라스(Mer De Glace)~발레블랑쉐 빙하를 거쳐 코스믹산장에 올라선 다음 설릉 종주에 나서는 일정이었다.
게다가 프랑스 샤모니의 샬레(숙소)에서 인연을 맺은, 등산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영국 유학생을 동행 삼았고, 첫날 스케줄을 하루 더 늘렸다. 몽탕베르역에서 절벽을 타고 메르데글라스로 내려선 다음, 이날 묵을 르켕산장(Refuge du Requin·2516m)을 향해 빙하를 거슬러 오르던 중 “쿠베르클산장 트레일을 따르면 알프스의 멋진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는 현지 트레커 말에 일정을 바꾼 것이다. 일정이 하루 더 늘어나지만 더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했던 것이다. 로컬 트레커 말대로 가슴이 쿵쾅거리도록 아름답고 웅장했다.
하지만 이튿날 빙하를 가로지르던 중 숨은 크레바스 지대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고, 나흘 뒤에는 4000m 높이의 설릉에서 화이트아웃을 만나 추락의 불안함에 긴장해야 했다. 결국 몽블랑 설릉 대종주에 성공했으나 니데글역(Le Nid d'Aigle·2372m)에서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눈 녹은 물에 푹 젖은 플라스틱 이중화를 신고 쫄쫄 굶은 채 무려 6시간 넘게 샤모니를 향해 걸어 내려가야 했다.
名峰들과 만난 오트루트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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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브랑쉐 빙하 상단부의 크레바스 지대. |
2박 3일간 몽블랑 산행을 끝낸 뒤 6일간에 걸쳐 오트루트를 따르는 사이 평균 해발 3000m가 넘는 대피소들과 3000~3700m 사이의 높은 패스를 오르고, 거의 매일 1000m 가까이 오르내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기에 체력소모가 컸다. 크레바스가 도사리는 빙하를 여러 차례 거쳐야 했기에 위험부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체험했던 알프스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해 준 기간이었다. 빙하를 가로지르고, 패스를 오르면서 고산의 험난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패스에 올라서는 순간마다 흥분될 만큼 웅장하게 빛나는 명봉(名峰)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전망대나 다름없는 산장에 머물면서 알프스의 적요함에 젖어 설산의 아름다움을 엿보고 알피니즘의 본질을 생각할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친구 석상명(5대륙 최고봉 완등자), 후배 김창호(8000m 14좌 무산소 완등자), 필자 세 명은 두 차례의 항공과 버스로 이어진 17시간의 이동 끝에 샤모니에 도착, 시차적응조차 안돼 있는 상태였지만 이튿날부터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에 하루 쉬려던 계획을 버리고 지체 없이 르켕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몽탕베르역에서 메르데글라스로 내려선 오후 4시경부터 흩날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빙하를 거슬러 오를수록 더욱 굵어졌고, 르켕산장에 도착하기 전에는 폭우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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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디미디 설원. 에귀디미디 아래 설원을 걷는 등반객들이 점처럼 보인다. |
“와~, 저게 드류(les Drus·3730m)예요, 그러면 그 뒤쪽 봉은 에귀베르트(Aiguille Verte・4122m)….”
당시 두어 달 전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밧(8125m) 횡단 등반에 성공한 히말라야 등반가 김창호건만 알프스 명봉들과의 첫 대면에 감격스러워했고, 그 감탄사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곧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서 우리를 더욱 흥분시켰다.
주변의 산봉은 날카롭고도 웅장하기가 1995년 여름이나 1997년 여름이나 다를 바 없지만, 빙하는 달랐다. 깨지고 갈라지고 위태롭고 한발 한발 뗄 때마다 긴장감은 점점 가중되었다.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스노브리지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건너고, 발아래 시커먼 크레바스를 내려다볼 때마다 섬뜩섬뜩했다.
정오경, 해발 3000m대 높이 빙하에 형성된 거대한 세락(serac·빙하의 갈라진 틈에 의하여 생긴 탑 모양의 얼음덩이)이 앞을 가로막았다. 피할 길이 없다. 크레바스를 피해 좌우로 틀며 오르다 끊어질 듯하면 스노브리지가 외가닥길을 이어 주곤 한다. 그러다 급경사 얼음 사면에서 아이젠이 밀리면서 두 차례나 미끄러지다 휘두른 피켈에 겨우 제동되고 나자 기운이 싹 빠져나가면서 ‘이 짓을 왜 하나’ 싶어진다. 에귀디미디에서 헬브로너(Pointe Helbronner·3462m)를 운행하는 빨간 케이블카가 머리 위로 오가는 게 보인다. 우리도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알프스를 탐닉할 수 있을 것을 왜 이리 미련을 떠는지 모르겠다 싶어진다.
곧 이유가 밝혀졌다. 급경사 설사면(雪斜面)에 한발 한발 오르는 사이 내일 오를 몽블랑이 정수리를 슬쩍 드러내고, 당뒤장(Dent du Geant·4013m)에 가려 있던 그랑드조라스(Grandes Jorasses·4208m)가 고개를 삐죽 내민다. 이렇게 높이에 따라 전혀 다른 산세(山勢)는 케이블카에 편안히 앉아서는 감상할 수 없을 게다.
산장에서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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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 정상을 향하다 조망을 즐기고 있다. 메르데글라스 일원의 침봉들이 멋진 산군을 이루고 있다. |
급경사의 설사면을 올려쳐 코스믹산장에 들어서자 뜻밖에 자리가 많다. 엊저녁 전화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숙박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르켕산장 관리인 말에 걱정스러웠는데 180명 수용 능력의 산장에는 10여 명의 등반객만이 머물고 있었다. 산장에 들어서자마자 우선 시원한 맥주부터 시킨다. 산장은 최신 주방 시설에 생맥주도 팔고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마터호른이에요.”
저녁 식사에 앞서 헬리포트에서 조망을 즐기던 김창호가 일행을 불러댄다. 그렇지, 10년 전에도 같은 자리에서 본 봉우리건만 그제야 떠오른다. 알프스 미봉 마터호른(Matterhorn・4478m)은 드류와 에귀베르트 사이에 삐죽 솟아 있었다. 어서 오라는 뜻인가. 적어도 열흘 후면 우리 모두 저 침봉 위에 서 있으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저녁식사-. 예상대로 푸짐한 식사가 나왔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담갔다 꺼낸 다음 기름에 볶아 낸 밥이 목에 잘 넘어갈 리 만무하다. 수프며 양고기 스튜는 왜 이리 짠지-. 그런데도 외국 트레커들은 양푼을 가득 채운 수프와 커다란 스튜는 물론 야채와 밥까지도 남김없이 먹어치운다. 반면 우리는 야채 약간, 양고기 몇 점, 그리고 파이 한 조각으로 저녁식사를 끝내야 했다. 어쨌든 오늘 하루에 1100m 고도를 올렸는데 모두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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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모디 설벽을 오르는 일행. |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반달도 떠 있다. 그 빛에 어제 일행이 오른 발레브랑쉐(la Vallee Blanche) 설원은 처녀의 속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은밀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반짝인다. 콜디미디 설원을 가로질러 타퀼 설벽으로 다가서는 사이 샤모니의 가로등들이 별빛처럼 반짝인다. 하늘의 별을 따러 오르는 기분이다.
가파른 설사면을 치고 오르는 사이 거대한 세락이 우리를 덮칠 듯한 기세로 고개를 바짝 치켜세운다. 김창호는 “얼마 전 등반한 낭가파르밧 디아미르 설벽보다도 더욱 가파르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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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최고봉 몽블랑 정상에 선 석상명씨와 김창호씨(오른쪽). |
등 뒤로는 날카로운 침봉들이 아침 햇살에 벌겋게 물들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샌가 반짝이는 별들이 사라져 버렸다. 곧 날이 밝았다. 고정로프가 보인다. 급경사에 얼음이 얼어붙어 있어 발을 디뎌도 밑으로 죽죽 밀리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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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구테산장으로 내려서고 있다. |
갑자기 모두 말이 없어진다. 브렌바콜(Col de la Blenva·4303m)로 이어지는 설사면 트래버스 구간이 얼음과 눈이 뒤섞여 피켈도, 아이젠도 잘 박히질 않는다. 서로 줄로 연결하긴 했지만, 한 사람이라도 휘청하는 순간 세 사람 모두 수백 m 설벽 아래로 추락이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추락사고가 일어난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싶어진다.
“저 구름 좀 보세요. 이거, 심상찮은데요….”
외국인 등반객, 트래버스 도중 추락
어렵사리 트래버스를 끝내고 흉악스럽게 입을 벌린 크레바스 안에 들어서 바람을 피해 쉬는 사이 날씨가 급변한다. 엄청난 속도로 불어대는 바람에 구름이 옅게 흩어지면서 몽블랑 정상을 싸늘하게 만든다. 정상에 섰던 이들도 급히 내려서는 모습이 보인다. 우모복에 고어텍스 재킷까지 덧입는다.
김창호는 “서둘러야겠다”며 재촉하지만 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나마 새벽에 먹은 콘플레이크가 얹혔는지 출발 직후부터 속이 아파 고생하던 석상명은 결국 토하고 말았다. 그래도 토하고 나서 오히려 제 컨디션을 되찾은 게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뒤처져 오르던 외국인 산악인 5명 중 1명이 우리를 긴장케 했던 트래버스 구간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자일에 걸려 그 아래 크레바스로 빠져드는 위험 상황은 피했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브렌바콜 위에 올라서자 설릉 너머 이탈리아 쪽이 내려다보인다. 시커먼 절벽 아래는 유토피아였다. 이탈리아 쪽 샤모니와도 같은 마을인 쿠르마예(Courmayeur) 일원은 따뜻하게 느껴졌고, 마을 옆의 체티프(Mont Chetif・2343m)산 일원은 푸른빛으로 환하게 빛났다. 알프스가 아름다운 것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하얀 산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푸르름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리라.
“애고 애고…, 애고 애고….”
급경사 설사면을 한 번 더 올려치자 이제 정상 설사면만 남아 있다. 서른 발짝 떼고, 호흡 가다듬기 연속이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설사면 중간쯤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브렌바콜에 있던 사람이 어느 샌가 우리를 앞지르더니 평지 걷듯 걸어 정상에 올라섰다가 다시 쏜살같이 내려서는 게 아닌가! 마치 북한산 오르듯-. 키 165cm도 채 안 되겠다 싶은 그는 분명 속도등반을 위해 훈련 삼아 몽블랑을 오르는 대단한 클라이머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누구 야코 죽일 일 있나, 아직 중턱도 못 올라섰는데. 1995년엔 키 190cm에 가까운 여성 클라이머가 용량 100리터쯤 돼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멘 채 저벅저벅 걸어내려와 나를 질리게 했는데 이번에는 단신의 클라이머가 나를 위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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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탕베르역에서 바라본 드류. 알프스를 대표하는 험봉이다. |
우리가 내려서는 설릉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 오른쪽은 어마어마한 세락이 형성된 보송빙하(Glacier des Bossons)이고, 왼쪽은 수천m 벼랑이다. 어느 쪽이든 추락하는 순간 그야말로 어디 갔는지 찾을 길도 없는 위험 지대다. 안개가 감각을 무디게 하다 잠시 벗겨지면서 발아래가 내려다보이는 순간 등줄기가 써늘해진다. 앞장서 내려가던 김창호는 곧바로 안자일렌(등반객을 로프로 연결하는 등반법) 등반을 결정한다.
널찍한 설릉에 내려서자 무인기상관측소와 발로대피소(Refuge-Bivouac Vallot·4382m)가 보인다. 잠시지만 우리가 내려선 급사면이 험상궂은 모습으로 바라보이고, 또 앞으로 가야 할 콜뒤구테(Col du Gouter) 설원과 돔뒤구테가 내려다보인다.
허기진 배를 비스킷 몇 조각과 사탕으로 달랜 뒤 곧바로 설원으로 내려선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설원은 끝나고, 돔뒤구테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급사면을 내려서는 사이 에귀디구테가 눈에 들어온다. 에귀디구테에 도착하면 안전지대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다. 구테 정상과 산장과는 표고차 50m도 채 안 나기 때문이다.
오후 3시경 도착한 구테산장은 내일 몽블랑 등정을 위해 올라온 등반객들로 어수선했다. 오늘 아침 코스믹산장출발 이후 내내 우리의 부러움을 샀던 외국인 부부는 매우 지친 표정으로 산장 앞에서 아이젠을 벗고 있었다. 우리도 체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지만, 오늘 샤모니로 돌아갈 계획이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철길 따르다 어둠에 길 헤매
낙석의 위험이 높은 암릉인 파요 아레트(Arete Payot)를 타고 테트로제(Tete Rousse·3167m)산장에 내려서자 오후 5시50분. 니데글역까지는 아직도 표고차 800m의 먼 거리가 남아 있다. 마지막 열차시각은 6시40분, 50분 안에 내려서야 한다. 구테산장에서 미루었던 차 한 잔을 또다시 미루고 니데글역으로 급히 하산한다. 지루한 급경사 능선과 사면을 허겁지겁 내려서자 역이 내려다보이고, 역에 다가서자 우리를 앞질렀던 현지인 2명이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다. 이들 역시 열차를 놓친 상황이었다.
“어쩜 10년 전과 이렇게 똑같냐!”
1995년 여름에도 그랬다. 샤모니로 이어지는 도로로 내려서기까지 철길을 따르고 산길을 따르는 등, 4시간 동안의 긴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2시간쯤 철길을 따르다 환하게 불을 밝혀 놓은 호텔에서 안내해 준 대로 콜데보자(Col de Voza·1653m)에서 도로로 접어들었으나 칠흑같은 어둠이 덮친다. 또다시 2시간 가까이 도로를 따른 다음 내려선 곳은 엉뚱하게도 산줄기를 경계로 북쪽이 아닌 남쪽, 샤모니에서도 50km 가까이 떨어진 비오나세(Bionnassay·1314m)였다(제길을 찾았다면 도로에서 샤모니까지는 10km 거리에 불과했다). 산장비를 아끼기 위해 테트로제산장을 지나친 것인데, 택시비는 그 두 배가 들어가게 생겼다. 모두 허기와 피로에 지쳐 말을 잊고 말았다. 이틀 뒤에 나설 오트루트 트레킹에서 또 이렇게 길을 잃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엄습해 왔다.⊙
(다음 달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