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중의 으뜸이 사람 다루는 기술이라면, 매너야말로 최고의 무형자원이다. 하여 선진국은 매너와 품격으로 경쟁한다. 글로벌 매너는 글로벌 마인드로 세상을 보는 시야와 상대방에 대한 합당한 인식, 제3자 불특정 일반 대중에 대한 배려, 당당히 대우받기 포함 전인적 소통 능력, 비즈니스 협상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혁신은 매너를 통한 사람됨이어야 한다
辛成大
⊙ 61세. 도서출판 東文選 대표,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회장,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 인사문화포럼 공동대표.
⊙ 저서: 《무덕(武德)-武의 문화, 武의 정신》 《품격경영(상·하)-상위 1%를 위한 글로벌
교섭문화백서》.
辛成大
⊙ 61세. 도서출판 東文選 대표,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회장,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 인사문화포럼 공동대표.
⊙ 저서: 《무덕(武德)-武의 문화, 武의 정신》 《품격경영(상·하)-상위 1%를 위한 글로벌
교섭문화백서》.
- 2013년 11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 올리비에 시마 미술관 국제협력국장과 클레르 베르나르디 박물관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19세기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관람했다.
1505년 6월 로마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자신의 신변 경호를 위해 스위스에 용병(傭兵)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한다. 150명 용병이 이듬해 1월 22일 로마에 도착한다. 이것이 바로 바티칸의 군대이자 교황의 경호대인 스위스 근위대의 시작이다. 1527년 ‘로마 약탈’에서 그들의 명성은 증명되었다. 당시 스페인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와 프랑스 연합군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로마를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다른 군대는 모두 항복했는데도 스위스 근위대만큼은 끝까지 교황을 보호하여 피신시키는 데 성공한다. 당시 스위스 근위대 187명 중 147명이 전사하였다. 목숨을 구한 클레멘스 7세는 자신의 출신 가문인 메디치가(家)를 상징하는 노랑과 파란색 줄무늬 군복을 입힘으로써 이들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이후 교황청 근위대는 전원 스위스 용병들로만 구성되는 전통이 생겨났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는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와 네덜란드군에 속한 각각의 스위스 용병들이 말플라크 전투에서 격돌하여 전멸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스위스의 휴양 도시인 루체른의 한 작은 호숫가 절벽에는 화살이 박힌 채 꺾어진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방패를 껴안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빈사(瀕死)의 사자상(像)’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루이 16세의 근위대였던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1821년에 완성된 기념비이다. 프랑스대혁명이 절정으로 치닫던 1792년 8월 10일,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시민군에게 포위된 상태였고, 다른 근위대들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스위스 용병들만이 남아 성을 지키고 있었다. 이미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판단한 루이 16세는 이 스위스 용병들에게 “그대들과는 상관없는 싸움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신의(信義)는 목숨으로 지킨다”며 끝까지 항전(抗戰)하다가 786명 모두 전멸하였다. 이후 이 호수는 용병으로 나가는 스위스 전사(戰士)들이 각오를 다지고 서약의 의식을 치르는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 작년에 한국의 한 방송 프로 〈꽃보다 할배〉에서 탤런트 백일섭과 이순재가 뜬금없이 찾아가 노닥거린 곳이기도 하다.
자원 없는 나라는 무엇으로 먹고사는가? 불과 150여 년 전만 해도 스위스는 용병이 아니고선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든 나라였다. 따라서 자신들이 신뢰를 잃으면 후손들의 생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일. 제아무리 용맹한 사자라 해도 굶으면 죽을 수밖에 없음을 잘 알기에 차라리 싸우다 죽기를 택한 것이다.
紳士의 자격, 스위스 명품시계
2014년 11월 12일, 스위스 제네바 소더비경매장에서 명품(名品) 수제(手製) 회중시계 ‘헨리 그레이브스 파텍 필립 슈퍼콤플리케이션’이 시계 경매 사상 최고가인 263억원을 기록하며 익명(匿名)의 수집가에게 넘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로 등극한 이 회중시계는, 1925년 미국 뉴욕의 부호 헨리 그레이브스가 주문해 무려 5년 동안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최고 낙찰가 역시 이 제품으로, 지난 1999년에 기록된 115억6000만원이었다.
오늘날 스위스를 세계 최고의 시계의 나라로 만든 원동력은 목숨을 신의와 맞바꾼 용병 정신이다. 서양 법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라틴어 명제 ‘fides servanda, 신의는 지켜져야 한다’ 정신이 체화(體化)된, 정확·약속·신뢰가 생명인 시계는 스위스의 상징인 것이다.
어디 시계뿐인가? 은행 역시 신뢰가 밑천이다. 세계의 부자들이 이자율이 높아서 스위스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 웬만한 다국적 연구소, 각종 IT산업 데이터 저장소, 세계 유명 보석 기업들의 비밀 창고도 스위스에 들어서고 있다. 신뢰를 고부가가치 안전 산업으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만약 이 명품 시계를 한국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오너가 낙찰받았더라면 기업은 물론 제품의 이미지 업그레이드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이다. 그 열 배인 2630억원을 들여 광고한다 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품격이 이 시계 하나에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신사(紳士)들이 굳이 스위스 명품시계를 차는 이유가 반드시 돈 자랑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신뢰는 말로 얻는 것이 아니다. 스위스가 1815년 빈 회의에서 유럽 열강(列强)들로부터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도 누천년 동안 용병들의 피로써 굳혀온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통일과 영세중립국 선언? 그렇다면 한국은 주변 강국들로부터 신뢰받고 있는가? 지지부진한 6자회담이 그 답이 되겠다.
에티켓 자원화에 성공한 나라 일본
신의를 자원화한 나라가 스위스라면, 에티켓을 자원화시켜 성공한 나라는 일본이다.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과 복종, 사무라이 정신을 정직·성실·청결·친절이라는 글로벌 이미지로 구축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지진, 화산, 쓰나미, 태풍 등 끊임없는 자연재해는 협동심과 질서의식, 집요한 과학정신을 길러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자포니즘은 에티켓을 넘어 매너로 확장되지 못했다. 기실 매너 플랫폼에서 에티켓은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氷山)의 일각일 뿐! 일본인들의 에티켓은 자기 방어적 관습으로 인간 존엄성 및 인류 보편적 양심을 기반 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각종 처세술 내지는 자기계발서들이 깊이가 부족한 이유도, 과학 분야에서는 해마다 노벨상을 수상하면서도 세계적인 철학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경제동물이란 비아냥거림을 들어가면서도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도, 지난날의 역사적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 이유도, 진정한 글로벌 선진국민으로 세계인들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일본만큼 신뢰받는가? 일본인들만큼 정직하고 정확하고 청결하고 친절한가? G20 회원 국가다운 교양과 매너를 갖추었는가? 한류(韓流)로 어떤 미덕을 구현시킬 수 있을까? 한국도 일본처럼 20여 년의 장기불황을 견뎌낼 체력을 지녔는가? 우리의 지도자들이 중국 혹은 북한의 지도자들에 비해 대범하거나 우월한 품격을 지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밀레의 〈晩鍾〉
2013년 11월 3일, 유럽 순방중 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밀레의 〈만종(晩鍾)〉 앞에 한참이나 멈춰 서 큐레이터에게 두 농부 뒤로 펼쳐진 황혼녘의 대지와 하늘이 의미하는 게 뭔지를 묻는 등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글쎄, 대지와 하늘에 무슨 별다른 의미가 있으랴마는 그 큐레이터가 대략 난감했을 것 같다. 아무튼 이를 두고 한국 언론들에서는 밀레의 〈만종〉이 프랑스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보물이며, 상대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보여준 훌륭한 외교술이었다고 칭송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발소 그림’이다. 그리고 원래 감자바구니 대신 배고파 죽은 어린 아기의 주검이 그려져 있었다는 이야기도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1857년 미국의 부호가 1000프랑을 주고 주문한 그림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사람들은 인간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다. 반세기 동안 서로 죽이기를 끝없이 반복한 끝에 ‘이러다간 결국 너도나도 꼼짝없이 공멸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인간 존엄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미제라블》이나 〈만종〉은 그 상징적 작품이다. 그전에 평범한 시민, 무희, 창녀, 농민, 가난한 자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림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신(神), 성인(聖人), 왕족, 귀족, 부자들만이 그림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농부를 그린 그림을 누가 사주겠는가?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물감이 귀한 재료였다. 겨우 그림 재료값에 불과하지만 1000프랑은 큰돈이다. 서민이나 농부가 그림을 살 리가 없고, 귀족이나 부자가 종교화나 가족들의 초상화도 아닌 미천한 농부 그림을 자신의 집에 걸어둘 리가 없다. 그랬다간 그들의 조상이 이삭이나 줍던 미천한 농부였다고 오해받는 일이 벌어질 테니 말이다. 당연히 이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가난할 수밖에.
한데 밀레의 사후 〈만종〉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순회전시를 하면서 전 미국인들의 열광을 얻고, 그럴수록 프랑스 국민들은 이 그림을 지키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며 가슴을 쳤다.
박근혜와 아웅산 수치
1889년 마침내 루브르 박물관이 나서서 〈만종〉을 사오기 위해 경매에 나섰지만 아깝게도 미국예술협회에 기회를 넘기고 만다. 이에 전 프랑스가 발칵 뒤집혀 시민들이 모금 운동까지 벌였지만 오히려 그림값 상승만 부추길 뿐이었다. 결국 1890년 프랑스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소사르가 당시 80만 프랑이라는 천문학적인 거금을 주고 마침내 고국으로 가져온다. 그는 1909년 〈만종〉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고 작고하였다. 하여 〈만종〉 밑에는 언제나 ‘알프레드 소사르 기증’이란 명패가 따라붙는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만종〉은 나중에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진다. 왜냐하면 루브르 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그곳의 전시품들 대부분은 프랑스의 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하게 말해서 약탈문화재들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인들이 오르세 미술관에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만종〉을 찾기 전 해, 그러니까 2012년 6월, 오랜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치 여사가 노벨상을 지각 수상(지명은 1991년)하기 위해 오른 유럽 순방길에 꼭 그 자리에 섰었다. VVIP 손님이니 당연히 수석 큐레이터가 안내를 맡았다. 그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만종〉을 미국에서 되찾아오기 위해 범(汎)국민적 모금 운동까지 벌인 위대한 프랑스 국민들에게 존경을 표한다”며 자신의 스카프를 벗어 큐레이터의 목에 걸어주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 덕에 자신이 연금(軟禁)에서 풀려나 〈만종〉 앞에 서게 된 것이 오버랩되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프랑스는 그녀를 명예 파리 시민으로 환대했다.
〈만종〉 앞에서 눈물을 흘린 미얀마의 민주투사 아웅산 수치를 기억하는 프랑스인들이 같은 그림을 보고 대지와 하늘의 의미를 묻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르세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정도면 프랑스 예술계, 문화계, 사교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그 나라 문화부장관에 결코 못지않다. 그런 그가 느낀 한국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한국 문화나 상품에 대한 평가는? 과연 관심이나 있을지….
세계무역 10위권 대국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사적(私的) 〈만종〉 대응과 전 세계 최빈국(最貧國) 중 하나인 미얀마의 민간인 아웅산 수치의 공적(公的) 〈만종〉 대응이라는 교섭문화 간 역방향 괴리 모습에서 품격경영의 글로벌 현실 절벽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가? 주인장 마인드의 매너를 지닌 리더라면 그 같은 기회를 오롯이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아무튼 공부와 교양, 에티켓과 매너의 차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품격 수준을 가늠케 해준 좋은 대비였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甲질?
여자를 추행의 대상으로 여기는 권력자들, 직원을 부리는 대상으로 여기는 기업인들, 국민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치인들. 전(前) 국회의장, 전 검찰총장, 현직 교수, 현직 장군… 성(性)추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성공의 목적이 고작 제 ‘근본’을 과시하는 완장질이고 갑(甲)질이었든가?
제 몸 하나 가꿀 줄 모르는, 필터링이 안 된 무매너 한국의 리더들. 순진한 척, 순수한 척하며 매너를 배운 적이 없음에 대한 부끄럼조차 없다. 자신의 직위에 걸맞은 업무 역량은 물론 글로벌 매너도 갖추지 못했음을 비뚤어진 편의주의, 실용주의, 국수주의(國粹主義), 서민주의로 가려 국민을 기만하려 든다. 심지어 버릇없음이 투사나 지사(志士)의 특권인 양 양아치스럽게 차려입거나 싸가지 없는 말들만 골라 입에 담는다. 당연히 공인의식이 있을 리 없다.
어쩌다 이 나라가 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이 되었을까? 고리짝 속 《논어》를 끄집어내어 인성교육시킨다고 이 나라가 도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 될 수 있을까?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유학(儒學)은 매너의 학문이다. 강륜(綱倫)이란 공동체 구성원 간에 지켜야 할 매너, 교양, 덕목이다. 한데 입으로는 누천년 전의 공자(孔子) 말씀을 읊으면서 당장의 에티켓이나 매너는 고개 돌려 외면한다. 어차피 현실에서 굳이 구현할 필요도 없는 구(舊)시대의 규범들이니 제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도 도덕인(道德人) 행세할 수 있다. 행동하는 지성은 없고 말만 많은 식자(識者)들이 판을 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다가 돈이나 지위, 학위, 권력을 쥐게 되면 단물 빠진 껌처럼 뱉어 버리고 종복근성 한풀이에 몰두한다.
민주화와 함께 경제만 성장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고 누구도 품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88올림픽으로 본격적인 대중소비시대가 열리고, 문민(文民)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샴페인을 터뜨려 버렸다. 이후 공공(公共)기관은 물론 국민들 모두 본격적으로 타락해 갔다. 기업 역시 비약적인 성장에 오만해진 오너들의 대(代)를 이은 전횡으로 타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국민 모두가 뭔가 거대한 벽에 맞닥뜨린 것 같은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민주화와 기술만 가지게 되면 절로 선진국민이 될 줄 알았는데 좀처럼 실질소득도 오르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 하여 마지막으로 선진국 따라 복지를 늘리는데 이번엔 일자리가 사라지고 자살률만 높아지고 있다.
품격 없인 기적도 없다
한국은 지난날 후진국에서 개도국으로 넘어갈 때 치열한 체질개선 작업을 했었다. ‘국민교육헌장’과 ‘새마을운동’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책임과 의무, 그게 바로 주인의식이겠다. 한데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 역시 그에 부응할 만한 보다 업그레이드된 체질개선 작업을 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타락해 버렸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와 평등은 방종과 태만을 불러들여 헐뜯기와 떼쓰기로 세월만 낭비하다가 바야흐로 선진국으로 올라서려는 순간 문턱에서 자칫 제풀에 고꾸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불특정 대중에 대한 인식 불능, 주인의식 부재.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선진문명권 사람이라면 한국인의 운전 매너 하나만 보고도 한국이 절대 선진국에 들 수 없음을 다 안다. 선진국민이 되어 보지 못한 한국인들만 모를 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동안의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고산병(高山病), 잠수병(潛水病)을 앓고 있다. 이대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다가는 엎어지거나, 미끄러지거나, 점점 더 불행해질 뿐이다. 하여 끊임없이 실망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것이다. 피를 갈고 뼈를 깎는 체질개선 작업으로 된장독 근성을 버리지 못하면 또다시 역사의 무정함에 피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다.
2014년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은 신년사에서 ‘품격’경영을 주창했었다. 기술 일등(一等)이 되고서야 비로소 ‘일등’과 ‘일류(一流)’가 완전히 다름을 인식한 것이다.
결국은 기본이다. 차라리 여기서 한 발 물리는 한이 있더라도 과연 우리가 중진국다운 매너와 품격, 그리고 문명인다운 자세를 지녔는지,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체질개선 작업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겠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 해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부족한 자원 대신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막장드라마 한류도, 또 하나의 기적도 아니다. 선진문명적 교섭문화, 진품(眞品) 매너 그뿐이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는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와 네덜란드군에 속한 각각의 스위스 용병들이 말플라크 전투에서 격돌하여 전멸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스위스의 휴양 도시인 루체른의 한 작은 호숫가 절벽에는 화살이 박힌 채 꺾어진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방패를 껴안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빈사(瀕死)의 사자상(像)’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루이 16세의 근위대였던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기 위해 1821년에 완성된 기념비이다. 프랑스대혁명이 절정으로 치닫던 1792년 8월 10일,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시민군에게 포위된 상태였고, 다른 근위대들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스위스 용병들만이 남아 성을 지키고 있었다. 이미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판단한 루이 16세는 이 스위스 용병들에게 “그대들과는 상관없는 싸움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신의(信義)는 목숨으로 지킨다”며 끝까지 항전(抗戰)하다가 786명 모두 전멸하였다. 이후 이 호수는 용병으로 나가는 스위스 전사(戰士)들이 각오를 다지고 서약의 의식을 치르는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 작년에 한국의 한 방송 프로 〈꽃보다 할배〉에서 탤런트 백일섭과 이순재가 뜬금없이 찾아가 노닥거린 곳이기도 하다.
자원 없는 나라는 무엇으로 먹고사는가? 불과 150여 년 전만 해도 스위스는 용병이 아니고선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든 나라였다. 따라서 자신들이 신뢰를 잃으면 후손들의 생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일. 제아무리 용맹한 사자라 해도 굶으면 죽을 수밖에 없음을 잘 알기에 차라리 싸우다 죽기를 택한 것이다.
紳士의 자격, 스위스 명품시계
2014년 11월 12일, 스위스 제네바 소더비경매장에서 명품(名品) 수제(手製) 회중시계 ‘헨리 그레이브스 파텍 필립 슈퍼콤플리케이션’이 시계 경매 사상 최고가인 263억원을 기록하며 익명(匿名)의 수집가에게 넘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로 등극한 이 회중시계는, 1925년 미국 뉴욕의 부호 헨리 그레이브스가 주문해 무려 5년 동안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최고 낙찰가 역시 이 제품으로, 지난 1999년에 기록된 115억6000만원이었다.
오늘날 스위스를 세계 최고의 시계의 나라로 만든 원동력은 목숨을 신의와 맞바꾼 용병 정신이다. 서양 법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라틴어 명제 ‘fides servanda, 신의는 지켜져야 한다’ 정신이 체화(體化)된, 정확·약속·신뢰가 생명인 시계는 스위스의 상징인 것이다.
어디 시계뿐인가? 은행 역시 신뢰가 밑천이다. 세계의 부자들이 이자율이 높아서 스위스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요즘 웬만한 다국적 연구소, 각종 IT산업 데이터 저장소, 세계 유명 보석 기업들의 비밀 창고도 스위스에 들어서고 있다. 신뢰를 고부가가치 안전 산업으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만약 이 명품 시계를 한국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오너가 낙찰받았더라면 기업은 물론 제품의 이미지 업그레이드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이다. 그 열 배인 2630억원을 들여 광고한다 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품격이 이 시계 하나에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신사(紳士)들이 굳이 스위스 명품시계를 차는 이유가 반드시 돈 자랑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신뢰는 말로 얻는 것이 아니다. 스위스가 1815년 빈 회의에서 유럽 열강(列强)들로부터 영세중립국(永世中立國)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도 누천년 동안 용병들의 피로써 굳혀온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통일과 영세중립국 선언? 그렇다면 한국은 주변 강국들로부터 신뢰받고 있는가? 지지부진한 6자회담이 그 답이 되겠다.
에티켓 자원화에 성공한 나라 일본
신의를 자원화한 나라가 스위스라면, 에티켓을 자원화시켜 성공한 나라는 일본이다.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과 복종, 사무라이 정신을 정직·성실·청결·친절이라는 글로벌 이미지로 구축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지진, 화산, 쓰나미, 태풍 등 끊임없는 자연재해는 협동심과 질서의식, 집요한 과학정신을 길러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자포니즘은 에티켓을 넘어 매너로 확장되지 못했다. 기실 매너 플랫폼에서 에티켓은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氷山)의 일각일 뿐! 일본인들의 에티켓은 자기 방어적 관습으로 인간 존엄성 및 인류 보편적 양심을 기반 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각종 처세술 내지는 자기계발서들이 깊이가 부족한 이유도, 과학 분야에서는 해마다 노벨상을 수상하면서도 세계적인 철학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경제동물이란 비아냥거림을 들어가면서도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도, 지난날의 역사적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 이유도, 진정한 글로벌 선진국민으로 세계인들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일본만큼 신뢰받는가? 일본인들만큼 정직하고 정확하고 청결하고 친절한가? G20 회원 국가다운 교양과 매너를 갖추었는가? 한류(韓流)로 어떤 미덕을 구현시킬 수 있을까? 한국도 일본처럼 20여 년의 장기불황을 견뎌낼 체력을 지녔는가? 우리의 지도자들이 중국 혹은 북한의 지도자들에 비해 대범하거나 우월한 품격을 지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밀레의 〈晩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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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지키려다가 전멸당한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는 ‘빈사의 사자상’. 스위스 루체른에 있다. |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발소 그림’이다. 그리고 원래 감자바구니 대신 배고파 죽은 어린 아기의 주검이 그려져 있었다는 이야기도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1857년 미국의 부호가 1000프랑을 주고 주문한 그림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사람들은 인간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다. 반세기 동안 서로 죽이기를 끝없이 반복한 끝에 ‘이러다간 결국 너도나도 꼼짝없이 공멸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인간 존엄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미제라블》이나 〈만종〉은 그 상징적 작품이다. 그전에 평범한 시민, 무희, 창녀, 농민, 가난한 자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림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신(神), 성인(聖人), 왕족, 귀족, 부자들만이 그림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농부를 그린 그림을 누가 사주겠는가?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물감이 귀한 재료였다. 겨우 그림 재료값에 불과하지만 1000프랑은 큰돈이다. 서민이나 농부가 그림을 살 리가 없고, 귀족이나 부자가 종교화나 가족들의 초상화도 아닌 미천한 농부 그림을 자신의 집에 걸어둘 리가 없다. 그랬다간 그들의 조상이 이삭이나 줍던 미천한 농부였다고 오해받는 일이 벌어질 테니 말이다. 당연히 이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가난할 수밖에.
한데 밀레의 사후 〈만종〉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순회전시를 하면서 전 미국인들의 열광을 얻고, 그럴수록 프랑스 국민들은 이 그림을 지키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며 가슴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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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 이 작품을 보고 박근혜 대통령은 私的인 반응을 보인 반면, 아웅산 수치 여사는 公的인 반응을 보였다. |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만종〉은 나중에 오르세 미술관으로 옮겨진다. 왜냐하면 루브르 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그곳의 전시품들 대부분은 프랑스의 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하게 말해서 약탈문화재들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인들이 오르세 미술관에 자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만종〉을 찾기 전 해, 그러니까 2012년 6월, 오랜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치 여사가 노벨상을 지각 수상(지명은 1991년)하기 위해 오른 유럽 순방길에 꼭 그 자리에 섰었다. VVIP 손님이니 당연히 수석 큐레이터가 안내를 맡았다. 그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만종〉을 미국에서 되찾아오기 위해 범(汎)국민적 모금 운동까지 벌인 위대한 프랑스 국민들에게 존경을 표한다”며 자신의 스카프를 벗어 큐레이터의 목에 걸어주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 덕에 자신이 연금(軟禁)에서 풀려나 〈만종〉 앞에 서게 된 것이 오버랩되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프랑스는 그녀를 명예 파리 시민으로 환대했다.
〈만종〉 앞에서 눈물을 흘린 미얀마의 민주투사 아웅산 수치를 기억하는 프랑스인들이 같은 그림을 보고 대지와 하늘의 의미를 묻는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르세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정도면 프랑스 예술계, 문화계, 사교계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그 나라 문화부장관에 결코 못지않다. 그런 그가 느낀 한국 대통령에 대한 인상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한국 문화나 상품에 대한 평가는? 과연 관심이나 있을지….
세계무역 10위권 대국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사적(私的) 〈만종〉 대응과 전 세계 최빈국(最貧國) 중 하나인 미얀마의 민간인 아웅산 수치의 공적(公的) 〈만종〉 대응이라는 교섭문화 간 역방향 괴리 모습에서 품격경영의 글로벌 현실 절벽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가? 주인장 마인드의 매너를 지닌 리더라면 그 같은 기회를 오롯이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아무튼 공부와 교양, 에티켓과 매너의 차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품격 수준을 가늠케 해준 좋은 대비였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甲질?
여자를 추행의 대상으로 여기는 권력자들, 직원을 부리는 대상으로 여기는 기업인들, 국민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치인들. 전(前) 국회의장, 전 검찰총장, 현직 교수, 현직 장군… 성(性)추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성공의 목적이 고작 제 ‘근본’을 과시하는 완장질이고 갑(甲)질이었든가?
제 몸 하나 가꿀 줄 모르는, 필터링이 안 된 무매너 한국의 리더들. 순진한 척, 순수한 척하며 매너를 배운 적이 없음에 대한 부끄럼조차 없다. 자신의 직위에 걸맞은 업무 역량은 물론 글로벌 매너도 갖추지 못했음을 비뚤어진 편의주의, 실용주의, 국수주의(國粹主義), 서민주의로 가려 국민을 기만하려 든다. 심지어 버릇없음이 투사나 지사(志士)의 특권인 양 양아치스럽게 차려입거나 싸가지 없는 말들만 골라 입에 담는다. 당연히 공인의식이 있을 리 없다.
어쩌다 이 나라가 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이 되었을까? 고리짝 속 《논어》를 끄집어내어 인성교육시킨다고 이 나라가 도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 될 수 있을까?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유학(儒學)은 매너의 학문이다. 강륜(綱倫)이란 공동체 구성원 간에 지켜야 할 매너, 교양, 덕목이다. 한데 입으로는 누천년 전의 공자(孔子) 말씀을 읊으면서 당장의 에티켓이나 매너는 고개 돌려 외면한다. 어차피 현실에서 굳이 구현할 필요도 없는 구(舊)시대의 규범들이니 제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도 도덕인(道德人) 행세할 수 있다. 행동하는 지성은 없고 말만 많은 식자(識者)들이 판을 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다가 돈이나 지위, 학위, 권력을 쥐게 되면 단물 빠진 껌처럼 뱉어 버리고 종복근성 한풀이에 몰두한다.
민주화와 함께 경제만 성장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고 누구도 품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88올림픽으로 본격적인 대중소비시대가 열리고, 문민(文民)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샴페인을 터뜨려 버렸다. 이후 공공(公共)기관은 물론 국민들 모두 본격적으로 타락해 갔다. 기업 역시 비약적인 성장에 오만해진 오너들의 대(代)를 이은 전횡으로 타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국민 모두가 뭔가 거대한 벽에 맞닥뜨린 것 같은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민주화와 기술만 가지게 되면 절로 선진국민이 될 줄 알았는데 좀처럼 실질소득도 오르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다. 하여 마지막으로 선진국 따라 복지를 늘리는데 이번엔 일자리가 사라지고 자살률만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날 후진국에서 개도국으로 넘어갈 때 치열한 체질개선 작업을 했었다. ‘국민교육헌장’과 ‘새마을운동’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책임과 의무, 그게 바로 주인의식이겠다. 한데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기 역시 그에 부응할 만한 보다 업그레이드된 체질개선 작업을 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타락해 버렸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와 평등은 방종과 태만을 불러들여 헐뜯기와 떼쓰기로 세월만 낭비하다가 바야흐로 선진국으로 올라서려는 순간 문턱에서 자칫 제풀에 고꾸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불특정 대중에 대한 인식 불능, 주인의식 부재.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선진문명권 사람이라면 한국인의 운전 매너 하나만 보고도 한국이 절대 선진국에 들 수 없음을 다 안다. 선진국민이 되어 보지 못한 한국인들만 모를 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동안의 압축성장의 후유증으로 고산병(高山病), 잠수병(潛水病)을 앓고 있다. 이대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다가는 엎어지거나, 미끄러지거나, 점점 더 불행해질 뿐이다. 하여 끊임없이 실망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것이다. 피를 갈고 뼈를 깎는 체질개선 작업으로 된장독 근성을 버리지 못하면 또다시 역사의 무정함에 피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다.
2014년 이건희(李健熙) 삼성 회장은 신년사에서 ‘품격’경영을 주창했었다. 기술 일등(一等)이 되고서야 비로소 ‘일등’과 ‘일류(一流)’가 완전히 다름을 인식한 것이다.
결국은 기본이다. 차라리 여기서 한 발 물리는 한이 있더라도 과연 우리가 중진국다운 매너와 품격, 그리고 문명인다운 자세를 지녔는지,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체질개선 작업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겠다.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 해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부족한 자원 대신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막장드라마 한류도, 또 하나의 기적도 아니다. 선진문명적 교섭문화, 진품(眞品) 매너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