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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역사비평서 펴낸 심훈家 종손 심천보씨

“대한민국은 지금도 이승만 체제에 살고 있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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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여 년간 미국에 살다 귀국해 고향(충남 당진)에 정착… 심훈 선생 기념사업에 힘써
⊙ 보수 우파의 재건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동력을 심어주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펴내
⊙ “왜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세운 國父 이승만과 박정희는 동상도 못 세우게 하나”
사진=조준우
  민족소설 《상록수》와 시 ‘그날이 오면’을 쓴 심훈(沈熏·본명 沈大燮·1901~1936년)가의 종손인 심천보(沈天輔·80)씨가 역사비평서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펴냈다.
 
  다소 비장한 울림이 있는 책 제목이지만 정치평론가의 ‘뻔한’ 담론이 아니다. 광복 이후 70여 년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굵직한 현상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조명한 비평서다. 누구를 폄훼하거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쓴 책이 아니다.
 
  “지난 5000년의 민족사와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보고 오늘의 한국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심훈의 민족소설 《상록수》의 산실인 충남 당진의 필경사.
  현재 심천보씨는 생전 심훈이 소설 《영원한 미소》 《황공의 최후》 《상록수》 등을 썼던 충남 당진에 ‘은거’하고 있다. 그의 집 바로 곁에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했던 공간인 ‘필경사’가 있다. 필경사는 심훈이 1934년 직접 설계해 지은 집으로 그 옆에 심훈기념관도 있다.
 
  심천보는 서울고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도미(渡美)해 피츠버그대학 대학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세계적인 건축 외장재 전문회사 ‘센츄리아’에 입사해 정년퇴직(1968~2011)했다.
 
  40여 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2011년 고향 당진으로 돌아와 심훈 선생 기념사업에 힘쓰고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목판 〈청련시경(靑蓮詩境)〉과 심훈의 유품 등 집안 가보 2000여 점을 추사기념관과 심훈기념관에 조건 없이 기증하기도 했다.
 
 
  “저서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는…”
 
심천보 선생의 신간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기자는 심천보 선생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쓰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는 무척 큰사람이었다. 세상을 보는 안목이 편협하지 않았고, 쩨쩨하게 세상을 재단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책을 쓰기 위해 동서양의 많은 지혜서와 역사서, 정치·경제 비평서를 읽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수백 권이다. 또한 지난 10년간 국내 신문과 잡지에 실렸던 정치·경제·문화 관련 기사와 사설을 읽고 배우며 집필에 녹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보수 우파의 자중지란(自中之亂)과 몰락, 탄핵과 진보 좌파의 오만과 독선을 지켜보아야 했다. 쓰던 원고를 몇 번씩 갈아엎으며 다시 썼다.
 
  “보수 우파는 자기 반성을 통해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해서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또 정의를 외치던 386세대의 변절과 ‘내로남불’의 정신적 폭망 역시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에 집착한 탓입니다.”
 
  자신의 글이 내심 보수 우파의 재건을 바라는 사람들, 독자들에게 정신적 동력을 심어줬으면 한다.
 
  “광복 후 자랑스럽고 찬란했던,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 운명이 막바지 언덕에서 헐떡이고 있어 참으로 걱정입니다. 나라를 잃고 모국어를 잃었으며 이념갈등과 6·25 상흔(傷痕)이라는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나라가 아닙니까.”
 
  이 대목에서 심천보 선생은 비장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러나 저는 지금 대한민국의 여러 면을 돌아보면서 희망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기적의 성공시대가 끝나고 3만 달러 시대에서 2만 달러 시대로 후퇴한다면, 그 이유는 지도자들과 국민 전체에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마련한 이유 중 하나는 젊은이들에게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지난 70여 년의 현대사가 가장 자랑스러운 시기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우리는 낙원에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헬조선’을 외치고 있지만 산업화·민주화의 신화를 창조한 성공과 부흥의 역사를 묻어버릴 수 없습니다. 지난 역사를 부정부패, 친일, 정경유착, 군사독재로 부정하는 패배적인 역사관을 배제하고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남한의 기적을 시작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
 
심천보씨는 “지난 5000년의 민족사와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보고 오늘의 한국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야 하는지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 어째서 5000년 역사에 지금이 가장 자랑스러운 시기입니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이승만 지도하에 들어선 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중세 봉건시대의 조선 왕조 모습 그대로 집권자의 횡포, 공산당의 갑질, 가난의 대물림, 인권의 부재 등으로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 남한의 기적을 시작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 우남(雩南)이 기적의 토대를 세웠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습니다. 이승만은 한반도가 분단되어 소련이 지원하는 인민공화국이 이북에 설립될 것을 미리 내다보고 38선 이남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확고한 신념이 없었으면 1948년 대한민국은 출범하지 못했을 겁니다.
 
  6·25사변이 터졌을 때 그의 투지와 결단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세계지도에서 지워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후 한강의 기적도 없었을 것이고요. 그의 고집이 없었다면 한미동맹도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심천보 선생은 이렇게 확신했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이승만이 세운 정치·경제·교육·문화의 체제에 살고 있다”고. 계속된 그의 말이다.
 
  “이승만은 정치적으로 모든 백성이 평등하고, 경제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으며, 국격도 세계 10번째 안에 드는 자랑스러운 나라로 다시 태어나는 기초를 세운 지도자입니다. 참으로 우리 세대는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아요.”
 
  ― 운이 좋다?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과 정치사상은, 이승만을 통한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였으나 그 바탕의 정신은 기독교의 정의·희생·봉사 등 건전한 가치관이었습니다. 이러한 건전한 사상이 떠받치는 기초를 이루면서 정치와 경제가 계속 성장해 오늘 우리가 누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에요.”
 
  ― 그렇지만 이승만·박정희 등 우파 지도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어요.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끈 우파들은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산업화의 자부심을 가르치지 못했고, 좌파의 집요하고 치열한 공격에 넘어지고 말았어요.”
 
  “좌파 진보가 민주와 민족, 통일, 평등주의, 사회정의 등 중독성이 강한 구호를 외치며 정치·사회·문화·언론을 장악하고 말았고, 결국 지금의 우리 사회는 정신적 빈곤, 사상 빈곤, 경제 빈곤 상태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한국은 박정희 18년 통치 덕에 살아가고 있어
 
  ―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과 업적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박정희연구가인 조갑제 선생의 시각에 공감합니다. 한국의 역사는 박정희와 군 장교단을 매개로 역사 발전의 보편적 경로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어요. ‘파란만장의 시대를 헤쳐가면서 영욕(榮辱)과 청탁(淸濁)을 함께 들이마셨던 분이자, 더러운 강물 같은 한 시대를 삼켜 바다와 같은 다른 시대를 빚어낸 인물’입니다.
 
  오늘날 한국을 10대 강국 반열에 오르게 한 철강·중화학·전자·자동차 산업 모두 박정희 시대에 시작되어 자란 산업입니다. 그의 18년 통치 덕에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나 심천보 선생은 이렇게 탄식도 했다.
 
  “큰 업적이 없는 전임 대통령들은 기념관, 기념동상, 기념공원, 평화의 광장 등 아주 잘 해놓았는데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을 세운 국부(國父) 이승만·박정희는 동상도 못 세우게 하니 100년이나 지나야 역사가 바로 쓰일까요?
 
  이 책의 판매수익 대부분은 ‘건국 대통령 기념관’ 벽돌을 쌓는 데 보태고 싶습니다. 저보다 앞서서 이를 위해 애쓰신 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분들과 힘을 합쳐 저도 벽돌 몇 장 더 쌓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한 장 한 장 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늠름한 건물이 되겠지요?”
 
  심 선생은 이승만·박정희와 함께 ‘대한민국 대장정’의 주역으로 12명을 꼽았다. 차례로 열거하면 이병철·정주영·박태준·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명박·백선엽·맥아더·김구 등이다.
 
  ― 경제인을 가장 먼저 꼽으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미국에 살면서 삼성, LG가 감히 소니, 미쓰비시를 밀어 내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 했어요. 지금은 월마트, K마트, 메이시 등 초대형 백화점에서 최대 매출을 올리는 가전입니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그랜저로 미국 자동차 시장의 사랑을 받고 있죠.
 
  이병철·이건희(삼성), 정주영(현대), 구인회·구자경(LG), 박태준(포스코), 신격호(롯데), 조중훈(한진) 같은 분들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이들이 일구어놓은 기업의 공헌 없이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은 결코 없었을 겁니다.”
 
  선생은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면서 그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나요. 오늘의 한국인은 정말이지 ‘행운아’입니다.”
 
 
  《상록수》 주인공 ‘박동혁’의 실존 인물인 ‘심재영’ 맏아들
 
심천보씨가 선친인 심재영 선생의 동상 앞에 섰다. 심재영은 심훈의 민족소설 《상록수》 주인공인 박동혁의 실존 인물이다.
  심훈가(家) 종손인 심천보 선생은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심훈의 민족소설 《상록수》 주인공 ‘박동혁’의 실존 인물인 심재영(沈載英·1912~1995) 선생의 맏아들이다. 심재영은 야학과 공동경작회(共同耕作會)로 농촌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지식인이던 조부 심우섭(沈友燮·1890~1948)과 심명섭(沈明燮·1898~?) 목사, 심훈(沈熏·본명 大燮·1901~1936)의 영향을 받았다. 심우섭은 춘원 이광수의 소설 《무정》 속 ‘신문기자 신우선’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심천보는 할아버지와 교분이 깊던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1890~1957)을 만나기도 했다.
 
  “육당은 조부인 심우섭과 평생 친구셨는데, 그분 맏아들 가정과 우리 집안은 늘 가까이 지냈어요. 저는 1955년경 육당의 우이동 자택에 선친(심재영)과 함께 인사드리러 간 적이 있어요. 벗(심우섭)이 세상을 뜬 지 10년이 지났지만 늘 한결같으셨죠.”
 
  육당의 집은 커다란 기와집이었고 큰 광이 있었다고 한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광을 열어 보여주며 ‘여기에 약 수만 권의 장서가 있는데 고려대에 기증하려 한다. 그간 모은 책이 10만 권 정도인데 6·25전쟁 때 소실되고 남은 것’이라고 말하셨죠.”
 

  훗날 육당 유족들은 고서 2만2000여 권을 고려대에 기증했는데 ‘고려대 육당문고’에는 《용감수경(龍龕手鏡)》과 《삼국유사》 《훈민정음》이 포함됐다.
 
  “육당은 책을 너무 좋아해 ‘책을 빌려주는 놈도 바보요, 돌려주는 놈도 바보’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선친이 전해주셨어요.”
 
  이런 일도 있었다. 육당이 《매일신보》에 조선 청년들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쓴 다음 날, 고려대 학생들이 몰려와 ‘육당 최남선 장례식’ 현수막을 집 앞에 걸어두고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했다고 한다. 육당 선생이 이제 죽었다는 뜻이었다. 심천보 선생의 말이다.
 
  “육당 며느님 말씀으로는 ‘늘 조선총독부에서 사람이 찾아와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육당은 나이 서른에 3·1 독립선언문을 작성, 낭독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죄로 2년 8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셨죠. 그 후 친일 행적으로 낙인이 찍히셨으나 끝까지 창씨 개명을 거부하신 강골입니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人格을 길러야 國格이 바로 선다”
 
심천보와 아내 이경애씨. 미국 피츠버그에서 40여 년을 살다가 2011년 고향 충남 당진으로 돌아왔다.
  ― 우리나라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잘살아보세’로 시작한 경제는 발전을 거듭하며 부(富)를 쌓아오기에 바빴고 독재타도와 친일청산, 축적한 부의 격차를 줄이자는 민주화 투쟁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공부만 잘해서 좋은 대학 가면 된다’ ‘돈만 많이 벌면 된다’ ‘아니다. 부정으로 쌓은 것들을 다 부수어야 한다’. 이렇게 두 파로 갈라져서 정치인들이 ‘자기 편은 선이고 상대편이면 악’이라는 품격 없는 형태를 보인 지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인격(人格)을 길러야 국격(國格)이 바로 선다는 기본 교육정신을 망각하고 당파싸움에 매몰돼버렸습니다. 스스로 ‘과연 선진국의 품격(品格)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심각한 자성(自省)의 질문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 좌든, 우든 ‘자성’을 말씀하시고 싶어 책을 쓰셨군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해야 하고, 돈을 벌지 못하면 무능하고 멍청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비참한 사회가 되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살길이 보이고 품격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도 박근혜 대통령이 감옥 간 마지막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최고 통치자의 말로(末路)는 지난 70여 년간 계속된 치욕의 역사였습니다. 지금 1년여 남은 이 정권의 길도 걱정이지만 다음 정권이 더 걱정입니다.”
 
  책 출간에 앞서 덜 익은 원고를 여러 친구·친지에게 보냈는데 많은 격려와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또 책 내용을 두고 혹시나 해(害)가 미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도 있었다.
 
  “저는 그분들에게 최근 다시 본 드라마 〈상도(商道)〉의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하였어요. 주인공 임상옥이 역적 홍경래의 무덤을 찾아 술 한 잔을 따르는데 한 젊은이가 놀라며 ‘역적의 무덤을 찾으면 참수당한다’고 걱정하는 대목이에요. 임상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한평생을 다 살고 이 나이까지 왔는데, 지금 무엇이 무서워 할 일을 못 하겠소.’
 
  이제 한국의 정치도 권력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고 덕과 의리를 남기는 풍조로 바뀔 것을 희망해봅니다.”
 
  심천보 선생은 부인 이경애(李敬愛)씨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장남 심규천(沈揆天)은 하버드대학과 예일대학 법대, 차남 심규동(沈揆東)은 스탠퍼드대학과 옥스퍼드대학에서 수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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