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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죽음이 배꼽을 잡다》 저자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죽음의 질 지수를 높여라

글 : 이근미  객원기자  www.root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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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도 며칠 전부터 계획을 짜느라 분주하면서 정작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은 별로 없다”
⊙ “죽음은 깨어나지 못할 잠[永眠]이고, 잠은 깨어나게 될 죽음[熟眠]이다”
⊙ “마스크를 써본 뒤에야 지난날의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고 침묵을 배웠다”
⊙ 국가가 죽음 문제를 제도화하고 죽음 교육을 실시해야

宋吉源
1957년생 / 고신대학교·고려신학대학원 졸업,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 전공.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박사,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청란교회 담임목사, (사)하이패밀리 대표 / 저서 《죽음이 배꼽을 잡다》 《가정사역 스타트》 《봄》 《마음사전 비움과 채움》 외 다수
  “아버지, 돌아가실 때 직접 사망신고하고 가면 안 돼요?”
 
  연로한 아버지에게 이런 농담을 할 자녀가 몇이나 될까. 가정행복 NGO인 (사)하이패밀리 송길원 대표는 자신이 쓴 《죽음이 배꼽을 잡다》에 나오는 ‘본인확인’이라는 유머를 아버지와 함께 나누며 유쾌하게 웃었다고 전했다. 민원인이 동사무소를 찾아 사망신고서를 접수하자 공익요원이 “본인이신가요?” 하고 물었고, 민원인이 놀라서 “꼭 본인이 와야 하나요?” 하고 되묻는다는 내용이다.
 
  출간 두 달 만에 6쇄를 발행한 《죽음이 배꼽을 잡다》는 ‘죽음’ 얘기로 폭소를 불러오다가 가슴이 저릿한 감동에 이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오묘한 책이다.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에 관심이 많은 시대이다.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죽음의 질(質) 지수’가 높아야 하는데 실태는 어떨까.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10년 발표한 죽음의 질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OECD 회원 40개국 가운데 32위였다가 5년 뒤 의료기술 발달 덕에 18위로 올랐다.
 
  일단 우리 사회는 죽음 얘기를 드러내놓고 말하기 힘든 분위기이다.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현세(現世)를 중시하는 유교(儒敎)문화 때문에 한국 사회는 죽음을 특히 더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청란교회 담임목사이기도 한 송길원 대표는 천국과 부활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전하는 기독교에서조차 죽음은 꺼내기 힘든 사안이라고 말한다.
 
  “목사가 아픈 성도를 위해 천국에 잘 가도록 기도하면 ‘사람이 살도록 기도해야지, 왜 잘 죽으라고 기도하냐’고 타박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아버지 장례식을 치른 뒤 죽음 준비를 도와드리지 못한 불효자라는 걸 깨닫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제야 교인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전했답니다.”
 
 
  “죽음은 문밖에서 헛기침을 하지 않는다”
 
  그 얘기를 듣고 도전을 받은 송 대표는 10년 전 79세의 아버지와 죽음을 논하기로 결심한 뒤 〈염쟁이 유씨〉라는 연극을 매개로 삼았다. 2004년 처음 선보인 이 연극은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낸 모노드라마로 앙코르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먼저 죽음 얘기를 꺼내셨고 지금은 죽음을 갖고 농담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가 강의 교재로 쓰고 있는 ‘해피엔딩 노트’를 드렸더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셨어요. 어머니한테도 죽음 얘기를 꺼냈더니 ‘역시 우리 집 장남은 다르네’라며 좋아하셨습니다.”
 
  해피엔딩 노트에는 사전의료의향서, 사전장례의향서, 사전기부의향서, 유언장 등 죽음과 진지하게 맞대면하도록 설계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지난해 하이패밀리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되었는데 송 대표 부모가 가장 먼저 작성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송길원 대표가 죽음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2년 하이패밀리의 전신인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를 출발할 때부터였다.
 
  “행복·가정·미래가 우리 연구소 모토인데 행복한 부부 얘기를 하려면 반드시 이별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초창기부터 죽음 연구를 시작했고 노인들을 대상으로 ‘천국준비교실’이라는 강좌를 개설했어요. ‘재수 없다’는 반응이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모두 ‘알고 나니 속 시원하다’고 하셨어요. 장례식이라는 명칭도 ‘천국환송식’으로 바꿨는데 요즘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죽음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국내여행만 가도 며칠 전부터 계획을 짜느라 분주하면서 정작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은 별로 없어요. 그러니 지인들과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됩니다. 부모가 사망한 뒤 유산싸움을 벌이는 자녀들이 많잖아요. 밀레의 그림 〈사신과 나무꾼〉을 보면 힘들게 나무를 해온 나무꾼을 모래시계를 든 사신이 다짜고짜 끌고 갑니다. 죽음은 문밖에서 헛기침을 하지 않아요.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가짜 부고와 ‘유언의 날’
 
만우절인 4월 1일을 ‘유언의 날’로 정해 유언을 쓰고 삶을 되돌아보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3년에 명문 대학교 학생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가 잔뜩 긴장한 적이 있다.
 
  “그즈음 강연 요청이 와서 그 학교를 방문했는데 분위기가 음산하고 사람들 얼굴이 모두 잿빛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죽음에 관한 얘기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죽음 얘기를 꺼내기 위해 2013년 만우절(萬愚節) 때 페이스북에 ‘본인 부고’를 냈다가 큰 곤욕을 치르고 말았다.
 
  “아내 이름으로 ‘송길원이 몇 날 몇 시에 죽었다, 지금 S병원에 안치되었다’ 그런 내용을 먼저 쓰고 죽음에 관한 의미를 적은 글이었는데 성질 급한 사람들이 ‘더 보기’를 누르지 않고 위의 글만 읽어 난리가 난 겁니다. S병원을 삼성병원이라고 단정해 그쪽으로 전화를 하고, 친구들끼리 연락해서 울고 그러다가 가짜 부고라는 게 알려지면서 욕을 바가지로 들었죠. 죽음을 성찰해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했다가 ‘거짓말하는 목사’ ‘죽음 갖고 장난친 목사’라는 힐난과 함께 강의 요청이 줄줄이 취소됐어요. 한동안 페이스북을 끊고 자숙(自肅)의 기간을 가졌지요.”
 
  반면에 미국 유학 중이던 아들은 “아빠 큰 건 하나 했네요”라며 즐거워했다. 그때 결혼식에서도 눈물을 보이는 한국과 달리 초상집도 잔칫집으로 만드는 미국 문화가 떠올랐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을 논하려면 ‘죽음 유머’로 접근해야겠다는 게 당시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이듬해 만우절에 제정한 것이 ‘유언(遺言)의 날’이다. 만우절을 뒤집어 거짓말보다 참된 말로 생명을 구하자(‘求4.1生’)는 의미를 부여했다. 손봉호 교수(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김경래 장로(전 한국장로총연합회 대표회장) 등 여러 인사와 함께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유언의 날’ 제정을 공표하면서 죽음 문화운동을 시작했다. 교회들이 참여하면서 미리 유언장을 작성하고 죽음을 묵상하는 일이 많이 확산된 상황이다.
 
  ‘유언의 날’ 제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건 하이패밀리가 1997년부터 화장장려운동과 장기기증운동을 벌이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을 계속해온 덕분이었다. 매장문화로 온 국토가 몸살을 앓을 때 화장장려운동을 시작하자 고건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 축사를 하며 지원했다. 이제 화장이 80%를 차지하고 환경친화적인 수목장, 잔디장, 화초장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죽음은 1인칭일 때만 의미가 있다”
 
  2014년 6월 죽음에 관한 유머와 좋은 글을 담은 《행복한 죽음》을 출간했다. 제목만 보고 “죽음이 행복해? 미쳤네”라는 반응이었으나 책이 꽤 많이 나갔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도서로 선정했다. 그즈음 황순원 선생의 ‘밀어’라는 시(詩)를 접한 송 대표는 죽음 이야기를 꺼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 가슴속은 묘지/ 묘지기는 나/ 내게 한끝 줄을 남기고 간 이들을/ 나는 내 가슴속 묘지 안에/ 부활시켜 놓는다/ 나는 죽음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은데/ 그들은 자꾸 어떻게 사느냐는 얘기만 한다〉
 
  《행복한 죽음》 출간을 계기로 육군본부 연구용역 프로젝트를 맡아 신세대 장병을 위한 사생관(死生観) 교재 〈사생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교재를 잘 만들기 위해 당시 전쟁 영화 수십 편을 봤다고 한다. 그 교재는 지금도 육군교육사령부에서 사용하고 있다. 강사 진입이 쉽지 않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삼성 세리 CEO’에서도 죽음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5회 연강을 하기로 했는데 주최 측도 저도 ‘재수 없는 소리 하네’ 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결과는 ‘행복한 죽음’의 강의 평점이 제일 높았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얘기하고 싶어 한다는 걸, 사회는 죽음을 궁금해한다는 걸 실감했죠.”
 
  이후 라이온스클럽이나 기업체 강의에서도 죽음에 관한 주제를 다루었고, 그때마다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죽음은 1인칭일 때만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모두 ‘그들은 죽었다’며 3인칭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죽게 된다면?’에서 1인칭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이 제 죽음 강의의 슬로건이에요. ‘지금까지 살 줄 알았다면 지금처럼 살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5년 후 10년 후에 또 그 말을 할지 모르니 사소한 걸로 날 세우지 말고 내일 떠날 것처럼 사랑하며 살라’고 강조합니다. 인문학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송길원 대표의 강의는, ‘죽음도 실력이다’ ‘늙어가는 것은 신(神)의 은총이다. 젊게 사는 것은 삶의 기술이다’ ‘죽음은 깨어나지 못할 잠[永眠]이고, 잠은 깨어나게 될 죽음[熟眠]이다’ 같은 촌철살인(寸鐵殺人) 속에서 성찰하고 웃다가 죽음의 철학에 물들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팽목항 하늘나라 우체통

 
진도 팽목항에 설치한 하늘나라 우체통에 많은 사람이 편지를 넣었다.
  2014년 11월에는 《슬픔이 있는 곳이 성지다》를 펴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진도 팽목항에 가서 사람들을 만난 뒤 쓴 책이다.
 
  “우리가 슬픔을 토로하는 일과 위로하는 일에 서툴다는 것을 깨닫고 ‘재난당한 이들을 위한 심리 처방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슬픈 일이 생기면 감정을 억제시키고 억누르려고 하는데 슬픔은 표현해야 합니다. 다이애너 빈(嬪)이 죽었을 때 영국 사람들이 너무 많이 울어 그해 우울증 환자가 많이 줄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설픈 위로는 더 큰 아픔을 줍니다. 막연하게 ‘좋은 데 갔을 겁니다, 시간이 약입니다’ 이런 말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말없이 손만 잡아도, 같이 울어만 줘도 위로가 됩니다. 진심을 다해 공감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슬픔이 있는 곳이 성지다》에 수록된 ‘다시 일어서게 하는 매뉴얼 10가지’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혼자 있게 하지 마라. 후원 네트워크를 구축해라. ▲심리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신체적 돌봄이다. ▲세월에만 맡기지 말고 매뉴얼을 따라 애도하게 하라 같은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논한 것들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면서 ‘이분들이 이별의 말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늘나라 우체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강연을 하며 그 얘기를 하자 한 의사 부인이 5000달러를 기부하면서 우체통을 세워달라고 했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 100일째 되는 날 팽목항 등대 앞에 빨간색 하늘나라 우체통을 세웠고 가족과 친구들, 방문객들이 지금까지 5000통이 넘는 편지를 넣었다. 세월호 1주기 때 인사동 공화랑의 공간기부로 편지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미국 리버티대학교 한국캠퍼스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임종심리를 가르치고 있었어요. 임종심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애도를 표하고 슬픔을 관리하는 겁니다. 그걸 잘못하면 2차 감염에 의한 트라우마에 갇히게 되는 거죠.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해소되는 데 최소 3년이 걸린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요.”
 
  2016년에 슬픔을 달래기 위한 책 《봄》을 출간했다. 작가들의 허락을 받아 아름다운 시와 좋은 글을 엮어 ‘상실과 애도 그리고 치유를 위한 안단테 필사(筆寫)’라는 부제를 달았다.
 
  “필사만으로도 힐링이 됩니다. 장례식장에 갈 때면 유족들에게 《봄》을 선물합니다. 시를 따라 적다 보면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인사를 많이 들었어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슬픔을 삭이도록 본인도 노력하고 주변에서도 도와줘야 합니다.”
 
  《봄》에 수록된 김광섭의 시 ‘저녁에’는 가수 유심초가 노래해 익숙한 내용이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코로나19 이후 배운 것들
 
  《죽음이 배꼽을 잡다》는 죽음을 소재로 쓴 칼럼이 계기가 되어 출간하게 되었다. 칼럼을 읽은 사람들이 책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병영유머, 의학유머, 강단유머처럼 임종(臨終)유머가 필요하다는 사명감에서 집필을 시작했다. 죽음 시리즈 네 번째 책인 셈이다. 오랜 기간 죽음에 관해 수집한 글과 송 대표가 직접 죽음을 성찰한 글들을 담았다.
 
  “학문적으로 죽음을 논하기보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죽음에 자연스럽게 다가가도록 했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쉬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의미 있게 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죽음이 배꼽을 잡다》에 수록된 ‘안코라 임파로’라는 글을 미리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굉장한 반응이 일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낯선 상황에 모두가 어리둥절할 때였다. 그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고 많은 사람이 공유(共有)하면서 언론에도 소개되었다. 안코라 임파로는 이탈리아어로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뜻이다.
 
  〈(전략) 나는 배웠다. 마스크를 써본 뒤에야 지난날의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고 침묵을 배웠다. 너무나 쉽게 말했다.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도 쉽게 조언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다. 나는 배웠다. ‘살아 있는 침묵’을 스스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몰락을 통해서만 ‘죽음으로 침묵’하게 된다는 사실을. (중략)
 
  나는 배웠다. 죽음이 영원히 3인칭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죽음인 것을 배웠다. 인간이 쌓은 천만의 도성도 바벨탑이 무너지듯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생물의 침투에 너무도 쉽게 쓰러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배웠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악다구니를 퍼붓고 살았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를 배웠다. (하략)〉
 
 
 
臨終휴가법안 제안

 
  죽음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송길원 대표는 우리 사회의 죽음지수를 어떻게 평가할까.
 
  “저처럼 죽음을 소재로 책 내고 글 쓰고 강연하는 분들은 꽤 있어요. 여전히 부족하지만 호스피스를 도입한 병원과 전문기관이 늘어나면서 임종환자들을 돌봐주는 문화도 점차 나아지는 중이고요.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엄청난 실적을 올린 일로 2018년에 제정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연명의료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분이 60만명을 넘어섰어요.
 
  그 외에 죽음과 관련하여 제도적으로 시행되는 건 없는 것 같네요. 선진국 교과과정에는 죽음교육이 필수 코스에 들어 있어요. 학교에서 죽음을 제대로 가르치면 청소년 자살률이 낮아집니다. 우리나라 교과과정에 죽음교육을 빨리 도입해야 합니다. 국가가 죽음 문제를 제도화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송 대표는 임종휴가 법안 발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은 동료들이 휴가를 도네이션해주어 보름이나 한 달간 부모와 생애 마지막 여행을 하는 등 죽음 준비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사망신고서를 제출해야 3일 휴가를 받을 수 있다. 출생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중요하게 여겨달라는 게 송 대표의 바람이다.
 
  송 대표는 전 국민이 슬픔에 빠진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재난구조 매뉴얼이 없다며 많이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인사동을 지나가다 한 갤러리에서 초등학생 방과 후 학습으로 상여놀이 하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꽃상여도 만들고 망자(亡者)가 가는데 외롭지 말라고 꼭두 인형도 만들면서 죽음을 절절히 들여다보더군요. 학생들이 그런 활동을 하고 나면 ‘친구를 왕따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언장 쓰기 같은 행사가 요즘 늘어나긴 했지만 그런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인문학의 정수는 죽음입니다.”
 
  예전에는 우리 사회가 자연스럽게 죽음을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대가족제도 때는 저절로 죽음교육이 됐어요. 초상집은 힐링 캠프였고 장례식은 동네잔치였죠.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집에서 장례를 치르기 힘들어지면서 병원을 이용하게 됐고 그때부터 ‘죽음’이 죽었습니다. 편리성 때문에 삶의 의미와 죽음 성찰의 기회를 놓친 건 비극이죠.”
 
 
  Heal-dying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해피엔딩스쿨이 30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송 대표는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고종명(考終命)이 가장 좋은 죽음이고, 종교단체에서 장례를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천주교는 성당 내에 장례식장이 있어요. 장례식장이 없는 작은 성당은 인근의 큰 성당에서 장소를 제공합니다. 교회와 법당에서도 장례식장을 마련하여 충분히 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종교기관이 장례를 맡으면 좋은 문화가 형성될 거라고 봅니다.”
 
하이패밀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자연장지인 안데르센공원묘원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에서 경기도 양평으로 자리를 옮긴 하이패밀리는 2015년에 수목장장(樹木葬場)을 개장했다. 소아암·백혈병으로 부모 곁을 떠난 어린이들을 위해 ‘안데르센공원묘원’을 조성해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안데르센공원묘원은 한국 최초의 어린이 전문 자연 장지이다.
 
‘막벨라 호텔’은 종교기관이 장례식을 담당하자는 운동을 펼치며 마련한 안치실이다.
  하이패밀리는 올해 ‘Rest in Peace 호텔 막벨라’라는 이름의 안치실을 마련해 종교기관이 장례를 담당하자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아울러 ‘소풍 가는 날’을 통해 장례문화 개선에 힘쓰는 중이다.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공부하는 5~12주 과정의 ‘해피엔딩스쿨’은 졸업생을 30기까지 배출했다. 수강생들이 대개 지도자들이어서 한국 사회 전체로 ‘죽음문화’가 퍼져나가는 중이다.
 
  “한때 ‘아버지 역할’에 대한 교육을 했는데 주제를 ‘남은 세월을 어떤 아버지로 살아야 하나’로 바꾸었더니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졌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죽음교육은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서게 하는 효과가 큽니다. 유언장을 쓰다 보면 부부관계가 좋아지고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웰다잉(Well-dying)을 넘어서는 힐다잉(Heal-dying)을 추구하는 가운데 죽음이 ‘치유’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잘 죽기 위해 준비하자
 
  우리 사회의 자살률을 낮추려면 죽음교육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게 송 대표의 말이다.
 
  “예전에는 자살을 불효라고 생각하여 쉬쉬했는데 자살자들의 안타까움을 이해하는 쪽으로 시각이 넓어졌어요. 죽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자칫 정당화시키는 건 피해야 할 일입니다. 죽음교육이 안 되어 있으니, 죽음에 대한 반응들만 보고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거나 죽음을 가볍게 여길 우려가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지도자들의 자살사건을 반복해서 과도하게 보도하는 일은 금해야 합니다. 드라마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막으면서 흡연율이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죽음에 대한 보도를 자제시키는 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같은 데서 고민해야 합니다.”
 
  송 대표는 무엇보다 죽음에 관한 교육을 제도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죽음의 질 지수가 가장 높은 영국은 2008년에 정부 주도로 ‘생애말(生涯末) 돌봄 전략’을 시작했어요. 좋은 죽음을 고민하는 민관 합동기구를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사회인식을 바꾸어 나갔죠. 정부 주도로 좋은 죽음을 고민해 긍정적 변화를 이룬 대표적 사례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죽음을 내놓고 얘기하기 꺼려 합니다. 현충일을 나와 상관없는 날로 생각하는 국민이 많아요. 죽음에 대한 콘텐츠를 마련해 현충일을 의미있게 보내면 좋겠지요. 죽음교육을 사회교육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지난 6월 송길원 대표는 페이스북에 장례이야기 7편을 차례로 올렸다.
 
  “가짜 부고 때와는 180도 다른, 죽음과 장례를 진지하게 피력한 글이었는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죽음을 병원에서 종교시설로 되찾아와야 하는 이유부터 시작하여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직접 몸을 씻겨드리겠다는 각오와 함께 일본 황실 꽃인 국화(菊花)로 치장할 게 아니라 우리만의 소박하고 격조 있는 장례식을 만들자까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제 글을 많이 공유했고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죽음을 얘기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져야지요. 죽음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잘 살고 오래 살면 좋겠지만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게 송길원 대표의 경고이다.
 
  “언제 오더라도 잘 죽기 위해 평소 죽음을 공부하고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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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수    (2020-08-08) 찬성 : 0   반대 : 1
있는 자들이 좋아할 멋쟁이 목사 그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그리스도에겐 왠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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