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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의 라운지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文 대통령 취임 후 한국의 법치는 죽었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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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 대통령이 三權과 헌법기관 장악”
⊙ “청와대 정부, 공수처 신설, 탄핵 사유가 쌓이고 있다”
⊙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헌”
⊙ “대북전단 탈북단체 고발은 자유민주적 통일정책 규정한 헌법에 도전한 것”
⊙ “개헌안 연구해 준비하는 게 국가를 위해 미래통합당이 해야 할 일”

許營
1936년생. 경희대 법학과 졸업, 독일 뮌헨대학 박사, 독일 본대학 명예법학박사 / 前 독일 바이로이트대학 교수, 경희대 법학과 교수, 연세대 법학과 교수, 헌법재판연구소 이사장, 現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 저서 《헌법이론과 헌법》 《한국헌법론》 《헌법소송법론》 등
사진=조준우
  어째 더위마저 공격적으로 들이닥쳤다. ‘전염의 시대’가 예고 없이 시작됐듯 말이다. 버스 안 라디오에선 이제는 당선인이 아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윤미향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의기억연대에 얽힌 의혹을 부인하는 기자회견이었다.
 
  어떤 표정으로 낭독하는 걸까. 휴대폰을 꺼내 기자회견 중계방송을 틀었다. 윤씨의 얼굴이며 목이 온통 땀범벅이다. 이내 화면을 껐다. 문득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방의 공기도 어딘가 불온(不穩)해 보인다. ‘KF94 마스크 때문이겠지’… 버스에서 내려 서울 역삼동의 한 아파트로 향했다. 5월 29일 허영(84) 경희대 석좌교수의 개인 연구실에 가는 길이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허 교수와 그의 서실이 한눈에 보였다. 11평 남짓 크기의 공간에 책장과 책상, 소파가 빼곡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허 교수였다.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육십 대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팔십 대 중반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법학계 스타 교수였다. 독일 바이로이트대학에서 교편을 잡다 돌아온 후 헌법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한국에 소개했다. ‘동화적(同化的) 통합론’이다.
 
  허 교수가 등장하기 전까진 ‘결단주의’가 한국 헌법 해석의 주류였다.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주장한 관점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헌법은 국민 다수가 동의하고, 정치적으로 내린 결단이다. 다수는 선이고, 진리고, 보다 큰 합리성이기 때문에 다수가 결정하는 모든 것은 옳다.’
 
  현실에선 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기 쉽다. 실제로 슈미트 자신도 독일 나치 정권을 옹호했다. 한국의 유신헌법도 슈미트의 이론에 따르면 정당한 법이었다.
 
  여기에 반기를 든 게 ‘동화적 통합론’이다. 허 교수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게 한 헌법관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헌법은 국민의 동화적 통합을 위한 가치 질서다.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선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헌법에 담아야 한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 공감하는 가치인 국민의 기본권이다. 국민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통치기관에 한시적으로 위임했다. 권력을 위임받은 국가 권력은 기본권적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국가 권력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유신헌법과 권위주의 정권의 정당성에 도전하는 헌법관이었다. 그의 등장에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가 열광한 이유다. 저서 《헌법 이론과 헌법》은 첫 출간 후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법학계 명저로 꼽힌다.
 
  허 교수는 귀국 후 연세대 법대로 옮겨갔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서울대, 고려대에서 학생들이 몰려왔다. 강의실이 꽉 차자, 연대 학생들이 강의실 입구에서 학생증 검사를 하기도 했단다. 그의 지도 아래 학위를 받기 위해 학교를 옮겨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잘 알려진 경우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경희대 법대에서 석사, 연세대 법대에서 박사를 마쳤다.
 
  결단주의를 주장한 서울대 법대 김철수·권영성 교수와 동화적 통합론을 주장한 연세대 법대의 허영 교수는 주요 헌법 쟁점마다 논쟁을 벌이며 한국의 헌법학을 발전시켰다. 시간은 흐르고 민주화가 진행됐다. 통합론적 시각으로 헌법을 보는 세상이 왔다.
 
 
  “법치가 죽었다”
 
허영 교수의 저서 《헌법이론과 헌법》.
  휴대전화가 울려댔다.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을 알려주는 문자였다. 연구실 근방도 동선에 끼어 있었다.
 
  ―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 겁이 납니다. 문민정부 들어선 이후에 지금처럼 나라가 위기에 처한 적이 없어요. 이 정권을 끌고 가는 사람들이라는 게, 그냥 좌파 정도가 아니라 붉은 물이 잔뜩 들어서 서서히 북한에 나라를 갖다 바치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군대는 무력화됐고, 북한에는 찍소리도 못 하고 있지요?”
 
  무거운 얘기였다. 그렇지만 헌법학의 태두(泰斗)와 마주 앉아 마냥 한담(閑談)만 나누기엔, 바깥 공기가 영 좋지 않았다.
 
  ― 이 정부 들어 법치(法治)가 퇴보 중이라는 말들이 나옵니다.
 
  “퇴보한 게 아니라 완전히 죽었어요.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수단은 삼권분립의 원칙, 현대국가에선 ‘견제와 균형’인데 그게 작동을 안 하면 법치도 작동할 수 없지요.”
 
  ― 법치가 죽은 결정적 순간은 언제입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해서 모든 국가 권력을 장악한 순간입니다. 헌법기관부터 봅시다. 우리나라의 헌법기관이라는 게 국무총리,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예요.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재소장, 문 대통령이 임명했죠. 선관위 상임위원도 마찬가지고요. 헌법기관을 장악한 순간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고 법치주의는 실종되는 겁니다.”
 
 
  대통령이 三權 모두 장악
 
  ― 사법부에도 정부 견제를 기대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 사법부는 대통령 눈치를 보며 재판을 하죠. 사법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게 전국법관대표회의라고 하는데 우리법연구회가 거기에서 영향력이 크죠. 이번에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회장이 됐어요. 김명수 대법원장이 얼마 전에 거기에 가서 한마디 했잖아요.”
 
  ― 국민 눈높이에 맞는 재판이 좋은 재판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정치지 재판이 아닙니다. 정치는 눈높이 맞추려고 열심히 여론조사 하잖아요? 법관이 재판할 때마다 눈높이 맞추려고 여론을 물어봐야 합니까? 여론조사 자체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어요? 여론이라는 것은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겁니다. 시간에 따라 다르고 어떻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달라요.”
 
  ― 총선 결과를 보면 국회에도 견제를 기대할 수 없게 됐습니다.
 
  “통법부(通法府)가 됐어요. 여당은 거수(擧手)기 노릇만 할 겁니다.”
 
 
  현 선거제는 위헌
 
  ― 총선을 두고도 논란이 많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 그렇고 결과를 두고 여러 얘기가 나옵니다.
 
  “국가가 기능하는 세 가지 구성원리가 있어요. 첫 번째가 통치형태적인 구성원리, 민주주의 원리입니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뽑지요. 그런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자체가 위헌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의 다섯 원칙이 있어요. 자유·평등·보통·직접·비밀·직접 선거라는 건 내가 던지는 표가 어떤 결과를 낼 거라는 걸 국민이 알고 투표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현 선거제에선 내가 던지는 표가 어떤 성과를 내는지 전혀 모르잖아요? ‘깜깜이 선거’지요. 이게 바로 직접선거의 원칙을 어긴 겁니다.”
 
  ― 선거제가 헌재에 헌법소원으로 올라가 있는데요.
 
  “당장 위헌으로 결론 내야 하는데, 안 할 겁니다. 자꾸 미루고 미루겠지요. 16대 총선까진 지역구에 던져진 표로 정당 비례대표를 결정했잖아요? 그게 직접선거 원칙에 위배된다고 17대 총선부터 정당투표제가 도입된 겁니다.”
 
  ― 선거를 두고 논란이 식지 않고 있습니다.
 
  “부정 선거라는 게 설마 일어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해요. 전 기술자가 아니라 세부적인 건 잘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 주장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은 얘기들도 있어요. 선거는 국가의 통치형태적 기능 원리에서 제일 중요한 겁니다. 주권자가 의사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이 투표밖에 더 있습니까? 선거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 선거에 의해 위임받은 권력의 정당성(legitimacy)이 훼손됩니다.”
 
  ― 부정 선거 논란에 대해, 야당 내부에서도 저마다 생각이 다른 듯합니다.
 
  “지나간 건 그렇다 하더라도, 차기 대선을 위해서 야당은 전자개표 하지 말자고 주장해야 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개표(手開票)를 해야지요. 그리고 선거관리를 하는 기관의 장은 정권 반대 세력이 맡는 게 원칙입니다. 지금은 거꾸로 됐잖아요? 대통령이 앉힌 사람이 상임위를 좌지우지하고, 선관위원 중 몇 자리나 비어 있는 상태로 선거를 치른 겁니다. 민경욱 전 의원이 허튼소리를 하는 건지, 실체가 있는 건지는 두고두고 밝혀지겠지요. 세상에 비밀이 있습니까?”
 
 
  “‘청와대 정부’도 위헌”
 
  ―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는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도 받습니다.
 
  “위헌이에요. 헌법 89조를 보면 ‘중요한 국가정책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며 17개 항을 나열했어요. 그런데 이 정권은 국무회의는 뒷전이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논의해, 수석비서관들이 국무위원에게 지시하는 식이거든?”
 
  ― 청와대 비서실에 그럴 권한이 있습니까.
 
  “청와대 비서실이라는 건 참모지, 집행기관이 아니에요. 관청이 아닙니다. 청와대가 국정의 중심에 선다? 말이 안 되죠. 시민단체 출신이 청와대에 많이 들어갔지요. 그들이 국정을 좌우하게 되는 건데, 그들에게 무슨 정당성이 있습니까? 인사청문회를 거쳤습니까, 국회 동의를 받았습니까? 그 자체가 위헌이에요. 대통령 탄핵 사유에 속하는 겁니다.”
 
  ―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내가 칼럼에 이런 말을 썼어요.
 
  ‘국회가 정부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되면 대통령의 독재를 낳아 공화적 군주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여당 의원과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을 두고 태종이니 세종이니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걸 보세요.”
 
  지난 5월 8일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당시 당선인)은 노무현재단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 같다.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
 
  태종은 조선의 기틀을 확립하고, 왕권을 강화한 왕이다. 이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연합뉴스TV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에게 3년 동안 태종의 모습이 있었다면 남은 2년은 세종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 참모로서의 바람이다.”
 
  허 교수는 “문 대통령이 총선 전에 조마조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라는 게, 본인 퇴임 후 안전장치를 마련해놓은 겁니다. 전직 대통령이 다 불행하게 되는 걸 봤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는 게 퇴임 후 안전입니다. 일단 본인의 꿈은 이룬 거죠.”
 
  ― 어차피 슈퍼여당이 됐는데 공수처가 없어도 안전한 거 아닌가요.
 
  “우리나라 상황에선 암만 국회에서 다수당이라도 대권을 뺏기면 모르는 겁니다. 국회가 딴지나 걸지, 어떻게 하겠어요?”
 
  ― 공수처를 만들면 문 대통령의 노후 안전이 보장되나요.
 
  “퇴임하면서 공수처장을 앉히고 떠나면 그 사람이 대통령을 수사하겠어요? 총선에서 지면 공수처고 뭐고 도로 아미타불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젠 다리 뻗고 편안히 잘 겁니다.”
 
 
  문 대통령과 2번의 만남
 
  ― 문 대통령은 교수님과 같은 대학, 같은 학과 후배이자 제자 아닙니까.
 
  “난 문재인이란 학생을 잘 몰랐어요. 제가 1972년에 경희대 교수가 됐는데 문 대통령도 72학번 아닙니까. 제가 교수 됐을 때 그 친구도 입학을 한 거죠.”
 
  ― 만난 적은 없나요.
 
  “이런 일이 한번 있었어요. 군사정권 시대였잖아요. 그 와중에 학생들이 학교의 설립자를 문제 삼았어요. ‘경희대학교 족벌체제 물러나라’고. 설립자가 조영식 총장이었는데, 족벌체제 물러나라고 시위를 한 겁니다. 문 대통령도 거기에 있었나 봐요. 어느 날 저녁때쯤 내 연구실에 찾아왔어요. 묻더군요. ‘대학 족벌체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그 친구가 3학년 때였나.”
 
  ― 뭐라 답하셨어요.
 
  “‘대한민국 사학(私學)이라는 게 열악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기업도 지금 오너가 소유하고 운영하는데 사학은 당연한 거 아니냐’ 그랬더니 나가더라고요. 그게 전부예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조영식 경희대 총장은 문 대통령에게 4년 장학금을 제의하며 경희대 입학을 권유한 인물이다.
 
  ― 이후에도 만난 적이 있나요.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전화가 왔어요.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한번 식사나 모시고 싶습니다’ 하기에 리츠칼튼호텔 중국집에서 만났어요. 묻더군요. ‘정치에 뜻이 없으십니까?’”
 
  ―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난 정치엔 전혀 관심이 없다. 평생 학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내가 정치에 뜻이 있었으면 김영삼 정권 때 나갔을 거다. 전두환 정권 때도 제의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러곤 헤어졌어요. 그 이후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 무슨 자리를 주려는지 안 물어보셨어요? 들어나 보시지 그러셨어요.
 
  “안 물어봤어요.”
 
  ― 문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이나 후에 개헌안 관련해서 조언을 구한 적은 없었나요.
 
  “전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었어요. 나한테 조언을 구했으면 그런 엉터리 개헌안을 만들 리가 없지요.”
 
 
  전두환 대통령의 초대
 
1999년 10월 한국을 찾은 독일 헌법학자 볼프강 뢰버 교수는 허영 교수와 만나 독일통일을 헌법적 측면에서 살펴봤다. 사진=조선DB
  ― 전두환 대통령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전 대통령 둘째 아들 전재용이 연대 정외과를 다녔어요. 그때 법대에 와서 내 강의를 들었대요. 학생들 말이 전재용이 움직이면 보이지 않는 경호원들이 같이 움직였다고 해요. 난 전재용이 내 강의를 듣는지 안 듣는지도 몰랐어요. 어느 날 청와대에서 초청을 했어요.”
 
  ― 갑자기요?
 
  “차를 보낼 테니 들어와서 저녁을 먹자는 거예요. 난 전 대통령이 마땅치 않았지만, 뭐 때문에 나를 만나려고 하나 싶어 가봤어요. 대통령 부부랑 저랑 셋이 앉아서 저녁을 먹었어요. ‘재용이가 교수님 얘길 하면서 그런 교수 처음 보고, 그런 강의도 처음이라고 했다’면서 재용이를 잘 봐달라 하더군요.”
 
  ― 그 얘기가 다였어요?
 
  “그러더니 정치할 생각 없냐고 물어요. 그때도 이렇게 답했지. ‘나는 학자지 정치엔 정말 뜻이 없다.’”
 
  ― 그때도 무슨 자리 줄 거냐곤 안 물으셨어요?
 
  “안 물어봤지. 세월이 좀 지나고 또 연락이 왔어요.”
 
  ― 또 만나자고요?
 
  “그때가 전두환 정권 말기였는데, 의원내각제 개헌 얘기가 돌 때예요. 그때 난 안식년을 맞아 독일 뮌헨에 가 있었어요. 어느 날 청와대에서 사람이 왔어요. 이준근 청와대 법무수석, 저와 같은 고향 출신인 검사, 뮌헨에 연수 나와 있던 검사, 이 세 명이 식사나 하자고 찾아왔어요.”
 
  ― 무슨 얘길 하던가요.
 
  “개헌하는 데 협조하라는 겁니다. ‘무슨 협조를 어떻게 하라는 얘깁니까?’ 그랬더니 이 수석 하는 말이, ‘교수님께서 개헌에 찬성하는 협조를 하시고, 귀국하셔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직위를 맡으시면 좋겠다는 게 대통령 각하의 뜻입니다’ 이러는 겁니다.”
 
  ― 하겠다고 하셨어요?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죠. 이 수석 말이 제가 앞장서면 개헌이 된다는 거예요. 국민이 반대하는데 제가 찬성한다고 개헌이 된다고요? 말도 안 되지. ‘내가 어떻게 그런 역할을 하겠나. 난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런 식의 개헌은 옳다고 생각 안 한다’ 하곤 술만 진탕 먹고 헤어졌습니다.”
 
 
  국민 분열시키는 대통령
 
  ― 헌법학자로서, 지금 이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국민 분열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많은 집단이 모여 사는 다원사회(多元社會)에서 살고 있어요. 때문에 통치라고 하는 것은 그 다원적인 요소들을 통합해 하나로 이끌어서 국익을 발전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통치의 기본 목적과 정반대로 가고 있어요. 분열의 정치. 이게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실책, 잘못이라고 봅니다.”
 
  ― 자신의 존재 목적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게 가장 큰 탄핵 사유예요. 내 편만 챙기고 상대편은 다 적폐로 몰아서 처벌해야 된다? 심지어 과거사까지 들춰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잖아요. 북한의 정통성만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가는 거 아닙니까? 그게 바로 반역(反逆)입니다.”
 
  ―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 지지율이 높지 않습니까.
 
  “이렇게 이 나라가 망해가고 있구나, 헌법과 점점 멀어지고 있구나, 하는 걸 주권자인 국민들이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보세요. 북한 마음에 들게 역사를 기술해놨어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아이들 머리에 심어지는 건 쉽게 지워지지 않아요. 사상교육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가 나서서 우리나라 건국을 부인하고 상해임시정부를 적통이라며 기리잖아요?”
 
 
  교수가 사회 위해 할 일은 조언
 
2018년 3월 20일 오전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가운데)이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오른쪽은 김형연 법무비서관. 사진=조선DB
  ― 학자의 역할로 ‘교육, 연구, 사회봉사’를 강조하셨지요. 조국 서울대 법학과 교수도 본인 나름대로는 사회봉사를 한 거 아닌가요.
 
  “조국이라는 사람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마땅치 않아요. 학자로서도 말단인데다,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그렇게 처신할 수 있습니까? 조국이라는 학자가 형법학계에 남긴 업적이 뭐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프로페서(professor)가 아닌 폴리페서(polifessor)예요. 교수직을 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거지, 진짜 학자라 생각 안 합니다.”
 
  ― 그럼 학자는 어떤 식으로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까.
 
  “학자가 해야 하는 사회봉사란 조언(input)을 하는 거라 생각해요. 자기 전공영역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서 그 당사자들을 비판하고 일반 국민에게 그걸 알리는 겁니다. 자기가 직접 껴들어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난 그 역할을 나름으로는 해왔다고 생각해요. 만족하진 못하지만요.”
 
 
  이해찬 대표도 5·18 유공자?
 
2019년 2월 15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광주민주유공자증을 공개하며 5·18유공자가 된 이유를 설명했다. 출처=이해찬 페이스북
  1995년 검찰은 광주 5·18사태와 관련해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을 두고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띠는 통치 행위이므로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 유명한 격언(?)이 이때 나왔다.
 
  허 교수는 즉각 검찰의 논리를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5·18 불기소처분의 법리적 문제점〉. 그의 논문은 타오르기 시작한 여론에 연료를 공급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바로 이듬해 전·노 두 대통령은 구속수감됐다. 허 교수가 말한 학자의 사회봉사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 5·18사태를 두고 아직도 여러 얘기가 많습니다.
 
  “5·18은 정말 불행한 사태입니다. 전 대통령이 부인하든 안 하든 시민들이 살해당한 건 확실한 거고, 그건 죄악이에요. 역사적 불행이니, 반드시 조명하고 행위자는 처벌해야지요. 그 대신, 그때 공을 세우고 희생당했던 사람들에게 국가에서 보상을 하려면 떳떳하고 투명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은 불투명하게 하고 있잖아요? 적절치 못합니다.”
 
  ―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5·18 유공자입니다.
 
  “자꾸 진상 조사니 하지 말고 그런 것부터 투명하게 하세요. 유공자 명단도 공개 안 하잖아요. 5·18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이 국가에서 녹을 받으면 왜 그 명단을 공개 못 합니까. 그 자체가 난센스(nonsense)예요. 어떤 공로로 받았다고 역사에 기록해야지요. 5·18 유공자가 몇 명인진 모르지만 이해찬 대표가 거기에 들어갔다고 해서 의아했습니다.”
 
  이해찬 대표는 자신의 5·18 유공자 의혹이 불거지자 유공자임을 스스로 공개했다. 내용을 옮기면 이렇다.
 
  ‘이해찬은 1980년 5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되었습니다. 당시 이해찬은 광주민중항쟁을 김대중이 일으킨 내란으로 보았던 신군부의 재판으로 부당하게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던 당시(2002)의 안 제4조에 따른 적용 대상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광주민주화운동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 2. 광주민주화운동부상자 3. 기타 광주민주화운동희생자. 이해찬 의원은 3호, 기타 광주민주화운동희생자, 광주민주화운동구속자에 해당합니다.’
 
  ― 여당은 5·18을 부인, 비방, 왜곡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처벌하는 ‘5·18 역사왜곡처벌 특별법’을 제정하겠답니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 달리 말할 수 있는 자유가 표현의 자유예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여론의 획일화를 방지해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게 하고, 그중에서 공감대, 공감되는 말을 끌어내기 위한 겁니다. 5·18에 대해 지만원 같은 사람은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얘길 해요. 그러면 다른 쪽에선 그 말에 반박을 하지요. 그렇게 진실이 밝혀지는 거 아닙니까? 그걸 처벌한다고요?”
 
  ― 제정된다 해도 위헌 아닙니까.
 
  “우리 헌법 표현의 자유에 위배됩니다. 제정된다 해도 위헌이에요. 만약 헌재가 제 기능을 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이 재판부에선 그럴 가능성이 추호도 없는 것 같네요.”
 
 
  평등 강조하면 자유, 평등 잃어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졌다. 재난지원금 얘길 꺼냈다. 재난지원금을 어디에 쓸 건가, 혹은 썼는가. 요즘 인기 있는 즐거운 화젯거리 아닌가. 마치 나중에 받을 유산을 미리 증여받자 공돈 생긴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 재난지원금 받으셨나요.
 
  “저도 신청해서 받았습니다. 국민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 거지, 기부를 하는 게 아니에요. 국민이 왜 국가에 기부를 합니까?”
 
  ― 문 대통령께선 솔선수범(率先垂範)해서 기부하셨는데요.
 
  “그분은 원죄가 있으니까 기부하는 거겠지요. 제 가족은 60만원을 받았어요. 전 그 60만원 없어도 사는 사람이니, ‘나라에 기부하지 않고 당신에게 드리겠다’며 가사 일 도와주시는 분, 제가 사는 공동주택 청소하시는 분들께 다 드렸어요.”
 
  ―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통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뭡니까.
 
  “헌법적 가치입니다. 헌법적 가치라는 건 자유, 평등, 정의예요. 이 가치를 다 같이 존중하는 게 사회 통합의 지름길입니다. 지금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고 하지 않아요? 평등은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자유보다 평등을 강조한 사회는 자유도 잃고 평등도 실현하지 못해요.”
 
  ― 자유와 평등을 같이 존중해야 하는군요.
 
  “대표적인 예가 공산주의 국가예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만들겠다는 거 아닙니까. 러시아, 중국, 북한을 보세요. 평등합니까? 자유는 처음부터 평등에 희생됐고, 평등도 실현 안 됐어요. 그러니 자연히 정의는 발붙일 곳이 없는 겁니다.”
 
 
  ‘두더지식 헌법 파괴’
 
  ― 현 정권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본소득이니 뭐니 나라가 돈을 퍼줘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하죠? 일종의 포퓰리즘이에요. 인기는 얻겠지만 나라는 골병들고 사회통합은 안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남미, 남유럽이에요. 브라질, 베네수엘라, 그리스, 이탈리아 다 나라가 엉망이 되고 있죠. 우리도 지금 그런 방향으로 서서히 가고 있어요. 두더지식 헌법 파괴입니다.”
 
  ― ‘두더지식 헌법 파괴’가 뭔가요.
 
  “두더지가 땅 밑으로 기어 다니잖아요. 그러면 지표면이 흐물흐물해져요. 헌법을 정면으로 파괴는 안 하지만 두더지식으로 파괴하는 거예요 이 정권이. 국민들이 드러나게 절실하게 느끼면 들고일어나니까, 국민들이 모르게 파괴하는 거죠. 학문 용어로는 ‘잠복식 헌법파괴’예요.”
 
  ― 겉은 멀쩡히 두고 안으로 파괴하는 거네요.
 
  “국민들은 지금은 몰라요. 당장 돈을 받으니 ‘이런 정권은 일찍이 없었다!’고 하죠. 선거일 직전에 돈 준다고 약속해놓고 나중엔 국가에 기부해라? 이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 표는 이미 받았으니 너희는 토해내라는 거예요? 난센스도 이런 난센스가 없습니다.”
 
 
  ‘볼셰비키 전략기법’
 
  헌법이 ‘대중화’됐다고 해야 할까, 생각지 못한 곳에서 헌법이 등장하는 시대다. 방송인 겸 강연자인 김제동이라는 인사도 헌법을 분석한 책을 썼을 정도다. ‘헌법1조’라는 노래도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다. 2008년 광우병 시위, 2016년 박근혜 탄핵 시위 등 촛불집회마다 등장했다. 곡을 만든 윤민석씨는 그 전엔 이런 곡을 만들었다.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 ‘평양에 가보세요’.
 
  ― 역대 두 번의 촛불시위 때마다 헌법이 거론됐네요.
 
  “문민 정부 이후로 보면, 소위 우파 대통령이 세 사람, 좌파 대통령이 세 사람 아닙니까. 김영삼 대통령 때는 문민화라는 열기에 그냥 넘어갔어요. 이명박 대통령 때는 광우병 사태가 생기니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집권 초기부터 레임덕으로 만들어버렸어요. 박근혜 때는 ‘세월호’ 사고로 레임덕 상태로 만들었지요. 그래서 이 정권이 탄생한 거 아닙니까. 좌파 세력의 특기예요.”
 
  ― 초기에 힘을 잃게 하는 게 특기인가요.
 
  “볼셰비키 혁명 이론의 전략기법 그대로 하는 거예요. 첫째, 어떤 목표를 정하면 물고 끝까지 가야 한다. 둘째, 잘못이 있어도 절대 잘못했다 하지 마라. 인정하지 말고 자꾸 우겨서 많은 사람이 그게 옳은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어라.”
 
  ― 그러고 보니 이번 정권 들어선 의혹이 제기돼도, 규명하고 사과하는 미덕을 못 본 듯합니다.
 
  “원자력 발전소 보세요. 아무 절차도 없이 대통령 한마디에 멈췄어요. 이거부터 위헌입니다. 원전을 멈추려면 국무회의도 거치고 절차를 거쳐야 하잖아요? 그 이상 중요한 국정이 어딨습니까. 헌법 89조에 국무회의 열어서 논의하라고 규정해놨어요.”
 
  ― 뭘 지적해도 별 반응 없이 넘어가는 게 일상이 된 듯합니다.
 
  “조국 교수가 잘못했다고 인정합니까? 최강욱 의원은 조국 교수 아들에게 허위문서 발급해준 거 인정합니까? 황운하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에 연루돼도 인정 안 하잖아요. 볼셰비키 혁명 이론엔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말라고 되어 있어요. 제 눈엔 그렇게 비쳐요. 원전은 재개 안 할 겁니다.”
 
 
  “공산화 가장 우려”
 
  ― 이 정권을 지켜보며 가장 우려하시는 게 뭡니까.
 
  “공산화(共産化). 두려워요. 우리야 살 만큼 살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 공산화되면 후세들은 어떻게 될까.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온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정착 못 하고 무서워서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하는 상황은 헌정사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소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변호사가 류경식당 탈북민을 찾아가 ‘죗값 치르고 북으로 돌아가라’ 이따위 얘기나 했다잖아요?”
 
  인터뷰 후 특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6월 10일에 정부가 탈북민 단체 2곳을 고발한 거다. 민법을 어기며 대북전단을 북한 지역으로 보냈다는 이유였다. 전화로 허 교수의 생각을 물었다.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온 탈북민들을 북한이 싫어하는 전단을 보낸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게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요? 북한 인민의 인권을 걱정해, 그들에게 현실을 알려주는 국민을 고발하고, 수사하고 공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박해하는 나라는 독재국가거나 공산국가입니다. 혹은 둘 다에 해당되겠죠.”
 
  그의 탄식이 이어졌다.
 
  “히틀러가 아리안민족, 게르만족 혈통 지킨다고 유대인을 학살하지 않았어요? 지금 정부는 탈북민을 마치 나치 시절 유대인처럼 취급하는 겁니다. 국민엔 1등 국민, 2등 국민이 따로 없어요. 탈북자 단체를 문재인 대북정책의 걸림돌로만 취급하는 겁니다.”
 
 
  정부는 어떤 통일을 원하는가
 
  ― 이번 통일부의 고발은 위헌 행위 아닙니까.
 
  “우리 헌법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이라고 되어 있어요. 북한 주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인권의식을 북돋으려는 걸 막는 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이 아닙니다. 북한 인민을 억압하는 김정은식 통일, 공산주의 통일정책 아니겠어요? 문 대통령이 머릿속에서 구상하는 통일이 자유민주적 통일이라면 전단을 장려해야지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아니라 서서히 북한에 동조해 그 길로 가려는 게 명백히 눈에 보입니다.”
 
  ― 류경식당 매니저는 못 견디다 해외로 망명했지요.
 
  “우리나라에 지금 얼마나 많은 간첩이 들어와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공산당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정부 요소(要所), 군대, 시민단체에 퍼져 있어요. 유사시에 그들이 곳곳에서 선봉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지금 사회 곳곳에 배치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까지 듭니다.”
 
  ―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걸 어디서 느끼느냐. 북한에 대해 저렇게까지 저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북한에서 어떤 욕을 하든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북한이 포격을 가해도 먼저 오발일 거라 발표하잖아요? 단순히 개인의 기우(杞憂)이길 바랍니다. 아마 많은 지식인이 저와 비슷한 우려를 하고 있을 겁니다.”
 
  ― 일반 국민 중 여러분은 못 느끼는 듯합니다.
 
  “국민이 공산화되고 있다고 느끼면 들고일어나거든. 그렇게 느끼지 못하도록 서서히 할 거예요. 문 대통령 임기 내에 실현되면 좋지만 그게 어려우면 다음 정권에서 꼭 그렇게 하려고 전략을 짤 겁니다. 그 마무리는 개헌이 될 겁니다.”
 
  소위 ‘지식인’ ‘원로’들 중엔 이상 증세를 감지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목소리를 낸 후, 신상 털기부터 협박 전화까지 다양한 피해를 겪었다는 얘길 들었다. 여든이 넘은 허 교수도 피해가지 못했다.
 
  “제가 《조선일보》와 다른 몇몇 신문에 칼럼을 써서 이 정권을 비판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문자, 전화가 일제히 수도 없이 쏟아지는 겁니다. 낮이고 밤이고 없어요. 약속한 듯이 대뜸 이럽디다. ‘당신 손자 ○○가 △△학교 다니지?’ ‘당신 손자가 어디 사는지 집 주소를 알고 있다.’”
 
  허 교수는 “나는 이제 그런 공격이 두렵지 않다”고 덧붙였다.
 
 
  결선투표제 도입해야
 

  ― 선거가 끝나자마자 여당이 개헌 얘기를 꺼냈습니다. 헌법도 위기에 처한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야당이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 개헌안 준비를 시작해야 해요. 저쪽에서 낸 개헌안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 현행 헌법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저는 대통령 선거를 절대다수대표제로 바꿔야 한다고 말해왔어요. 대통령을 직접 뽑는 나라에서는 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했어요. 적어도 국민 과반이 나를 지지했다, 이래야 국정운영이 되지요. 사실 1987년 개헌 때 절대다수대표제를 채택해야 했어요. 개헌안 만들 때 양김(김영삼·김대중)에게 제가 그랬어요. ‘결선투표제 도입해야 한다’고. 둘 다 똑같이 답했어요. ‘허 교수 말이 백번 맞지만 저쪽(전두환·노태우)에서 안 받는다. 그리고 그거 없이도 내가 충분히 과반수 받아 당선된다.’”
 
  ― 결국 상대다수대표제, 즉 득표율 상관없이 다른 후보보다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은 사람이 당선되는 제도가 채택됐지요.
 
  “양김이 욕심 부리는 바람에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잖아요. 그 폐해가 지금까지 온 겁니다. 박근혜 빼고는 득표율이 50%를 넘은 대통령이 없잖아요. 유일하게 국민 절반 이상(51.6%)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 사람이 탄핵을 받았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합니까.”
 
  ― 대통령 중임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4년 임기를 채웠으면 임기에 대해 평가받을 기회를 최소한 한 번은 부여해야 합니다. 잘했으면 재선이 될 거고 못했으면 떨어지겠죠. 그게 대통령 직선제의 의미입니다. 87년 당시엔 ‘장기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잖아요.”
 
  ― 부통령제 도입은 해야 합니까.
 
  “당연하죠. 대통령제를 도입한 나라 대다수가 부통령제도 같이 도입했어요. 국무총리는 힘이 없어요. 역사 속에서 목격했어요. 12·12 때 계엄사령관 연행도 최규하 국무총리가 금방 재가했잖아요. 황교안 총리. 박 대통령 탄핵되고 대통령권한대행 하는데 무슨 힘이 있었어요? 공석이 된 헌재재판관 한 명도 임명 못 했잖아요. 그 이유는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만한 민주적 정당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회 과반수 임명동의 받은 거 외엔 없어요.”
 
  ― 하긴 미국의 경우를 보면, 대통령 유고 등 비상사태 발생 시 부통령이 있으니 수습이 쉽습니다.
 
  “미국 역사상 9명의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어요. 현재의 펜스 부통령이라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난 모르겠지만, 항상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현장에서 같이 관찰하고 생각하잖아요. 미국처럼 러닝메이트로 뽑는 식이어야 해요. 제1공화국 때처럼 대통령 선거, 부통령 선거 따로 하면 자칫 서로 다른 정당이 뽑힐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1공화국 부통령제가 실패한 겁니다.”
 
  ― 우리는 왜 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제를 도입했나요.
 
  “대통령이 자신의 대통령 자리를 성역화하려면 모든 비난을 막아줄 방어벽이 있어야 되잖아요. 대통령직을 성역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장치로 마련한 거죠. 방어벽이 화살을 너무 많이 맞아 쓸모가 없어지면 해임하고, 다른 사람으로 갈아서 다시 방어벽을 치는 식이에요. 독재정권 시대 통치 수단이었어요.”
 
  ― 도입한 의도가 불순했네요.
 
  “지금 국무총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국비만 낭비하죠. 이낙연 전 총리가 한 일이 뭐가 있으며 정세균 국무총리는 뭘 하고 있습니까? 국정 통할권?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총리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보다 힘이 없어요. 그런 국무총리가 왜 필요합니까? 당연히 없애야지. 부통령제를 잘 활용하면 지역감정도 해소할 수 있어요. 만약 영남 대통령이라면 호남 부통령, 호남 대통령엔 영남 대통령 하는 식으로요.”
 
 
  대통령 인사권 제어해야
 
  ― 또 어떤 조항이 필요합니까.
 
  “대통령이 모든 헌법기관을 장악할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 결국 인사권이거든. 주요 헌법기관장을 임명하는 절차를 대통령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견제장치를 헌법에 담아야 해요.”
 
  ― 재정 준칙도 필요한 거 아닙니까.
 
  “여당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내세우는 ‘퍼주기 포퓰리즘’을 막아야 해요. 퍼주기엔 모든 국민이 약합니다. 돈이 없건 있건 준다는데 싫어하는 사람 있습니까. 선진국은 다 재정 조항에 국가 부채 한계를 정해놨어요. 우리는 그게 없으니까 나랏빚이 엄청나게 늘어도 퍼준다잖아요. 재정 조항을 헌법에 두고 그 이상 넘어가지 못하도록 예방 장치도 마련해야 합니다.”
 
  ― 연방제 도입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이 정권은 헌법적 틀을 아마 북한과 좀 더 가까이 접근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어요. 고려연방제 같은 식으로요. 야당의 가장 급선무가 그걸 막는 거예요.”
 
 
  지금은 개헌 논의 적절치 않아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지금이 개헌을 하기에 적절한 때일까요.
 
  “개헌은 사회가 안정이 됐을 때 차분히 생각해서 하는 겁니다.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사회가 불안한데 개헌을 불쑥 던지면 누가 관심 있겠습니까? 지금은 개헌을 논할 시기가 아니에요. 코로나가 진정될 때까지 묵혀놔야 돼요. 전염병 막는 데 국정 전력을 투자해야 돼요. 생명 지키는 일은 소홀하고 뚱딴지같이 헌법 고치자? 말이 되겠어요?”
 
  ―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의 이념과 리더십이 중요한 시기인 듯합니다.
 
  “리더가 본인의 정당성에 자신이 있으면 양보도 잘해요. 양보해도 국정 운영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정당성에 자신이 없는 리더는 리더십이 없어요. ‘나를 지지하는 계층은 한정되어 있고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 해도 끌어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리더십에 결함이 생기기 시작하죠. 전체의 리더가 아닌 부분의 리더를 자처하게 되는 거예요.”
 
  ― 지지자만의 리더가 되는 거군요.
 
  “산토끼 잡으려다가 집토끼까지 다 잃어버리면 자기가 위태로워지니, 일부 집단의 리더로 고착되는 겁니다. 문 대통령이 지금 딱 그 격이에요. 자기 세력만 철저히 챙기고,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죽어도 자기를 지지 안 할 걸 알기 때문에 절반의 리더로 만족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지속적으로 굳힐 수밖에 없어요. 집토끼까지 다 잃어버리면 안 되잖아요. 노조, 친여 시민단체, 친여언론매체를 점점 더 감쌀 수밖에 없는 거죠.”
 
  ―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현 집권세력은 남의 말을 안 들어요. 절대로 자기 잘못 인정하지 않고, 자기 목표로 갑니다. 그동안 내가 문재인 집권 후에 여러 번 칼럼을 쓰고 지적해도, 마이동풍(馬耳東風), 우이독경(牛耳讀經)인데요, 조언은 의미 없어요.”
 
  ― 교수님은 체념하셨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조언을 해보자면, 임기가 1년 반 남았나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집토끼 좀 놓치더라도 산토끼를 끌어안아라. 불필요한 고집 부리지 말고 잘못한 정책은 지금이라도 바로잡아라. 다른 건 여론 중시한다면서 왜 원전 문제엔 귀를 닫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국민 70% 이상이 원자력발전 계속해야 된다잖아요. 듣고 싶은 여론만 듣고 듣기 싫은 건 암만 다수 국민이 원해도 안 들어요.”
 
  ― 대통령이 교수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네요.
 
  “조용한 밤에 혼자 앉아서 취임선서문을 정독해봐라. ‘내가 과연 취임선서대로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생각 들면 선서문으로 돌아가라. 이게 제가 그분에게 하는 조언입니다.”
 
 
  아침마다 트레이너와 운동
 
  허 교수는 두 시간 좀 넘는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논리는 유려(流麗)했고, 기억력은 놀라웠다. 건강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마다 운동을 한다고 한다. 맨손체조, 산책 정도가 아니라 운동시설에 가서 트레이너에게 지도를 받아가며 체계적으로 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이 풍진 세상 얘길 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자신의 지난 삶을 떳떳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인생의 훈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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