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김태완의 인간탐험

이어령, 故 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에 답하다 (4) 마지막

“神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가 바로 絶對”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神을 제외하고 ‘절대’라는 말을 못 써… ‘절대라는 말은 절대로 없다’고 할 때만 가능
⊙ 영혼까지 저울로 재려는 서양의 反영혼주의
⊙ 양자적 진공이 영혼의 세계… 有면서 無, 無면서 有, 입자이면서 파장인 세계
⊙ “어찌 하늘이 이로움과 해로움을 가려서 조치를 취할 수 있겠는가”(이규보 〈問造物〉 중에서)

李御寧
1933년생. 서울대 국문학과·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 경기고 교사, 이화여대 교수,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논설위원,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장, 문화부 장관 역임
  빈자(貧者)의 제단을 작은 촛불로 밝히며 시작된 이어령(李御寧·이화여대 명예교수) 선생과의 네 번째 항해를 떠났다. 이 항해가 《월간조선》과의 마지막 항해일지 모르나 떠남은 새로운 만남과 출발을 의미한다.
 
  선생은 평생 도그마와 싸워왔다. 친(親)체제나 반(反)체제 어느 진영에도 갇히지 않으려는 비(非)체제의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신앙을 갖고 나서도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을 헤매던 지난날을 새로운 안목으로 제시하려 애썼다. 그 안목에는 문인의 직관력과 기호론자의 학문적 분석력이 공존한다. 언어의 의미·상징 체계를 분석해 그 속에 담긴 신(神)과 영혼, 죽음, 인류 문명의 의미망을 추적하는 일이리라. 얼음 속의 불이다.
 
  선생이 현재 암 투병 중이란 점을 감안하면, 고(故) 이병철 회장의 절박했던 24가지 질문처럼, 답변 하나하나는 수도자의 고해(告解)처럼 다가왔다. 선생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 독자들은 자신의 내면에 세워놓은 장벽들이 조금씩 사라졌을지 모른다.
 
  기자는 선생의 말을 정리하는 과정을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 인내와 신중함이 필요했지만 마찬가지로 선생 역시 내적인 부름, 용기, 갈망에 답해야만 하는 시간이었으리라.
 
  선생과의 네 번째 대담은 지난 10월 28일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이뤄졌다.
 
  “신학적으로는 이미 몬시뇰(鄭義采)이라고 하는 가톨릭 장상(長上)께서 답변을 하셨기에 무언가 토를 달 입장도 용훼(容喙)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있었다’는 성경 말씀이 언어를 따지는 기호론과 관련된 것이기에 글 쓰는 문인, 그리고 기호학자의 한정된 입장에서 제 의견을 말해온 것이지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투병 중인 사람으로 종교적 문제와 직면해 있다는 상황에서 모든 리스크를 감수하고 입을 열게 된 것이라고 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의미·상징의 세계, 즉 피시스(physis)와 노모스(nomos), 세미오시스(semiosis)라는 3가지로 구성돼 있어요. 이 세계 속에 종교적 담론 역시 ‘삼각 측량’으로 관찰하면 또 다른 해답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선생이 말하는 피시스, 노모스, 세미오시스에 처음부터 숨이 막혀온다. 독자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식은땀이 솟는다. 선생에 따르면 물질계는 피시스, 기호·상징계는 세미오시스, 법칙계는 노모스를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의 방향감각에서 볼 때 북쪽은 신화의 큰곰자리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선원이 항해를 할 때는 작은곰자리를 향해 갔다고 합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더블 스탠더드를 갖고 살았던 것이죠.
 
  그리스인이 작은곰자리를 북쪽으로 보는 것과 같은 세계를 자연계·피시스라 부르고, 큰곰자리가 북쪽을 상징하는 신화와 같은 세계를 기호계·세미오시스라고 해요. 그리고 법률이나 제도 또는 폴리스 성벽에 둘러싸인 세계를 법칙계·노모스라고 합니다.
 
  저는 이 세 가지 관점 가운데서 그리스 신화와 같은 세미오시스 영역을 통해 죽음과 같은 종교문제를 접근해왔던 겁니다.”
 
 
  故 이병철 회장의 질문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신약성경 《고린도 전서 첫째 서간》의 모습이다.
  열 번째 질문 ‘영혼이란 무엇인가?’를 막 물을 참이었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선생의 입술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일까.
 
  “기독교에서 영혼의 답을 찾으려면 영혼이란 말부터 알아야 하지요. 신약 성경의 《고린도 전서 첫째 서간》 14장에 보면 직접 언어와 관련하여 언급한 대목이 나옵니다.
 
  ‘피리나 수금처럼 생명 없는 것들이 소리를 낼 때에도 그 음정이 분명하지 않으면 무엇을 연주하는지 어떻게 알겠냐’는 것이지요. 또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누가 전투 준비를 하겠냐’는 겁니다. ‘이처럼 사람이 말할 때 혀로 알아듣기 쉽게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방언(放言)’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말이지만 땅에서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는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는 ‘예언’이 더 값지다는 겁니다. 그리고 곧이어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하는 기도하는 방법까지 (성경) 말씀으로 남기고 있지요. 영과 마음 그리고 기도와 찬송이 서로 대비되어 있어서 영혼이 무엇인지 알고 노래의 차이까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영혼, 신령, 혼령, 영성… ‘영(靈)’자가 붙은 말이면 금세 안개에 싸여버려 길을 헤매고 마는데, 영혼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을 듣자니 가슴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다. 선생의 입에서 “그런데…”라는 말이 나오자 기자는 다시 움츠러들고 말았다.
 
  “그런데 영문(英文) 성경의 본문을 보면 영(靈)은 spirit으로, ‘마음(mind)’이 아니라 지성(intellectual)으로 되어 있어요. 마음과 지성이라는 말 사이는 천리(千里)가 아닙니까.”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쓰신 분이니 그의 말에 납득이 갔다.
 
  “‘영’이라는 한자말과 ‘넋’이라는 우리말에도 차이가 깊고, 무엇보다 기독교 문화권의 영어와 라틴어계의 불어, 이태리어 또한 차이가 크지요.”
 
  그렇다면 원래 그리스어나 아랍어에서는 ‘영혼’을 뭐라고 불렀는지, 어떤 뜻이었는지 산 넘어 산이 아닌가. 누가 이병철 회장이 던진 그 거창한 ‘영혼이란 무엇인가?’는 물음에 과연 입안의 혀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 절망의 순간, 선생은 구세주처럼 한마디 희망의 말을 던졌다.
 
  “그래서 추상적인 용어보다는 스토리 텔링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양자적 진공, 영혼의 세계, 이항대립의 終焉
 
이어령 선생의 얼굴 그림. 이 그림은 《문학사상》 지령 200호(1989년 6월호) 표지에 실렸다. 영인문학관에 전시돼 있다.
  선생은 인터넷 검색하다 얻은 미국 이야기라면서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를 들려주었다.
 
  “교장 선생이 문제아들만 모아 특수학급을 만들어 베테랑 여교사에게 맡겼어요. ‘특수한 아이들이니 잘 가르쳐달라’는 부탁과 함께 넘겨준 학생 명단 옆에는 110, 127, 135와 같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고 해요. 여교사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고 열심히 가르쳐서 그 클래스의 아이들 모두 성적이 부쩍 올랐다고 합니다. 교장 선생이 치하하자 여교사는 ‘명단 옆의 지능지수를 참고하여 아이들을 가르친 결과’라고 겸손하게 말했대요.
 
  그러자 교장 선생이 깜짝 놀라 ‘선생님, 그것은 IQ가 아니라 그 아이들 사물함 번호를 적은 숫자였는데요?’라고 했다는 겁니다.”
 
  선생은 늘 하찮은 이야기에서 보물을 찾아낸다. 사물함 숫자코드를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 코드로 해독한 결과로 현실이 뒤바뀌었다. 문제아 특수집단이 천재 특수집단으로 인식된 셈이다. 선생도 구박만 받던 아이들도, 모든 행위와 인지의 상황이 다르게 해석된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 특수한 문제아들이 특수한 재능을 가진 아이로 둔갑한다. 그게 바로 과학만으로는 합리화할 수 없는 영성의 힘이며 종교적 믿음의 세계가 아닐까.
 
  “IQ란 말은 알잖아요. EQ는요?”
 
  초등학교 학생도 아는 것이니 모른다고 할 수 없다. 계속된 선생의 말이다.
 
  “자, 그러면 SQ는요?”
 
  이렇게 해서 첩첩산중의 터널이 뚫렸다. 웹 검색을 해보면 단번에 〈IQ, EQ 너머 지금은 SQ 시대〉라는 표제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능지수와 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의 대립과 모순을 융합하여 새로운 단계로 올라간 것이 SQ, 즉 영성지수(Spiritual Quotient)다. 만약 이병철 회장이 물은 ‘영혼’을 신학적으로 아니면 철학적으로 풀이했다면 ‘옴 주교’ 같은 의사(擬似)종교단체나 미신, 신비주의자, 광신자 등의 거미줄에 걸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물리학자이자 철학자, 종교학자인 다나 조하르(Danah Zohar).
  지성의 날개는 나비처럼 너무나 연약해서 일단 이러한 거미줄에 얽히면 헤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선생은 영혼의 정체를 현대인의 종교가 되어버린 SQ의 과학적 숫자로 업어치기 한판을 따낸다. 그것도 과학과 종교를 다 같이 포용한 다나 조하르(Danah Zohar)의 이론으로 말이다.
 
  “여기서 자세히 옮길 수는 없지만, 케네디 형제가 암살당한 미국 사회에 염증과 실망을 한 조하르는 세계 각지를 다니며 여러 종교적 체험을 합니다. 동시에 그의 전공인 양자역학 등 최첨단의 과학이론을 함께 탐구했지요.
 
  그 체험과 연구결과를 담은 책(《Rewirering the Corporate Brain》)을 1997년에 썼는데 핵심이론이 ‘양자적 진공’입니다. 양자적 진공은 물질계처럼 입자와 파장이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말하죠. 유(有)면서 무(無)인, 무면서 유인, 입자이면서 파장인 이항대립의 종언(終焉)인 것이죠. 영혼의 세계가 ...

프리미엄 결제안내

본 기사는 유료기사입니다. 전문을 보시려면 로그인 후 프리미엄회원 등록을 하시기 바랍니다. 로그인하기

프리미엄 결제하기

* 월간조선 정기독자는 추가 비용 없이 프리미엄 이용이 가능합니다.   정기독자 프리미엄 신청

캐시 결제 안내(건별기사)

캐시로 결제하기

캐시 충천은 1,000원부터 입니다.
캐시로 결제된 기사는 결제 후 1시간 동안만 읽으실 수 있습니다.

캐시 충전 하러 가기      캐시 충전내역 확인법

* 캐시를 정상적으로 충전 후 위의 '캐시로 결제하기' 버튼을 한번더 클릭하여 주셔야만 기사전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조회 : 856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9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도서출간 배너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