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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

20년 분쟁 끝내… 역대 100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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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 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는 우리나라보다 25배 잘사는 나라였다.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6000여 명의 전투부대를 파견했다. 에티오피아가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0달러가량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것은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전 대통령 때문이다. 공산주의 군사정권이던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정부는 1991년 구(舊)소련 붕괴와 함께 무너졌다.
 
  이런 에티오피아에 최근 경사가 났다.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아비는 자국 에티오피아와 이웃 국가 에리트레아 간의 20년 분쟁을 종식하는 데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10월 11일(현지시각) “아비 총리가 평화와 국제협력을 위한 노력을 보여줬으며, 특히 이웃 나라 에리트레아와의 분쟁 해소를 위해 결단력 있는 행동을 했다”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아비는 역대 100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 북쪽에 있는 에리트레아는, 1960년대 초반부터 30년에 걸친 독립전쟁을 벌인 끝에 1993년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양국 사이에 쌓인 앙금은 해소되지 않았다. 양국은 1998년부터 3년간 전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약 8만명이 사망했다. 그 후로도 군사적으로 대치해왔다.
 
  43세의 아비는 지난해 4월 총리가 되자마자 에리트레아에 “서로 대사관을 설치하자”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또 그는 취임한 지 3개월 만인 지난해 7월 에티오피아 총리로는 처음으로 에리트레아를 국빈 방문해,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과 공항에서 진한 포옹을 했다. 두 정상은 종전(終戰)을 공식 선언했다.
 
  아비는 에티오피아 동쪽에 있는 또 다른 이웃 국가 소말리아와도 관계 개선을 이뤄냈다. 소말리아가 1977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후 운항을 중단한 에티오피아항공이 지난해 41년 만에 소말리아로 운항을 재개했다. 아비가 역사적인 화해를 주도하면서 빈곤에 시달리는 동아프리카가 경제발전할 수 있는 획기적 전기를 맞게 됐다는 점을 노벨위원회는 높게 평가했다.
 
  아비는 80여 종족이 사는 에티오피아를 통합하는 데도 열성적이다. 그는 주요 3개 종족의 언어를 모두 구사한다. 지난해 내각을 출범시킬 때 아프리카 국가로는 파격적으로 20명의 장관 중 절반인 10명을 여성으로 임명했다. 잇따른 개혁 조치가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아비마니아(Abiymania)’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아비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거나 소셜미디어의 프로필 사진에 아비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올려놓은 에티오피아 젊은이가 적지 않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카리스마가 있어 만델라, 오바마와 비견되고 있다”고 했다. 아비는 에티오피아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영국 그리니치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정보장교로 복무하다 2010년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들어왔다.
 
  아비는 지난 8월 26일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양국은 역사적인 유대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본받고자 하며, 에티오피아 역시 한국 경제발전을 롤모델 삼고 많은 영감을 받는다”며 “아프리카 대륙 전체 국가가 몇십 년 내로 많은 경제발전을 구가하도록 한국의 발자취를 따라가길 희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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